bgm : 나의 고백 - 정준일






아네모네

18화









4년 전.




―조금 더 늦을 것 같은데, 어쩌지.

 

수화기 너머 죄인이 된 현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나는 고개를 숙였다. 지나의 무릎을 베고 누운 열 다섯 살의 지훈은, 다행히도 자고 있었다. 낮 내내 현진 형을 기다리느라 놀이기구도, 물놀이도 다 거부하고 하염없던 지훈은 오후로 접어들자 심통으로 저녁도 거르고 설잠에 들었다. 

곧 깨어 또 형을 찾을 텐데. 무엇보다 지훈 때문에 지나는 곤란했고, 현진이 이렇게 송구해하는 이유도 별다르지 않았다. 지나가 지훈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의 사이를 뒀다.

 

“많이 안 좋대?”

―그런 건 아닌데… 태희 어머니가 아직 안 오셔서 병실에 혼자라고 그래서.

“그렇구나.”

 

여행갈까? 현진은 며칠 전 대뜸 그런 말을 꺼냈었다. 어? 하고 되물은 건 지나가 이어폰을 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주섬주섬 귀에서 이어폰을 빼 엉킨 줄을 다 풀기도 전에 현진은, 지훈이랑 같이. 보니까 네 생일이 샌드위치 연휴더라고. 하고 덧붙였었다. 


“너 나 지훈이, 우리 셋이?”

“그럼 너 나 둘이 가?

“미쳤나봐. 싫거든?”

“그러니까 같이 가. 어?”


현진의 애원에 지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

대전에서 지훈을 데리고 온 지나가 먼저 체크인을 하고, 스터디가 있는 현진이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던 일정이었다. 약속대로라면 현진은 다섯 시간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출발하려던 길에 현진은 태희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성대에 작은 물혹이 생겨 수술을 했고, 필요하니 당장 와달라는 연락. 그때 지나에게 태희에 대한 정보라곤 희박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좀 다쳐서, 당분간 대신 한국 생활을 돌봐주고 있는 그의 여동생. 

그럼에도 좀 의아했던 건, 그런 것치곤 현진은 태희에게 빚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굴었고, 태희 역시 제 오빠한테도 그럴까 싶게 현진을 가만두지 않았다는 거였다.

 

―지훈인?

“자.”

―화 많이 났지, 지훈이.

“아냐. 걱정 하지 마.”

―사실 간병인이 몇 명이나 있어서 언제 가도 상관없긴 하거든. 잠드는 것만 보고 바로 갈게. 저녁은 먹었어?

“저, 현진아.”

―어. 지나야.

“안 와도 돼.”

―어?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어. 어차피 내일도 수목원 구경가는 일정밖에 없는데, 그거 내가 지훈이 데리고 가면 돼.”

 

아침부터 붙잡혀 병원으로 가 이미 밤이었다. 종일 시달렸을 현진에게 또 운전을 시키고, 형이 오면 반가워 밤을 새다시피 할 지훈을 받아내라고 하기엔 지나는 현진에게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훈이가 나 기다릴텐데.

“이제 걔도 애 아니야. 형 바쁜 것도 알고.”

―너한테 줄 것도 있어.

“내일 서울 가서 봐. 그때 줘.”

―아, 나 너 봐야하는데. 지나야.

 

그런 거면 애초에 간병인까지 몇 명이나 붙어 있다는 애 전화에 선약까지 미루고 달려가지를 말던가. 순간 불퉁한 생각이 올라와 지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거나 현진에게 서운할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

 

―그냥 지금 출발할게.

“아니, 현진아.”

―금방 가. 기다리고 있어.

 

 

 

 

두 시간을 훌쩍 넘겨 현진이 왔을 땐 지훈은 여전히 꿈속이었다. 현진은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지훈을 침대로 옮기고, 깨면 전화하라는 쪽지를 남겨두었다. 방문을 닫고 나온 현진은 대뜸 지나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

“어딜?”

“너 보여주고 싶은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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