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witter.com/gnkwo393/status/1481189490765049862

리퀘...일까요. 이걸...그렇게 말해도 될까요? 사실 이 키워드로 DB님이 제 글을 보고 싶다고 말씀해주셨을 때부터 써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글이었는데...지금까지도 잘한 짓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의견을 여쭤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생각하시던 방향성이 크게 어긋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워낙 '이병희라는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 이규혁'이라는 문장이 완벽해서....사실 이 사족과도 같은 글을...이 글이...의미가...있을까, 괜히 제가 망쳐놓는 건 아닐까...같은 그런 걱정들이 앞섭니다...

사실 명왕성이라는 소재는 문학이나 작품들에서도 종종 쓰이는 것을 알곤 있지만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소재라서 짧은 단문을 쓰면서도 꽤 오래 고민을 했던 것 같네요. 보통은 어떻게 명왕성을 바라보나 하고 찾아도 봤었는데...제안의 규혁이는 자신을 하나의 별이라고도 생각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좀 헤매기도 했었네요. 너무 근사하고 그 자체로 완벽한 문장의 하나의 해석...정도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베스타 엔딩 이후 1년은 훨씬 더 지난 시점의 이야기이며, 딱히 스포일러는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늘 그렇듯...이규혁에 관련한 사이드 스토리 및 해석은 언제나 낭낭합니다.

감사합니다.





새벽 3시. 라디오 방송을 마친 이규혁은 멍하니 새벽 밤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다.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DJ의 제안을 세 차례나 거절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날부터 종일 내린 비는 방송을 마치고 나오니 깨끗하게 개어 있었다. 덕분에 밤하늘은 모처럼 깨끗했고, 좀처럼 서울 하늘에선 보기 힘든 별들이 제법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문득 걸음을 멈춘 규혁은 가장 밝게 빛나는 별에서 시선을 돌려 보일 듯 말듯 희미한 별의 흔적을 더듬었다. 하지만 의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시 빛나는 별을 좇게 된다. 그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이규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규혁은 별이었다.

한번 무너진 무대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세워진 무대 위에서 그는 별이 되었다. 그가 빛나는 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 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사람처럼 이규혁은 빛났다. 대한민국이 사랑했던 이병희의 아들로서. 그 사람의 빛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별로써.

이규혁은 벌써 자신의 이름으로 정규 앨범을 두 개나 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그에게서 이병희를 찾고 있었다. 실제로 오늘 게스트로 초청되었던 라디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DJ는 사연 접수 마지막 날에는 게시판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며 이규혁을 향한 대중의 사랑을 증거처럼 말했지만, 규혁이 느끼기엔 그것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엄선된 사연들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 별처럼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할 때, 그들을 위로하고 상처 입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 아버지 이병희의 노래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서 삶을 위로받고, 때때로 사랑받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빛을 나눠준 이병희에게 감사하며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규혁은 오늘 열 개 남짓한 사연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 위로받고자 하는 이는 이규혁이 아니라 이병희라는 것을. 이제 와 그리 슬픈 일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 않던가.

무대가 무너지던 날. 그날 이규혁은 거기서 죽었다. 그때 목숨을 구해준 도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으나 규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규혁은 제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그는 진정 별이 되고자 했다. 오히려 처음 무대에 올랐던 순간보다도 더욱 간절하게 바랐다. 그것만이 도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니 괜찮았다. 아니 그래서 괜찮았다.

긴 한숨이 터졌다. 겨울의 시린 밤사이로 하얀 입김이 금방 형체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규혁은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느리게 옮겼다. 그리고 낮게 허밍 했다. 명왕성. 라디오 방송의 엔딩을 장식했던 곡이었다. 이규혁의 곡이기도 했고, 이병희의 곡이기도 했다. 드라마 OST를 조건으로 리메이크된 곡으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최근에는 어느 곳엘 가도 쉽게 그 곡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곡뿐만이 아니었다. 정식 데뷔 후 1년이라는 계약 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규혁 앞으로 이곳저곳에서 앞다퉈 쇄도 된 것은 이병희 곡의 리메이크 요청이었다. 국민가수라고 불릴 정도로 아직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병희의 곡은 이미 숱하게 많은 가수가 저마다의 시각과 해석으로 불러냈지만 그것도 이규혁의 데뷔와 함께 잠시 주춤한 탓이었다. 5기 베스타를 우승으로 이끈 규혁의 곡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그 이유를 알았다. 이규혁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이 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도. 그래서 낙관을 하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체념한 것에 가까웠다. 어차피 이규혁은 스스로 빛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병희라는 태양 없이는 한낱 얼음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의 노래를 빌어 사람들을 위로했지만, 이규혁을 위로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노래는 모두를 위해 불리었지만, 거기에 이규혁의 몫은 없었다.

'네게 줄 것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그 말을 당사자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사정이 조금 더 나았을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람의 노래에 위로받고, 몸을 기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얼마나 기뻤을까. 분명 노래도 즐겁게 부를 수 있었겠지. 꼭 그를 빼닮지 못했어도 좋았을 터였다.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을 테니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병희의 곡들은 대개가 그러했다. 그는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놓치고 있었던, 혹은 스스로가 너무 미워 외면하고 있던 삶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의 노래는 삶의 이정표였고, 그는 삶의 의미를 노래하는 길잡이였다. 괜히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이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을 제하고서.

규혁은 문득 자신이 이병희라는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히 자신의 것을 손에 넣을 수도 없고, 그에게로 완전히 이끌리지도 못한 채로 홀로 겉도는 불완전한 존재. 그런 이규혁에게 있어 이병희는 가장 먼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간절하게 그의 세상에 몸담길 바랐으나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규혁에게 허락된 것은 이루지 못할 것을 꿈꾸고, 바라다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에도, 너는 멈추는 법 없이 너의 길을 걸어왔겠지.

비록 다시 모두가 너를 외면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너는 푸른 빛을 두른 아름다운 행성.


규혁은 이병희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쓸데없는 감상이었다. 이렇게 추한 별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은 푸르지도, 아름답지도 못했다. 감히 별 따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이규혁은 그때 그곳에서 완전히 멈춰 버렸으니까. 그래도 바라건대, 누군가 그날 무대 아래에 파묻힌 이규혁을 보거든 너는 아름다웠다고 얘기해주었으면. 너도, 이규혁도 한때는 푸른 빛을 두른 아름다운 행성이었노라고 말해주길.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 물웅덩이 위를 지나는 규혁의 위에 담겼다. 그리고 찰박이는 소리와 함께 일그러진 채 흐려졌다.

사다니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