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를 위해 잔을 채우는 토니.

- 한 잔 할래요?
- 뭘 위해서요?
- 우리를 위해.
- 나는 기념할 만한 것이 못되는데요.

브루스, 조금 망설인다.

- ...뭐, 상대해줄 순 있지만 술잔을 채울 수는 없을 거 같군요. 알잖아요. 나는...
- 내가 두 병을 챙겨온데는 다 이유가 있죠.

- 요즘 브룩클린이 떠들썩하더군요.
- 오, 이놈의 인기 식을 줄을 모른다니까.
- 그 거미 꼬마 말이에요.
- 젠장.
- 피터라고 했던가요?
- 피터 파커. 아직 한창 공원에서 뛰놀 나이죠. 주차는 할 줄 모르는 거 같지만 말이죠.

토니가 피터 파커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는다.

- 맙소사 그런 농담이라니, 진심이에요?
- 이것봐요, 박사. 우리는 아저씨들이라고요. 아저씨가 아저씨 개그 좀 한게 뭐가 나빠!
- 글쎄요, 나는 좀-.
- 아무튼, 그 애가 왜요.
- 글쎄요, 음, 좋은 애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14살짜리 애를 데려다가 캡틴들과 싸우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했지만-
- 하! 토니 스타크의 안목을 의심하다니. 그럴 줄 알았죠. 원래 진짜 대단한 사람은 원석부터 알아보는 법이거든. 내가 당신을 알아봤듯이 말이죠.
- ...뭐, 그렇다고 치죠.
- 그 애를 만나본건 아닐테고.
- 뒷조사를한건 아니고-내가 무슨 능력이 있겠어요-으레 다른 시민들처럼 신문과 뉴스를 좀 봤죠.
- 아하?
- 때론 그런 간접적인 매개를 통해 드러나는 모습들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기도 하죠. 상대가 가면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말이에요. 본질은 숨기기 쉽지 않은 거거든.
- 그래요? 흠, 나는 어땠는데요.
- 당신? 아이언맨? 오, 대단했죠. 자의식 과잉의 잘난척쟁이 조만장자에-
- 그것 뿐이었다면 실망스러울 거 같은데요!
- 뭔가의 대단한 심경의 변화를 겪을만큼 대단한 일을 겪었겠다 싶었죠. 그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심하기는 했지만- 알잖아요, 나는 원래 사람을 잘 안믿는다는거. 그때 나는 여유도 별로 없었고 -지금도 아주 다르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 아주 시원하진 않은데 그냥 칭찬으로 듣죠. 근데 이거 하나는 빼먹었네요. 아이언맨의 업적 만큼이나 그 안의 남자가 섹시했다는 감상같은거?
- 노코멘트하죠.
- 맞다는 거네!
- 하하...

브루스, 잠시 생각을 한다.

- 그애가 특별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군요. 정의롭고, 순진하고, 멍청할 정도로 착해빠졌죠. 그리고 그 애의 손은 깨끗하고요.
- ...맞아요. 깨끗하죠. 그래도 다행인건 그 애가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에요.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그게 그 애의 모토거든요. 아, 참고로 내가 지어줬어요. 끝내주죠?
- 영웅놀이하는 재벌 2세 기업가나 꼭지돌면 어떻게 튈지 모르는 파괴왕보다는 훨씬 무해하군요.
- 오, 자기.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당신 그 녹색 젖꼭지가 참 마음에 들던데.
- 하하 좀 닥쳐봐요.
- 부끄러워하기는.
- 뭐, 이제와서 당신 앞에서 우울한 말이나 늘어놓자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런 새로운 종류의 영웅이 출현했다는 것이 꽤 달가워서 말이죠.
- 오, 회의주의자 배너 박사께서?
- 비꼬아줘서 고맙군요, 토니. 그렇지만, 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 이거 좀 질투나려고 하는군요. 지난번엔 나보고 자본주의의 아이언 돼지랬으면서.
- 디아더가이가 그런거 알잖아요.
- 그리고 당신이 그 디아더가이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뭐.
- 이제 능청도 늘었네. 말해봐요, 어떤 잘생긴 애인한테 그런걸 배운 거예요?
- 있어요, 미스터 스타크라고, 입도 가볍고 뭐 그런 사람이요.
- 어떤 천재 엔지니어 기업가인지 한번 알아봐야겠네. 당신을 이렇게 바꾸고 말이에요.

- 그 애를 부러워하는건 아니죠?
- 네?
- 이제 와서 그 신입 히어로의 풋풋함과 순수함을 질투하는 건 아닐테고.
- 하하, 그럴리가요. 나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탐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 브루스 배너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잔에 조용히 입술을 갖다댔다. 비참과 우울은 늘 그와 함께 하였으나 그 안에는 탐욕이 소거되어 있었다. 그래서 좀 견딜만 했다. 토니 스타크와 함께한 일련의 세월들은 그로 하여금 그 숱한 날들 동안 그를 괴롭혀 왔던 몇 가지 감정들을 견디는 법을 배우게 했었기 때문이다.

- 그냥, 그 애가 그런 영웅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당신 같은 멘토를 만나면 쉽게 휘둘리기 마련이거든요.
- 스승이 너무 대단하면 제자가 기죽는 법이긴 하죠. 그래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튜토리얼도 짜고-
- 그래도 어린애가 입을 슈트에 살상용 무기를 설치해놓은건 너무했어요.
- 그걸 어떻ㄱ...
- 해킹하는법을 당신만 아는건 아니니까요. 뭐 어쨌든, 그 애가 그걸 쓰지 않았다는 게 대단하다는 점이죠. 어린애에게 그런 것을 들려주어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좀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 그 애는 믿을 만하죠?
- 하하, 네. 그렇더군요. 나는 당신에 비해 아는 것이 없지만 말이죠.
- 좋은 어른이 될 거예요. 물론 힘든 일도 많이 겪겠죠. 그 애는 아직 어리고, 인생은 고달프니까. 아이들은 금방금방 자라고 사람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지만, 뭐, 어쩐지 그애는 믿을만하단 말이죠. 짜식이, 놀 줄도 모르는 순 범생이여선.
-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 어린 파커에 대한 내 가설이 틀리지 않았나보군요.
- 오, 물론이죠. 물론 아직 좀 서툴기는 하지만, 언젠가 그 애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거예요. 주차하는 것 쯤은 식은 죽 먹기일테죠.
- 오, 토니. 

브루스. 진심이냐는 눈빛으로 토니를 쳐다본다.

- 알았어요. 알았어. 잔이 비었군요. 다시 새 잔을 채우죠. 자, 누구를 위해 잔을 채울까요, 닥터 배너? 내 센스가 구리댔으니 이번 건배사는 당신이 생각해봐요.

브루스, 조금 고민한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짠. 

경쾌하게 잔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픽션 속 중년을 사랑하는 털입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 1D~2.5D를 주로 먹고요, 3D는 브라운관 너머로 투사된 이미지만을 소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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