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저항



※ 주의 SF물이 아닙니다.


  " 재환아, 학교 지금 가? "


 엉. 오늘 2교시부터라. 오, 나도 2교시 부턴데! 재환이 등교를 하려고 마음먹을 적이면 항상 현관문을 열고 따라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재환이 어릴 적 사칙연산에 대해 머리가 쥐어터질 때 즈음에도 있었던 옹성우란 옆집 이웃이었다. 사실 그냥 옆집 이웃으로 정의 내리기는 뭐한 수준. 한 살 차이인 또래라 어머니들이 어떻게든 친하게 지내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었고 재환은 몰라도 성우는 재환이 고작 한 살 차이임에도 굉장히 어린 동생이 생긴 것 마냥 다뤘다. 재환이 세자리수 덧셈을 할 땐 고작 네자리수 덧셈을 했을 뿐이면서 성우는 재환을 자신이 지켜줘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옆집 이웃으로 지낼 때나 좋았지 학교까지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던게 재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초등학교야 뺑뺑이, 중학교도 뺑뺑이, 고등학교는 간신히 옆학교였는데 대학교를 같은 대학 같은 단과대가 걸려버리다니! 가장 상향으로 지원한 성우네 학교의 실음과가 수석으로 붙어버릴지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래서 재환은 실음과 입시 후배들에게 항상 얘기했다. 입시는 정말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어. 그냥 질러. 성우는 성우고 재환은 재환이니 제 성적에 비해 감지덕지한 학교를 재환은 정말 경건한 자세로 다녔다.


 그러니까 축약해서 말하자면 재환은 성우가 부담스러웠다. 옆집인것만으로 충분하게 부담스러웠다. 집에서는 재환의 어머니가 맨날 성우같은 사위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노래를 부르지 학교에선 성우가 재환을 아는 척 한 탓에 성우 좀 소개 시켜달라는 카톡이 1일 1회는 필수지. 무엇보다 성우가 재환에게 지극정성이었다는 데에 있다. 그걸 아는 재환의 어머니가 가끔 언제쯤 잘 될래? 하고 넌지시 얘기를 하긴 하셨지만 재환은 얌전히 수저만 내려놓고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언제까지 내가 코찔찔이라고! 응 재환이 아직 애기야. 고작 한 살 차이면서 성우는 재환을 업고 다니지 못해 난리였다. 무려 대학생인데 시간표 관리는 필수고 재환의 시간표를 다 외운건지 해당 강의 전마다 카톡을 보냈다. 재환아 10분 뒤에 화성악 시간이야. 수요일 오전 10시 50분이면 어김없이 오는 카톡이었다. 


 성우는 잘생기고 잘생겼으며 주책맞았다. 사실 처음에 성우가 재환을 아는 척 할 때만 해도 재환은 성우를 그저 같은 동네에 살 뿐이라고 그 형은 저같은 놈이랑 어울릴 급이 아니라고 열심히 항변을 했더랬다. 다들 금방 수긍을 하는 듯 했으나 그로부터 며칠 후 개강파티에 그것도 남의 과 개강파티에 참가해서 김재환의 옆자리를 차지한 옹성우의 행동은 그 모든 루머를 폭발시켜버렸다. 심지어 개강파티에 웬 결혼식에서나 입을 법한 수트 차림으로 와서 앉았으니 재환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 형이 여길 왜 와! 재환의 극혐스런 표정에 성우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환아 어떻게 날 두고 술을 마실 수가 있어! 형은 연영과잖아! 이런 억지라니 재환은 정말 개구멍으로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같은 예대잖아! 옹성우는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옹성우는 그렇게 김재환 옆구리를 꿰차고 앉아서 재환이 한모금 들이킬 때 마다 내일 시간표에 대해 읊는다거나 재환이 할 과제를 읊는다거나 시험을 읊는다거나 재환이 마셔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만드는 데에 작정을 하고 온 듯 했다.


 그 이후로 말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연영과 존잘남과 친했냐는 매서운 질문들이 재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전공은 그렇다쳐도 교양 시간에 그것도 선택 교양 시간에도 재환은 괴롭힘을 받았다. 누구 하나가 재환에게 너무나도 당당하게 성우의 번호를 요구하길래 아무리 같은 단과대여도 이렇게까진 해줄 수 없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인문대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또 성우를 꽤나 오래전부터 좋아한 티가 났었다. 그래도 재환이 곤란한 티를 냈더니 재환보고 왜 성우를 혼자서 독차지 하려고 하냐는 소리도 들었다. 재환은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 못지 않게 성우를 향한 애잔함도 있었다. 어쩌다 얼굴이 저렇게 생겨갖고...


 성우는 재환이 그런 괴롭힘을 당하든 안 당하든 개의치 않아했다. 개의치 않아 한다기 보단 몰랐다. 성우는 재환이 인기가 많은 줄 알았고(물론 재환도 인기가 있는 편) 김재환 보고 소소하게 카톡으로 과팅 나가지 말라는 협박을 했을 뿐이었다. 당연히 재환을 누군가 괴롭힌다 그러면 나서서 맞서 싸울 성우였고 그런 성우인 걸 아는 재환이라 재환의 입만 더욱 다물게 되었다. 옹성우는 김재환의 옆집 형일 뿐이었으면 좋겠다는게 김재환의 매일같은 소소한 바람이었다. 수업이 파하고 단과대 건물로 나오기가 무섭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성우는 예의 그 물개같은 미소를 지었다. 재환아 형이랑 돈까스 먹으러 가자! 형이 사는 거지? 사실 재환은 이미 반쯤 포기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재환과 성우는 둘 다 일반 단독 주택에 살았다. 단독주택에 옥상도 있어서 날 좋은 밤에는 옥상에서 김가와 옹가가 다같이 모여 과일도 먹고 바베큐도 굽고 했었다. 그에 재환은 다 커서도 옥상에 머무는 것을 참 좋아했다. 널따란 장판에 누워 선명한 달이나 별들이 보이는 까만 하늘을 가만히 감상하면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재환은 오늘도 누워서 품 안에 비싼 돈을 들여 산 기타를 끌어안았다. 자그마치 300만원이나 되던 기타였다. 밤하늘에 따라 잡히는 오늘의 코드는 Alessica Cara의 stars로 잡혔다. 하얀 선율이 흘러나왔다. Knock on my door, boy come home-... you st... 재환아 오늘 날 되에게 좋다! 그지?! 본격적으로 노래 부르려 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까도 봤던 옹성우 지치지도 않고 지금 또 왔다. 재환은 한숨을 푹 쉬곤 성우랑 얼굴을 마주봤다. 어, 날이 좋네. 재환아 연습하고 있었어? 재환은 그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각 집의 옥상에서 하는 대화가 어이가 없었다. 그냥 카톡하면 될 것을. 우리 하이트나 마실까? 도대체 어디서 난건지 마카로니가 한가득 들은 봉투를 풍차돌리기 해보이는 성우였다. 내가 그쪽으로 갈게! 재환의 답은 중요치 않았고 성우는 이미 출발했다.


 꽤나 수많은 별이 담긴 밤하늘을 보며 오랜만에 감성에 취한 재환은 벌써 맥주만 네 캔 째였다. 그러니까 맥주만 2리터를 마신 상태였다. 오늘따라 알코올 분해효소가 활발한건지 술이 쭉쭉 들어가네. 응, 재환이 간이 오늘 열일하네. 재환은 누가봐도 취한 상태였다. 취한 사람이 하는 소리는 다 받아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성우는 잘도 웃으며 재환의 헛소리를 받아쳤다. 성우형. 형은 눈에 별 박은거 같아. 맨날 반짝거려. 평소라면 못할 말을 하는 재환이었는데 성우는 그것마저도 따스한 눈길로 쳐다봤다. 재환이 그런 성우의 표정을 보고 저 형 또 저러네.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바람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어떻게 하면 형처럼 눈에다 별을 박을 수 있을까. 재환은 실없는 소릴 하며 웃고 있는데 반해 성우의 쌍커풀 없는 깊은 눈매에 진지함이 서렸다.


 "  난 항상 눈에 재환이만 담았는데. "


 안주로 한가득 사온 마카로니를 움켜쥐던 여린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러나 곧장 다시 마카로니를 집은, 식욕이 힘을 좀 썼다. 오도독. 오도독. 재환은 뭐라 반응해야할지 몰라 입으로는 마카로니를 한 알씩 씹었고 아래로는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떨리는 손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있는 힘을 다해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재환이는 언제 날 담을거야? 고요한 와중에 울리는 성우의 미성이 어우러졌다. 여느 때처럼 왈가닥한 성격의 성우가 말했다면 그런 성우도 지금의 성우도 모두가 재환이 아는 성우였다면. 


별빛이 가득 담긴 듯한 성우의 반짝이는 눈 속에 살짝 볼이 상기된 재환이 특유의 요정귀를 쫑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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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포타의 정체성을 드디어 찾은거 같네요.




만두집전기저항 @P_i2r_j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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