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 / 국뷔] Mad, Sexy, Gun (부제 : 도원결의)


Written by 효우











하루하루가 거북이 걸음마냥 느껴지는 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기 때문일 거다. 입대하는 순간 마치 상대성 이론처럼 내 시간만 느리게 흐르는 것같이 느껴졌는데 그것보다 더하게 느껴지는 건 정말 곤욕이었다. 애기봉 전망대를 오른 그 날 이후로 어떤 고민이 생겼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가 낯설었다. 병장이 되면 군생활을 착실히 한 사람들에게 칭찬처럼 권유가 따라 붙는데 그건 바로 전문하사를 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쉽게 말해서 세간에서 흔히 말하던 말뚝 박지 않겠냐는 말과 일치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가며 거절했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 날 애기봉 전망대에 본 것과 느낀 것 그리고 중대장님의 말과 미소가 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혼자 백날 고민하는 것보다 나를 고민하게 만든 이를 만나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면담 요청을 넣었다. 그러나 워낙 실력이 뛰어나 최연소 중대장이 된 이는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면담 요청을 세 번째쯤 넣었을까. 드디어 면담 날짜가 잡혔다. 하지만 아직 그 날짜에 닿으려면 며칠 더 남았던 터라 거북이처럼 걷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 되지 않았나 싶다. 고민 상담은 그저 핑계고 조금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중대장님이 소대장일 무렵부터 그를 똑바로 쳐다보는 건 어려웠다. 늘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하며, 모자를 눈까지 푹 눌러쓰는 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쩌다 가까이 마주하더라도 그가 나보다 키가 살짝 작은 탓에 그의 입술이나 턱에 시선이 머물고는 했다. 게다가 중대장으로 진급한 이후에는 바쁜 일정 탓에 보기 어려웠다. 그런 그와의 좌담회는 나를 설레게 하게 충분했으나 애기봉을 오르는 일정으로 바뀌어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그때의 그 감정이 나를 뒤흔들었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마음이 나를 혼란케 했다. 얼른 마주하고 싶어 몸이 달아 어쩔 줄을 몰랐다.




“또 혼자 딴 세상에 가있네. 돌아와, 얼른.”



“… ….”



“어딜 자꾸 그렇게 혼자 가. 혹시 너 또 그 새끼 생각 하냐.”




빈 시간이 생기면 넋을 놓고 그를 생각했다. 그런 나를 전정국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아는지 그를 생각할 때면 찾아와 훼방을 놓곤 했다. 그때 중대장님과의 눈 맞춤은 나만의 추억이 아니었다. 눈치 빠른 전정국이 그걸 보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전정국도 중대장님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걸 알았고 그 후로 이상하게 중대장의 중자만 나와도 으르렁대기 일쑤였다.




“너 내가 아무리 말 놓으라고 했지만 도가 지나치다?”



“아, 몰라. 몰라. 니가 하라며.”



“니가 뭐야. 형 해봐. 태형이 형 하고 불러봐.”



“형 같은 소리하고 있네.”



“확 이걸 진짜. 너한테 말 놓으라고 한 내가 잘못이지. 에휴.”




우리 소대 인계사항으로 병장이 되고 전역날짜가 가까워오면 나의 권한으로 후임들에게 일과시간을 제외하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 수가 있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또래 친구들 혹은 동생들이기에 미리 좀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여기서 동고동락한 게 얼만데 이곳을 나가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게 허무하지 않나. 역시 남는 건 기억과 사람뿐이니까. 혹시나 있을 나쁜 감정도 좀 풀고 편하게 대해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병 때는 이해 할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를 소꿉친구 대하는 마냥 아예 호칭을 없애버린 전정국이 조금 괘씸했다. 그래도 존댓말 쓸 때는 귀엽기라도 했지. 이젠 능구렁이랑 함께 사는 것 같다.




“암튼 너 그 새끼랑 가까이 하지마.”



“너 중대장님이랑 아는 사이이기라도 해? 너 뭐 알지. 뭐 때문에 질색팔색하고 난리야.”



“깊이 알려고 하지마. 다쳐.”



“그게 언제적 유행언데, 저 썰렁한 새끼.”




중대장님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전정국은 내게 중대장님 욕을 하면서도 이유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전정국은 이름 석 자 이외에 나에게 알려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나의 알량한 연민으로 그를 보듬기 시작했으나 이제 전정국은 내게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허나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다른 누구보다는 가깝긴 하지만 그저 그 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별 수 없이 의지하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인간관계는 일방이 없다. 늘 쌍방일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을 말하는 건 그에게 나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를 얻고 싶지 않았다. 나만 그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열려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간절하게 알고 싶기도 했다. 가장 알고 싶을 때는 전정국이 악몽을 꿀 때.


전정국이 갓 자대배치 받았을 때만 해도 자주 악몽을 꾸곤 했으나 이렇게까지 주기가 잦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좀 심각하다 싶을 정도였다. 거의 매일 같이 꾸기도 했지만 더 심각한 건 꿈을 꾼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정도면 꿈을 앓는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정도였다. 앓는 게 심한 날에는 앓는 소리에 생활반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전정국을 살피기도 했다. 그때 본 것처럼 당장에 달려들거나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깨워도 쉽사리 꿈을 떨쳐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야심한 시각. 일과가 고됐던지라 나도 한잠 푹 빠져있는데 어김없이 가까운데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으으으…”



“…으음….”



“…으으으….”



잠에 취해 전정국의 침대까지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전정국. 정국아.”




습관처럼 전정국의 이름을 속삭이며 깨우려 손을 뻗는데 손에 닿는 정국이 온통 땀에 젖어 축축했다. 싸한 기분에 머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잠이 확 깼다. 전정국은 이불을 돌돌 말아 덜덜 떨고 있었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도통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정국아. 전정국. 좀 일어나봐.”



“…으으윽….”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그래도 눈을 조금 뜨곤 했는데…. 혹시나 해서 이마에 손을 대었더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꿈에 앓는 게 아니라 몸에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불에 감겨있는 전정국을 그대로 들쳐 업었다. 나의 소란에 한둘 깨어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하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의무실로 향했다.






-




늦은 새벽 무렵이라 그런지 의무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스위치가 있을 법한 곳에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켜고 의무실 침대에 전정국을 눕혔다. 계속 떨고 있어서 이불을 한 겹 더 덮어주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아픈 사람을 간호해본 적이 있어야 뭘 알지. 작게 한숨이 났다. 

추운 듯 떨고 있으면서도 얼굴과 목에는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이 들러 붙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다 이마를 짚어보니 아까보다 열이 더 치솟는 듯 했다. 이럴 때 엄마가 물수건을 적셔서 이마에 얹어줬던 것 같은데…. 의무실을 뒤져 이마에 얹을 만한 작은 수건을 찾아내 물에 적셔 일단 땀에 젖은 얼굴과 목을 닦아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수건을 빨아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줬는데도 뭔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은 풀어질 기색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전정국의 표정이 편안해질까. 아프지 않게 될까. 

전정국이 편히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의무실에 있는 것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약이 든 것처럼 보이는 서랍에 가까이 갔더니 진통제가 보였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걸 먹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약을 집어 들었다. 물과 함께 약을 전정국 곁에 두고 잠시간 고민을 했다. 깨워서 먹이고 다시 재우는 게 낫겠지?




“전정국. 일어나서 약 좀 먹자. 정국아. 전정국.”



“…으으으….”



“정국아, 전정국. 눈 좀 떠봐!”



“헉, 헉… 억. 윽,”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자 마치 물속에서 바깥으로 끌려나온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희미하게 떠지는 눈과 마주쳤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듯 헉헉대며 가슴을 쳤다.




“괜찮아, 괜찮아. 나 쳐다보고 숨 쉬어.”



“…헉, 헉….”




전정국이 호흡할 수 있게 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의 호흡을 도왔다. 그 덕에 몰아쉬던 숨이 천천히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직 어딘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건 여전했다.




“…형, 태형이 형….”



“응, 나 여기 있어. 안심해. 괜찮아.”



“…형, 형…. 나 어떡… 어떡해요.”




힘겹게 호흡하며 말을 뱉어내는 전정국은 고통스럽고 두려워 보였다.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듯 눈빛이 흐렸다. 평소의 전정국과는 다르게 어딘가 어리고 여려보였다.




“…흑, 나, 나 어떡해요….”



“정국아, 아직도 꿈에서 못 깨겠어? 아님 어디가 아파?”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내 어깨가 젖도록 고개를 푹 파묻은 전정국은 알았어도 이토록 약한 모습의 전정국은 처음이었다. 그 크고 예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울먹이며 두려운 듯 말을 뱉어내는 전정국 때문에 마음이 아렸다. 힘없이 들어 올리는 손을 붙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올려 앉게 했다. 그 탓에 이불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앉기 쉽게 정리를 했더니 전정국 옷에 피가 스민 것이 보였다.




“정국아, 너 다쳤어? 왜 이래? 왜 피가 나.”



“…형, 형….”




전정국에게 평소에는 듣지도 못했던 형이라는 소리를 오늘 다 듣는 듯 했다. 몸에 열이 나는 것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다 이 상처 때문이었다. 입고 있던 옷을 들추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처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건….”



“…흐흑, 형. 나, 나….”




그건 칼에 스친 상처였다. 상처가 드러나자 더 아픈 건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며 힘에 부친 듯 내 품에 기대왔다. 그리곤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흑흑, 내가, 내가 또, 또 사람을, 사람을 죽였, 죽였어요…. 나, 나 어떡, 어떡해요.”



“… ….”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그것도 또, 라는 말을 했다.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나 또한 눈앞이 하얘졌다. 시선이 절로 허공을 향했다. 그동안 꾼 악몽이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나.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게 기댄 전정국은 고통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내 품을 적셨다. 다시 시선이 전정국에게 향했을 때 칼에 베인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대체 누굴 죽였다는 걸까. 그것도 이 밤에. 모두가 잠든 그 잠깐 사이에 누굴 죽이고 얻은 상처란 말인가.


전정국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눈물에 젖은 두 눈이 지그시 감겨있었다. 닫힌 눈꺼풀 사이로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온통 땀으로 푹 젖은 몸과 피에 젖은 상처와 함께 덩그러니 놓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너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멀어져가는 정신을 다 잡으려 노력했다. 전정국이 그토록 숨겨야만 하는 일이 어떤 건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일단 중요한 건 전정국이었다. 칼에 베인 상처는 꽤 깊었고, 얼른 수습하지 않으면 안됐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천천히 내쉬었다. 상처치료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기고 침착하게 상처를 수습했다. 꿰매야 할 만큼의 상처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일단 지혈을 하고 그 위에 연고를 대신하는 분말을 뿌린 후 거즈를 덮어 상처를 봉한 뒤 붕대를 감았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치료를 했다. 솔직히 반쯤 정신이 달아나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의무실 이불에 피가 묻지 않았고 전정국에게 내가 입고 있던 모자 달린 점퍼를 입혀 피가 묻은 옷이 보이지 않게 했다. 얼추 수습하고 나니 그제야 편히 잠든 전정국이 보였다. 잠에 빠져 조금 뒤척이다 아팠는지 조금 찡그리긴 했지만.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이며 목을 다시 닦아주고 곤히 잠든 창백한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이런 말간 얼굴로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죽였다니 그것도 부대 안에서. 아무리 우리와 또래인 애들이 병사라고 해도 군인은 군인이었다. 이곳에는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들이 지천에 깔린 곳이었다. 수상한 기척은 금방 느끼고도 남았을 텐데 전정국이 앓는 소리가 커질 때까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전체가 발칵 뒤집어 지고도 남았을 텐데 아직 어떤 보고가 오가지 않았는지 고요했다. 

동기와 선임들이 수군댔던 말들이 떠올랐다. 순진한 외모에 음산한 기운을 뿜는 놈. 기분 나쁜 녀석. 그리고 내가 줄곧 지켜봤던 전정국도 떠올랐다. 내가 손을 내민 후 짓던 편안한 표정, 웃는 얼굴, 나를 보며 반짝이는 눈빛. 한참 전정국만을 생각하다 꼬박 잠이 들었다.




-




어슴푸레 밝아지는 주위가 느껴졌다. 조금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와 함께 나를 쓰다듬는 손이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와 상반되게 쓰다듬는 느낌이 따뜻하고 포근해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번뜩 떠오르는 잔상들이 있었다. 놀라며 몸을 일으켰더니 전정국이 되려 놀라며 나를 잠자코 보고 있었다.




“…너, 너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왜 갑자기 다시 존대야?”



“… ….”




어제의 일이 기억난 건지 어떤 건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내 인중을 쳐다보며 관등 성명할 것처럼 긴장된 얼굴이었다. 근래의 전정국 답지 않게 이병으로 다시 돌아간 모습에 조금 웃어버렸다. 내가 웃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금 풀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전정국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조금 주춤하더니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열은 떨어진 것 같네.”



“… ….”




커다란 눈이 내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의중이 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려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말갛고 순진한 얼굴을 가지고, 반짝이는 처연한 눈동자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전정국을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어제 그 말이 뭐냐고, 너 누굴 죽이고 왔냐고, 왜 그랬냐며 따져 물어야 할까. 아직도 믿기지도 않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도 않았지만 이거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고통스럽고 두려워 보이지 않는 전정국의 표정이 좋았다. 그거 하나 마음이 놓였다면 나는 아직 그의 말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믿고 싶지 않은 쪽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아직은…. 조금 더 믿고 싶다. 내가 본 전정국에 대해서.



나는 결정했다. 어제의 일에 관해서 침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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