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전지전능한 이가 말했다. 태초에 빛이 있다고. 그의 말이 맞았다. 어느 날 갑자기 윤기의 인생에 소중한 것이 뜯기듯이 사라졌으나 빛은 때를 어기지 않고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각에 윤기를 찾아왔다.

끊이지 않고 울리는 벨 소리에 윤기가 잔뜩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바라본 시계는 낮 열두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에서 카드로 술값을 계산을 하고 나온 게 새벽 다섯 시 조금 넘어서였고, 대리를 불러 집에 도착했을 때 어스름하게 동이 터 올 때쯤이니, 어림잡아도 다섯 시간을 채 못 자고 눈을 뜬 셈이다.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는데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터졌다.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관의 벨 소리는 일정한 텀으로 끊이지 않고 울렸다.

“씨발….”

기어코 입에서 욕이 샜다. 눌러서 안 나오면 없는 줄 알고 꺼져야지. 엎드려 누운 자세 그대로 무릎을 세웠다. 베갯잇에 처박듯 묻은 얼굴에서 미약한 숨소리가 터졌다. 후으.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소음에 인상을 쓴 그가 팔꿈치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켰다. 아! 머리가 핑그르르 돈다. 결국 침대 밖으로 두 걸음도 떼지 못하고 다시 침대로 풀석 쓰러졌다.

“하하하.”

우스웠다. 몸 하나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는 꼬락서니가. 몸 하나 일으키는 것이 뭐 대수라고 뒷덜미에 땀이 서리는 이 꼬락서니가. 참으로 우스워서. 지끈거리는 이마 위로 얹는 손이, 또 볼품없이 덜덜 떨렸다. 지끈거리는 이마 위로 손을 얹었다. 지독한 알콜홀릭. 서른 둘, 민윤기의 일상이었다.

“미친놈.”

허공에 손을 뻗자 팔꿈치까지 덜덜 떨린다. 대체 언제부터 손을 떨었는지 윤기는 모른다. 알 턱이 없다. 그런 것들을 세며 살아오지 않은 데다 언제부터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알고 싶어 한 적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 살아 온 것뿐이다. 그냥, 이렇게, 이따위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죽는 날이 오겠지. 허공으로 뻗은 손을 관망하듯 바라보던 시선 위로 창밖에서 타고 들어온 햇살이 겹쳤다.

빛이었다.
빛.

빛이 손가락을 지나쳐 손등까지 뒤덮었다. 환한 빛이 문신처럼 손등을 지나 팔목을 타고 오른다. 꼭 태울 것처럼. 차라리 불이 일어 몸이 타버린다면 좋을 텐데.

“죽고 싶어.”

죽음이 찾아온다면 환한 웃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그는 환하고 아름다운 이 빛에 날려 보낸 감정이 많았다. 사랑, 행복, 즐거움… 다 보내고 남은 감정들이라고는 빛과 어울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거머리처럼 남아 윤기를 좀먹는 감정은 애달프게도 저 빛에 반응했다. 추함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빛에.

이걸 원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럼에도 찾아왔고 불쏘시개처럼 윤기의 심장을 매번 이리저리 추적거렸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그는 찬란하게 빛이 나는 손등을 한참이나 무표정으로 관찰했다. 손등 언저리에 뿌옇게 날아다니는 먼지, 아직도 귓전을 때리는 현관의 벨 소리, 간밤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 소리. 들이마시고 뱉어낼 때마다 뛰는 심장의 소리…. 삶은 그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나타냈다. 그 사이에서 민윤기만 바뀌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오로지 민윤기 혼자서만.

허망한 듯이 그의 손이 매트릭스로 툭 떨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눈을 찌르는 저 빛을 다 찢어발기고 싶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눈을 감았다. 보기 싫었다. 저 밝고 온화한 빛을. 따뜻함을… 살아있음을. 저 생기(生氣)를….

“씨발, 시끄러워…”

속눈썹을 푹 적신 눈물이 감은 눈 사이로 소리도 없이 떨어진다. 여전히 손은 애처롭게 떨린다. 술 때문인가. 그렇기도 했으나 지금의 이 떨림은. 그것은.

분노였다.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그가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든 분노. 그것은 몇 년이 흘렀음에도 잔인하게 아직 그를 벗어날 기미가 없었다.








   fiat lux
   01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던 현관 벨 소리가 뚝 멈추었다. 반쯤 몸을 일으켰던 윤기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애초에 끊겼어야 할 소음이었다. 익숙한 정적은 다시 찾아왔으나, 깨어버린 잠과 함께 찾아온, 침실을 완연하게 들이차는 햇볕은 벨 소리보다 더 그를 분노하게 했다. 커튼이라도 칠 생각으로 윙윙 울리는 머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몸을 일으켰다. 으, 씨발. 거침없이 욕을 뱉은 윤기가 천천히 차가운 바닥에 마른 발을 내디뎠다.

암막 커튼이 쳐지고 침대에 정적처럼 어둠이 찾아 드는 순간, 이번엔 보다 가까운 곳에서 벨소리가 터졌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핸드폰이었다.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가 핸드폰을 손에 쥔 그가 화면을 봤다. 떠 있는 이름 세글자를 보는 순간,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민윤서’

윤기는 받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의 전화를 받고 아무렇지 않게 끊었던 적이 있었던가. 제 기억엔 없었다. 없으니 더 받아야 하지 않지만, 다만… 윤기는 지난번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전화를 끊은 뒤로 비서가 갈렸다. 아니, 그 이후로 한 번 더 갈렸던가. 하도 많이 갈아 치워버린 탓에 윤기는 셈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 더 갈아버린 대도 이제 더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지만. 애먼 짓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엔 비서가 아니라 저를 갈아치운다는 통보일 지도 모르지.

벨이 울리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화는 몇 번 더 그의 손에서 울어대다 이내 끊겼다. 부재중 기록을 무심하게 손끝으로 없애버렸다. 누나는 윤기를 연결되지 않는 부재중 통화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여태 포기를 하지 못하고 여전히 전화를 걸고 또 사람을 보내고. 가끔은 술에 쩔어 뒹구는 동생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예전의 민윤기로 돌아오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언젠가는 전화를 받아 연결이 될 통화 마냥. 겨우 그런 것쯤으로.

윤기가 웃었다. 그렇게나 자신을 높게 봐주는 자신의 누나가 안타깝다. 가능하다면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부재중 통화 같은 게 아니라고. 실은 통화조차 되지 않는, 완전히 박살 나버린, 절대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남자라고. 반밖에 피가 섞이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누나라 부르고 살았던 여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병신에게 미련 갖지 말라고.

―띵동. 띵동.

핸드폰 벨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절묘한 타이밍으로 현관의 벨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씨발…. 윤기가 낮게 읊조렸다.

귓전을 때리는 소음. 서서히 쌓여 가는 스트레스. 그도 처음부터 이렇게 예민하진 않았다. 오래전의 민윤기는 전화를 기다리고 현관 벨 소리에 가슴 떨던 그런 남자였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화가 오기를.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 상대가 해맑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품으로 안겨들기를. 그러나 그때의 민윤기는 없다. 다 과거였다. 돌이킬 수 없고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과거.

“제기랄.”

아침부터 또 이런 생각을 들게 하다니.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리고 앞으로 살 나날들과도 다르지 않을 것 같던 이 하루가. 고작 삼십분 만에, 엉망이 되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침실을 나와 현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도저히 멈추려 하지 않는 벨소리에 그는 혹여나 집집마다 돌면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이 찾아 온 거라면, 기분도 더러운데 시비나 걸어야겠단 생각으로. 비틀거리는 제 걸음에 피식 웃기까지 하며. 현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
“뭐야.”
“…….”

처음 보는 소년이 서 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앳된 아이를 윤기는 인상을 쓴 채로 눈을 마주했다. 빨간 목도리를 얼굴의 절반이나 칭칭 두르고 있는 소년은 예의 없이 튀어 나간 그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물론 윤기는 그런 찰나를 기다려 줄 만큼 차분한 남자가 아니었다.

“뭐냐고 묻잖아.”
“아… 저….”

칭칭 두르고 있는 목소리 사이로 소년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 덜 영근 목소리는 술이 덜 깬 윤기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인상을 쓴 그가 맨발로 현관 밖으로 한 걸음 나와 소년에게 가까이 섰다. 그러자 흠칫 놀란 소년이 다가온 걸음만큼 뒤로 물러섰다. 아, 시발 진짜. 제법 크게 터진 욕에 소년이 어깨를 움찔 떨다 이내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는 목소리를 잡아 내렸다.

“죄송하지만 민윤기씨… 되시나요?”

처음 보는 소년의 입술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너 누군데.”
“…….”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
“아, 저는…”

소년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지려는 사이, 이번엔 침실 쪽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보나 마나 누나였다. 윤기가 벨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소년을 주시했다. 누구냐고 너. 낮은 목소리와 함께 묻어나는 술 냄새에 소년이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다물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전, 전화 오는데요.”
“…하.”

머리를 터질 것처럼 괴롭히는 소음 중 하나라도 없애고 싶었다. 무엇이 더 빠를까 가늠하던 윤기는 결국 긴 한숨을 내쉬며 현관 앞에 아이를 세워 둔 채로 몸을 돌렸다.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도 못하는 이 소년보다는 어쩌면 박살 내버리면 그만인 핸드폰의 벨 소리 쪽이 훨씬 해결하기 쉬웠다.

“일단 들어와.”

비틀거리는 제 걸음걸이를 비웃을 틈도 없이 빠르게 침실로 걸어 들어간 윤기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변기에 집어 넣어버릴까,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까 짧게 고민하던 그의 얼굴색이 변한 건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돌겠네.”

자신의 누나보다 더 지독한 상대였다. 피가 반밖에 섞이지 않는 제 누나의 전화는 안 받으면 그만이지만… 이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찾아와 못살게 구는 지독한 취미를 가진 자였다. 윤기가 천천히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귀에 미처 갖다 대기도 전에 핸드폰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 삼촌!!!」
“어, 정국아.”

고함을 지르듯이 터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조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시나 절반의 피가 섞인 조카.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그뿐만 아니라 그의 하루 패턴을 잘 알고 있는 정국이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올 이유는 뻔했다.

「왜 엄마 전화 안 받아?! 삼촌이 받지를 않으니까 나한테 전화해서 화내잖아.」
“그 정도 했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삼촌은 우리 엄마를 아직도 몰라?」
“네 엄마는 나를 뭐 얼마나 안다고.”

수화기 너머로 후우, 하는 한숨이 들렸다. 삼촌, 나 삼촌하고 싸우려고 전화한 거 아냐. 우리 오랜만에 통화하잖아. 그치? 나 삼촌 때문에 엄청 바빠. 바빠진 지 한참 됐어. 윤기는 가만히 정국의 목소리를 듣기만 했다. 자신 때문에 바쁘다는 조카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조카가 제 엄마의 등쌀에 이기지 못하고 귀한 시간을 내 전화까지 넣었다. 대체 얼마나 더 이 짓을 해야 포기를 할까.

「엄마가 집으로 청소하는 사람 보냈대.」

정국이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김 비서님이 삼촌 집에 들렀다가 완전 기절할 뻔했다고 엄마한테 보고했더라. 삼촌은 술에 절어 자고 있지, 집은 개판이지. 삼촌, 내가 술 마신 병 같은 건 좀 치우고 살라고 몇 번을 말했냐?

차갑기로는 동생 못지않게 차가운 누나의 아들은 민 씨의 피가 섞였지만, 그에 반해 밝고 명랑했다. 쾌활하게 잘 자란 조카는 확실히 죽은 매형을 더 많이 닮아 있었다. 매형도 참 좋은 사람이었지. 누나와 함께 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자신의 연인도 그랬다. 민윤기와 함께 살기에는 너무나…. 그런데, 김 비서가 집에 왔었다고? 기억이 나질 않는데.

“필요 없다고 전해.”
「지금쯤 도착했을 걸? 아침 시간 맞춰 보냈다던데.」

정국의 말에 핸드폰을 쥐고 서 있던 그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급하게 걸음을 돌려 거실로 나가자 현관 앞에 신발도 벗지 않고 서 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 청소 업체 직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데. 윤기가 현관 앞에 선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뱉었다.

“너무 어려.”
「응? 삼촌 방금 뭐라고 했어?」
“……어리다고.”
「뭐라는 거야. 암튼, 좀 치우고 살자. 삼촌. 응? 그럼 나 끊는다.」
“…….”
「심심하면 회사에 좀 나오고.」

회사에 나오라는 말에 단칼에 핸드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던진 그가 소년의 앞으로 다가갔다. 겁먹은 눈이 잔뜩 긴장한다. 그런 건 애초에 관심도 없다는 듯 윤기가 소년의 얼굴 앞에서 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목도리를 풀어 보라는 제스처였다. 손동작을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그제야 뜻을 알았는지 급하게 자신의 목도리를 다 풀어 손에 쥐었다. 휑한 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처음이야?”
“…네?”

반문하는 미숙한 목소리에 윤기가 인상을 썼다. 어째 얜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질 못하네. 팔짱을 끼고 물끄러미 관찰하듯 소년을 바라보던 윤기가 귀찮은 듯 건성으로 손짓했다.

“…들어와. 너 그냥 돌려보낸다고 누나가 포기할 여자였음,”
“…….”
“이 꼴로 살고 있지도 않았어, 내가.”

소년을 집에 들인 후, 윤기가 간단히 집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었다. 여긴 침실, 저긴 화장실. 여긴 보다시피 부엌 거실. 그리고 저긴… 마지막 방에서 윤기의 말이 끊겼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윤기의 손끝을 바라보던 소년이 마지못해 저…, 하고 입을 떼는 순간. 재빠르게 윤기가 말을 가로챘다.

“저긴 절대로 들어가지 마. 청소하지도 말고.”
“…저기요, 그게. 저는…”
“보이지? 집 완전 개판인 거. 빨리 청소하고 가.”

소년이 말을 더 붙이지 못하게 윤기가 제 침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떠한 질문도. 그러니까 집이 왜 이 꼴인지. 집주인 말끝에 따라 나올 목소리 같은 거 말이다.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 건지, 청소 도구는 어디에 있는 건지. 왜, 저 방은 들어가면 왜 안 되고, 집기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다 박살이 나 있는 건지. 그리고 왜 이렇게…

병신처럼 모든 게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는지. 나는 왜 이렇게 병신 같은 건지.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듯 윤기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확실하게 창을 가린 커튼 덕분에 빚 한줄기 새어 나오지 않는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윤기가 눈을 감았다. 이런 세상은 편했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빛 한줄기 없는 세상. 그리고… 네가 없는 세상.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던 윤기의 귀에 거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윤기가 겨우 긴 숨을 텄다. 소년이 청소를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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