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애착인형과 해야 할 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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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오는 일요일과 수요일에는 집에서 보냈고, 남은 요일은 모두 호율이에게 투자했다. 물론 집에서 보내는 날에는 놀라울 정도로 잠을 못 잤다. 지난번 일이 있고 난 뒤, 특별히 감시하는 분위기는 아닐지라도 전보다 독서실로 오는 전화가 많아지기도 했고.

[학생 어머님 오늘 또 전화하셨다~ 내가 잘 따돌림. V~ 좋은 시간 보내렴~]

[용 독서실] 종석은 예오 부모님이 연락할 때마다 당사자에게 꼭 보고를 해 주었다. 호율이와 친하다고 하더니 뭔가 더 특별한 믿음이라도 있나? 어지간해선 일일이 연락해주지는 않을텐데. 아무튼, 예오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덕에 부모의 시선을 따돌리고 호율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부드러워.”

늦은 금요일 밤. 다른 식구가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 침대 위에 꼭 붙어 마주 보고 누운 두 사람이 있었다. 이렇다 할 수다도 없고 장난도 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해 번쩍이는 눈빛만은 휘황찬란했다. 예오는 호율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생생한 감촉이 어색하면서 신기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살짝 잡아당기면 아얏, 야아~ 하는 귀여운 소리가 났고 꼬리를 부드럽게 쓸면 소름이 돋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호랑이의 습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표정이 야릇해지는 걸 보면 나쁜 건 아닌 듯하다.

‘너무 좋아.’

자신이 털 짐승을 좋아했던가. 모르겠다.

“그럼 가족분들 모두….”

예오의 줄임말에 호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의 반응이 호율의 예상을 뛰어넘기도 해서.

“넌…괜찮아?”

“뭐가?”

이것 봐라. 징그럽다거나 무서워하기는커녕 좋다고 둘만 남으면 변신해보라 했고,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제 꼬리를 만지작거리면서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예오가 자신을 거부감없이 받아 들여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건 호율에게 또 다른 부작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도 두툼하고 긴 꼬리를 팔에 감은 채 귀를 매만지는데 완벽한 변신이 아니라도 인간의 몸보다 예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에는 홧홧한 열기를 인내해야 했다면 요즘엔 찌릿찌릿 바스스 올라오는 감각을 참아내느라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호율은 예오의 손길을 내버려 두었다. 안 해 주는 것보단 해 주는 게 좋았고 이런 느낌이 이젠 끊을 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려서.

“그냥…. 자연스러운 건 아니니까.”

예오는 머리를 갸웃거리다 이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 순진한 곰탱이 아니, 호랭이는 저의 고백에도 여전히 불안한 것이다.

쪽!

“리셋”

동그래진 눈을 보며 예오가 말하자, 동그라미가 사르르 접히며 반달이 된다.

“넌 앞으로 내 애착인형으로서 함께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일단, 예오의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호율이의 부모님을 공략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찾아낸 최초이자 어쩌면, 최후일 수도 있는 애착심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호율이를 뺏길 수 없었다. 누가 호율이를 납치할 일도 없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호율이 부모님도 자신들의 상태를 눈치챌 텐데 혹여 반대가 나오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두 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한예오에게 조건 없는 믿음과 신뢰하게 할 방법이란?

‘확실히 어머님은 욕심이 있어 보이셨지.’

아버님은 공부에 그다지 관여를 안 하는 분위기였다. 예오가 공부를 가르쳐주겠다 했을 때도 어머님 의중이 우선이었고. 아무리 건강이 최고라고 외치는 부모라도 자식의 학업 성취가 오르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학원 끊자. 나와 같은 곳으로. 독서실도 가자.”

호율의 성적으로 봤을 때 하루 한 시간은 턱도 없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그리고 예오가 다니는 학원은 레벨별로 반이 나뉜다. 호율이 정도 되는 성적의 학생들도 다닌다는 소리다. 그리고 반은 달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니 짬을 내서 키스도 할 수 있고 호율이의 냄새도 맡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

“허허허….”

반면, 호율은 예오의 제안에 갑자기 이성이 돌아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열기가 푸쉬식 식는 것도 같고. 하긴, 예오와 공부하는 한 시간도 제대로 집중해본 적이 없긴 하다. 고백을 한 이후에는 공부보다 눈을 피해 쪽쪽이 하느라 바빴으니까. 그래도 제 성질에 몇 시간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내는 건 불가능….

“나랑 같이 다니면 키스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냄새도 맡을 수 있어. 학원 옥상은 개방형이거든. 독서실도 개인실이 있으니까.”

“…그럴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예오는 기분이 좋은지 방싯방싯하며 호율에게 연신 입맞춤을 퍼부었다. 따뜻한 달콤함이 말랑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감촉에 호율의 이성이 다시 샤랄라 날아가 버렸다. 둘이 얼마나 딱 붙어 있는지 그 좁은 침대 한 편이 남을 지경이다. 예오의 이마에 초옥- 소리가 나게 입술을 붙었다 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발긋한 볼도 어루만지고 보드라운 콧방울 끝에 제 코끝을 대고 문질러 본다.

간지러운 숨결이 얼굴로 가득 퍼졌다. 호율은 다소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예오의 붉은 입술을 응시했다. 그러자 예오가 스스럼없이 입술을 살짝 달싹인다. 기꺼운 허락에 소년의 고개가 살짝 내려가며 새빨간 과일을 집어삼켰다. 얕게 울리는 소리에 목울대가 꿀렁 넘어가고 호율의 손이 가느다란 목덜미를 살포시 쥐었다.

처음에는 손도 못 대고 입술만 지분거렸는데, 이젠 예오의 피부를 쓸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호율의 손길은 대담해지고 있었다. 그걸 모를 일 없는 예오는 그러나 모른 척, 되레 호율의 손이 망설이는 부위로 은근슬쩍 끌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목덜미를 따라 천천히 어깨를 둥글게 어루만지고 내려온 손이 등허리 언저리에서 머뭇거리자, 예오는 호율의 굵고 단단한 팔뚝을 쓸면서 자연스럽게 소년의 손을 엉덩이로 내려보냈다. 잠깐 멈칫하며 떨리긴 했으나 작은 손이 힘으로 누르니 호율은 연약한 풀떼기처럼 포기해버렸다.

옷이 사락사락 스치는 감각적인 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예오는 어느새 키스에 푹 빠져 호율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스치는 생경하면서도 기분 좋은 찌릿함에 중독되는 기분이다. 그게 자신의 유일한 애착  대상이라는 점이 소년의 고양감을 사정없이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아.”

“으응….”

깊게 퍼진 서로의 한숨 소리에 젖은 욕망을 알아채고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둘 다 살짝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쿵쾅대는 박동 소리가 가감 없는 감정을 두들기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당연한 사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엄두 낼 용기가 없는 탓에 그저 달곰하고 짙은 향내에 자신들을 맡길 뿐이다.

“호율아. 나는 너희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

“응.”

호율의 입장에서야 한예오가 인정받을 게 뭐 있나 싶을 테다. 이미 제 맘속에선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데.

“그러니까, 우리 딱 10등만 올리자.”

그러나 예오는 이미 계획을 다 짜놨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반 등수 10등 올리기. 괜히 부담만 가중되어 중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므로 급하게 등수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학교 시험이었으니 시험 범위 내에서 기출문제를 쏙쏙 뽑을 생각이다. 다행히 암기력은 좋은 거 같으니 문제 유형을 외우게 하면 가능성 있었다. 

차근차근 올려 중상 정도의 석차라면 부모님도 만족하고 적당히 괜찮은 대학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학까지 합격시킨다면 부모님은 호율이와 같이 사는 것도 -물론 독립해서- 허락해줄 것이다.

예오는 호율의 체취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평온하고 행복하다.

"나의 애착인형."

“엉.... 그..럴게. 여, 열심히 해 볼게.”

그리고 지금 사랑에 눈이 먼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예오와 온종일 붙어 있을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만이 가득하기만 했다. 






다음 날 성호는 안방에서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큰아들을 의뭉스럽게 바라보았다. 거실에서는 예오가 꼬물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정겨운 웃음소리가 흘려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 세상에. 김호율? 너 정말 공부하려고?”

하지만 호정은 못 믿겠다는 말투면서도 기특함이 섞인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호랑이를 보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다가 지나치게 건강해서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는 아이가 내심 걱정되기는 했다. 호정은 거창한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려는 아이의 변화에 기뻤다. 

“응. 예오가 다니는 학원하고 독서실로. 예오가 아무래도 자기가 한 시간씩 봐주는 건 모자란 것 같기도 해서 같이 다니면서 좀 더 봐주겠다고 했어. 아, 독서실은 [용 독서실]로 다닐 거야.”

“예오가 참 착하네. 고마워서 어쩌나.”

역시 친구의 영향이 중요하다며 호정은 내심 손뼉을 쳤다. 어쩌다 저런 귀한 친구를 다 사귀었는지. 예쁘고 착하고 똑 부러지고 예의도 바르고 정말 모난 구석이 하나 없는 아이다. 호정은 아이들을 위해 식사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흡족하게 허락을 내렸다.

‘저런 얘기를 얼굴 붉히면서 하는 걸 보니 꿍꿍이가 있구먼.’

이 집안에서 최고 결정권자의 판단이니 성호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제 아들이 너무 의심스럽지 않은가. 물론 공부를 하겠다는 자식이 저도 기특하긴 하지만. 그때 밖에서 또 한 번 까르르~ 하고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호는 슬쩍 아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문밖으로 던진 시선에는 따뜻함과 기쁨이 온화하게 퍼져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건가.’

“그래. 일단 한번 해 봐. 대신, 힘들다고 돈 아깝게 중간에 그만두면 다음부턴 얄짤없어.”

성호의 말에 호율은 좋다고 헤드뱅잉을 해댔다. 

“나는 애들 간식거리나 좀 만들어야겠네. 호율아, 예오 먹게 과자 좀 사 오고.”

“옙!”

호정이 방 밖으로 나가며 심부름을 시키자 좋다고 대답한다. 성호는 피식 웃다 벌떡 일어나는 아들의 팔을 덥석 붙잡으며 물었다.

“김호율. 순수한 의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뭐뭐, 가? 나도 공부 좀 하려는 거지. 이거 놔, 빨리 예오 간식거리 사러 가야 해.”

또 능글맞게 입꼬리를 씰룩대며 아버지가 자극한다. 호율은 당황했으나 짐짓 아닌 척 얼버무렸다.

“허허. 저 녀석. 부모보다 애인이다 이거지?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는,”

“애인?”

“헙.”

잽싸게 빠져나가는 아들의 뒤통수를 보며 툴툴대던 성호의 말을 호정이 얼핏 듣고 말았다. 성호는 다급하게 입을 합 다물며 능청스럽게 헤헤 웃고는 부인을 덥석 끌어안았다.

“이거 놔. 애들 본다.”

“아, 네.”

얌전했던 아내의 손톱이 반짝거리는 통에 성호는 얼른 놓아 주었다. 다행히 애들이 있는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였다. 성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살랑살랑 사라지는 호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호율의 상태로 보아 언젠가는 말해야 할 테지만, 조금 더 지켜볼까. 

처음보다 예오가 호율을 대하는 눈빛이 많이 변한 탓이다. 하지만 아직 어리다. 저 아이들의 마음이 온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청소년 시절 폭풍처럼 지나가는 아련하나 짧은 첫사랑일까. 그러나 때때로 그 첫사랑의 잔상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목표마저 바뀔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집안에서 성호를 포함 다른 이들은 예오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냥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는 체취 정도. 

-아~ 인아가 있었지. 뱀 수인.-

성호는 그저께 구렁이 수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특별한 사연을 가졌다 소문이 난 최인아라는 뱀 수인이었다.

-글쎄. 우리랑 좀 다른 경우여서 연락은 잘 안 될 텐데. 그래도 뱀들이랑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으니 내 한 번 물어보지.-

호율이만 맡을 수 있는 예오의 체취. 그 뱀 수인을 만나면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성호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향했다. 

한편, 성호의 걱정과 달리 예오는 두 번째 계획에 돌입 중이다. 바로 꼬물이들 섭외하기!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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