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ME!>의

2부입니다. 








BGM: Don Shiva / New York Tango







    종대는 맨 앞에 섰다. 운구차를 따라가는 걸음은 그저 무거워 보였다. 그의 손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영정 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민석이었다.


    민석의 사망 선고는 백현이 내렸다. 병실을 울리는 삐이이- 소리에 종인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종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벽에 기대섰다. 준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준면은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민석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눈을 뜨고 준면아- 하고 부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민석은 그러지 않았고,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형제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장례식에는 국가정보원과 전 마약관리국 전 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모두 경례를 하며 민석의 끝을 보내고 있었다. 영정 사진을 들고 맨 앞을 걷는 종대와,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경수. 부상에도 불구하고 함께 걸으며 펑펑 우는 세훈과 그런 그를 부축하며 걷는 준면. 이미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버린 종인과 그 옆에서 목발을 짚으며 따라가는 백현. 그 모두가 민석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 길에 찬열은 없었다. 


    찬열이 실종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그 사이에 민석이 먼 길을 떠나버렸고, 모든 이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백현이었다. 백현은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 했고 아무 것도 먹지 못 했다. 그러다 민석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면서 백현은 더더욱 정신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간신히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경수의 도움이 컸다. 경수는 항상 백현의 곁에 붙어 있었다. 어딜 가든 백현과 함께 했고, 백현은 그런 그가 낯설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현은 이내 깨달았다. 지금이 바로 평소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은 것이었다. 


    백현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짙은 회색 하늘이었다. 백현은 그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차분히 눈을 감았다. 


    시신은 국가현충원에 묻혔다. 마지막으로 시신을 확인한 것은 종대와 경수, 그리고 백현이었다. 주치의였던 백현이 민석의 시신을 확인시켰고, 종대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경수만이 오로지 민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종대가 경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고, 경수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민석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지금 이 시신 안치실에서라도 벌떡 일어나 다들 왜 울고 있냐고 물어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경수는 그렇게 제 형제를 떠나 보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모두가 한 방에 모였다. 하지만 방 안에는 그 어떤 대화 소리도 오가지 않았다. 종대와 경수는 온더락으로 담긴 위스키를 말 없이 마시기만 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준면이 앉아 있었다. 세훈은 준면의 팔을 꼭 끌어 안은 채 소리 없이 울었다. 준면의 표정은 멍해 보였다. 그의 검은색 수트 재킷 위로 세훈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세훈의 눈물을 준면이 제일 먼저 닦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면은 그럴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의 표정은 공허하고, 또 공허했다. 


    종인은 소파가 아닌 방 구석에 주저앉아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민석이 죽은 후 가장 많이 울던 그였다. 그는 민석을 떠올렸다. 이 낯선 곳에서 자신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믿어 주었던 사람. 어쩌면 아직도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줬을 지도 모르는 사람. 종인은 그를 통해 믿음을 배웠고, 그를 통해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겼다. 하지만 이제는 없는 사람이 된 그를 생각하던 그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다리 위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종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야말로 가장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백현은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목발이 있었다. 아직 교통사고의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 한 그였지만, 그는 편한 소파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이제야 겨우 조금 난 햇살이 창을 타고 들어와 있었다. 그 한 줌의 햇살을 보던 백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이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백현의 날카로운 눈빛이 창문을 꿰뚫었고, 그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 창문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경수였다.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참담했다. 이 참담한 광경에 경수도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그가 위스키 잔을 내려 놓고 입을 열었다.





    “밥 먹자.”





    그의 말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금 들은 말이 뭔가 싶은 표정이었다. 경수는 아무 말도 없이 식당 쪽으로 향했고, 모두가 시선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경수는 걸음을 옮기다 뒤를 돌아 보았다.





    “셋 셀 때까지 일어나라.”

    “...”

    “하나.”

    “...”

    “둘.”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경수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저앉아 있으면 이대로는 아무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경수였다. 경수는 팔짱을 끼고 아예 몸을 돌려 그들을 보았다.





    “밥 먹자고.”

    “지금 밥이 넘어가게 생겼습니까.”





    준면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준면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뒷머리만 물끄러미 보던 경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루 동안 아무 것도 안 먹었어.”

    “하루 이틀이야?”

    “김종대 너부터 정신 차려.”





    툴툴거리듯이 말하던 종대를 향해 경수가 날카롭게 말했다. 종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네가 정신 차려야 애들도 따를 거 아냐.”





    경수의 말에 종대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젠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였다. 그들의 관계는 그 시간으로 증명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경수를 보던 종대가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종대는 아무 말 없이 경수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들을 보던 백현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종인을 일으켜 세웠다. 식당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던 세훈이 고개를 돌렸다. 준면은 그 때까지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다 세훈의 시선을 느끼고 그가 고개를 돌렸다. 결국 준면도 세훈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들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어떤 대화가 오간 건 아니었다. 모두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제대로 먹는 사람이라고는 경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 경수 마저도 이내 먹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에 세훈이 다시 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준면은 아예 수저조차 들지 않고 있었다. 준면은 멍하니 앞에 놓인 반찬들을 보았다. 그러다 결국 안 되겠는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탁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종대가 그런 준면을 힐끗 보았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앉아.”





    그 목소리에 준면이 멈칫했다. 그리고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아까보다 훨씬 차가워져 있었다. 민석의 죽음에 가장 큰 분노를 느낀 사람이었다. 준면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런던팀의 상황을 전해 들었고, 거기에 민석까지 병상에 누워 있단 소식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준면은 차가운 표정으로 종대를 보다가 의자를 짚었다.





    “명령하지 마십시오.”

    “앉아.”

    “명령하지 말라고 했어.”





    종대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준면을 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 말 안 들으면 뭐 하게?”

    “...”

    “앉아서 밥이나 처먹어.”

    “김종대.”





    옆에 앉아 있던 경수가 종대를 슬쩍 말렸다. 하지만 종대는 그런 경수의 손을 쳐내고 다시 준면을 날카롭게 보았다.





    “너만 화나?”

    “...”

    “여기에서 가장 화날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





    준면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그의 손을 보던 세훈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다리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백현은 그런 세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적어도 형은 아니겠죠.”

    “...”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손만 놓고 있던 사람이 화가 왜 납니까.”

    “그만 해라, 김준면.”





    경수가 종대와 준면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찡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준면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애초에 형이 저희한테 비밀만 안 만들었어도 이럴 일 없었습니다.”

    “무슨 비밀?”

    “...”

    “내가 무슨 비밀을 만들었는데?”

    “...”

    “알지도 못 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종대의 손에도 주먹이 꽉 쥐어졌다. 결국 경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식탁을 짚은 경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만 좀 해라, 새끼들아.”





    그리고 경수가 가장 먼저 식당에서 나갔다. 경수는 주먹을 꽉 쥐고 빠른 걸음으로 식당에서 사라졌다. 그를 보던 준면이 다시 한 번 종대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그 역시 식당에서 나가버렸다. 세훈은 그런 그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 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건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또 울컥한 종인은 세훈의 맞은편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백현은 가볍게 턱을 괴고 식당 안에 남은 사람들을 보았다. 컵을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종대와, 숨이 넘어갈 듯 우는 종인, 그리고 소리도 내지 못 하고 덜덜 떨면서 우는 세훈. 백현은 그들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창가에는 이제 한 줌의 햇살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 날 밤 준면은 1층 테라스에 혼자 나와 있었다. 그는 멍하니 새카만 밤하늘만 바라보았다. 밤은 깊어갔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건물에서 누군가 나와 준면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백현의 밑에서 일하는 과학기술팀 직원이었다. 서류를 보면서 나오다 준면을 본 그가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가볍게 손짓으로 인사를 받은 준면은 다시 하늘을 보았다. 그러다 야, 하고 그를 불렀다. 걸음을 옮기던 직원이 뒤를 돌아 보았다.





    “담배 있니?”





    준면의 말에 그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면은 담배를 일절 피우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는 걸 금세 깨달은 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준면은 담배를 받아 들고 물었다. 그런 그의 담뱃불을 공손하게 붙여준 직원이 이내 다시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준면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후- 불었다. 짙은 밤하늘에 그가 만들어낸 담배 연기가 이내 사라졌다.


    준면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런던팀은 어쩌다 그렇게 다 당하게 된 걸까. 세훈이한테 물어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고, 변백현과 민석이 형이 당한 교통사고도 의심스럽고. 거기에 박찬열까지 실종됐다고? 준면에게는 모든 상황이 다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의심은 의심에서밖에 그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그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경계 태세로 눈을 빛내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수풀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길고양이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 수풀을 헤치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준면은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허리춤에 찬 잭나이프를 빼들었다. 그리고 전투 태세를 갖추다 멈칫했다.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찬열이었다. 





    “...”





    하지만 찬열은 준면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긴 검지를 들어 제 입가에 가져다댔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준면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찬열을 보았다. 찬열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옷은 죄다 찢어져 있었고, 다리를 약간 절면서 겨우 걸어오는 듯 했다. 그런 그의 눈은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찬열은 절대 준면을 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검지를 댄 채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준면은 그를 보다가 이내 그의 상황을 눈치 챘다. 그의 눈이 절로 커졌고, 그는 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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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๑•̀ㅂ•́)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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