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무 무자비해요! 당신 동생이었어도 이렇게 눈하나 깜짝 안하고 죽이실건가요?!"



목숨을 구해준 여인이 나를 향해 울부짖었다. 거의 바스라진 오니를 붙잡고 오열하는 것이, 아마 혈육일 것이리라. 나는 한쪽 다리를 굽히고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끄덕이는 내 고개에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난 예의상 눈을 감고 방금 세상을 등진 자의 명복을 빌어주느라 보지 못했다. 


내 쪽은 어머니였다. 그녀를 내 손으로 죽였다. 여인이 듣기에 너무 가혹한 말은 속으로 삼켰다. 방금 혈육을 잃은 그녀에게 동정을 받을 이유도 없었기에. 



"오니는 그 누구였던, 변모하는 순간 사람을 죽이는 괴물일 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망연자실한 표정. 눈물로 뿌얘진 눈동자에 덤덤히 일어나는 내가 비쳤다. 



다음 임무를 향하는 길에 여인의 질문을 곱씹어보았다. 그 것이 내 동생들이었다면. 겐야였다면, 난 주저 했을까. 그러나 곧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털었다. 오니는 전부 섬멸하는게 내 삶의 모든 것이다. 예외는 없다. 망설임이라는 것도,


"큭,"


짧게 혀를 차고 다시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제 좋을대로 부정한 속내가 위로 솟구친다.






02



"네즈코는 사람을 먹지 않아요!! 전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검사가 된거라고요!"



그러니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을 수 밖에. 혈육도 순식간에 난도질하고 뜯어 먹는게 오니다. 하물며 인간으로 돌아온 오니도 유례가 없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꼬맹이의 헛된 희망이 가소로웠다.

어리석은 꼬맹이에게 현실을 알려주기 위해 칼을 뽑았다. 상자에서 나온 여자아이는 당장이라도 달라들 것처럼 땀을 흘리며 날 노려보았기에 호기롭게 희귀혈도 눈앞에서 흘려주었다.



"우웅...!"

"?!"



그러나 그런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 아이는 빗겨갔다. 본능에서 발버둥치며 고개를 돌릴땐 내가 경험한 사실과 인생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운이 억수로 좋은 오빠가 안도의 한숨을 돌리자 난 더욱 심란해졌다. 


어르신의 제지에 무릎을 꿇을 때도 그 생각 뿐이었다. 

왜 내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을까. 나와 같이 동생이 모두 살해당하고 하나밖에 남지않았으면서 어떻게 너희만 희망을 잡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칠수 밖에 없었는데 왜 너흰 이런 상황에도 함께할 수 있을까.




난 왜...





/ 질투







03


"겐야...?"

"저 모습은-"



그 날의 기억과 결정하지 못한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제가 죽이려는 눈앞의 오니의 모습과 비슷해진 얼굴의 동생을 보자 피가 끓어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겐야를 향하지 않았다. 오니를 먹는다는 것. 그 특징을 이용해 이 싸움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 그리고 그 궁극적인 이유는 형인 나라는 그의 목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난 눈앞의 이 괴물에게 모든걸 쏟아붓기로 했다.


"크르르..."


타탕-



겐야가 오니가 된다. 이성이 남아 있고 완전하진 않았지만 설마하던 일이 벌어졌다. 그 사실에 동요하여 칼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오니의 능력이 없었으면 겐야는 내가 구하러 오기도 전에 이미 이 놈에게 썰려 목숨이 끊어졌을 것이리라.



변한 동생의 모습을 보고 낯설어할 틈도 없이 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생각은 뒤죽박죽이었다. 만약 이대로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여인의 동생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처럼 겐야를 죽여야 할까? 귀살대로 살아오면서 바랬던 단 하나의 바램을 결국 이루지 못하는 걸까?

전부 네놈들 탓이잖냐고 울부짓고 싶은 마음에, 목 울대 옆에 핏대가 진하게 솟아올라왔다. 동생이 이렇게까지 해야할 정도의 상황을 만든 형을 원망했다. 





그러나 난 결국 모든 일을 매듭짓지도,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것도, 단 하나의 바램을 이루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형은 무기력하게 사라져버린 동생의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뿐이었다.







04



"잡았다. 시나즈가와씨!!"



우렁찬 카마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보따리를 떨어뜨릴뻔했다. 꼬박꼬박 오는 편지에 답장하지않고 선물만 조용히 놓고 떠난게 꽤 오래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설마 잠복할 줄이야.



"오셨으면 인사라도 해주세요! 네즈코가 많이 아쉬워 한다고요."



배실 웃으며 누이 동생을 부르러 가는 아이의 초록색 바둑판 하오리가 시야에서 펄럭였다. 한숨을 푹 쉬며 보따리를 처음 의도대로 마루에 내려 놓았다.



처음 네즈코가 인간으로 돌아오던 날, 겐야가 겹쳐보여 손이 먼저 나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지내라고 할땐 처음의 속이 뒤틀리던 내 감정까지 어루만져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충분히 그 감정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일까. 네즈코가 반가워하며 인사를 할때, 차를 내오며 뒤에서 날 유심히 바라보던 탄지로의 표정이 묘했다.






"시나즈가와씨, 저희 질투하시죠?"

"푸흡-"



마시던 차가 잘못 넘어가 연신 콜록였다. 그도 그럴게, 평온하게 마루에서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정확하게 짚어냈으니. 언제부터 들킨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덤덤히 언급해도 괜찮은걸까. 그러나 그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시나즈가와씨한테서 그런 감정의 냄새가 났던 걸 합동 훈련 때부터 느꼈는데,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잔잔하게 냄새가 나서요."



난 놀라 끔벅이던 눈을 다시 접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유독 제게만 험하셨던거죠?"

"...애도 아니고."

"그 때는 통제불능 애같았다구요!"

"하아?"

"저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서야 시나즈가와씨의 사정을 듣고 그제서야 알았어요. 유감이에요, 이렇게 둘이 이야기 나눌 적이 없어서 이제서야..."

"그런 말 네게서 들을 필요없어."



솨하며 부는 바람이 은발과 귀걸이를 살랑 흔들었다. 나도 네 누이에게는 했었지만 너에게는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전한다.



"미안했다."



이번엔 탄지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끼익 거리는 나무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는 나를 향해 그의 시선이 따라왔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보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이만 가보겠다며 인사를 핑계삼아 슬쩍 뒤를 흘겨봤다. 

그곳엔 포근한 미소를 짓는 성장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따뜻한 햇살에 비친 미소는 어느 때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시나즈가와씨!"



이름을 불러줄 때는 눈을 휘며 활짝 웃어보는 그였다.






05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식사 약속은 내키지 않았다. 밥도 누구랑 먹냐에 따라 맛이 다르지 않는가. 찰랑이는 식당 문 종소리에 흑발의 사내가 반응했다. 



"음식이 식고 있다, 시나즈가와."

"그러는 넌 왜 안먹고 있는데?"



깨끗한 젓가락을 들고 있는 토미오카를 보자마자 쏘아붙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한입씩 먹기 시작하는 옆모습은, 머리가 짧아져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딜 다녀오느라 늦었냐는 질문엔 카마도 가에 갔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는 의외라는 듯 씹던 입을 멈추고 날 돌아보았다.



"또 싸운건가?"

"무슨 득이 있다고."

"네 일방적인 화풀이었겠지만."

"..."



왜그렇게 다들 무표정으로 남의 속을 들추는지.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가만보면 사람 속을 긁는 것에 둘이 닮은 구석이 있는 듯도 하다.



"운이 좋았어도, 탄지로는 그를 뛰어넘는 노력을 한 아이니까. 이제 그만-"

"어디서 설교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거든?"

"그럼 다행이군."



토미오카는 그제서야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난 열이 받아 그가 먹는 양에 두세배는 입에 쑤셔 넣었다. 잠시 적막 이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처음 발견해서 돌본거지? 그놈."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할복하겠다는 편지를 썼을리가 없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의아한듯 가느다란 시선이 내게 향했다. 


곧 천천히  그들을 처음 만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춥고 하얀 눈밭에서 뒹굴던 가여운 남매를,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한없이 나약했던 오빠를, 그 오빠를 지키려고 자신에게 덤볐던 오니 누이 동생을.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난 입을 움질일 수 없었다. 옛적 내 앞에서 혈육을 잃었던 여인도 생각났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만났었다면, 아마 누이 동생을 그대로 죽였을 것이다. 오니멸살의 희망을 내 손으로 끊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왜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없었을까. 


이야기가 끝나도 내가 멍하니 있자 토미오카의 손이 툭, 등에 닿았다.




"괜찮나?"

"...너여서 다행이었군."



이놈도 만만치 않게 고지식한데도, 그 희망을 눈치채고 작은 톱니바퀴를 움직여주었다. 그저 기적에 가까웠다. 



"나는..."



목이 턱 막혔다. 이제 난 토미오카까지 질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너도 아주 애썼다.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그는 덤덤히 물잔을 내게 건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답지않게 위로라도 해주는 듯 무표정에 가까웠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찰랑이는 물에는 과거에 얽매여 자신를 끊임없이 다그치는 사내가 있었다. 이젠 그를, 그 감정을 보내줘도 괜찮지 않을까. 난 그대로 물한잔을 한번에 들이켰다.



"이제 좀 낫나?"

"...전보단. 개운하네."



시원한 물이 뜨겁게 올라오던 속을 가라앉힌 느낌이었다. 마음이 편해지자 훈훈한 공기가 둘 사이에 맴돌았다.




06


한손에 꽃다발이 가득하다. 그 향을 따라 소중했던 이들의 묘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한나절이 걸렸다. 유독 시간을 오래 지체한 쪽도 많았다. 어르신과 사형, 나비자매를 거쳐 가족의 묘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작은 묘 앞에 마지막 남은 꽃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눈을 감고 동생들의 이름도 모두 불렀다. 같은 장소에서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부짓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를 어떻게든 지켜준 것이 그들이라는 걸. 겐야의 마지막 말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너를 위해서라도 난 행복이란 걸 찾아 끝까지 살아갈거라 다짐했다만,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더는 보듬어주지 않아도 돼. 너희가 이어준 이 생이 다되면 그때 나를 다시 만나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꽃잎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고 나비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된다. 언제나 불어오는 바람처럼 날 이끌어주면 된다. 


나 자신을 원망하고 누군가를 시기했던 사내에게서 벗어났으니, 내 벗들이 그 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영원히 잠든, 혹은 살아서 염원을 이뤄낸 모두에게 말을 건넸다. 그것은 나 자신도 포함이었다. 



"편히 쉬어."



밤하늘이 아름답게 빛나고 조용한 곳에 유일하게 한결 편해진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평온해진 세상에서 또다른 인연을 찾아가기 위해 앞장섰다. 


감정의 굴곡을 채워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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