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진짜 이번 주말은 절대 글 안 쓰고 행복한 소비러로 보내려고 했는데 소비를 하고 싶은 게 제 전두엽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쓰고 뇌를 리셋한 후 다시 읽으면서 소비하기로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아이러브유 171218

19.02.07 소장본화 된 글로 유료공개입니다. 다시 수정 및 퇴고를 결심한 고로 전편공개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합니다. 수정이 많은 편은 제목에 표기하고 전체공개합니다. 다시 연재하는 기분으로. 정말 바빠서 어디까지 속도를 낼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임신 33일차

 다니엘은 진영을 신기하게 구경 중이었다. 재벌집에서 니 굶기더나. 아니? 왱? 진영이 닭고기를 터질 듯이 입에 넣은 채 짧게, 간신히 물었다. 양 손가락 끝이 치킨 기름으로 번들번들했다. 물어놓고는 다니엘이 적당한 답을 고르는 시간도 기다리지 못해 진영은 다시 닭 뜯기에 집중했다. 다니엘의 집으로 온 지 반나절 만에 벌써 피자 한 판, 치킨 두 마리를 혼자 해치우는 중이다. 나 족발도 좀 시켜주라. 닭다리를 손에 든 채 또 먹을 걸 주문하란다. 다니엘은 콜라 마시다 뿜을 뻔했다. 야 니... 진짜... 이거 임신 맞나? 어디 아픈 거 아니가? 다니엘은 세상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는 생명체를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진영이 불퉁한 눈으로 쏘아봤다. 아 안 시켜줄 거냐고. 돈 준다고. 다니엘이 '뭘 내가 돈 때매 그러냐' 하면서 배달 어플을 켰다. 

그런데 진영이 갑자기 닭다리를 놓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소파에 드러눕던 다니엘이 놀라서 일어났다. 열 평 남짓 되는 원룸 오피스텔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다. 다니엘은 휴지를 곽 째로 진영에게 건넸다. 진영이 코를 팽 풀고는 앉은뱅이 식탁 위에 그걸 올려놨다. 생전 먹을 것에 집착이 없던 놈이 오돌뼈까지 다 뜯어 발겨 놓은 뼈 잔해와 코를 풀어 구긴 휴지가 나란히 얹혔다.


“그렇다고 울긴 왜 우냐 존나 족발 하나 때문에.”
“씨발 족발 때문 아니거든?”
“그래 미안하다. 지금 시킨다.”
“대 자로 시켜줘.”
“…니 진짜 삼한 거기서 굶다 왔나.”


 세계적으로도 거대한 대기업명을 옆집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게 이질적으로 귀에 박혔다. 다니엘은 제가 말해놓고도 스스로 어색해했다. 내 방금 좀 있어 보였제. 되물었지만 진영은 답하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진영이 귀를 쫑긋하곤 '족발 벌써 왔나?' 했다. 아니, 무슨 족발이 5초 만에 오려고.현관문을 열어본 다니엘이 죄인처럼 다시 진영에게 다가왔다.


"족발은 다음에 사줄게."
"아 왜."
"황민현 왔는데."
"……."
"되게 화난 것 같은데."
"…야."
"없다고 구라 치라는 얘기는 안 했다 아이가."


 구라 치기엔 집이 너무 좁기도 하다. 이미 여기 왔다는 건 확신했다는 거고. 다니엘은 꽤 논리적으로 덧붙였다. 진영은 또 눈물이 핑 돌았다.




-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니가 애야? 고작 한다는 게 가출이야? 내일 대주주총회인데 자칫 꼬투리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했어. 내 인생 갉으려고 작정했어? 집에서 그렇게 하래? 총회 끝나고나서 집을 나가든 어쩌든 다시 제대로 반항해. 신경 꺼줄 테니까.


 민현은 잘 빠진 포르쉐에 몸을 실으면서 날선 잔소리를 했다. 진영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조수석에 올라탔다. 급한대로 닦긴 했는데 손끝에서 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에 민감한 민현이 시동을 걸다 말고 인상을 썼다. 미니 손 세정제를 진영의 품에 던졌다.


"요새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더 다정하게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진영은 군말 없이 손을 닦았다. 차가 급하게 출발했다. 진영은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안았다가 팔을 풀었다. 초기라서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었고, 진영은 씩씩하게 이 시기를 넘기는 중이었다. 전에 없던 식욕이 오르고 미친년 널뛰기하듯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저 새끼랑은, 바람이라도 났어?"
"아니 무슨-"
"아니면. 내가 꼭 이렇게 데리러 오라고 이러는 거지?"


 진영은 속이 훤히 읽힌 수치스러움에 말을 잃었다. 빨간불에 차를 세운 민현이 그 표정을 훑곤 비웃었다.


"반항이랍시고 말도 없이 나갈 때마다 여기 있잖아 너."


 아. 아기는 좋은 말만 들어야 하는데.
 진영은 대꾸없이 어두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현은 임신 사실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자신은 결국 내쳐지게 될까. 자신은 내쳐지고 싶은 걸까 들여지고 싶은 걸까. 가늠할 수 없었다.





 임신 35일 차

 삼한의 주주이자 이사로 민현은 바빴다. 직함은 이사였지만 노쇠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 경영을 맡을 차기 회장이었다. 민현의 아버지는 집안 싸움에서 밀려 작은 계열사 하나를 가지고 본사에서 빠져나갔다. 민현과도 조부와도 별 왕래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집안 3대에서 남은 자식이 민현뿐이었다. 이럴 땐 여기저기 씨 뿌리지 않은 윗대의 선견지명을 칭찬해야 할지. 유혈사태 없이 차분하게 후계 수업을 받으며 민현은 더 냉철해졌다.

 재벌이라고 하면 다 좋게 생각들을 하지. 그리고 실제로도 민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차, 집, 그보다 값어치가 작은 것들은 물론이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과 해고까지 모든 게 민현의 손끝 하나면 끝났다. 다만 민현이 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결혼이었다.

 당시 L 아나운서와 썸을 타던 중에 D그룹 카드 계열사 아들과 정략결혼 제안이 들어왔다. 이런 거 별론데. 민현은 불편한 티를 냈다. 뜻을 전한 조부는 '싫으면 안 해도 괜찮다. 다만 언젠가 누군가와는 이런 결혼을 해야 할 터. 그나마 이쪽이 간섭없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 조언을 내놨다. D그룹 계열사면 정략 결혼의 마지노선 급이었다. 민현을 절대 터치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조부는 그래도 예의상 사진을 건넸다. 민현은 사진 속의 남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애인은 둬도 괜찮죠. 민현이 물었다. 조부는 그런 사소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바라봤다. 저 남자한테는 안 섭니다. 그게 아무리 오메가라도요.





"오빠 요새 바람났어?"


 L은 프리랜서 선언을 한 뒤로 일이 대폭 줄었다. 그래도 공무원 비슷했던 과거보다야 실질적 벌이가 는 모양이었다. 뭐, 사실상 벌이는 상관없기도 하고. 알몸의 민현은 드레스룸 거울 앞에서 바지를 입다가 침대 쪽을 돌아봤다. L이 시트 위에서 이불을 둥글둥글 만 채 엎드려 웃었다. 요새 바람났냐고. 다시 물었다.


"마누라냐? 니가 할 소리야? 주제 파악 좀 해."


 L은 오메가 중에서도 우성 오메가로, 사이클이 찾아올 때면 향이 지독할 정도였다. L은 늘 억제제를 먹지 않았다. 민현의 이성이 조금만 약했으면 애가 생겨도 축구단 만들 만큼 많이 생기지 않았을까. 민현은 L의 레지던스에서 눈을 뜰 때마다 쓰레기통 안 콘돔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L은 아름다웠지만 오만했고, 몇 개월째 몸을 섞곤 있지만 곧 유효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 이상 오래 볼 계획이 없다는 신호를 주고 있는데 모르는 건지 모르고 싶은 건지 L은 계속 미래를 언급했다.


"오빤 말을 필요 이상으로 못됐게 해."
"사실을 말해주는 거야."
"아무튼 다른 연놈 생긴 건 아니지?"


 L은 질문 마지막에서 포커페이스에 실패했다. L의 얼굴이 불안함으로 물드는 순간을 목격하고 민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 싫다 정말. 민현은 대꾸도 없이 셔츠를 껴입었다. 결국 보다 못한 L이 이불을 걷어차고 나체로 민현에게 다가왔다. 거울에 L의 굴곡진 몸이 훤히 비쳤다. 하고 싶어. 또 하고 싶어. L이 민현의 어깨에 입을 댔다. 민현이 어깨로 그걸 탁 쳐냈다. 제발 약 좀 먹어, 발정난 것처럼 그러지 말고. L이 서운한 눈빛을 했다. 오빠 자꾸 이러면 나 다른 새끼랑 놀아날 거야. 민현이 망설이지도 않고 답했다. 그래라 그럼.


"진짜 다른 새끼 생겼지. 자고가는 횟수가 너무 줄었잖아. 대체 누구야? 결혼한 걔는 오빠 타입 아니라며. 또 다른 애야?"
"...내가 그런 말도 했었어?"
"다른 새끼 생긴 거?"
"아니. 배진영 내 타입 아니라는 거."


 내가 별 쓸데없는 말을 다 일러 바쳤구나. 

 민현은 옷을 갖춰입고 구두를 꺼냈다. L의 나신이 졸졸 따라나왔다. 그래서 또 언제 올 건데. 난 이렇게 주인 잃은 개처럼 계속 기다리면 되는 거냐구. 결국 민현은 룸을 나서며 경고했다. 투정엔 약도 없어. 계속 이럴 거면 방 빼고 꺼져. 호텔 레지던스는 민현의 명의였다. L은 꿀먹은 벙어리가 돼 닫히는 문을 쳐다보고 섰다.





 임신 36일 차

 결혼은 하지만 그 이상은 없어. 우린 철저히 남이야.

 진영은 두 달 반 전 민현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처음 만났을 때 내놓은 말이었다. 진영은 미국에 본사를 둔 D그룹의 카드계열사 아들이었다. 하지만 직계 자손은 아니었고, 설상가상 D그룹마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차라리 자회사 하나를 들고 한국에 돌아온 진영의 가족이 행운일 정도였다. 처음엔 카드로 시작했지만 금융에 손을 뻗쳤고, 전자에도 투자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렵사리 삼한의 차기 회장과 결혼이 성사됐다며 진영에겐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애원했다. 네 청춘을 이렇게 쓰게 해서 미안하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사업을 확장하기가... 이런 기회가 없을 거야...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에 진영은 할말을 잃었다. 그나마 차기 회장인데도 이미 결혼한 중년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솔직히 처음 얼굴을 봤을 때만 해도 너무 잘생겨서... 이 결혼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영은 서재에 앉아 쓸데없이 추억에 잠겼다. 몇 달 사이 모든 게 바뀌었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성우였다. 이사님 전홥니다. 진영이 휴대폰을 건네 받았다.


-저녁에 일 없지?
"어..."
-그럼 저녁이나 먹자. 배고프다.
"어디로 가면 되는데."


 민현이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뭘 또 잘못했지. 진영은 몇 자 되지도 않는 제 말을 되짚었다.


-집에서 먹어. 치킨 배달 시키라고 할게.
"치킨?"


 민현은 그런 기름진 음식은 손에 대지도 않는 축이었다. 배달 음식 먹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고. 진영이 의아하게 되묻자 수화기 건너에서 또 짜증스러운 타박이 돌아왔다. '치킨 먹는 게 신기할 일이야? 먹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면 됐어. 끊어. 1시간 안에 갈 거야.'

 진영은 뚝 끊긴 전화를 내려다봤다. 뭐랄까. 한결 같이 성질이 더럽긴 한데...




-




 "넌 진짜 약 잘 챙겨 먹는다."


 진영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치킨을 먹어댔다. 애초에 치킨엔 별 취미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새 변덕스럽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민현은 몇 입 뜯다 말고 손을 털었다. 배달음식이니까 됐어요. 놔두면 나중에 치워나 주세요. 민현이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퇴근시켰다. 그들의 숙소는 부지 안의 다른 건물이었다. 층고가 높은 식당은 진영이 오물거리는 소리로 울렸다. 진영은 기름진 손가락 때문에 손바닥만 이용해 콜라를 마시다 고개를 돌렸다. 민현이 아일랜드 위에 올려진 진영의 억제제를 관찰 중이었다.


"발정 안 나려면 이거 몇 번이나 먹어야 되냐?"


 민현이 약통을 들어 보였다. 저 걸레같은 단어 선택을 온 국민이 같이 알면 얼마나 좋을까. 진영은 속으로 욕하면서도 얌전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보통은 일주일에 세 번. 히트사이클 때는 하루 세 번 정도."
"다른 사람이 가도 살 수 있지?"
"어."
"그래. 내 고양이한테 좀 먹여야겠네. 요새 기가 다 빨려서."


 진영은 치킨을 뜯다 멈칫했으나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행동을 이어갔다. 민현에게 애인이나 그 비슷한 첩이나 스폰이나 그런 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진영은 이미 그런 것에 섭섭해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 이 결혼은 비즈니스니까 평생 혼자 사는 거나 다름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게 오래였다. 분명 그랬는데,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후로 기껏 다잡은 마음이 요란했다. 스스로가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약을 안 먹었던 거야?"
"언제."
"그때."


 진영은 그때가 언제인지 알면서 모르는 체 한번 되물었다. 그럼 그만둘 줄 알았더니 민현은 제법 장난스러운 얼굴로 돌아와 진영의 옆에 앉았다.

 민현과 진영이 섹스한 건 딱 한 번이었다. 원샷 원킬. 한 번 만에 임신이라니 진영도 처음엔 현실을 부정했었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은 거야."
"그러시겠지. 목석처럼 굳어가지곤 섹스 할 줄도 몰랐잖아 너."
"……."
"오메가도 안전하게만 놀면 그만인데, 그게 안 되는 성정인가? 아쉽겠네. 놀아보지도 못하고 팔려와서."


 민현은 '결혼'이라는 단어 대신에 '팔려와서'라고 말했다. 삼한그룹과 D카드계열사의 몸집 차이가 어마어마한 거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둘의 결혼 사실에 대해 언론은 대놓고 '정략'이라고 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한 사실. 진영은 이따금 어째서 민현이 자신을 받아들였는지가 궁금했다. 사랑도, 돈도. 이쪽에서는 득 볼 게 없었을 텐데.





 임신 37일차

 약이 없어졌다. 진영은 사용인들을 붙잡고 아침부터 난리를 피웠다. 억제제가 없어졌어요. 심지어 늘 먹으려고 내놓은 한 통만이 아니라 집안에 재어놓은 약 박스 전체가 사라져 있었다. 진영은 결국 찾는 걸 포기하고, 급한 대로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언제 오세요. 올 때 억제제 좀 사와주세요. L4, 가장 센 레벨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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