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만들어준 하잏 언니! 고마어♥


다민이도 고마버:) 버전이 여러개여서 골라쓰는 맛이 있겠구만//

W.네라도라












10분째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은 채 마트로 향하는 둘은 누가봐도 무지하게 어색해 보였다. 혹시 그가 먼저 말을 꺼내진 않을까 기대하며 힐끗힐끗 눈치를 보긴 했다만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또 한숨을 쉬는 창섭이다. 역시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먼저 입을 열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창섭은 조용히 입술을 짓이기며 심호흡을 했다. 그 심호흡이 끝난 후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끝은 사과가 되겠지만 성재의 대답은 예상이 가지않는다.
근데 따지고 보면 또 나에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먼저 폭력을 쓴건 얜데. 언어폭력. 세상은 늘 불공평하다 생각한다. 먼저 남을 비꼬는 말로 한대 칠 동기를 준 건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 말에 욱해 때린 사람이 사건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다는 게. 하지만 나와 애들은 늘 그랬던 세상에 생채기 없이 녹아들었다. 아니, 생채기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됬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꽤 담담해졌다 생각했는데 씁쓸했다.
대충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마트에 도착했다. 저만치서 성재가 가고있음에 혹, 길을 잃을까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불러버렸다. 육성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고 누가 그러던가. 꽃은 무슨, 달리 반응하지 않고 무시당한 게 다행일망정. 얼른 성재를 따라붙었지만 역시 다리가 길어 보폭이 큰 그애를 손쉽게 따라잡기란 어려웠다. 주변이 시끄러운 탓에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이 완전히 실타래 꼬이듯 엉키는 기분과 함께 잠시 멍때린 사이 어느새 카트를 꺼내 온 성재였다.
카트 손잡이를 한손으로 야무지게 잡곤 다른 한손은 손등이 바닥을 향하게 펴 창섭에게 내민 성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창섭은 뭐, 한다.


"종이."

"무슨 종이."

"뭐사야 하는지 적혀있는 종이."


성재의 대답에 아, 하며 소리없는 탄식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쪽지모양으로 꼬깃꼬깃 접혀있는 종이를 그 큰 손 위에 올려놓는다. 종이를 받자 용건은 끝났다는 건지 훽 돌아서 종이를 피며 걸어갔다. 그에 어깨를 한번 으쓱, 한  창섭도 성재의 뒷꽁무늬를 따른다. 옆에 서서 여전히 말없이,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라다니던 창섭은 많이 피곤했던 건지 앞 못보는 장님처럼 눈에 초점이 없었다. 아슬히 옆 카트를 빗겨가는가 하면 코너에 옆구리를 찧을뻔 하기도 했다. 신경 안쓰는 척해도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지 흘끔대며 그를 살피는 성재다. 제 딴에는 이제 진짜 저와 같이 지내야 할 멤버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러다 마트에 가면 꼭 한명씩 있는 카트갖고 장난치는 아이가 저 멀리서 카트를 밀며 달려온다. 모두들 비키는 탓에 당연히 창섭도 비켜줄 거라고 생각한 그 아이는 발까지 구르며 더 속도를 올려 달려왔다.


"이창섭!"


그때였다. 제 코앞까지 다가온 위험에도 피하지 않는 게 적신호로 보인 성재는 창섭의 팔을 잡아 제쪽으로 잡아당긴다. 성재가 1초라도 늦었더라면 그자리에서 카트에 치였을 정도로 카트와 그 아이는 아슬하게 창섭을 빗겨갔다.


"위험했잖아요! 뭐하는 건데. 조심 안해요?"

"으엉?"


훽 잡아 당겨지자마자 단단한 무언가에 이마를 콩 찧고 저를 감싸오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끼고서야 정신이 들은건지 초점이 맞춰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의 품속에서 상황파악을 했다. 그러다 벌컥 화를 내는 성재에 요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 성재를 봤다. 성재도 화를 내며 내린 시선이 창섭의 시선과 맞닥뜨렸다. 성재는 그 짧은 몇 초 사이 한눈에 들어오는 매력적인 창섭의 눈과 입술을 번갈아보다 귀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화악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왼쪽가슴이 시큰하게 아려오는 생소한 기분도 휘몰아치듯 느껴진다. 의도치않게 손목을 꽉 잡은채로 제 품에 창섭을 안고있는 성재와 손목이 잡힌채로 성재 품에 안겨있는 창섭 둘 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한순간에 서롤 밀쳐내며 떨어졌다.


"ㅁ, 뭐, 뭐야-! 왜 아, 안고 그러냐아-!"

"그러길래 정신을 ㅇ, 엇다 놓고 다니는 건데! 다칠뻔 했잖아-"

"...."

"한눈팔지 말고 카트에 꼭 붙어서 다녀."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눈을 슬쩍 피하며 되려 화를 내는 창섭이 밉지도 않은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똑같이 눈을 피하다 토마토같이 붉어진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꼴에 민망하긴 했던건지 내빼는 모양이 성재를 픽 웃게 만들었다. 주변이 시끄러운데 용케 그 웃음소리를 들은건지 움찔하며 성재를 올려다보자 언제 웃었냐는 듯, 바로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를 거두는 그이다. 그렇게 다시 종이에 적힌 것들을 찾아 다니는데 서로의 사이가 조금은 풀렸다고 생각한 창섭은 툭 던지듯 사과를 한다.


"저기, 먼저 때린 건 미안해."


본디 성격상 쑥스러운 말을 잘 못하는 창섭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험한일들을 자주 겪으면서 생긴 하나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 당연하게, 대상에 대한 애정도에 따라서도 말투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방어기제란 낮선사람한테나 작용하는  가벼운 철판같은 것일테니.


"내가 한 말 때문에 때린거에요?"

"...."


성재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별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창섭이었고, 그 후 성재가 아무말이 없자 어색함을 깨기위해 되려 다시 묻는다.


"나 속 좁아보이지? 알아. 근데 나한테는 그말이 되게 충격이 컸어. 내 애들을 내손으로 죽인 게 맞는데 인정하긴 너무 싫었거든."

"누가 속 좁데요?"


창섭이 쓰게 웃어보이며 말을 끝마치곤 성재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코가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 있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잘생겨서 숨이 막히는데 그 거리면 오죽했을까. 저도 모르게 흡, 하며 숨을 참는 창섭이었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더운 숨이 훅- 끼쳐오자 잠깐 가라앉았던 열이 확 오른 기분이다. 갑자기 긴장한 탓에 제가 아무말도 못하고 있자 성재가 한번 더 못을 박아왔다.


"그리고 형이 죽인 게 아니라고 꼭 다시 말해주고 싶었어. 사고였다며. 그럼 끝까지 사고라고 해야지. 남자가 줏대없게 말을 바꾸냐."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다 들리는 거리에서 영롱하도록 새까만 눈동자로 저를 보며 한마디, 한마디 진지하게 말하다 저도 쑥쓰러웠는지 끝은 장난식으로 맺는 성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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