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검붉고 기분 나쁜, 방금 묻은 피라고 하기에는 질척하고 검은색에 가까운 피가 야구방망이에서 질척하게 흘러내린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바리케이드 앞을 서성거린다. 동물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들에 패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패치는 혀를 한번 차고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는 치트가 기다리고 있을 터, 패치는 바닥에 질질 끌리는 야구방망이를 한번 털어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잔디에 피가 흩뿌려졌다. 사박거리는 소리에 바리케이드로 세워진 철조망 너머의 것들이 더욱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으르릉댔지만, 패치는 그것을 꽤 많이 겪어본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를 내리누르는 묵직한 가방에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통조림 몇 개와 물 몇 병이 들어있었다. 패치는 집에 남아있는 식량의 개수를 어림해보며 곧장 집으로 향했다. 패치가 멀어지자, 커다란 벽 너머 또한 잠잠해졌다.


-에이, 또 이 통조림만 가져오신검까? 이거 이제 슬슬 질리는데...

-헛소리 말고 먹기나 하게나. 이제 이것도 동나게 생겼어.


 치트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치트 자신도 말도 안 되는 불평인 줄은 알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였다. 그 사건이 있는 이후로 2년간 통조림밖에 먹지 못했으니 말이다. 뚜껑을 따는 손길이 어색하다. 하나가 없어서인지 따는 자세가 영 익숙지 않았다. 뭉그적대는 치트에 패치는 익숙하게 그가 따던 캔을 가져가서는 대신 따주곤 토마토 수프가 담긴 캔을 숟가락과 함께 내밀었다. 다음부터는 다른 것을 찾아볼 테니 어서 먹기나 하게나. 치트의 표정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알겠슴다~ 선배님만 믿도록 할게요. 패치는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치트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말을 해서 뭐하냐는 표정을 짓고는 다음에는 대형 마트에 갈 계획을 세웠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별일 없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음엔 좀 큰 곳을 가야겠군... 집에 필요한 물건 같은 건 없나?

-아, 치약이랑 비누가 다 떨어져 가네요~ 부탁드림다.

-...알겠네.


 치트는 눈웃음을 짓고는 한쪽밖에 없는 팔을 움직여 스푼을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한 손으로 퍼먹는 것이 불편한지 안간힘을 쓴다. 패치는 그런 치트를 보고는 아차 하며 통조림을 잡아주었다. 치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패치에게 감사를 전했다. 감사함다. ...아닐세,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아닙니다, 선배님 탓이 아닌걸요? 패치는 입을 다물었다. 죄책감이 가슴께를 쿡쿡 쑤셨다.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어두워지는 패치의 표정에 치트또한 침묵을 유지했다. 휑한 왼쪽 팔이 있던 곳이 유독 신경 쓰였다.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선배님 탓이 아니라니까요,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치트였다. 패치는 그런 치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통조림을 치트 앞으로 밀어주고는 단단히 붙잡을 뿐이었다. 답답한 기류가 둘 사이에 한참동안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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