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준 웹진 '얼음연못2'에 참여한 글입니다.




다시, 中

w. 원 warn




준면은 머리가 알싸하게 울리는 기분에 힘들게 눈을 떴다. 아직 시간은 이른 오전 여섯 시. 시계를 보려 고개를 올리자 알싸하게 오는 두통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숙취였다. 으음―. 준면이는 뒤척이는 소리를 내며 몸을 한 바퀴 굴려 이불로 자신을 꽁꽁 싸맸다. 자켓은 어디다 던져뒀는지 상의로 달랑 셔츠만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춥더라-. 그렇게 김밥말이 하듯이 몸을 굴리다 어째 배 주변이 불편한 것 같아 이불과 제 몸 사이를 차지하는 것을 쥐고 힘들게 팔을 빼내었다. 어라, 못 보던 옷인데. 토실토실한 실로 짜여 있는 남색 가디건이 준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리저리 돌려보던 준면은 이내 침대 위로 성의 없이 옷가지를 던졌다. 예전에 사놓고 기억 못 하는 거겠지, 뭐. 집 정리를 잘 않는 자신에게는 일상이었다.

이내 이불 사이에서 나와 몸을 일으킨 준면은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섰다. 어제, 저녁을 먹지 않은 빈속으로 술을 마셔서인가 이상하게 숙취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어째 금방 취한 느낌이긴 했지만. 바로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욕조를 향했다. 역시나 어지러운 세면대 위나 찬장, 이었지만. 집에서 유난히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냉장고 그다음이 바로 욕조여서, 준면은 한번 물을 뿌려 헹군 욕조에 가득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피곤한 날, 일찍 눈을 뜬 아침엔 반신욕을 해야지만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유롭게 입욕제까지 넣고서 몸을 푹 담근 준면은 그 상태로 눈을 감았다.


준면은 어제, 그렇게 흐릿한 민석의 잔상을 눈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였다. 웬만하면 술을 입에 잘 대지도 않고, 그렇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저인데. 술을 한 잔, 또 한 잔 마실수록 민석의 모습이 뚜렷해져 어째 술을 따르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 잔, 두 잔 들어가는 빈속이 시큰시큰하고 눈도 가득 축축해져서 아릿해져 가는데도, 어째 멈출 수가 없었다. 허공에라도 왜 그랬냐고. 제게 왜 다시, 다시 만나자고 말을 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얼굴이 눈앞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입을 떼는 일조차 할 수가 없어서, 준면은 조용히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그렇게 깨끗하게 잘려나간 기억을 가지고서 눈을 뜨니 어느새 침대 위인 상태가 되었다. 기억이 끊겼다는 게 좀 찜찜했지만. 집에 잘 들어왔으니 별일 없었겠지? 괜히 다행이라 생각한 준면이었다. 젖은 손으로 부빈 눈은 마른 눈물 자국이 붙은 채 퉁퉁 부어있었다. 제 몸이 담긴 뜨끈한 물에서 올라오는 김이 깊게 내뱉은 한숨으로 옅게 지워졌다.

이내 목욕을 마치고 조금이나마 피로를 푼 준면이 속을 달랠 새도 없이 바쁘게 출근준비를 했다. 날이 좀 쌀쌀하기도 하고, 사무실이 좀 추우니 겉옷을 챙기려 바닥에 쌓인 옷더미를 들추다, 침대 위에 저가 던져놓은 가디건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처음 본 저 가디건. 코를 대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좋은 냄새가 난다. 저가 좋아하던, 그런 향인 거 같은데. 별생각 없이 괜찮네, 어깨를 으쓱대곤 준면은 그렇게 곧장 가디건을 한 손에 들고 나왔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


민석은 제 눈이 어찌 되어버린 것인지. 놀라서 깜빡이기를 몇 번. 멍하니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샐쭉 웃어버리고 말았다. 준면이 제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저 녀석, 기억도 없을 텐데 어떻게 알고-물론 전혀 모를 테지만- 자신의 가디건을 챙겨 왔는지. 잘 어울리는데, 고집부려서 매일 입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휴대폰은 제대로 보지 못 했는지, 자신이 민석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인가, 다행이겠지. 민석의 작은 웃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취중에 저를 향한 준면의 미련을, 의도치 않게 알게 된 게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기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민석의 것인지도 모르고 저 남색의 털뭉치를 입고 있을 준면이 마냥 귀여워 놀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나 잃는다고, 우는 주정이 있을지는 몰랐다고, 마구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가 없다.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자신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준면을 알기에. 그냥 그를, 김준면이란 사람을 알기에. 얇은 입술을 다시금 꾹 다문다. 준면에게 괜히, 네가 나에게 아직 미련이 있다는 걸 다 안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저에 분명 겁을 먹고 두려움이 가득 찬 얼굴로 도망가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젠 실수로라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조금만 더 가까워져 볼까 한다. 민석이 성큼성큼 발을 놀려 준면의 앞에 섰다. 오늘도. 내일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다시, 거리가 조금 좁혀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준면아, 오늘 같이 밥 먹자.”
“…저리 가.”
“저번에 내가 샀잖아. 이번엔 네가 좀 사줘.”

“저리 가라고 했다,”

김믄슥……. 이를 꽉 깨물고 제 이름을 발음하는 게 꽤 우스워서. 분한 표정을 지어도 마냥 귀여워 보여서. 민석은 숨죽여 큭큭 웃었다. 준면의 말 따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알겠지? 좀 이따 봐! 경쾌하게 답을 하고 금방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 야, 야―, 준면이 작게 민석을 불렀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웃음을 간신히 참는 표정을,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들킬 수 없었다.


“……야―!”

분함에 조금 크게 외쳐버린 준면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호통에 다들 놀랐을 터였다. 그러나 민석은 왜 자꾸 웃음이 나는지. 작은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큭큭 웃었다. 귀엽네, 김준면. 코너를 돌며 활짝 웃어버린 얼굴을 손을 펴 가리기까지 했다. 



어느새 걱정했던 것들은 모두 지우고, 중요한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저가 그를 여전히 좋아한다. 그가 여전히 자신을 좋아한다. 그 사실만 중요했다. 오로지 그것만. 민석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처럼, 그의 가슴에 퍼진 사랑과 같은 뿌듯하고 따뜻한 기류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달라는 게 고작, 설렁탕이라고.”


으득거리며 이를 가는 준면의 음성에 하얀 국물에 태평히 밥을 말고 있던 민석이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고작 설렁탕이라니, 오늘 정말 먹고 싶었단 말야. 숟가락을 뒤적거리며 이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민석에 준면이 코웃음을 쳤다.

“그럴 거면 혼자 먹지 나를 부르긴 왜 불러?”
“글쎄에, 김준면이랑 같이 먹고 싶어서 그랬지―.”

얼굴이 일그러진 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라는 그의 생각이 커다란 글자로 이곳저곳 써 붙여진 것만 같았다. 접때 저가 한정식 쐈지 않냐며 밥 사라고 무작정 준면을 끌고 나온 민석이 요구한 게, 고작 이 소박한 설렁탕 한 그릇이라니. 그 사실도, 이 상황도, 다. 준면은 그저 어이가 없다. 혼자 먹어도 될 걸 굳이 저를 끌고 온 게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리는 낌새였다. 짜증이 올라오는 것에 퍽, 퍽, 애꿎은 밥만 숟가락으로 쑤셨다. 그런 준면의 모습을 흘끗 바라본 민석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 가디건은 어디서 났대? 어울리네.”
“네가 알 바야.”

톡 쏘아붙이는 그 음성에 참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더욱 날카로운 준면의 시선이 돌아왔지만 민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귀엽다, 김준면. 사랑스럽다. 짜증 나, 중얼거리던 준면이 이내 코를 박듯 푹 숙인 고개로 열심히 국물을 떠먹었다. 티는 안 내도 속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 해장할 만한 것을 먹이고 싶었다. 굳이 싸서,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고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준면을 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하얀 국물을 떠먹는 더 하얀 빛의 얼굴이 집중해 밥을 먹느라 몽글몽글한 볼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걸 바라보느라 여즉 그릇만 휘적거리고 있었다.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않았다.

그런 민석의 시선이 불편해 준면은 열심히 밥만 먹었다. 속으로도 열심히 짜증 나, 불편해, 짜증 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서 가서 소화제나 사 먹어야지. 그런 다짐도 하며.




*


그렇게 둘이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점점 늘었고, 이상하게 준면이 달고 살았던 소화제의 병은 조금씩 줄었다. 그럼에도 밥을 먹고 돌아와서 바삐 일을 하다 돌아와 보면 놓여있는 소화제나 에너지 드링크는 점점 늘었다. 민석이 사다 놓았을 것이 분명한 그것들을 준면은 손에 쥔 채 가만 바라보다 가장 공간이 넉넉한 네 번째 서랍에 아무렇게나 굴려 넣었다. 어느새 그 서랍이 꽤 빽빽해졌을 즈음에 하나둘, 가끔 속이 좀 불편해질 것 같다 싶을 때나 졸릴 때 꺼내 마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민석이 편해진 것 아니었다. 절대. 아니었다.

실은 준면은 민석이 불편했다. 매우, 불편했다. 그저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함께 점심을 함께하는 시간이. 말하지 않아도 팍팍 불편한 티를 내는 준면을 아는 민석이. 아무 말 않아도 잘만 밥을 먹고 각자 일을 하러 돌아가는 일상이. 그러고는 저녁도 거르며 바삐 업무를 처리하는 준면을, 이쪽 김팀장을 두고 일찍 자리를 뜨는 저쪽 김팀장이. 그 빈 자리가. 익숙해서 그런 것뿐이었다. 절대 편해질 리가 없었다.


가끔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홀로 버스에 올라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다 민석이 떠오를 때. 아니 자꾸만 떠오르는 그 매 순간에, 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불편함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익숙해져 버린 자신도 싫지만 불편해하던 저를 알면서 몰아붙여 함께 밥을 먹자 말하는 민석이 미웠다. 그냥 그 얼굴이 너무도 미웠다. 키득키득 웃는 얼굴이, 저를 보며 웃는 그 잘생기고 예쁜 얼굴이. 짜증 날 정도로, 너무 미웠다. 다시 만나자고 말한 게 이런 거였나. 저는 그냥 밥이나 같이 먹고 잔뜩 놀리기만 하는 그런 상대인 건가. 밀어내고 싶은 마음만큼 알 수 없는 민석에 자꾸만 의문이 들어 궁금해지는, 그런 저가 우스워 보이기까지 했다.

여전히 스스로의 마음 하나 정리하지 못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끌려다니는 자신이 싫었다. 준면의 가라앉은 눈은 어두운 거리 위를 창 너머로, 버스와 함께 달렸다.




어느 날이었다. 비가 마구 쏟아졌다. 이른 퇴근길은 바글바글, 사람이 넘쳐났고 그 무리가 한참 지나가고 길이 조금 한적해질 즈음까지도 준면은 출입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하필 이런 날에 우산이 없다. 저만 빼고 다들 하나둘 우산을 펼쳐 들고 빽빽한 사람들과 빗속으로 들어가 걸었다. 준면 저도 자켓을 뒤집어쓰고 비를 뚫고 달려 버스를 탄다든가, 그럴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운이 나질 않았다. 자꾸만 제 주위를 맴돌던 민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안 그래도 그 녀석 때문에 매일매일 신경이 잔뜩 곤두섰는데. 이렇게 비까지 내리니 기운도 없다. 기분이 잔뜩 가라앉았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비는 여전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빵-, 짧게 울리는 경적소리에 준면이 멍한 시선을 들었다. 익숙한 검은 세단이 제 눈앞에 있다. 창문이 위잉 소리를 내며 내려갔다. 매분 매초 눈앞에 나타나, 그리고 제 머릿속에 나타나 저를 괴롭혔던 민석의 얼굴이 있다.


“타. 데려다줄게.”

준면이 입을 오물거리며 고민했다. 내가 왜. 네가 왜 날 데려다 줘. 톡 쏘아붙이고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피곤한 몸과 마음을 어서 눕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불편한데……. 다른 이도 아니고 민석이다. 저를 데려다준다 하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니고 김민석이다. 김민석과 나란히 앉아 비를 뚫고 집에 가야 한다. 고민이 되어 정차한 민석의 차를 향하다 자꾸만 발걸음을 멈칫멈칫했다.

“비 많이 와. 얼른.”

그 부드러운 재촉에 준면은 짐짓 생각하다, 결국 조수석 문을 열었다. 못 이기는 척 차에 올라탄 준면에 민석이 작게 미소지은 얼굴을 돌려 히터를 약하게 올려주었다. 훈훈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준면의 마음은 그러나, 그렇게 훈훈하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그 뜨거운 공기로 이루어진 사고가 엉키고 또 엉켜, 복잡하고 무겁게 저의 가슴을 꾸욱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김민석이다. 저와 연애를 했던. 최근엔 다시 만나고 싶다 말했던, 김민석이다. 습관처럼 저와 밥을 함께 먹고, 이죽거리는 얼굴로 저를 놀려대는 김민석. 그러면서 다시 만날 거냐 말 거냐 재촉하지 않는. 키득키득 웃다 어느새 조용해져 가만 제 얼굴을 바라보는. 그 김민석이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 분명했다. 가슴만큼이나 복잡해진 머리에 준면은 옅게 인상을 찌푸렸다.


차창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빗줄기를 그어댔다. 갑자기 더 거세지는 비에 투둑투둑, 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커졌다. 가슴에 우박 덩어리 같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기분. 준면은 울고만 싶어졌다. 전혀 파악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어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황과 관계의 연속이어서. 답답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저를 바라보는 얼굴이, 그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머릿속을 깨끗이 비울 수가 없다. 갑자기 서러웠다. 비 때문인가, 생각을 해봤지만. 아니다. 분명한 답은 제 옆에 있었다. 제가 이렇게 서러운 것은, 울고만 싶어지는 이유는,



“김민석.”


준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민석을 불렀다. 차를 몰며 슬쩍 준면을 돌아본 민석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왜, 작게 대답했다. 차 안을 가득 채운 따뜻한 바람과는 다르게 냉랭한 목소리에 준면이 다시 울컥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그렇게 냉할 거면서. 자꾸만 저에게 따뜻하게 구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도통 알 수가 없다. 서러움은 주체가 안 됐다.

“왜……, 다시, 만나자고 한 거야.”

주체가 안 되는 것은 감정뿐이 아니었나 보다. 여태껏 혼자 고민하던 그 질문을 뱉고 말았다. 왜 제 옆에 붙어 점심시간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지. 왜 자꾸만 저의 음료를 챙기고, 안색을 살피는지. 차가운 얼굴을 해놓고서, 왜 따뜻한 눈동자를 하는지. 그런 김민석이 왜. 왜, 제게. 다시 만나자고 했는지.


“그냥…,”

웅얼거리듯 대답하는 음성이 들렸다. 조금 풀어진 그 목소리가 부드럽다. 딱딱하고 차갑기만 하다고 느꼈는데. 이럴 때는 꼭 이렇게 뜨뜻미지근해서, 아니 안기고 싶을 만큼 따뜻하기만 해서. 자꾸 울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준면은 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복잡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냥, 그냥 불장난 한번 해볼까 싶어서. 너 가지고 장난치고 싶어서. 그런 대답이 나올까 불안해 했다. 아니 어쩌면 기대했을지도 몰랐다. 밀어낸 자신의 행동이 그럴싸해 보이게. 더는 깊고 깊은 상처를 받지 않게. 다시,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게.



“……네가 자꾸 사랑스럽잖아.”

그러나. 준면의 기대와는 다르게, 한참을 고민하다 뱉은 듯한 민석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네가, 사랑스럽잖아. 김민석이 바라보는 김준면이, 사랑스럽잖아. 준면은 결국, 참지 못했다.


여기면 됐어. 내려 줘. 걸어갈래. 힘없는 준면의 목소리가 훈훈하다 못해 더워진 공기 사이로 훅훅 퍼졌다. 머뭇거리던 손으로 핸들을 돌린 민석이 코너를 돌면 준면의 집 앞 골목에 들어설 수 있을 그 큰길에 준면의 말대로 차를 세워 내리게 했다. 우산이 없어 멍하니 서 있던 몇 분 전의 준면은 어디 가고 결국 비를 맞으며 걷게 됐다. 딱딱한 가죽의 브리프 케이스로 얼굴이라도 간신히 젖지 않게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어쩌면 민석에게 우산을 하나 얻어 갈 수 있었을 테지만. 준면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비를 맞으며 걷고 걸을 뿐이었다. 머뭇거리던 민석의 손길과 닮은 움직임으로 이내 바퀴를 굴리며 사라진 민석의 차에 준면이 발걸음을 늦췄다. 비와 함께 눈물이 뚝뚝 흘렀다. 차가운 물줄기와 섞여가는 뜨거운 눈물이 일그러진 준면의 얼굴을 적셨다.


망쳤다. 다 망쳤다. 민석을 밀어내려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노력도. 부정해왔던 자신의 미련과 저를 향한 민석의 마음도. 혼자가 되려 애쓰던 그동안의 제 모습도. 다.



결국은, 사랑하고 있다. 민석이 자신을. 헤어진 옛 연인이 저를 차버린 자신을. 그를 사랑하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준면이 엉엉 울었다. 참을 수 없는 마음이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눈물만큼 쏟아져 내렸다.



결국은, 사랑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김민석을. 자신이. 준면은 터져버린 미련과 감정 주머니를 눈물과 비로 축축하게 적셨다. 다시, 부정할 수 없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알리고 싶지 않을 만큼. 민석이 몰랐으면 하는 만큼.




*


그 며칠간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민석이 준면을 집에 데려다준 그 날 이후로 준면은 계속 우산을 챙겨 다녔다. 매일을 혼자 생각에 빠진 얼굴로 우산을 펼치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던 준면이었고, 민석과의 점심을 함께하지 않는 준면이었다. 우산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식사는 꼬박꼬박 챙길 줄을 몰랐다. 자꾸만 업무에만 집중해 매달리며 바빠 보이는, 모르지 않을 수가 없는 그 ‘척’을. 민석은 모르는 체했다. 그것이 준면이 바라는 것임이 분명했다.


‘왜 다시, 만나자고 한 거야.’


그날, 제게 물어오던 이후로 이렇게 된 것만 같아서,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것만 같아서 민석은 기억을 짚고, 또 짚고, 또 짚어댔다.


‘네가 자꾸 사랑스럽잖아.’


추운 바람과 물줄기 사이를 뚫고 가면서, 민석은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태워주겠다는 말에 고분고분 제 옆에 탑승한 준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에 쉽게 진정이 안 돼서 툭툭 던지는 말도 차갑기만 했다. 핸들에 머리를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다시 만나자고, 왜 그랬냐고 물어오는 준면에 저도 모르게 순도 높은 그 진심을 뱉어버린 것이다.

곧바로 내린 준면이 비를 맞으며 가만 서 있는 것이 백미러로 보였다. 얼굴을 매만지는 게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네가 사랑스럽다는 말이, 너를 사랑한다는 나의 마음이. 이리도 부담스러운가 싶어서. 무겁고, 또 무서운가 싶어서.



생각해보면 내내 자신은 준면에게 부담만 준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좋아하는 민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준 것도 준면이었고, 늘 아무 걱정 들지 않게 해주는 밝은 얼굴로 제게 웃어 준 것도 준면이었다. 그에 비하면 민석은 늘 지나치게 현실을, 주변 시선을, 가족을. 신경 쓰고 있었다. 먼저 좋아한 것도 자신이면서 준면과 붙어있는 제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 혹시 누군가 눈치채고 말까 두려웠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 말하는 ‘보통사람’인 척을 했다. 의심을 피할 수 있게,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기가 두려워 어머니가 만든 선 자리에 나가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만 했다.

그런 자신이 준면에게, 네가 자꾸 사랑스러워서라고, 탓을 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일인데, 자신의 마음인데. 준면의 탓을 했다. 아무리 멋대로 끝을 내버린 것이 준면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이유를 만든 것이 자신인데. 그렇게 그를 몰아붙인 것이 자신인데.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과 끝을 내버리려 하는 준면에 대한 오기와 원망만 키웠다. 이기적이었다. 자신은. 민석은 자괴에 빠졌다. 입안이 썼다.


착잡함은 가시지 않고, 점점 더 멀어져 버려 결국 잃어버릴 것만 같은 준면에. 준면의 마음에. 그와 반대로 더 깊어지는 자신의 감정에. 민석은 자꾸만 술이 생각났다. 이기적이게도, 기대고 싶었다. 기대고픈 준면의 품을 그리면서, 투명한 액이 찰랑이는 잔에 기댔다. 함께 가던 포차, 제 이름을 부르짖다 잠든 준면이 있던 그 가게에서. 홀로 앉아 소주가 가득 따라진 잔을 보며 민석은 헛웃음을 지었다. 우습다. 김민석. 그대로 술을 들이켰다.

취하지 않을 것 같더니 금방 한계가 왔다. 숨에서 소주 냄새가 났다.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그저 사고가 흐물흐물하게 느껴질 정도로. 딱 그 정도로 취하고 말았다. 자신이 취한다는 사실을 싫어하던 민석이지만, 분명히 취하고 말았다. 자신은. 갑자기 취한 모습의 준면이 떠오르는 것에 웃음이 날 정도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할 정도로. 실실 웃다가 민석은 다시 착잡한 얼굴을 했다. 휴대폰을 들었다. ‘준면이.’ 화면 위로 떠오른 세 글자에 머뭇대다 손을 놀려 버튼을 눌렀다. 곧장 통화를 걸었다. 맨정신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했다. 아니, 저지르고 말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여보세요.]
“준면아.”
[…….]

“나 좀, 재워줄래?”


이기적인 김민석, 준면이 말하기를 나쁜 놈 김민석. 오늘까지만, 딱 오늘까지만 더 이기적이기로 하자. 웃고 있는 민석의 얼굴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서, 진짜, 재워달라고.”
“응.”

푸스스 웃는 얼굴이 맑다. 준면은 이 흐물흐물한 인영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안 됐지. 아아,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다니……. 머리가 아파와 제 작은 손으로 얼굴을 덮고만 그였다.


‘나 좀, 재워주면 안 될까.’
‘……뭐?’
‘네 집에서.’
‘미쳤어?’

잘 취하지 않는 녀석이 취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하게 발음이 자꾸만 뭉개지는 것이 진정 취한 것 같아 준면은 가만 듣고 있었다. 네 집에서 재워달라는 말을 다 듣기 전까지는. 미쳤어? 저도 모르게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약간 취했다고 정신도 놓기 있니? 머리가 아파 오는데, 데리러 와달라고 하기는 좀 뭐 하잖아, 말하는 민석에 제대로 편두통이 왔다. 그럼 재워달라는 거는 뭐 하지가 않니? 씹어뱉듯 말한 준면에 수화기 너머의 민석이 자꾸만 웃었다. 미쳤니, 정신을 놓았니 오만 짜증을 내면서도 ‘오든가’, 말을 한 자신이, 김민석보다 더 미친 것 같다만.


“오늘만 좀, 이기적이게 굴게. 너도 그랬잖아, 나보고 데리러 오라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얘기해 오는데, 어째 믿기가 힘들다. 내가 언제 그랬는데? 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진짜인가 싶어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기억 못 하지 김준면? 얼굴은 착해가지고 진짜 못됐어.”
그 얼굴을 보고 민석이 다 풀린 눈을 하고 말했다. 손으로 비비다 꾹꾹 누른 눈은 그 주위 피부를 붉혔다. 중얼거리는 숨에서 소주 냄새가 확 풍겼다.

그러는 지는, 취해가지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고 슬슬 짜증이 올라서 준면은 네 집 가서 자. 왜 남의 집에서 자려 그래? 퉁명스레 얘기했다. 그러자 고민하던 얼굴의 민석에게서 돌아오는 말이, 


“비밀번호…… 까먹었어.”
“웃기시네.”

거짓말. 지나가던 개도 안 믿겠다. 준면이 코웃음 치자 그 얼굴을 보고 민석이 어! 웃었다! 외치며 해맑게 좋아라 했다. 썩은 표정을 한 준면의 앞엔 아이 같은 얼굴의 민석이 있다. 손뼉을 치고는 비틀대다 다시금 벽에, 준면의 집 문에 기댄 민석이 힘든 숨을 뱉어냈다. 진짜 취하긴 했나보다, 이 녀석. 민석이 취한 모습을 잘 보지 못했던 준면이었다. 낯선 모습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 목덜미가 후끈해지는 기분인 거라 낯이라도 붉힐까 어이가 없네! 외치며 휙 몸을 돌려 집에 들어섰다. 들어와, 조용히 중얼거리며.

민석이 준면의 말에 신나 취한 걸음으로 준면의 집에 들어섰다. 그런 민석을 등 뒤에 두고서 들어서며 그제서야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 제집 꼴이 눈에 들어와 준면은 더 붉어질 데 없어 보이던 귓바퀴를 더 붉혔다. 깔끔한 녀석을 이런 곳에 들이려니 민망한 만큼, 좀, 미안한데. 후다닥 침실로 들어가 현란한 발놀림으로 침대 밑에 갖은 옷더미와 물건을 때려 넣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민석이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좀 씻겠다 말했다. 어, 어어! 당황한 목소리가 퍼졌다. 웃음을 꾹 참은 민석이 곧장 욕실로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얼굴 위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밖을 우다다, 바쁜 발걸음으로 치우기 바쁜 준면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음은 더 환해졌다. 작은 손 아래의 얼굴이 예쁘게 웃었다.



금방 물줄기 아래에 서는데 어찌 술이 잘 안 깬다. 단단히 취하긴 했나 보다, 중얼거리던 민석이 문득 그날의 준면을 떠올렸다. 백미러에 비친 그의 모습, 비를 맞으며 가만 서 있던 그의 모습. 너는 그때 이렇게 울었나.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줄기가 따갑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아픔으로, 울었나. 비교도 되지 않겠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 싶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그에게 갔다. 그의 모든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민석의 눈이 조금 가라앉고 말았다.


욕실 문을 여니 잘 개어진 옷이 놓여있다. 청소 아닌 청소를 하며 깨끗한 옷을 잘 찾았나 보다. 옷을 집으면서도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개운한 몸을 하고 옷을 입고 나오니 준면은 어느새 조명을 낮추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채였다. 벗어둔 제 옷은 잘 개어 바닥에 두고, 침실로 향하는데 아직 약하게 지끈거리는 머리나 느린 발걸음 같은 것이 민석이 아직 술에서 깨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조금 몽롱한 게 꿈인가 싶은데. 이불 속을 조심스럽게 파고들며 민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는 듯하더니 민석의 모든 소리에 움찔거리는 준면의 어깨를 발견하고, 민석은 몰래 웃었다.

“자?”
“……어.”

시큰둥한 목소리를 부러 내면서 꼬박꼬박 대답은 해오는 게 우습다.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터라 민석은 볼에 힘을 주어 웃음을 꾹꾹 눌렀다. 티를 내면 싫어할 것 같아서. 이미 네가 사랑스러워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사랑스러운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한 저 때문에 비를 맞으며 울었을 녀석인데. 더 이상의 부담은 안 될 것 같아서. 민석은 정자세로 누운 채로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캄캄한 천장을 바라보는데 술에 취한 사고는 빠르게 돌아갔다. 녀석의 등을 바라보다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넘어,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해, 자신을 제지하기도 전에 제 입은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준면아. 재밌는 거 말해줄까?”
“자라…….”
“맥주가 죽기 전에 한 말이 뭔지 알아?”
“…….”


“유언비어! 웃기지?”
“와―, 진짜!”

웃을 줄 알았는데. 준면은 벌떡 일어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 약간 돌았니? 취하면 좀 곱게 잠들어버리지 않겠니? 진지한 그 말투에 민석이 입술을 오물오물하다, 화내는 것도 예쁘네,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가 뱉은 생각에 다시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를 싫어하는 눈빛을 보내는 준면이어도 웃음이 나는 민석이라서. 예쁘게 눈웃음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와―, 진짜 싫은 표정이네. 너도 나한테 똑같이 했잖아 아재개그. 기억 안 나?”
“뭐, 내가 언제, 뭐, 뭐!”

술에 취한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짜증 나면서도, 민석의 이런 모습을 본 게 처음이라서 그저 당황스러운 준면은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웃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 민석이 쩝쩝거리며 졸린 눈을 깜빡이다가 몸을 돌려 누웠다. 준면을 향해 누운 민석에 신경질적으로 털썩 누워 등을 돌린 준면이 다시 몸을 돌려 민석을 바라봤다. 어서 자라. 네가 잠들어야 내가 맘 편히 자겠다 이 술꾼아. 나무라는 말을 하면서도 다정해서 민석이 작게 웃었다.


그러다 미소가 점차 사라지는 얼굴로 물끄러미 준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도 감지 않고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민석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녀석이 취한 지금이 아니라면.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마주 볼 수 있을까, 제가. 생각이 들어서. 준면도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봐주었다. 여전히 일그러진 짙은 눈썹이 기울어진 앞 머리칼 사이로 보였다.

민석이 머뭇거림 없이, 작은 손을 뻗어 준면의 눈썹을 매만졌다. 힘이 들어가 있던 눈썹이 놀라 올라갔다 내려왔다. 


놀란 얼굴의 준면에게, 웃어줘, 민석이 작게 속삭였다. 뭐? 준면이 되물으면, 웃어 주라. 준면아. 다정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차가운 얼굴이 다시 미소를 지우고 딱딱해졌다. 그러면서 음성은 따뜻하다. 너무한 거 아니냐, 김민석. 웃어달라는 말에도, 준면은 그저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울지 마…….”

자꾸만 우네. 자꾸만 울리네. 내가, 너를. 민석이 이젠 준면의 볼을 따뜻하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차갑다고만 생각했는데, 따뜻한 그 온도가 더 서럽기만 하다. 준면은 눈을 꾹 감았다. 성질을 내며 민석을 밀어내기만 했던 자신은 어디로 가고. 갑작스레 이렇게 닿아오는 그가 좋아서, 사랑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참았던 마음이 뜬금없이 제집에 찾아온 민석처럼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는데, 분명. 울지 말라는 민석의 말에 바로 눈물이 났다. 작은 눈물방울이 흘러나왔다. 작은 엄지가 그 위를 쓸고 지나갔다.

“내가 미안해, 준면아. 미안해…….”

이젠 미안하다고 자꾸만 되뇌는 민석의 말에 준면의 얼굴 위엔 눈물 줄기가 여럿 생기고 말았다. 이젠 두 손을 써가며 준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기 시작한 민석은 함께 터질 것만 같은 울음을 꾹 참았다. 하지만 막지 못한 마음은 마구 흩뿌려져, 가슴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준면을 사랑한다고, 마구 외치고 말았다.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자신 때문에 힘들 너에게. 힘들어하는 너에게.


“아직 널 사랑해서, 미안해.”

잔뜩 일그러져 민석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마는, 몸을 말아 작아져 버린 준면에게. 애정 어린 사과를 표하며. 저도 모르게 이마에 입을 맞춘 민석은 준면의 얼굴 곳곳과 머리통을 매만졌다.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어깨를 껴안을 수 없어 입 맞춘 이마만 가만 쓰다듬는데, 준면이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들썩이는 어깨로 민석에게 다가왔다.


이마가 닿아왔다. 마주한 얼굴은 둘 다 축축한 눈을 한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코가 닿았다. 민석의 입술 위로 젖은 입술을 얹은 준면이 훅,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잠시 굳어있던 민석이 위로하듯, 준면의 입술 위로 두어 번의 입맞춤을 더 했다. 둘 다, 껴안지는 못하고 가만 서로의 온기를, 얼굴로 불어오는 숨을 느끼며 진정했다. 눈을 감은 채로. 그렇게 어느 새에, 꼭 붙은 채로 잠들어버린 줄도 모르고.


글 쓰는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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