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홋 보고싶다

윤황제 탄신연회에 귀한 선물 드리겠다고 찾아온 이들이 천을 걷자 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전부 깜짝 놀람


흰 거죽의 어린 호랑이가 덩치는 작아도 눈빛만은 형형해서 윤황제 폐하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하는 부름에도 또각또각 걸어내려가 우리 앞에 섰음 


크르릉 하고 우는 호랑이 그간 본 사람들과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인간은 무언가 다르다고 동물의 육감으로 느낌 근데 뭐 우리에 갇혀서 뭘 할수는 없으니까 눈빛 그대로 형형한데 윤황제 하하하 웃어서 후원에 호랑이 집 생김


얼떨결에 호랑이 봐주게 된 사람들은 밥 주러 갈때마다 벌벌 떨음


암튼 후원에 풀어놓으시고 도통 발길을 안 하시기에 잊으셨나 흥미를 잃으셨나 했는데


발걸음 소리 하나도 조심해서 내야 한다는 황제침실 근처 정원에서 요란한 소리 나서 다들 기함하고 호위들 뛰쳐나가 기척의 주인 찾는데 새하얀 머리털에 노란 눈동자 한 사내애가 질질 끌려나와서 여긴 어떻게 들어왔냐고 문초를 하기 직전에 저 멀리서 그때와같이 또각또각 걸어오며


너는 호랑이가 아니냐?


하는 황제 품으로 덥썩 뛰어들어가버림


황제폐하 뒤로 넘어지지 않고 답싹 잡아 안으시는데 그 폼이 영 서툴고 어색하여 황제폐하도 서툰 부분이 있구나, 했지만 워낙 활달하여 궁의 골칫덩이가 되어버림


오죽하면 훗날 폐하가 귀한 선물을 주려던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내게 치운것이 아니냐 하셨을 정도


아무튼 마음에 차셨는지는 모르겠고 흥미는 있으신 듯 하여 선생을 붙여 교육을 하는데 글과 예절에는 서툴지만 몸을 쓰는 일은 아주 빨리 배워 무관들 앞에서 칼놀이 하듯 움직이는 모습 보고 폐하 약간 흡족해하심


호랑이 모습으로 종종 돌아가는데 폐하가 원하실 때 돌아가지는 않고 그냥 자기 내킬때, 혹은 깜짝 놀랄 때 슉 변해버려서 폐하 깜짝 놀래키기의 달인 되시고 그럼 꼬리 감싸앉고 돌아앉아버려서 날고기 가져와 달래기에도 재미붙이심


근데 닭고기는 못먹는다네요

그냥 먹기 싫게 생겼대


웃기는 짐승이라고 폐하 웃으심


어느날엔 마주친 눈동자가 노랗지 않고 가을에 잘 익은 밤의 겉껍데기 색이라 어찌된건지 연유를 물으니 제가 가장 눈을 많이 마주치는 사람이 폐하지 않습니까, 하고 제법 마음에 차는 대꾸가 돌아와서. 호랭이 궁에 들어온지 한참만에 순영이라는 이름 하사받음 


폐하 빼고 아무도 부르지 못할 이름이지만


그간의 장난같은 교육은 끝나고 진검으로 교육할 사람 물색하는데 암만 겉가죽이 사람이래도 처음에 왔을 때 호랑이었던 모습을 모두가 알아서 쉽사리 스승이 되겠다 나서는 이가 없었음 


폐하 침실에서도 업무 보시다가 정원에 아른대는 그림자에 기척없이 훌쩍 나가 놀래켜주려다가 (보이진 않지만) 하얀 꼬리며 귀가 축 늘어져 있는 것 같은 뒷모습에 가끔 달밤에 직접 검 빼어들어 대련 상대 되어주심


진검을 빼어 든 순간부터 한번도 순영이 폐하를 이겨 본 적은 없었지만...


호랑이도 영물이되 폐하 또한 범상치 않은 이라 생을 오래 누리긴 했으나 천천히 늙어가기 시작함.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검술선생을 이긴 어느날 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하늘이 점지한 영물 호랑이가 엉엉 울어서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내렸고 그 앞에 서서 유일하게 비 맞지 않고 있는 사람이 손을 뻗어 달래줌


부인도 자식도 없는 폐하에게 유일하게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존재로 남은 영물


잠행을 가도 두셋은 꼭 붙이던 호위 없이, 어느날 영물의 너른 등을 타고 홀연히 떠나 둘 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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