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가 워낙 좋길래 궁금해서 봤는데 2편으로 끝난다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난 진짜 이런 팬픽들 보면 안타까운게 작품성은 좋은데 RPS이다보니 음지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캐릭터들이 다소 유치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캐릭터들이 죄다 100% 이성적이라면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되는게 현실이기는 함) 히트 친 드라마 중에서 말도 안 되는 전개를 가진 것들도 방영되니 뭐 이런 것 쯤이야. 

아무래도 스토리에서 서사가 제일 자세하게 나오는게 동혁이다보니 동혁이 얘기를 많이 할 것 같다. 

현실 고증: 그 시절의 청소년 

작가는 시기를 2005년쯤으로 잡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2005년에 한국에 살고 있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현실 고증을 잘했다. 큐앤에이의 답변들로 미루어보아 작가는 아마 95~97년생이쯤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내 기억에 따르자면 인소는 반짝 인기로 사그라든게 아니라 인기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인소 내용으로 토론 (?)을 하고 재밌는 인소 추천 받고 이런 일들도 종종 있었고. 다만 확신하지 못하는건 내가 남자 애랑 친한 적이 없었어서 실제로 당시에 저러고 놀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근데 아마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동글이는 동혁이가 되지 못한 다른 자아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화자 (인준)가 동글이가 동혁이랑 닮았다는 묘사가 상당히 자주 나온다. 물론 실제로 동혁이가 동생이 많으니까 그런 것에서 영감을 얻어서 나온 캐릭터일 수도 있겠지만. 철저히 궁예지만 만약에 작가가 동혁이를 더 불쌍하게 만들고 싶었더라면 먹여 살려야 할 동생들이 여러 명 있는 설정으로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동생을 한 명으로 제한한 이유는 동글이가 결국 평행 세계에서의 또 다른 동혁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가 믿을만한 보호자들이 있는 동혁이. 동혁이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맠이 또래니 보호를 받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동글이는 나이 차이가 나다보니 보호자들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조연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난 이 점이 특이하다고 느껴졌다. 보통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조연들도 스토리를 전개 시키는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부르는데, 화자는 물론이고 화자의 주변 인물들조차 조연들의 본명을 부르지 않는다. 내가 작가였더라면 황에게 있어서 같은 학교 학생들 중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마크, 동혁, 제노와 재민 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내 친구들 말고는 아무리 또래여도 아무 관심도 없는 청소년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황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겠다. 더불어 철수가 본명이 철수가 아니라 남을 따라하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본인의 색깔이 없어서 흔하디 흔한 철수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마크의 이중적인 모습 

사실 그룹마다 마크처럼 바르고 올곧은 이미지인 멤버가 꼭 하나씩 있다. 그런 멤버들을 보면 뭔가 창작물에서라도 타락시키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 것 같다. 뭔가 현실에서도 천사 같은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도 뭔가 숨겨진 뒤틀려진 면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망상하게 되는 것처럼.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메인 주인공들이 다 입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마크가 유독 그런 면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공고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황에게 숨기려는 노력을 한다던가, 교칙을 운운하면서 질 안 좋은 무리랑 어울려 지낸다거나. 비밀이 많은 캐릭터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왜 쌈마보다 철수가 더 빡치는가

최악의 빌런은 공고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은 논외로 둔다고 치더라도 실제로 피해를 더 끼친건 쌈마인데 철수가 더 열받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둘의 의도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쌈마는 서열을 추구하고 철수는 더 복잡하다. 철수의 경우에는 본인의 얄팍한 자존심을 추켜세우기 위해서, 본인과 동급이라고 생각했던 황이 승승장구하는게 배알이 꼴려서, 그리고 본인만 억울하게 욕 먹는게 싫어서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쌈마 같은 인간들보다는 철수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봤다. 후폭풍은 신체적 폭력을 가했을때 신고라도 할 수 있지, 철수처럼 말로 살살 비꼬는 애들은 진짜 뭐라 하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동혁이를 보는 황의 시선 

첫 등장때부터 동혁이는 굉장한 인싸로 묘사된다. 처음에 화자는 그 이유를 동혁이가 축구를 잘 하고 싸움을 잘 한다는 소문이 도는 것에서 찾는다. 물론 이건 친해지기 전의 생각이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같이 노래방을 가게 되는데 거기서 공고에게 공격을 받고, 동혁이는 황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감싸준다. 그리고 후에 황이 학교에 나가게 되는데 철수가 동혁이에 대해 "소문"을 들었다며, 동혁의 집안 사정과, 선도부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는 썰을 푼다. 이 시점에서 황이 동혁이를 보는 시점이 처음과는 180도 달라졌다고 느낀게 소리를 치며 동혁을 쉴드 쳐준다. 

재민이는 동혁이의 순화된 이데아다.

이건 사실 뻔한 얘기여서 따로 항목을 만들어서 얘기한다는 것도 웃긴데 각 캐릭터마다 해석은 해야할 것 같아서 쓰는 얘기다. 누군가 드림이들 본체를 캐해하면서 한 말들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게 의외로 동혁이랑 재민이랑 잘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둘이 생각의 흐름은 비슷한데, 그걸 동혁이는 실천에 옮기는 반면에 재민이는 안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면모가 엑스형에서도 드러나는데 동혁이랑 마누라니 뭐니 장단 맞춰주는건 재민이 밖에 없다. 그리고 동혁이가 없는 상황에서 왠지 동혁이가 할 법한 말들을 한다. 물론 동혁이와는 다르게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지만.

제노가 마크를 싫어한 이유는 본인을 투영해서일 수도 있다.

제노는 본인 이야기를 황에게 들려준다. 요약하자면 과거에 조금 반항을 했는데 그 와중에 마크를 공고 무리에서 목격해서 첫인상이 안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에게 형(마크)이 황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범적이지는 않다고 경고를 해준다. 난 이 부분이 좀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묘하게 마크의 현재에서 제노가 본인의 과거와 비슷함을 어렴풋이 느껴서 자기 혐오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다. 말미에 마크는 공고를 공격해서 부상을 입히고, 제노는 철수에게 가해자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본인의 팔을 긋는다. 이 시점에서 둘의 루트는 확명하게 갈려서 이제서야 제노는 대놓고 마크를 증오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뜬금없는 석정의 등장 

여자 캐릭터가 상당히 드문 이 소설에 말미에 석정이라는 여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석정이라는 인물이 막판에 부각되는 이유는 황의 성장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황은 본인을 찐따라고 칭할만큼 반에서 사회적 서열이 낮다. 그러다 공공즈들과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제는 이성과도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한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성과의 관계"를 성장의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이 소설 속에서 반 아이들이 여친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하고 여친이 없는 사람은 도태된 사람으로 취급하는 대사들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건 현실에서도 청소년들이 고민할법한 부분이기도 하고. 


+여담

근데 또 한편으로는 질질 이야기를 끄느니 이쯤에서 끝나는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자 (황)는 현실 인간 관계에서만큼은 상당히 덤덤한 성격으로 묘사가 되니 애초에 여러 사건들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기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청소년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쑥 지나간다. 뭐지? 하는 순간 이미 끝나있는 것이다. 이건 딱히 뭘 한게 없었던 청소년도,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청소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긴점은 청소년기에 딱히 그렇게 24/7 행복했던 것도 아닌데 어른이 되면 적당히 성숙하고 적당히 어리숙했던 그 애매했던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엑스형하고 전혀 상관 없는 얘기인데 확실히 나이를 한 살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져서 오히려 괴로운 느낌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는게 많다. 그래서 urban legend 중에서 천문학자들 자살율이 유난히 높은 이유가 하늘 위에 별들을 관찰하다 보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물론 난 정확한 통계도 없으니 믿지 않지만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괴로워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동감을 한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것에 한계가 있다는게 좀 심란하다. 

"When the whole world is running towards a cliff, he who is runn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appears to have lost his mind." - C. S.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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