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팀 내무반

"팀장니임~~!!"

대영은 샤워를 하러 간다하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최중사와 임중사는 나란히 앉아 밀린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고있었으며, 시진은 텔레비전을 차지하고 앉아 모연이 나오는 '바디첵' 재방송을 시청하고있었다. 그리고, 이런 평화를 깨는 것은 하사 공철호의 우렁찬 외침이었다.  언제나 통신병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공하사가 밖을 서성이다 소식을 물어온 듯 하다.


"뭔데."

마침 모연이 나왔다가 VCR장면으로 바뀌어 고개를 돌려 시진이 묻고, 공사의 외침에 보던 드라마를 잠깐 멈추고는 최중사와 임중사가 공하사를 쳐다본다.


"윤대위님 화가 엄청 나셨나봅니다."

"알아. 부팀장이랑 싸웠데."

"아니아니.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그럼 뭔데"

"의무병들이 약품정리를 이병한테 맡겼는데, 그 이병이 잘못 정리해서 화나셨답니다. 그래서 지금 의무실 난리랍니다."

"이병? 신병이 뭘 안다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침에 약품 정리한 애들 찾는다고 신병이 난리지 말입니다."

"와...의무실에서도 그런 사고가 납니까? 거기애들 군기 엄청 들어가지 않습니까?"

"오늘 같은 날 뭔 일이래. 윤명주 화나면 엄청 무서운데."

"그렇습니까? 그래도 윤대위님 예쁘시지 말입니다. 화내셔도 겁나...아악!!!"


말을 하던 공하사 뒤. 샤워를 마친 대영이 언제부터 서있었던 것인지 문 앞에 서서 열변을 토하는 공하사의 목에 헤드락을 걸며 침상에 걸터 앉는다.


"부팀장님 들으셨습니까?"

"어. 너 들어올 때부터 뒤에 있었다. "

"그런데 팀장님은 윤대위님이 화내시는거 본 적 있으십니까? 전 한 번도 없지 말입니다."

맞은편 침상에 앉아있던 광남이 궁금하다는 듯 시진을 향해 묻자, 모두의 시선이 화면에 다시 잡힌 모연을 보며 헤실헤실 웃고있는 시진을 향해 돌아갔다.


"그냥 압니다. 육사는 여자애들이 더 독합니다. 초군반 수업 때문에 학교갔다가 한 번 보기도 했고. 그냥..강선생 진짜 이쁨돠...."

화사하게 웃으며 텔레비전 화면 가득 잡힌 모연만을 바라보며 말하던 시진이 결국 마지막 말을 모연으로 맺자. 알파팀은 한 두번 보는 모습이 아니라는 듯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자신들의 일에 빠져들었다.









#. 의무실

시진의 말 그대로였다.

육사라는 곳. 여자와 남자가 차별 받지 않는 곳이었다. 그 중. 여자들 사이는 남자들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명주는 4년을 지냈고, 더불어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기까지. 군기와 텃새가 존재한다는 대학병원에서의 실습까지 무사히 수료한 이가 명주였다.


잠시 뒤, 이병이 찾아온 상병 한 명과 병장 한 명이 의무실로 들어왔고, 업무를 보던 명주의 앞에 나란히 정렬했다. 분명 의무병들의 인사를 들었지만,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자신을 바라봐주지도 않는 명주 덕에 눈 옆에 가져다 댄 손을 내리지 못한 체, 전방만을 바라보며 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들어오고, 명주가 업무를 본지 10분이 조금 더 지났을 까, 보고있던 보고서를 덮은 명주가 이제 저들을 바라봐줄까 싶어 기대했지만, 다른 파일을 꺼내 펼치는 명주의 행동에 3명의 병사는 절망했다.  '당직 근무일지'라고 적힌 표지를 넘기자 이런저런 군의관, 의무병들의 이름들이 골고루 적혀있다. 손을 따라 움직이던 눈이 한 곳에 멈추고, 자신의 앞에 선 3명의 병사들 가슴팍에 달려있는 명찰을 본 명주. 볼펜을 들어 종이에 찍찍 두 번 긋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전히 경례는 받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 당직은 너네가 선다. 불만없지."

"없습니다."

"불만있는 얼굴인데?"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3명의 병사 앞. 자신의 책상에 살짝 걸터 앉은 명주가 고개를 들어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건냈다.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본 명의 한 쪽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약품정리를 누가 지시했는지를 시작으로, 대답을 안 하면 안 한다고 언성을 높였고, 대답을 하면, 하는 것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다. 높디 높은 자신의 직속상관. 다이아몬드를 1개도 2개도 아닌 3개를 달고있는 대위 앞에서의 이런 상황은 처음인 이병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떨어지면서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김.O.O 이병."

"이병. 김.O.O!"

"왜 웁니까? 내가 뭐했다고 웁니까?"

전방만을 주시하는 병사들과는 달리 3명의 병사를 쳐다보며 말을하고 있던 명주가 김이병의 표정을 보지 못했을리가 없었다.


정말 모르는 것 마냥 물어오는 명주. 지금껏 들었던 교관. 선임들의 낮은 목소리보다 높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물어오는 명주의 말에 꾸역구역 참고있던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닦아 없애고 싶지만, 훈련병을 이제 막 벗어난 이병은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 그러지 못했다. 그저 눈을 꼭 감았다 뜨고, 깜빡거리며 맻힌 눈물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집어 넣는 것뿐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눈물이 다 말라갈 때쯤. 들어올려진 팔이 중력을 이기기 힘들어져 갈 쯤.



'똑. 똑.'하고 의무실 문이 두들겨지고, 들어오라는 명주의 말에 문이 살짝 열리고, '빼꼼.' 명주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공하사?"

"하사. 공철호. 진료 받으러왔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왼쪽 손목을 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얘네가 사고쳤다는 애들입니까?"

"어쩌다가 다친겁니까? 오후훈련 없는 걸로 아는데?"

"아. 그냥 다쳤습니다."

"손 이리 줘보십시오."


명주의 앞. 여전히 경례를 한 상태에서 요지부동인 3명의 병사를 바라보며 생각 없이 명주에게 왼손을 내미는 철호. 그런 철호의 손에 파스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손을 냉큼 잡더니 그대로 살짝 돌려버리는 명주다. 하지만, 삐엇다는 철호의 말과는 달리 너무나도 멀쩡한 철호.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명주가 철호를 향해 고개를 들자. 열심히 무엇인가를 입으로 중얼거리는 철호가 보인다.


".....사!...공철호 하사!?"

"하사. 공.철호.!"

"지금 뭐합니까?"

"어...그게..어.....으씨..."

"누가 보냈습니까? 시진선배입니까. 서대영입니까."

"팀장님이 보내지 않....으휴.."


도대체가 어떻게 알파팀에 들어갔는지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철호였다. 팀장님 보내지 않았다는 말이 말인지 방군지. 딱 보아하니 시진이 사고친 3명이 누군지 알아오라고 철호를 보냈을테고, 철호는 그 명령을 작전 없이 순수하게 이행하다 명주에게 딱 걸린 것이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럼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의무실에서 자취를 감추는 공하사. 잠깐 동안이지만 숨이 트였던 공간이 다시 삭막해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당직부터 내일 아침까지 의무실 지키고, 저녁식사하고 점호 전까지 약품 싹다 내려서 다시 정리해. 확인할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손 내리고. 나가봐."

"단결!"

덜덜 떨리는 손을 잠깐 내렸다 다시 올리며 인사를 하고, 의무실을 잽싸게 빠져나가는 병사들이다.







#. 델타팀 내무반

그리고, 밤. 명주의 점호가 시작되었다.

알파팀의 내무반에 들어가기 전. 델타팀 내무반을 먼저 찾은 명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끝에 앉아있는 박대위의 얼굴이 보인다.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 얄미워 죽겠으면서도 자신보다 높은 상관이기에 우선 인사를 하고 점호를 시작한다.


"단결. 점호시작하겠습니다."

"단결. 델타팀 인원보고. 총원5. 열외 無. 현재원 5. 이상 점호 준비 끝."

"아프거나 훈련 중 다쳤는데 치료 못한 사람있습니까?"

"없습니다."

"관물대 열어봅니다."

".........."

명주의 말에 흠칫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어 관물대를 열어 보인다.


한 명 한 명. 옷이 구겨졌네. 각이 안 잡혔네. 청소를 안 했네 등등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지적한 명주가 박대위의 앞에 섰다. 그런데 너무나도 재수없게 깨끗하다. 팀장이라는 핑계로 담당 구역을 맡아 청소를 했을리도 없었다. 명주가 얄밉다는 듯 박대위를 째려 봐주고는 뒤돌아 문으로 걸어간다.


"팀장만 잘하지 말고, 팀원들도 좀 챙깁니다. 델타팀 오늘 점호 영..."

"야야..너...지금 복수하는거냐?"

"예. 그렇습니다. 그 덕분에 안 그래도 맨날 하는 싸움 오늘도 했지말입니다. 진짜 내가 선배 때문에...!!!어휴.."


또 말릴 뻔했다. 들어오기 전 박대위에게는 절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거늘 왜 지켜지지 않은 건지. 정말인지 짜증이 나는 명주가 대충 인사와 함께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델타팀 내무반을 빠져나와 알파팀 내무반을 향해 걸었다.










#. 알파팀 내무반

열려있는 문. 당당하게 들어와 말하는 명주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전방을 향했다.


"단결. 점호 시작하겠습니다."

"단결. 알파팀 인원보고. 총원5. 열외 無. 현재원 5. 이상 점호 준비 끝. 윤명주 대위님 살살 해주십쇼."

전혀 아부로 느껴지지 않는 시진의 무덤덤한 말투에 명주가 '저 냥반이 미쳤나'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볍게 무시한다. 시진에겐 잘 말려들지 않는 명주였다.


"관물대 열어봅니다."

"그 전에 다친 인원 안 물어보십니까? 예쁜 윤명주 군의관님"

이번엔 최중사. 우근의 말이었다. 명주의 고개가 우근에게로 홱 돌아갔다.


표정들이 심상치 않은 것이 괜스레 불안한 명주였다.

도대체 이 냥반들의 꿍꿍이를 모르겠는 명주는 ‘넘어가지 말자’를 외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관물대. 열어.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일어나 관물대를 열기도. 몸을 뒤로 젖혀 손을 뻗어 관물대를 열기도 하는 둥. 닫혀있던 관물대를 활짝 열어 보인다.


"성큼성큼 걸어 제일 먼저 우근의 관물대 앞. 흠...이거 뭡니까? 쓰레기를 관물대에 넣어두는 군인이 어디있습니까?"

"어...ㅇ....치우겠습니다."

각 잡혀 걸려있는 군복 상의. 살짝 삐져 나온 흰색을 매의 눈으로 포착한 명주가 지적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면 손에 잡힌 것은 휴지 조각이다. 명주의 손에 들린 휴지를 냉큼 뺏앗아들고는 내무반 한 켠에 위치한 휴지통에 던져 골인시킨다.


"이건 뭡니까? 군인이 19금 잡지?"

우근의 옆에있는 임중사 앞. 명주가 관물대를 한 번 쓱 훑더니 별게 없네. 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이불과 베개 사이. 삐죽 튀어나온 얇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당황함이 가득한 광남이 어버버거리며 시진과 대영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한다.


"에헤..기운 팔팔한 임중사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지 말임돠. 흐흫..."

놀리는듯한 웃음으로 광남의 편을 들어주는 시진을 명주가 살짝 째려보며 잡지를 손에 쥐어들며 '압수합니다.'라고 말하면, 광남이 세상을 잃은 듯한 눈으로 명주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옆. 공하사. 자신은 책잡힐 것이 없다는 듯 당당한 자세로 관물대를 활짝 열고는 명주를 반긴다.

"전 완전 깨끗하지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양말 한 짝은 어디에 뒀습니까?"

"어!! 그거 거기에있었습니까? 어쩐지 아까 양말 한 짝이 없나 했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양말을 들어 올리는 명주의 앞. 정말 찾았는데 없었다는 듯한 공하사의 반응에 명주를 제외한 이들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 웃음들이 나오십니까?"

"와. 양말이 여기..대위님 감사하지말입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공하사의 머리 위로 들고있던 양말을 내려놓은 명주가 몸을 돌려 시진의 앞으로 다가가 선다.


"히이익--이게 다 뭡니까? 무슨 강 선배 스토컵니까?"

명주가 시진의 관물대를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깨끗함을 넘어 결벽증 환자가 아닐 정도로 깨끗함을 자랑하는 시진의 관물대에서 유일하게 지저분한 것은 사진을 붙여놓을 수있는 문짝이었다. 앞은 모연의 사진으로, 안 쪽은 둘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가득가득 채워져있는 모습은 명주가 아닌 모연이어도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명주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진은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은걸 어떡하냐.'라며 팔불출스러운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마지막인 대영의 앞. 열려있는 관물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 대영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명주.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명주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닌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대영이다. 단단히도 화가 난 모양이다.


"진짜 남자가 되가지고 완전 쫌팽입니다."

화가 나있던 대영과 알파팀은 몰랐겠지만 명주의 화는 내무반에 들어서고 각 잡혀 앉아있는 대영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풀리고있었다. 그리고, 박대위와 있었던 일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아 화가 난 대영은 모르겠지만 삐딱하게 선 체 대영을 향해 말하는 명주의 모습으로 시진 또한 명주의 화는 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상사는 관물대가 너무 깨끗해서 실망입니다."

맥락 없는 명주의 말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팀원들과는 다르게 시진은 자기 전에 모연에게 자랑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칭찬받은 기분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영을 변호해준다.


"서상사는 지갑이 더럽다. 아, 모자도 깨끗하지는 않아. 그..옷도 좀 그럴 껄? 물론 나보단 못하지만."

최중사와 임중사. 그리고, 공하사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하지만, 시진의 말로 대영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 차리고는 시진을 무섭게 쳐다본다.


"그렇습니까? 그건 좀 맘에 드네. 여기 3명은 벌점 들어갑니다. 팀장은 팀원들 잘 챙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그래."

"이상. 점호 마치겠슴니다. 질문 사항 있으십니까?"

명주의 말에 앉아있던 광남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말하십쇼."

"그..잡지. 정말 안 돌려주십니까?"

"안 돌려드립니다."

정말 많이도 아쉬운 건지 재차 물어오는 광남에게 단호하게 그런 일은 없다고 선 긋는 명주에 의해 광남이 시무룩해진다.




"질문있습니다."

"이상한 질문이면 하지 않습니다."

손을 들어보이는 시진이 영 꺼림직한 명주가 말하고, 역시나. 명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양반이다.


"우리 부팀장이랑은 언제 사과합니까. 군의관님?"

"서상사는 잠깐 저 좀 보고, 점호 마칩니다. 단.결."

"단결!"

명주가 인사를 하고 나간다. 대영은 굳어있는 얼굴을 펴지 않고 대체 무슨 짓이냐는 듯 시진을 쳐다본다.



"화 푸십쇼. 보아하니 명주는 다 풀린 것 같던데, 별거 아닌 거 뻔히 알면서 왜 이러십니까."

"별거 아닌 거 아닙니다. 강선생이 그랬어도 이러실겁니까."

"강선생은 그런 일 없지 말임돠. 그리고, 있다고해도 전 강선생이 아니라고하면 아닌거로 믿을 수 있지말입니다."

"........."

"에헤. 못 믿습니까? 얼른 나가서 화 풀고 옵니다. 얼른 얼른 움직입니다아-"

시진의 말에 한 숨을 푹-내 쉬고는 명주가있을 의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 의무실

"어떡하면 화 풀 겁니까?"

"화 안났습니다."

"그런데 왜 저랑 눈을 안 마주치십니까?"

"괘씸해서 그렇습니다."

"아까 말했지 않습니까. 사귀는게 아니...."

"믿습니다. 그래도 괘씸합니다."

"칫. 진짜 너무하네. 그럼 지금부터 하나하나 읊을테니. 화내지 않습니다. 알았습니까?"

"뭘...말입니까?"

"내가 고백 받은게 정말 박선배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 얼굴에?"

명주의 말에 부정을 할 수 없는 대영이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명주만한 여군은 대영이 입대 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런 명주가 육사를 거쳐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군대에있는데, 남자가 꼬이지 않을리가 없었다.


누군지도 모를 남자들에게 질투가 오르는 것이 화가나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궁금한 대영이 어서 말하라는 듯 명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음을 표정에 가득 담은 상태로 말이다. 하지만, 명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술 욾어댔다.


"음...먼저 군의관에서는 여기서 같이 일하는 이소위랑 최중위. 그리고, 행정반에서 일하는 김중위도있고, 취사병인 이상사. 특전사 중엔 이렇게? 다른 부대에있는 사람까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리고, 뭐. 서상도 알겠다시피 여기 군에 여자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의무실에 오는 이유가 정말 아파서는 아니라는 거지....서상사?"

"..........."

"궁금해하는거 말해줬는데 그런 표정이면 어떡합니까? 뭐라고 마르...읍?"

'쪽'하고 오물오물 거리며 말하는 명주의 입을 맞추며 말을 먹은 대영의 행동에 명주가 토끼 눈을 뜨고 대영을 바라본다.


"뭐...하는..읍?"

'쪼옥-'하고 다시 한 번. 명주의 입에 왔다가 사라지는 대영의 입술이다.


표정을 보면 화가 풀린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는 행동은 영락 없는 순둥이다.

"화 풀렸네 풀렸어. 표정을 그렇게 지으면 뭐합니까. 하는 행동은 서대영인데."

".....아직 화 안 풀렸어."

"아니긴. 여기 앉아 봅니다. 어서."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명주의 손을 거부하지 않은 대영이 이끌려 비어있는 침대에 걸터 앉는다.


"나 아직도 잘못한 겁니까? 이제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너 잘못 없어. 그냥 내가 못나서 그래."

"누가 그럽니까? 서상사 못나다고? 그런 생각 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아이 착하다-. 내가 예쁘고, 잘난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서대영 마음 상하게 한 건 잘못이니까. 상 주겠습니다."

"상? 무슨 상?"

"우르크에서 못 준 포상. 그 때보다 더 이쁘게 질투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 남자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말이지 너무 행복합니다."

"....미안."

"저번에는 점호하러 간다면서 피했는데, 이번엔 점호도 끝났겠다. 도망칠 곳 없으니까 얌전히 포상 받습니다. 알았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대영의 말을 끝으로, 대영의 리드가 아닌 명주의 리드에 의해 둘 만의 속닥거림이 시작되었다.


분명 시작은 겁 없이 달려든 명주였다. 대영의 눈을 마주보며 탐하던 명주와. 가만히 앉아있던 대영.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명주의 허리를 한 손으로 끌어 안고, 한 손으론 명주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몸과는 달리 둘의 눈은 여전히 서로만을 향해있었다.



잠깐 떨어진 입술 사이로 명주의 호흡이 뱉어지고, 대영이 작게 속삭였다.

"화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해오는 대영의 말에 '응'이라는 대답 대신 슬쩍 웃으며 눈을 감으며 다시금 대영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마주댔다.


이 날 점호가 끝난 후. 의무실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곳을 찾은 장병들은 의아함을 가지며 다시금 자리로 되돌아가야했다.




“그런데…서대영 여기서 이래도 되나?”

“싫어? 그럼 어디가 좋은데.”

“싫기는. 안 싫지. 서대영이랑 있으면 어디든 좋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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