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코씨는 어른이 된다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오늘 류구코마치에게 주어진 활동도 일찍 끝나고, 또 내개 주어진 일반 사무나 영업도 적어 드물게 한가한 날. 나야 적다 해도 일이 있는만큼 남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아즈사씨도 남았다. 지금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깝다는 느낌이 들어서래나. 하여튼 그 아즈사씨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어른, 입니까."

"네에."

단순히 심심해서, 라고 하기에는 뭔가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하고많은 것들 중 굳이 그런 걸 골랐다는 데에는 뭔가 생각하고 있다는 게 있다는 걸까. 모니터와 씨름하던 시선을 뒤에 있을 아즈사씨로 향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포근하게 해주는 그것은 가끔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음....."

막상 말을 꺼내려니 좀 막연하네. 좀 더 구체적인 범위가 주어졌으면 좋을텐데. 어디보자......우선, 호불호로 답해볼까.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는 느낌이네요."

"그런가요?"

이걸로 만족, 했을 리는 없겠지. 아즈사씨는 아무래도 좀 더 많은 대화를 원하는 것 같다. 뭐어, 그리 바쁜 것도 아니니 일은 잠깐 접어두도록 할까. 나는 완전히 의자를 뱅그르르 돌려 아즈사씨와 마주했다.

"리츠코씨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녀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굳이 따지자면 어른이 되고 싶은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굳이 되려고 안달이 날 필요 없이 저절로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된다. 고작 한 살 차이다. 1년은 많은 것 같으면서도 앗하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벌써부터 늙은이가 된 것 같구만. 눈 앞에 있는 나보다 연상인 사람에게 방금 그 생각을 꺼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본다.

"아무래도 미성년일 때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잖아요. 부모님 동의 없이도 스스로 부동산 계약도 할 수 있고, 그.....술도 마실 수 있고, 뭐 그런 만큼 책임도 뒤따르지만요."

"어머나, 리츠코씨 술 마시고 싶었어요? 괜찮다면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데."

"아뇨,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원래 술은 어른한테서 배우는 거니까."

술 마시고 싶다는 게 아니라니까. 그냥 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는 거라고요 정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술 이야기를 한 건 어디까지나 프로듀서 일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구요."

일을 하면서 만나는, 흔히 '높은 사람' 혹은 '관계자' 라고 표현하는 이들은 대부분 40 - 50 대의 장년 남성들. 간혹 젊은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다 성인들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들과는 공식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비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래, 흡연실이나 술자리 같은 곳에서 말이지. 우리 사무소의 프로두서님만 해도 그런 자리에 어울려서 따낸 일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담배까지 손을 댈 생각은 없지만, 술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그런 비공식적인 자리에 끼어들 수 있는 것이다. 즉, 단순한 수단이라는 거지. 수단을 써먹기 위해서는 성인이 될 필요가 있지만.

"별로 술을 즐기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헤에......그렇군요."

아즈사씨, 아쉽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향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하는데요. 아, 이게 아니지. 이야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새었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말하자면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도 따르지만 지금보다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그것은 곧 앞으로의 프로듀스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녀에게 그렇게 전했다.

"으음....."

그 말에 웃음을 거두고,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고민하는 그녀. 나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걸까? 다시 점검해봐도 이상은 없는데. 내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마주앉은 당사자에게 물어봐야겠지.

"저, 아즈사씨. 제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

그러나 그 당사자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을 뿐. 한 번 더 불러볼까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한참 생각하는 도중에 말을 걸어대면 곤란할테니까.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츠코씨 자체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프로듀서 리츠코가 아닌, 아키즈키 리츠코라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지금 리츠코씨의 생각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네요."

그녀가 다시 웃었다. 언제나의 차분한 미소와는 다른, 쓸쓸함과 아련함과 약간의 후회가 묻어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따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키즈키 리츠코에게 있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신체적으로 나이를 먹고, 법률 상의 권리와 그에 따른 책임을 얻게 되는 일로 끝나는 걸까. 전보다 더 많은 수단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뿐일까?
 
아키즈키 리츠코는,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이번에는 대답이 반대로 되겠네요."

"그건 꽤 흥미롭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른이 되버리면 더 이상 실패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길게 설명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 번 무너질 때 생기는 피해가 회복이 정말 힘들 정도로 커진다, 라는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걸. 그래,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는 몇 번 실패를 해도 그렇게까지 회복 불가능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동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괜찮아, 아직 기회는 있어. 넌 어리잖아.

어리다는 것, 미성년이라는 것. 이것이 크나큰 방패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원래 실패를 하고 그냥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성질이긴 했어도 이 방패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사라지고 만다. 지금까지 사회 생활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갑자기 맨 몸으로 사회의 정글을 헤쳐나가라고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런 건......불안하다.

"정답, 이네요."

아즈사씨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방금 전과 똑같은 웃음이다. 기분이 묘해진다. 뭔가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즈사씨, 아까 그건 단순한 제 의견에 불과해요. 정답이 아니라고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웃음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종종 들어서......확실히, 어른이 되면 실패하면 안되게 되죠."

"아즈사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어른에 대해서요. 저만 대답하는 건 치사하다구요."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녀는 즉답했다.

"리츠코씨가 말한 것처럼, 어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이 엄격해지니까."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점점 딱딱하게 변해간다. 온화한 인상의 두 눈에는 침울함이 깃든다. 보기 드문 침체된 모습.

"그렇지만 어른이 되는 걸 막을 수도 없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요."

잠깐 말을 멈추던 그녀는 곧 내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리츠코씨. 괜히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건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가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지내다 맞이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쪽이 언젠가 다가올 그 때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걸요.
 
"네. 그러니까 침울해하지 마세요. 아, 혹시 저 때문에 그런 거라면 사과할게요."

"아, 아뇨 그렇지 않아요. 리츠코씨 때문에 그런 건 전혀 아니니까요."

그녀가 다시 웃었다. 우울함을 억지로 봉합하는 것만 같은 억지 웃음이다. 그만두세요. 그럴 필요 없어요. 숨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숨기면 안되죠!

"아즈사씨."

"네."

"두려우세요?"

나도 그렇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한다. 이런 질문 안해도, 당연히 알 수 있다.

"........"

아즈사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도 생각했듯이 잘 알고 있다. 두려울 것이다. 별로, 타박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오히려 나는......

"아즈사씨, 아까 제 말은 잊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도. 시선도."

"리츠코씨.....?

"어른이라고 해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런 건 헌법에도, 아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구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후, 후후.....리츠코씨도 참......재밌는 말이네요."

"농담 아니에요. 그럴 마음도 없어요."

나는 좀 더 쐐기를 박기로 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걱정하지마세요. 실패로 얻은 피해는 복구하면 그만 아니겠어요?"

"그게 쉬운 일일까요?"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그 복구, 최대한 도와드리겠어요. 저는 당신의 프로듀서니까요."

그러자 아즈사씨는 웃었다. 회한이 담겨있지도 않았다. 억지로 무언가를 감추려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후련함이 느껴지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뭔가 심이 있는 듯한, 강한 의지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언젠가 있을 그 때 리츠코씨 신세 좀 져볼까요?"

"자주 지시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을 거에요. 리츠코씨, 유능하니까 애초에 실패하지 않게끔 적절히 이끌어주실테고."

"띄워준다고 해서 뭐 나오는 거 아니에요."

짐짓 딱딱한 태도를 취하자 아즈사씨가 이 쪽을 손을 뻗었다. 뭔가 했더니 무릎에 얹었던 내 손을 양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리츠코씨."

"네."

"고마워요."

"프로듀서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요."

그리고, 아키즈키 리츠코로서도.

"음.....리츠코씨는 알아서 해결하실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그래도 혹시 괜찮을까요?"

"네?"

"혹시 힘들거나 곤란한 일이 있거나 하면 불러주세요. 도움이 될 지도 몰라요. 저, 이래뵈도 어른이니까."

아까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는 사람이 이제 와서 그걸 들먹이면 어쩌자는 건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렇지. 나중에 술을 배워야할 때라던가......."

"그러니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니까요."
 
정말, 이 사람은 왜 또 갑자기 그런 이야기로 끌고가려는 건데. 질린 나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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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사씨와 리츠코 사이에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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