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터 나는 고립된 매마름에 목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뇌덩어리.사람들은 성적 종이쪼가리의 숫자만 보며 열광했고 그럴때마다 난 무표정의 건조함으로 그들을 대했다.

매마름이 해소된건 어엿한 회사원이 되려던 직전이었다. 여자친구를 만나도 충족되지 않던 답답함이 뽀글머리의 주근깨 많은, 그것도 눈이 축 쳐져서는 바보같이. 가슴이 빵빵하지 않고 납작한. 그런 남자에게 눈이 갔다. 그는 술집에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인과 한바탕을 벌이고 있었다.



“아, 저 여기서 안한다구요!”

“뭘 안해! 너 룸에서 홀딱 벗고 주사기 놓아서 파르르 떠는게 하루이틀이야? 너 이러다... 쯧.”



말하는 본새를 보니 약쟁이가 틀림없었다. 난 양주를 한모금 음미하며 2층 바에서 그들을 내려다봤다. 주인이 더 세게 나올수록 발악하는 그의 어처구니 없는 당당함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저씨는 제가 친구들 데려와서 양주세트 시키니까 좋으신거 아닌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면서?”

“뭐? 이 썅...”



그가 손을 위로 훅 올렸을때, 난 그의 손을 멋대로부여잡았고 그건 머리가아닌 신경이 시킨 일이었다. 담배를 피고있던 중이어서 급하게 끄지 못한 모양새에 떨떠름했지만 눈감은 순진한 강아지 덕에 그를 막은게 꽤 뿌듯했다.



“그만하시죠.”

“뭐야?”

“어린애 가지고 손찌검 하시지 말란 말입니다.”

“야 이양반아. 너 나 알아? 얘도 알고?”

“몰라요. 근데 애 때리는 작자가 죽일놈인건.”



압니다. 나는 그를 발을 걸어 넘어지게 만들었고 돼지는 어리석게 큰 소리를 내며 홀 가운데에서 모양좋게 넘어졌다.

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날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담배를 물며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가는데 라이터를 꺼내기도 전, 다급하게 담배에 불이 붙었다.


“... 뭐냐.”

“아저씨 사랑해요.”


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 눈빛에 움찔했지만 그를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가라. 그리고 아저씨 아니다.”

“아닌데. 아저씨 맞아요. 그리고 집에 안가요.”

“못가는거 아니고?”

“와 어떻게 알았어요?”

“몰골이... 약쟁이가 뻔하지. 약 그만해라 몸도 버리고 인생도 버리는거랑 마찬가지야.”


꼰대같다. 연기를 뱉었다. 그가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이어가려는 찰라, 검은 까마귀 양복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네 돼지가 다치니 꽤 흥분한 모양에 난 급하게 그의 소매를 끌어 더러운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썅 뭐가 이리 비좁아...”


곧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담배재때문에 아까운 장초를 저 멀리 던지고 나와 그는 거의 끼어있다싶이 몸을 맞대고 있었다. 그는 우물쭈물거렸다. 


“감사해요.”

“뭘.”


웃자. 세상에 험한일도 많은데 웃으며 살아야지. 난 고 양아치같은 놈을 두고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곧장 멀뚱거리며 잘 쳐다보더니 나와 같이 베시시 웃었다. 주책맞게 그 표정에 얼굴이 벌그스럼해지는 변태같은 얼굴을 보고 마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의 눈을 교묘히 피했다.

씨발 이건 너무하잖아.


골목이 너무 비좁은 탓인지 숨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있는 거리가 아니였다. 소년은 나보다 머리통 하나정도 차이가 났다. 뽀글하게 말아놓은 머리는 반항적이었다. 그냥 호기심에 구해준 건데, 이렇게 큰 파장을몰고올 줄은 몰랐다.

우리는 서로 맞닿아 있었다. 


“아저씨는 똑똑하시나 보네요?”

“뭐?”


소년은 안경을 톡톡쳤다. 유리안경 하나 썼다고 똑똑하다고 말하는 그가 꽤 어리숙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단 너무 밀착해있는 그와 나 때문인지 어질했다. 

스위치는 눌러졌고 간신히 목소리가 부들거리며 튀어나오는것을 느꼈는지 그는 천천히 날 올려다봤다. 개 썅... 이건 수치야. 어느새 난 하늘을 보고눈을 감고 있었고 그는 뚫어져라 내 하반신을 뭉툭히 쳐다봤다.


“아저씨 섰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오는 샷에 머리가 띵했다. 그래 섰다. 난 아무도 못말리는 변태새끼인가부다. 변태 황금 종자라서 요 어린놈 하나 잡아먹겠다고본능이 막 움틀거리는 건가.


“지병이야.”

“지병?”

“.. 그런 거 있어. 넌 몰라도 돼.”


무슨 사람 한주먹 쳤다고 먹물빠진 돼지들이 이리설치고 다니는지 빨리 이 좁은 틈사이를 빠져나가너와 빠빠이를 하고 싶은데.


“거짓말.”


네가 그렇게 요망하게 웃으면 내가 진정이 안되게생겼는데 뭘 어쩌자는 수작인지. 난 그 베시시한 웃음을 보고 잠깐 머리가 팽 하더니 그의 얼굴을 흔들리게 응시했다. 이게 무슨일...


“빼드릴게요.”


이눔이 약쟁이라는 사실을 홀딱 잊고 있었던 탓에나도 모르게 그가 좁은 틈 사이에 구부정하게 앉는데 그의 머리를 꽉 부여잡았다.


“안돼.”

“왜요?”

“안돼니까.”



난 지긋이 소년의 머리를 눌렀다. 소년이 눈동자를 동그랗게 떠 예쁘게 올려보는게 한번 더 머리가 핑 돌았지만 정신 차려야만 했다. 난 좁은 틈 사이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들려도 무작정 비집고 옷이 긁혀도 애를 아등바등 썼다.




“아저씨 설마 조루여서 안된다는거에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고 분명 그흑돼지들이 요 요망한 소년의 목소리를 들은 탓에양구두가 바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씨발... 난 다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소년을 빼내 다른 골목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이놈은 미친놈이분명했다.




“너 미쳤냐?”

“아저씨가 더 미쳤죠. 아직 스물밖에 안먹은 남자애한테 발정난게.”

“지병이라고, 지병.”

“무슨 지병이요? 그니까 조루요?”

“제발... 조용.”

“왜요. 아저씨 저 왜 구해주셨는데요? 저 하기 좋게 생겨서 아니에요? 만만하고 돈 없게 생겨서?”




요 요망한 어린놈은 깔끔하게 빼주고 돈을 받아 채려는 속셈인가. 웃음이 픽 터져나왔다. 아무리 짝이 없는 외딴 거렁뱅이라 해도 굳이 그럴 일이.




“내가 뭐가 아쉽다고.”

“저 안좋아하세요?”

“어?”




뜬금없는 물음에 귀를 조금 의심했다. 한방 먹이려고 내가 뭘 아쉽다라고 툭 던졌는데.



“안좋아하기 어렵지 않나?”



  맞다. 넌 안좋아하기 정말 어려운 아이다. 하는 짓은 별로 좋지 않지만 밝아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에 황당하리만큼 솔직한 언행에 가슴이 살짝 쓰릴때도 있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만 보면.



“찾았다!”

“아 씨발 달려요.”



 결국 덩치에게 걸려버린 우리 둘은 비좁은 골목을 헐레벌떡 빠져나와 사람 많은 거리를 달려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내달렸고 난 그게 뭐가 좋아서인지 벙을 찌며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뚱땡이새끼... 존나 빠르네. 괜찮아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니까...”

“운동 좀 하시나보네요.”



 숨을 헐떡이며 놀이터 그네에 앉은 그 아이가 날 향해 웃어보인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또 웃는게 사람을 더 웃게 만들어서. 나도 웃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터질 만큼 뛰어봐서 그런지 박동이 자꾸만 요동쳤다.

아니면 그가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아서인지. 황급히 눈을 돌리자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반했죠?”



 무슨 개같은 소리니 하고 반박했지만 그가 조금씩 발을 맞춰 다가올 수록 내 발은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그러다 우뚝 멈춰선 그가 꼿발을 들고 볼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댔다.



“뭔...”



 역시나 하는 표정이다. 갑작스레 손을 잡고 어딘가로 날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디가.”

“모텔 가야죠 이제.”

“뭐?”

“.. 아저씨가 꽤 순수해 보여서 뽀뽀 먼저 하고, 뭐 단계 밟아가야되는거 아니에요?”



 엉뚱하게 헛소리를 해대는 모습에 기가 차 웃음이 픽 나왔다. 다시 손을 잡고 날 끌자 그런 그를 놓았다.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정말 조루라고 생각할까 두려웠지만.



“나는 안 가.”

“왜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차근차근 짚어줘야 알아듣는 성격인가 했다. 



“오늘 너 처음 봤어.”

“그러려고 주인이랑 말싸움 해주고 골 먹여준거 아니에요?”

“...세상엔 착한 사람이 많아. 그냥 아무 뜻 없이, 바라는 거 없이 도와주는 사람. 나도 그 중 하나였다고 쳐.”

“... 이해가 안가는데요? 왜 아무 대가 없이 사람을 도와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른 아이었다. 뭐라 설명하기도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자 그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저 마음에 드는건 맞잖아요.”



 맞는걸 아니라고 할 순 없다. 내가 고민하고 끄덕이니 그럼 가요 하는 말과 동시에 갑자기 내 손목을 덥석 잡더니 다시 끌었다. 확실히 밀어낼 필요가 있었다. 설명을 해야 했다.



“너처럼 어린 애 잡아먹으려고 일부러 도와준거 아니야. 아무 대가 없이 그냥 한거야. 그냥 지나가는 노친네가 도와줬다, 생각해.”

“마음에 들면 자야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음에 들어서 더 이러는거야.”



 집에 가라. 한 마디를 던지고 빠르게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뒤에서 뭐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지만 내버려뒀다. 그냥 탈선하는 애 잠깐 바로잡은 꼰대같은 어르신이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보니 정말 꼰대 다 됐네 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씁쓸했다. 

이제 다시는 볼 일 없겠지 하고 한 말이었다. 






“아저씨!”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이는 내 주변에서 자꾸 맴돌았다. 두번째 만난 곳은 처음 만난 곳 근처의 카페였다.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단정한 셔츠에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회사 근처에 카페 하나가 생겨서 커피 할인을 한다고 갔는데.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니라니까...”



 그는 사람 말을 모두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날 오랜만에 다시 봤다는 이유로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괜시리 웃음이 나왔고 회사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질문에 난 말했다.



"... 아는 동생?"



 생각보다 그 아이는 아이가 아니었다. 스물 세살에, 학교까지 다니는 휴학생이었다. 생각보다 정상적인 이력에 놀랐고 그는 뭐가 놀랍냐는 식으로 히죽거리며 자신이 만든 라떼를 마셨다.



"왜요, 약 하는 애들은 다 고아원에서 자라고, 부모가 학대하면서 꾸역꾸역 자란애들 같았어요? 아님 돈이 오지게 많거나."



 그는 두번째로 본 나에게 커피를 공짜로 건네고, 웃으며 별의 별 얘기를 뱉었다. 사립학교 등록금은 비쌌고 학자금 대출에, 많은 알바를 해봤지만 그만큼의 고수익 알바는 극히 드물었다고 했다. 그런 곳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난 그 아이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었고 그가 연민이 들 것 같이 말하는 도중, 그에게 동정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게 어쩔 수 없었다는 건가?"



 내가 차가운 태도로 나오자 그 아이는 약간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그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설명했다. 




"너가 학자금 대출로 정말 힘든건 알아.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큰 문제니까. 근데, 너같은 애들 많아. 걔네는 꾸역꾸역 참아가면서 최저시급 받으면서 일해. 뭐가 잘못된 일인지 알고... 이 선은 넘어야 하면 안된다라는 걸 아니까."

"... 제가 선을 넘었다는 말이에요?"

"너만의 선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선은 확실히 넘었다고 생각해."

"..."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야. 너가 정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



 뭔가 꼰대같은 말투에 아차 싶었다. 그리고 괜히 시계를 보며 갈 시간이라는 것을 어필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비켜주며 다시 일터로 나섰다. 어린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말한 걸까 싶었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은 꼰대로서 한 번은 말해야할 일이었다.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은 그는 그대로 내 회사 앞에 찾아와 또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노력해볼게요 아저씨."

"... 뭘."

"정당한 선택이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도와주세요."

"뭘? 내가? 너를?"

"네. 싫으시진 않으시죠?"



 싫진 않았지만 굳이 왜 내가 너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뽑힌거냐 물었더니 그는 '저를 동정하지 않고 일침을 날리신 분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고 진지하게 말하며 웃음을 빵 터뜨리게 했다. 일침이라니. 그건 조언이라고 하는거야. 내가 정정하자 그는 마치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 처럼, '그렇구나.'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처음 만나서 당장의 호감을 느꼈던 어린 대학생의 아이를 돌보고 이끄는 보호자처럼 그의 옆에서 조용하게 그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마약? 안돼. 담배도 안된다."

"담배도 안된다고요?"

"끊는김에 확실히 일절 안돼. 제대로 해야지."



 나는 그를 독하게 끊게끔 만들었다. 카페 외 다른 가게를 출근하는 것은 금지시켰고, 예전 가게 사람들에게 연락이 와도 피하고 핸드폰을 같이 바꾸고, 번호까지 바꿨다. 그는 처음엔 점차 적응하다 싶더니 약기운이 떨어지자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지며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금단현상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는 그를, 나는 휴가까지 내서 간호해야 했다. 물론 카페 출근도 잠시 쉬어야만 했다.



"...추워요."

"추워도 참아."

"왜이렇게 냉정해요? 불쌍하지도 않아요?"

"너가 선택한 길이야. 너가 알아서 책임져야 해."



 물론 이렇게 멋드러지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이 아픈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을 오소소 떨며 입술이 부르트는데 가슴이 아팠다. 이 애가 뭐길래, 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니까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좋아하니까 더 좋은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에 더 냉정하게 그를 밀었다.

그는 며칠동안이나 추워했다. 보일러를 틀어도 어쩔 수 없는 금단현상이라고, 의사인 친구는 답했다. 나는 점점 걱정하기 시작했고 말이 없어지는 그를 옆에서 졸아가며 간호했다. 그리고 새벽 3시 쯤 되었을까, 그가 깨어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아주면 안돼요?"

"... 안돼... 빨리 자."

"네? 한 번만 안아주세요. 안고 자고 싶어요. 너무 추워요."



 그가 간곡하게 부탁하는 덕분에 난 마음이 약해져서는 한숨을 쉬고, 못이기는 척 침대에 올라가 그를 마주봤다. 이 아이는 다행이라며 중얼거리고 내 허리를 쏙 안아 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목에서 땀이 흥건했다. 걱정되어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친구는 그런 현상이 며칠 지나면 서서히 회복할 것이라고, 약기운이 떨어져 추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걱정시키는 건 최고였다. 어디로 튈 줄을 모르니까.

내 걱정을 아는지 마는지 그는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머리통을 꼭 껴안으니 조금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이 상처 투성이고, 아직 철없는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한 달 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고 그는 거의 회복하고 있었다. 카페에 출근하며 루돌프 모자를 쓰고 방긋 웃는 모습을 밖 유리창에서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으니, 소리때문에 들켜 20분동안 추격전을 해야했다. 그 정도로 우린 가까워졌고, 좋았다.



"아저씨 안만났으면 나 어떻게 됐을까. 죽지 않았을까?"

"... 죽긴 왜죽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었겠지."

"아저씨는 꼭 그렇게 말하더라. 정없게."

"내가 왜 정이 없어. 정 없었으면 너 사진도 안찍고 이렇게 머리카락도 한 웅큼 뜯기진 않았겠지."

"말은 참 잘해..."



 그러면서 그는 가방에서 선물이라며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베시시 웃는데 당장 확인해보라는 불호령에 서둘러 리본을 풀어보니 현관에 달아놓는 종이 있었다. 작고 귀엽고 예쁜게 꼭 자기를 닮은 것을 골라왔다고 말하니 풉 하고 재미없는 아저씨 유머를 친다고 또 웃었다.


 이 어린 애는 날 아저씨라고 꼬박꼬박 부르며 어른 대우는 커녕 어린아이 대우조차 못해줬다. 9살이나 많은 어른의 볼을 꼬집어서 아프게 만들지를 않나, 자기를 찍었다고 핸드폰 사진을 모두 포맷하지 않나. (다행히 백업을 시켜둬서 망정이지) 이 만큼 다른 우리는 다른 만큼 싸웠다. 자주 싸웠다. 사소한 걸로도 말이다. 내가 전기포트 코드를 뽑지 않았다고 잔소리같은 소리를 하자 그는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고 변명하며 사건의 시초를 만들어냈다. 



"전기 코드 다 쓰고 제발 뽑아 놓자, 응?"

"응 알았어."

"맨날 대답만."



 여기서 틀어졌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나 나에게 퉁명스럽고도 뾰족하게 말했다.



"내가 하겠다고 대답하는데, 왜 맨날 대답만 한다고 또 말하는거야?"

"항상 너가 그러니까."

"내가 한다고 했잖아! 방금 대답했잖아! 근데 뭐가 문제야?"

"넌 항상 행동은 안하고 대답만 하니까.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말하니까."

"... 내가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말해? 내가?"

"그래."

"예전 가게 다닐 때 버릇 그대로 나온다 이 소리구나. 그런거지?"



 그런 뜻이 아닌데, 그는 화가 많이 났는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크게 숨을 쉬었다. 내가 당황하며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는 뿌리쳤다.



"그 소리가 아니잖아 백현아."

"됐어. 너도 다른 사람이랑 별 다를게 없구나? 아저씨는 날 좀 격하게 대하길래, 나를 진짜 위해주는구나 싶었어. 내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그게 아니라."

"근데 이렇게 되버리네. 결국 아저씨의 무의식에서, 내가 걸레 출신이라는 걸 증명해버렸네."



 그는 그 충격적인 말의 끝으로 가방을 챙겨 집을 나갔다. 말리려고 했지만 소리를 미친듯이 질러대며 무슨 물건이든 다 던져버릴 것 같은 모습에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현관이 큰 소리로 닫히고, 그가 준 선물로 달아놯던 현관의 종이 떨어지며 깨졌다. 균열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나는 회사에서 애를 태워야 했다. 직장 동료들이 낯빛이 어둡다며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했지만 집에 혼자 들어가 그를 찾으려고 발악한다면 내 자신이 더더욱 초라해지고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을의 존재라는 것을 더 뼈저리게 깨달을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집에 간다고 쳐도 계속 백현의 생각과 백현에게의 연락 뿐이기 때문에 그냥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면 안됐었다. 내가 그를 밖에 나가 찾아와야만 했다.



 오늘은 내가 야근을 하겠다고 자진 한 날이었다. 8시 반 즈음 일을 다 마치고 백현에게 전화를 해도 그는 받지 않았다. 심지어 핸드폰까지 끈 것 같아 속이 터졌고 백현에게 또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하던 때 잠잠하던 핸드폰이 울렸고 그것은 다름아닌 백현이었다. 너무 반갑고도 화나는 마음에 성급히 받았더니 백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당신이 현이 자금줄이에요?"

"... 누구시죠?"



 전화기 너머로는 익숙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라며 전화기를 당장 끄라며 호통을 치는 목소리가 역력했는데 한숨을 삼켜야 했다. 



"나 현이 가게 마담인데, 현이가 돈이 막 필요하다고 한 달치를 가불해달라며 난리네요. 그 쪽이 현이 빨대죠? 현이 돈 좀 대줘요. 확 씨발 짤라버릴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 형! 아니라고요! 전화 끊으라고요 쫌!"

"개새끼야 넌 가만히 있어 좀. 어떡해요, 뭐 돈 지금 당장 보낼껀가?"



손이 떨렸다. 다리 또한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아야 했다. 무슨 생각으로 가게에 다시 돌아간건지, 왜 가불을 해야하면서도 돈이 그렇게 필요했는지, 얼마나 마담에게 닦달을 했으면 핸드폰까지 뺏어서 나에게 연락까지 한건지. 모든 과정이 미웠다. 몇 달의 나의 너를 향한 노력과 사랑이 모두 거품이 되는 순간 같았다. 거품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제가 왜 보냅니까 돈을. 안보냅니다."

"네? 뭐라고요? 안보내신다고요?"



 내가 의외의 말을 한 건지 마담과 백현은 조용해진 것 같았다. 난 그 말에서 하나를 더해, 당장의 끝맺음을 그었다.



"전 할 만큼 했다고 전해주세요. 이제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못하겠어. 연락하지 마."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의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당장이라도 가게를 찾아가 그를 빼내야만 해야할 것 같았다. 나에게 그의 존재는 너무 크고 버거웠다. 힘들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모든 근육이 이완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았다. 내가 뱉은 마지막 말이 그에게 큰 상처가 될 까봐 두려웠다.

괜히 센 척 한 걸까. 밤새 고민을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해보니 그의 번호는 다시 바뀌어 있었다.







3달 뒤




직장 동료의 걱정에 나는 그들과 같이 밥을 먹는게 의무화되었다. 항상 점심을 걸러서 야위어진 것 이라고 말하는 팀장님은 내가 밖에 나가기를 싫어할때면 죽이라도 싸오는 것이 기본이었고, 마케팅팀 김대리는 항상 달콤한 디저트를 사오며 오늘도 화이팅! 이라는 주옥같은 대사를 날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회사의 일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껴도, 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가끔은 환청이 들리기도 했고 팀장님이 말하는 몇 가지 컨설팅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꾸중보단 배려가 앞서는 회사였고, 난 금방 그 시스템에 적응하며 나름대로의 일상을 점차 회복하고 있었다.



"...열씨. 찬열씨!"



 그 날도 왠지 멍하니, 몽롱하고 잠이 온 상태로, 기분 또한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김대리가 날 조용히 부르며 핸드폰, 전화와요! 라고 말했을 때 정신을 차렸다. 고맙다는 목인사를 하고 화면을 들여다 봤을때는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슬프게 밀려왔다. 전화를 받으니 그 느낌 그대로였다. 



"... 여보세요?"

"..."

"아저씨... 나야."

"..."

"잘 지내? 난... 난 못 지내는 것 같아."



그립지만 내가 싫어하는 그의 목소리였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벙어리처럼, 계속 듣고만 있어야 했다.



"미안해. 내가 바보야. 내가 항상 바보였는데 아저씨한테 뭣도 모르고 개기기만 했지..."

"..."

"보고싶어."



 그 말이 들렸을때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를 접하지 않기 위해, 그를 만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를 끊어야 했다. 이번엔 내가 금단 현상이 그렇게도 심하고 독했지만. 다시 그를 만난다면 내 세상이 천천히 무너질 것 같았다. 서로의 모래성에, 물을 붓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번호 차단을 걸어놓고 당장 나가 대리점에 가서 핸드폰 번호 또한 바꿨다.

다행히 그는 회사로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가끔 기념일이나, 발렌타인데이, 장미의 날 등 많은 이벤트를 홀로 챙겼다. 회사가 끝나고 집에 오면 현관엔 사탕과 초콜릿과 빼빼로와, 장미와, 안개꽃과.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난 그것을 모두 아는 지인들에게 나눠주고는 그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7개월 뒤, 가을이 선선하게 찾아올 날이었다. 거의 잊어가고 있었다. 가끔씩 쓰라린 통증이 찾아오면 말도 못하고 하루를 펑펑 울어야 했지만, 직장 상사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서 술자리를 가지며 그 때를 회상하며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 날도 술자리가 있는 자리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울리더니 받자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박찬열씨? 여기 서울 강남 경찰서 마약 단속반입니다. 변백현씨 아시죠?"



 세상이 쿵, 하고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 택시를 타고 달려가니 경찰서에서 막 나오는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여전히 작고, 말랐으며 하얗고, 파마끼가 있는 머리를 하고 있고, 안경을 쓴 그 아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양 옆에 형사들을 끼고서, 제 정신이 아닌 채로 말이다.

그는 내 앞에 잠깐 서더니 두 눈을 느리게 꿈뻑이며 날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코피를 쏟았다. 내가 당황하자 형사가 욕을 중얼거리며 휴지를 그의 코에 냅다 박았고, 그는 이 상황이 웃긴지 히죽거리며 나와 형사를 번갈아보며 바라봤다.



"... 나. 보고 싶었지? 아저씨..."



 마지막까지. 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를 만난 뒤로 내가 인내하던 시간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구나. 난 어른답지 못하게, 아이의 앞에서 펑펑 울었다. 별 말을 다 하며, 여기가 경찰서 앞이라는 것도 잊은채로 말이다. 그 중에 기억나는 건 딱 한마디였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어. 보고싶어도, 이런 식으로는 절대 아니었다고..."



그렇게 주저 앉아서 몇 십분을 울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자 백현은 이미 이송된 후였고 다른 형사가 날 일으키며 경찰서 안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게끔 했다. 조사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신경은 온통, 백현에게로. 그가 그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코피를 흘리며 우는 것 같은 표정으로 웃던 얼굴만이 기억날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 보고싶지 않았어? 난 아저씨 보고싶었는데.' 라며 중얼 거렸던 것이 더 눈에 밟혀 괴로울 뿐이었다.





"변백현씨, 청주 교도소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한 번 접견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일주일을 경찰서를 왔다갔다 거린 것 같았다. 백현의 구속이 확정되고 난 거의 희망을 잃은 채로, 껍데기만 남은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내가 고개를 젓자 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익숙한 것이었다.



"변백현씨가 예상하더라고요. 절대 안올거라고. 바른 사람이라서, 아닌건 아닌거라고.. 이거 가져다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깨서 미안하다고."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보게 되었다. 백현이 깨고 간 현관의 종이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어떤 날짜가 새겨져 있었고, 그것은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의 날짜였다. 


나는 바보같이 또 운다. 항상 밉고도 답답했던 그가 이제는 보고싶고 그리워서 울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그를 가까이 두면 아파서 운다. 그래도 보고싶은 마음에 더 운다. 미친듯이 울었다. 콧물이 나오고 입에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운다.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눈이 올 것 같았다. 찌뿌둥한 날씨에 밖에 나오니 교도소로 이송중인 버스 하나가 천천히, 구름을 타고 지나간다. 그 안에는 입술이 터져 빨간 피를 머금고 있는 어린 아이가 타고있다. 아직 철없는 아이. 그런 철 없는 아이를 근본없이 미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성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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