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담요입니다.

어느덧 3편이네요. 눌러주신 좋아요와 달아주신 댓글로 또 한 편을 적었습니다. 쓰고보니 엄청난 캐붕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편도 잘 부탁드려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애정의 방식에 대하여







“니가 가서 팀장 좀 말려봐.”


김록수가 초조한 얼굴로 최정수를 향해 그렇게 얘기한 것은 이수혁이 정말로 건물 하나는 날려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간 지 꼬박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김록수를 휙 돌아본 최정수의 얼굴 역시 당장이라도 회의실에 가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다 조지고 싶다는 욕망이 아주 선명한 상태라 김록수는 드물게 멈칫 하며 정수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최정수가 말했다.


“지금 나까지 들어가서 깽판 치지 않으려고 엄청 참는 중이거든. 말리긴 뭘 말려, 아직 어디 하나 날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야, 최정수.”

“이보세요, 김록수 씨. 님도 지금 잘한 거 하나도 없거든요? 형 나오면 다음에 혼날 건 너니까 생각의자에 앉아서 반성이나 하고 있어.”


평소라면 최정수 또 헛소리 한다고 구박이나 해줬을 텐데. 이수혁이 저렇게 돌아버린 데에는 김록수의 탓도 적잖이 포함되어있는 게 사실이라 할 말이 없어진 록수는 한숨만 한 번 포옥 쉬곤 의자에 - 생각하는 의자는 절대로 아니다 -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미 최정수한테 한바탕 혼쭐이 난 참인데 이정도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걸까. 김록수는 정수가 알았다면 내가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화를 참으며 그만하게 끝낸 것인지 알고나 그런 소리를 하냐 몹시도 서운해 할 생각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수의 말마따나 아직 회의실에서 뭔가 터지거나 부서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자기 하나 때매 그런 대책 없는 일을 벌이기야 하겠어, 하고 걱정을 내려놓으려다가도 김록수 때매 눈 돌아간 게 한 두 번이 아닌 이수혁의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괜히 입술이 말랐다.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이 팀장님 성격 제일 잘 아시면서.”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옆에서 해대는 배푸름이 몹시도 거슬렸지만 그 말 하나하나에 다 신경 쓰기엔 회의실 쪽이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안 그래도 이수혁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간부들이 많아서 그것만 생각하면 김록수는 자다가도 가슴이 답답할 지경인데 행여나 저 때문에 또 꼬투리라도 잡히면 어쩌나 초조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이쯤까지 생각이 미치면 최정수 말대로 정말 제가 뭐 큰 잘못이라도 한 것만 같아 은근히 후회가 밀려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기에도 무엇한 일상이다. 이수혁과 최정수가 꼭 참석해야하는 회의에 같이 들어가 있는 사이 크게 다친 센티넬이 있었는데 그의 가이드가 몹시 지쳐있는 상태이니 잠시 봐줄 수 없냐는 요청이 김록수에게 들어온 것이다. 김록수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 일을 수락했다. 위험한 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위중한 상태의 센티넬을 여럿 가이딩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수혁이나 최정수가 전투를 하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센티넬 한 명 가이딩 하는 정도는 김록수에게는 정말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록수는 평소처럼 이수혁과 최정수가 모르게 해달라는 단 하나의 조건을 걸고 가이딩을 위해 나섰다. 별 것도 아니었고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평소처럼 무사히 가이딩을 마치고 왔다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그런 평범한 일이었다.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였던 센티넬이 김록수의 가이딩을 받다가 갑자기 흥분해 김록수에게 달려들어 버린 것.

문제의 센티넬은 평소 워낙에 자기 컨트롤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센티넬이었고 록수와도 가깝게 지내던 이라 김록수는 물론이고 이렇게 불시에 벌어지는 예외 상황을 대비해야할 의무가 있는 이들까지도 다소 방심해있던 것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는 순식간에 김록수의 손목을 붙들어 벽에 밀어붙였고 다른 손으로는 록수의 옷을 찢으며 거칠게 목에 이를 세워 기어코 피를 내고 말았다. 센티넬에게 붙들린 데에다 벽에 부딪힌 손목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오른 건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제야 다른 센티넬들이 달라붙어 두 사람을 떼어놓았고 록수의 상처 역시 금방 치료를 하긴 했으나 이정도 사태가 되었을 때는 김록수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이수혁과 최정수의 귀에 들어가는 일을 막을 길이 없었다.

본래 다친 센티넬을 가이딩 하는 일은. 특히나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파트너가 아닌 타인을 가이딩 하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해서 몹시 위급하거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제 3의 가이드에게 부탁하지 않는 것이 불문이었다. 하지만 김록수의 능력은 언제나 사람들도 하여금 다소 무리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부탁하게 만드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김록수니까. 김록수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니까. 김록수가 처리하면 더 빨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실은 그를 보호해야 하는 관리자의 입장에 선 이들은 자꾸만 김록수를 치트키처럼 쓰려고 했고 타인을, 그것도 함께 전장에서 싸우며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지키는 동료들을 돕는 일이라면 도무지 거절하려 들지 않는 김록수의 성정 역시 그들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수혁은 이런 일들에 대해 상부에 여러 번 경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김록수에게도 계속해서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으나 둘 중 한 쪽도 이수혁의 경고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오늘 결국 이러한 사단이 나고야 만 것이다.


“…팀장님!”


그 때, 저만치 복도 끝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이드인 김록수는 물론이고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모를 수가 없는 센티넬 제로, 이수혁의 기운이다. 김록수는 답지 않게‘님’소리씩이나 붙이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잔뜩 찡그린 인상이며 어마무시하게 피어오르는 기운이며 보통 심사가 뒤틀린 게 아닌 모양이라 뭐라고 제일 먼저 말을 꺼내야 할까 머릿속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최정수를 제외한 이들은 이미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


오자마자 록수를 크게 나무랄 거라고 여겼던 이수혁은 말이 없었다. 그저 엄청나게 화를 참는 얼굴로, 그러나 더없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쳤던 록수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기만 할 뿐이다.


“팀장…”


록수가 다시 그를 불렀다. 여전히 대답이 없는 이수혁은 이번엔 손을 들어 김록수의 목 언저리를 더듬거린다. 이수혁은 문제의 센티넬이 김록수에게 달려들던 장면이 녹화된 영상을 봤다. 새카맣게 어두워진 이수혁의 눈동자에 감히 자신의 가이드의 목에 이를 세우던 이의 모습이 맺혔고 그와 동시에 김록수는 저의 목덜미를 붙들고 강하게 끌어당겨 입을 맞춰오는 이수혁을 느꼈다.

이수혁의 뜨거운 혀가 다급하게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드물게 난폭한 움직임이다. 두 명의 센티넬을 감당해야 하는 김록수의 부담을 그들은 언제나 걱정했기 때문에 이수혁은 물론이고 최정수도 김록수에게 스킨십을 할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하려 노력하는 이들이었으나 이 순간 이수혁은 그런 배려를 할 여유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갑작스럽게 숨이 막힌 김록수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지만 그 움직임이 오히려 이수혁을 더 자극한 건지 허리를 바싹 감아 당겨 안는 수혁의 목 안쪽 깊은 곳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김록수의 온몸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건 김록수가 이수혁에게 겁을 먹었다기 보단 인간으로서의 본능으로 느낀 두려움에 가까웠다. 수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김록수는 곧바로 제 기운을 열어 이수혁에게 천천히 보내기 시작했으나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제로의 기운을 감당하는 건 아무리 천하의 김록수라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 뒤를 쥔 이수혁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여린 입안의 살을 헤집는 움직임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 움직임은 매우 노골적으로 성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마치 제 구역에 영역표시를 하는 맹수의 집요함까지 담겨있어 그 모든, 너무나 강해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수혁의 기세에 록수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던 순간. 그런 김록수를 뒤에서 당겨 이수혁으로부터 떨어트리고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선 건 그 때까지도 가만히 이수혁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최정수였다.


“뭐야, 이 새끼야.”


갑자기 김록수를 놓친 이수혁이 멀어진 거리만큼 황급히 다가서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으나 최정수는 지지 않고 마찬가지로 저의 기세를 끌어올리며 한손으로 이수혁의 멱살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 이수혁. 뭐하는 짓이야, 애한테.”


평소 팀장, 팀장, 하고 제멋대로 불러 이수혁에게 곧잘 건방지다는 말을 듣곤 하는 김록수와는 달리 최정수는 이수혁에게 꽤 깍듯한 편이었다. 그게 이수혁을 어려워한다거나 하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거나 말을 놓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 최정수가 이수혁에게 이렇게 날을 세우고 말을 거칠게 하는 건 오로지 그 이유가 김록수에게 있을 때뿐이었다. 두 사람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로 허공에서 부딪혔다. 오죽했으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던 이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안을 다시 들여다볼 정도였다.


“록수가 니 기분 풀어주는 애야?”


하지만 최정수가 여전히 살벌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했을 때. 김록수가 너에게는 단지 그런 애냐고. 니가 열 받고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고 멋대로 당겨서 입 맞추고 몰아붙여도 되는 그런 애냐고 최정수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김록수는 순간 빛이 어린 이수혁의 눈동자가 천천히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김록수는 거기에 서서 온갖 독점욕과 소유욕, 질투와 분노로 가라앉아있던 눈동자에 천천히 제가 익숙한 애정과 온기가 돌아오는 걸 빠짐없이 보았다. 이윽고 이수혁이 터질 듯 퍼져나가던 기운을 갈무리하곤 다시 최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정신 차렸어, 이제.”


최정수가 기세를 풀지 않은 채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이수혁을 살피자 수혁이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잠깐… 잠깐 미쳤었나보다.”


고개를 푹 숙인 수혁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모두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기운이 어려 있던 어깨에 금세 죄책감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한번만 더 록수한테 이딴 식으로 굴면 저도 안 참습니다. 록수한테 사과하세요.”


그제야 마찬가지로 기운을 갈무리한 최정수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제 뒤쪽에 서있는 록수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최정수는 진심으로 이수혁을 존경했고 때때로 전장에서의 그를 두렵다고 느끼기도 할 정도로 존경하며 경외하기도 했지만 김록수를 제 등 뒤에 두고 있을 때의 최정수는 그 누구의 앞에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설령 그게 이수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수혁이 최정수를 받아들인 것 역시 정수의 그런 점과 관련이 깊었는데 최정수라면 이수혁이 혹시라도 눈이 완전 돌아버려 날뛰더라도 김록수를 절대로 위험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록수를 위해서라도 제게 칼을 들이미는 일도 서슴지 않을 최정수를 이수혁은 믿었고 실제로 정수는 늘 그래왔다. 바로 지금처럼.

정수의 말에 숨을 몇 번 몰아쉬며 스스로를 진정 시키던 이수혁이 천천히 록수를 향해 다가왔다.


“미안하다, 록수야. 내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게, 록수야. 정말 미안해.”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어깨가 쪼그라들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위축된 모습이다. 살갗을 따끔거리게 만들던 두 센티넬의 기운이 사라지자 그제야 마찬가지로 숨을 좀 돌린 김록수는 그런 이수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이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어야 할 사람은 김록수였을 것이다. 록수는 애매한 죄책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잘못한 거 알았으면 됐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하지만 아무리 원인 제공을 자신이 했다고 해도 저를 마치 겁박하듯 붙들어 멋대로 혀를 밀어 넣고 폭력적으로 기운을 쏟아내던 이수혁은 아무리 매사 덤덤한 김록수에게도 상처라서.


“절대. 절대 안 그럴게.”


이수혁이 부드럽게 손을 뻗어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김록수를 당겨 품에 안고는 티내지 않으려 애써도 놀라고 아팠을 게 뻔한 김록수의 등과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준다. 비로소 이수혁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김록수는 생각했다. 고작 이정도의 일에 상처를 받다니 도대체 자신의 마음은 언제 이렇게까지 나약해진 걸까. 제 눈앞에서 저에 대해 갖은 욕설을 내뱉는 아이들 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아 학창시절 그를 괴롭히던 무리에게 독종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김록수였다. 그랬던 자신이 고작 이만한 일로. 다만 이수혁이 잠시 화가 나서 저에게 조금 거칠게 대했다는 그만한 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가슴이 따끔거렸다니.


“저한테도 빨리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했다고도 말해요! 형 저한테 빚 하나 진 겁니다!”


그 사이 언제 이수혁에게 날을 세워 대치를 했냐는 듯 순식간에 목소리를 가볍게 털어낸 정수가 수혁과 록수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며 애처럼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그래, 고맙고 미안하다, 최정수. 이수혁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정수의 머리를 쓱쓱 헤집었고 록수는 그런 이수혁과 그제야 예의 제 모습처럼 웃음을 터트리는 최정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건 아마도 전부 저 두 사람의 탓일 거라고. 제가 이토록 나약해지고, 물러졌으며, 이토록 쉽게 감정에 휘둘리게 된 건 전부 저 두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 세상의 모든 거칠고, 아프고, 힘든 일들로부터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켜주고 있어서. 나쁜 것이라곤 그 무엇도 김록수에게 닿을 수 없게. 그렇게 온몸으로 저를 안아주고 있어서 이리 된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들이 자신을. 한결 같이 너무나도 사랑해줘서. 그래서.

생각만 해도 손끝이 저릿거리고 목 뒤가 슬쩍 달아오르는 여전히 낯설기만 한 감정에 김록수는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김록수로서는 여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 애정이 피할 수 없는 한여름의 태양처럼 쏟아져 내렸다.

 

 

* * *

 

 

“최정수. 널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수혁은 진심이었다. 아직 어리단 핑계도, 제가 구해낸 센티넬이라는 방어막도 더 이상은 소용없었다. 이수혁은 자꾸만 저와 김록수 사이를 파고들어 록수의 곁에 어떻게든 머물려고 하는 이 맹랑하고도 겁 없는 센티넬을 더는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닌 척을 해도 김록수는 마음이 약하고 다정한 녀석이다. 눈앞의 센티넬은 록수의 바로 그런 점을 아주 명확하게 간파해서 - 사실 김록수를 아주 조금이라도 지켜봤다면 간파하기 어려운 사실은 아니겠으나 - 몬스터로 인해 한 순간에 가족을 전부 잃은, 그렇게 세상천지에 홀로 살아남아 센티넬로 각성하여 자신의 폭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려 했던 자신의 이야기로 대놓고 김록수의 동정과 연민을 애처롭게도 구걸하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물론 그 처지가 이수혁이라고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가 센티넬로서 안정이 될 때까지 돌보아주고 싶은 마음은 그 역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최정수가 제멋대로 김록수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을 열고 자리 잡아도 괜찮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정도면 너도 이제 니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이제 그만 알짱대고 김록수 앞에서 꺼져라. 좋은 말로 할 때.”


부러 과격한 말을 사용했다. 이수혁은 김록수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했던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이수혁에게서 김록수를 빼앗아가고 싶어 수작질을 해왔던 이가 어디 최정수 하나뿐이었을까. 김록수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자꾸만 뒤흔드는 존재였고 그건 비단 그의 가이딩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절대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인의 안위가 아니면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척을 하지만 사실은 주변의 모두를 마치 제 안위처럼 챙기려드는 것을 한 번 눈에 담은 사람이면 누구든 쉽게 그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자신을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이라 진심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갉아내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그를 온몸으로 끌어안아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마치 본능처럼 터져 나왔고 그들 중 일부는 그저 김록수의‘동료’로 그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어떻게든 그를 자신의 가이드로, 자신의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수혁에게는 최정수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수혁은 이런 놈들을 말로, 말이 안 되면 행동으로 단념 시키는 법을 알았다. 이수혁에게는 그런 힘과 권력이 모두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정수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이수혁이 강하게 나오면 강하게 나올수록 더 집요하게 곁을 맴돌았다. 다른 이들이 김록수를 가지고 싶어 안달하면 안달할수록 이수혁에게 반항했던 것과는 달리 최정수는 김록수는 물론이고 수혁에게도 더없이 친근하게 굴며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것을 종용했다. 이수혁이 생각했을 때 그건 무턱대고 이수혁에게 살기를 감추지 않은 공격을 감행했던 어느 센티넬보다도 더 죄질이 나빴다. 수혁이 훈련을 핑계로 최정수의 몸을 아작 내놓았을 때도 최정수는 다른 이들처럼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더 큰 복수심에 이를 가는 대신 혀엉,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빨리 약 발라줘요오- 하고 눈꼬리를 늘어트리며 애교를 부려대는 것으로 김록수의 마음을 샀다. 과연 천하의 이수혁이 처음 제대로 만난 적수라고 할 만큼 대단한 처세였다. 그러는 사이 김록수는 어느새 최정수가 자신들의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이제는 오히려 자신보다 이수혁이 더 최정수가 가까운 사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으니 이수혁으로서는 제대로 한 방을 먹은 셈이다.


“마지막 경고다. 김록수는 내 꺼야. 너 같은 새끼가 끼어들 틈은 없고 너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어. 너 하나 어떻게 해버린다고 내가 모래알만큼이라도 타격을 받을 것 같아?”

“…형.”

“내가 왜 니 형이야.”


만약 김록수만 아니었다면 이수혁은 최정수를 몹시도 아꼈을 것이다. 제 팀원으로 두고 모든 것을 직접 돌보고 가르쳤을 게 분명했다. 수혁은 바로 그런 점이, 최정수가 정말로 무서운 이유라고 생각했다. 감히 김록수를 욕심내고도 최정수는 이수혁에게 이만한 인정을 받은 놈이다. 생글생글 무해하게 웃는 얼굴과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고 호감을 사는 성격으로 최정수는 이수혁을 이만큼이나 무너트렸다. 더는 안 될 말이다.


“이수혁 팀장님.”


그 때 수혁은 문득 정수의 얼굴에서 어느 샌가 미소가 사라졌음을 알아챈다. 이수혁이 아무리 욕을 하고 어렵게 굴어도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던 것과는 달랐다. 그래. 그게 네 본모습이겠지. 이수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비릿하게 웃었을 때 최정수가 말을 이었다.


“팀장님은 스스로의 이성을 얼마나 자신하십니까?”

“뭐?”

“애초에 인간 자체가 지나치게 감정적인데 그런 존재가 센티넬로 각성했을 때는 얼마나 불안정한지 누구보다 팀장님은 잘 알고 있겠죠.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가이드가 필요한 거구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최정수가 한 걸음,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수혁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지나치게 깊고 어두웠다. 저도 모르게 수혁이 마른 침을 한 번 삼켰고 최정수가 여전히 말했다.


“김록수는 또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쉽게 쥐고 흔듭니까. 록수의 가이딩 능력이야 세계 최고라고 불릴만하지만, 팀장님.”

“…….”

“팀장님도 잘 알잖아요. 가이딩이 문제가 아니라 걔가 그냥 사람을 진짜 미쳐버리게 만든다는 거.”


최정수의 그 말을 들으며 이수혁은 김록수를 볼 때마다 제가 느끼는 무어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은 모든 격렬하고도 파괴적인 감정들을 떠올렸다. 수혁은 그의 하나뿐인 가이드를 진심으로 아꼈고, 사랑하였으며,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수혁은 이따금. 이따금 김록수를 보면 그는.


“이수혁.”


수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부 다 알고 있다는 듯, 최정수가 서늘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최정수를 바라보고만 있다. 수혁의 앞에서 감히 김록수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는 겁 없는 어린 센티넬이 말했다.


“그런데 너는 절대로 네가 김록수를 해치는 일이 없을 거라고.”

“…….”

“정말 그렇게 장담할 수 있어?”

“너… 너 이 새끼…!”


이수혁은 엄청난 기세로 손을 뻗어 최정수의 목을 쥐어 그를 위협했지만 정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로 말을 잇는다.


“만약 네가 스스로 너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면 누가. 도대체 누가 센티넬 제로인 너를 막아서서 김록수를 지켜줄 수가 있지?”


김록수는 연약했고 이수혁에겐 힘이 있었다. 이수혁이 가진 힘이란 비단 그가 가장 강한 센티넬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는 김록수를 고립시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인형으로 살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의 유일한 센티넬 이고픈 욕망이 김록수와 함께 하면 함께 할수록, 타인에게 향하는 그의 수많은 다정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어떤 식으로 어두워지고 변질되어가고 있는지 이수혁은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수혁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수혁은 자신의 소유욕이나 독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망가트리는 그런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최정수의 말대로 인간은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고 센티넬은 더더욱 그러했다. 만약에라도.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미쳐버리면. 정말로 이성이란 것을 상실해 김록수를 다치게 해서라도 제 곁에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면. 가이딩 중에 폭주라도 해서 김록수에게 제멋대로 거칠고 강압적으로 굴게 되어버린다면.

그 땐 누가 과연, 이수혁으로부터 김록수를 지킬 수 있는가.

정수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수혁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 그건 사실 최정수가 말해서 일깨워준 사실이라기 보단 김록수를 만난 이후 언제나 이수혁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두려움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게 가이딩을 받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도 애처로운 존재인지를 실감하면 실감할수록. 그래서 김록수를 향한 애정이 크기를 키우면 키울수록 두려움도 함께 커졌고 이수혁은 그걸 알면서도 줄곧 외면해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핏덩이와도 같은 어린 센티넬이 그런 이수혁을 향해 똑바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얼마나 김록수를 사랑하는 지와는 상관없이. 아니, 네가 김록수를 사랑하면 할수록. 너는 그를 더없이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형. 수혁이 형.”


수혁의 손에서는 힘이 빠짐과 동시에 최정수는 다시금 이수혁을 존경해 어쩔 줄 몰라 하던 예의 그 얼굴과 목소리로 돌아와 말했다. 아까부터 꽉 쥐고 있던 정수의 손바닥에 손톱 모양의 상처가 생겼다. 이수혁의 앞에서 한껏 여유로운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초조하고 두려운 건 정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수혁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최정수는 결코 김록수의 곁에 남아있을 수 없다. 이수혁에게서 김록수를 빼앗는다는 건 말 그대로 완벽하게‘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수혁에게 맞거나 죽는 것쯤은 차라리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으나 그가 이대로 자신을 김록수로부터 완전히 떼어내 평생토록 절대 마주치지조차 못하게 만들까봐 두려웠다. 단지 그가 최고의 가이드여서가 아니라, 최정수는 이제 김록수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록수는 최정수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를 독점하고 싶은 이 저주와도 같은 열망을 스스로 끊어내며 이수혁의 앞에서 구걸이라도 하여 얻고 싶은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 정수는 저도 모르게 여전히 제 목을 약하게 쥐고 있는 이수혁의 옷자락을 붙들며 말한다.


“함께 있게 해주세요.”

“…….”

“어차피 저는 록수를 다치게 할 수 없어요. 형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형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가… 목숨을 걸고서… 형, 제발…”


최정수는 이미 최고 등급 판정을 받았다. 센티넬 제로를 제외하면 그 어떤 센티넬도 최정수를 무시할 수 없었고 그건 다시 말해 최정수의 삶이 누구에게도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도록 고정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한민국 최고로 불리우는 센티넬 두 명이 손 한 번 뻗으면 죽일 수도 있는 가이드 하나를 두고 혹시나 그를 잃을까, 다치게 할까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형이 김록수를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막을 테니까… 제발…”

“…….”

“제발 저를 받아주세요.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무엇이든 할게요…”


태연을 가장하고 있던 최정수가 이윽고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어떤 협박을 하고 밀어낼 때에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던 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고 있는 것을 이수혁은 아주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수혁은.

김록수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혹시나 제가 그를 다치게 할까봐 언제나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치고 있던 이수혁은.

그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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