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악! 늦었잖아! 바보아버지!”


여느 때와 같이 타니가의 아침은 치아키의 외침으로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른 것은 아버지가 새벽같이 나간 덕분에 날아오는 비웃음 소리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씻는 것과 볼일을 동시에 보는, 재빠른 몸놀림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습관적인 행동 덕분에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늦은 것은 늦은 것이었다.


셔츠를 입고 후드 집업과 교복 자켓에 한꺼번에 팔을 우겨넣은 채 정신없는 와중에도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늦게 일어났지? 아무것도 못 먹고 갈 것 같으니까 점심이라도 든든히 먹어라. 지각은 안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식탁 위에는 쪽지와 용돈만이 있었다. 바쁘면 식빵이라도 놓고 가는 아버지였기에 아버지 역시 지각 위기였구나, 하고 생각하는 치아키였다.


“그리고 한마디가 더 많아. 바보아버지.”


누구 들으라는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치아키는 간만에 생긴 두둑한 용돈에 입가가 비죽 올라갔다. 쪽지와 용돈을 자켓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거울을 봤다. 늦은 건 늦은 거라지만 그래도 온통 눌린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갈수는 없었기 때문에 머리를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 치아키의 발밑에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엇, 언제 일어났어!”


평소에는 빠릿빠릿해서 치아키를 지각의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해주었지만, 겨울만 되면 모티브가 된 동물처럼 몸이 둔해지는지 치아키와 같이 늦장을 부리는 곰 오리가미가 그의 발을 톡톡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 처음 보는 수첩 하나를 떨궜다. 계속 보라면서 툭툭 그의 다리를 치는 것이 귀여워 치아키는 머리를 만지던 것도, 지각의 대 위기라는 것도 잊고 곰 오리가미를 집어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뭔데 그래?”


곰 오리가미가 찾아온 것은 오래된 것 같은 녹색의 수첩이었다. 그리고 표지에서 익숙하지 않은 글씨체가 보였다. 의외로 유려한 아버지의 글자와는 달리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자로 육아수첩이라고 적혀있었다. 팔랑, 첫 장을 넘기자 그곳에 어머니의 이름과 함께 타니 치아키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녀의 아이 타니 치아키라고 적혀있었다. 치아키는 잠시 그 글자를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글씨체였다. 머쓱한 기분이 들어 어정쩡하게 서있던 포즈를 바꾸어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것을 보자마자 학교는 이미 잊어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치아키는 자리 잡고 앉아 수첩을 든 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가 적혀있었다.


육아수첩을 받아온 날, 알아보지도 못하겠는 초음파사진, 동글한 그녀의 글씨로 적혀있는 하루하루의 일기, 한번도 직접 듣지 못했던 태명, 발길질이 심했다는 이야기와, 소소한 기도, 몸을 뒤집어 거꾸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출산하기 며칠 전에 다행스럽게도 다시 제 상태로 몸을 돌렸다는 안도.


넘기는 한 장 한 장에 그녀의 손길이 묻어나있었다. 소담하게 적혀져있는 글씨와 날짜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고등학생의 남자애에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겨웠다.


“이것봐. 이게 나래. 응? 이게 나래.”


눈물을 막아 내듯이 억지로 큭큭거리면서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곰 오리가미가 그의 어깨로 타고 올라와 끼잉거렸다. 치아키는 곰 오리가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곳곳에 일기가 아닌 짤막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철학자의 문장, 아버지가 좋아하는 책에 적혀있던 시문과 몇몇가지 태아를 향한 당부와 걱정의 말이 짤막하게 적혀있었다.


언제나 밝은 아이이기를.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넓은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누구보다도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


보통은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이었다. 몸이 약한 그녀가 당부하듯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적어 둔 것이었다. 자신이 계속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도를 하듯이 적어둔 그것에 치아키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인 것도 아니었고, 어릴 때는 아버지가 많이 이야기 해주었었다. 캠코더 속의 어머니도 보았었다.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불행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불행하지도 못나지도 않았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가신이었던 것처럼, 친구들과는 약간 다른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그것은 그저 생각지도 못했던 카운트 펀치였다.


그 갑작스런 펀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치아키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어머니 모임 때 아버지가 왔던 때보다 더, 친구들이 싸오는 맛있는 도시락을 보면서 아버지가 싸준 맛없는 도시락을 먹었을 때보다도, 애들끼리 싸우다가 울면 달려와서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를 볼 때보다도 더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위로하듯 머리카락에 고개를 비벼대는 곰 오리가미를 손에 잡아 안아들면서 치아키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그저 어머니의 모성애를 수첩에서나 느낄 수 있었기에 생겨난 그리움이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도 곰 오리가미도 함께 했었기 때문에 그리 그는 외롭지 않았었다.

늘 아버지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었다. 엄마가 없다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싸울 수 있도록, 혼자가 아니라는 힘을 준 곰 오리가미도 있었다.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비록 가신이 되어야해서 여러모로 훈련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그것마저도 즐거웠었다.




과거를 잠시 회상했던 치아키는 다음 장을 넘기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눈에서 불똥이 튀기는 경험을 했다. 날짜는 바뀌어있었고 글씨체도 바뀌어있었다. 어머니의 글씨가 아닌 아버지의 글씨였다. 그리고 띄엄띄엄 날짜가 건너뛰어져 있었다. 치아키를 화나게 한 것은 단순히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 바보아빠가!”


분노하듯 으득거리는 치아키의 반응에 곰 오리가미는 그의 품안에서 버둥거렸다.


뽈뽈거리면서 기어가다가 마루에서 떨어진 날. 이라고 적혀있는 처음의 글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강아지의 밥그릇에 있는 음식을 같이 주어먹으면서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있었고, 오줌싸고 벌 받았던 날의 일기는 아주 자세하게도 무슨 이불에 얼마만큼의 지도를 그렸는지에 대한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나무에서 앵두를 딴다고 작은 플라스틱 사다리를 끌고 와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진 일, 정글짐 꼭대기에서 거꾸로 떨어졌던 일, 수영 배우게 한다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구해주지도 않고 사진 찍었더니 며칠 동안 말도 안하더란 이야기.


짤막하게 적혀있었지만 몇개는 자신도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치아키가 수첩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욱, 숨을 내쉬면서 치아키는 차근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머니의 글씨가 있는 수첩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 검을 잡은 날의 일기는 제법 진중했다. 작은 목검을 보자마자 버둥거리면서 그 검을 잡고 놔주지 않더란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꽤나 진중하고 상세하게 적은 그 날 다음엔 글씨공부 하기 싫다고 온 벽을 손도장을 찍어 논 일, 이내 검술에 실증을 느낀 아이를 위해 사극 드라마를 틀어줬더니 검술보다는 주군님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눈을 반짝이던 일이나, 그 사극 드라마 배우를 쫒아가려고 했던 일은 그 배우의 사인지와 함께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까지 껴서 셋이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목검을 들고 골목대장을 때리러 갔다가 맞고 들어 온 일도 적혀 있었고, 처음 어려운 한자어를 읽었을 때는 천재가 아닐까? 아이큐 검사를 해야하나! 설레발을 치다가 아이큐가 평범하게 나와서 실망한 팔불출 같은 글도 적혀있었다.


본래 얼굴이 사진과 캠코더 속의 얼굴 밖에 모르는 어머니보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지만 아버지의 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하루하루 적은 것이 아니라 정말 기억에 남는 일만을 한 달에 한 두 번 씩 적어 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일기는 어머니에게 보고 하듯이 적어 놓은 글이었기에 치아키는 의외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는 무뚝뚝하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기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다. 바로 일주일 전 우드 스피어를 디스크에서 뽑아낸 성공의 날의 글도 적혀있었다. 치아키는 아버지가 자신의 일을 의외로 잔뜩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의 일기였건만 어째서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은 아버지의 기분도 알 것 같았다. 수첩 앞엔 육아수첩이라고 적혀있었지만 그것은 어재부터인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을 주제로 서로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다. 남에게 보여주기 힘든 물건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주제가 된 자신에게는.


치아키는 수첩을 닫았다. 새삼스레 아버지의 사랑을 무뚝뚝한 글씨에서 느꼈다고 인정하기엔 굉장히 낯부끄럽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보지 않은 척 곰 오리가미가 꺼내온 곳에 되돌려 놨다.


“애들도 아니고. 교환일기 같은 건 졸업을 하란 말이지.”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킨 치아키는 기지개를 펴 찌뿌둥한 기분을 날려버렸다. 괜한 것을 봤다는 생각과 그래도 보길 잘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학교!”


이미 시계는 등교시간보다 훌쩍 넘어가 있었다. 어차피 대학수험도 끝이 나서 학교는 자유롭게 오갔으니 하루정도 빠지는 것에 의미를 두진 않는다. 까지 생각한 치아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밖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땡땡이나 쳐볼까?”


두둑한 용돈도 받았으니 오늘은 신나게 놀고 저 수첩의 일을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오락실은 즐거웠고 간만에 산 고기만두가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고기만두를 꿰었다. 못 먹게 된 만두의 미련을 주면서 치아키는 곰 오리가미를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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