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는 취업 석 달째, 본인의 위치가 굉장히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닥터는 절대 아니고, 물리치료사라고 하기에도 좀 그랬다. 물론 처음에 집에 전화해서는 엄마 그 김태형 알지, 어, 엄마가 아들 삼고 싶다던, 어, 나 그 사람 전담 물리치료사로 취직했어, 진짜야, 뭘 사기를 당해, 얼굴 직접 보고 계약했는데, 아니야, 몰라, 내가 마음에 든대, 진짜거든?

하여튼 윤기는 고민했고, 태형에게 말했다. 태형아, 난 뭐야? 너무 모든 것을 빼고 물었는지, 태형은 수줍게 대답했다. 형 내 애인이지. 어? 응? 내가 네 애인이라고? 영원 같은 찰나의 침묵 후에 태형은 아, 형은 물리치료사 겸 매니저지. 다시 대답했고, 울었다.

 

형,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

 

pool!

 

윤기는 팬사인회 스케줄을 싫어한다. 운동선수인 태형에게 딱히 도움은 되지 않는 일이면서 수백 명에게 사인해주느라 어깨에 무리는 있는 대로 간다. 통증 때문에 훈련을 줄이는 판에 팬사인회를 하고 있어야 한다니. 자본주의란 뭘까? 가만히 서서 식품류는 선물하실 수 없어요, 카메라 플래시 꺼주세요, 만 반복하던 윤기를 흘끗 올려다본 태형이 웃는다. 장내 정리를 위해 사인회가 잠시 중단된 틈을 타 한숨 쉬던 윤기도 태형을 본다.

“…웃음이 나오냐.”

“계속 웃어야죠, 인성 논란 안 터지려면.”

“어깨 괜찮아?”

윤기가 팬들을 등지고 태형의 앞에 마주 보고 서서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뭉친 승모근을 살살 주무르자 태형의 미간이 구겨진다. 아퍼. 아퍼? 응. 잠깐 들어가서 테이핑 다시 할까? 응, 고개를 끄덕이는 태형을 보고 진행 스태프에게 조용히 말한다. 김태형 선수 여기 정리되는 동안에 안에서 십 분 정도만 휴식 취하고 나올게요.

작은 대기실로 들어와 가방을 뒤진다. 티셔츠 좀 벗어 봐, 테이핑하게. 에흉, 소리 낸 태형이 윤기를 품에 안는다.

“아, 뭐야. 빨리. 시간 없어.”

“테이핑 안 해도 돼. 쫌 있으면 끝나는데 뭐.”

“…힘들지.”

“응. 사람도 너무 많고…, 어깨도 아프고, 오래 앉아 있어서 골반이랑 무릎도 아파.”

“팬사인회 같은 건 안 하면 좋을 텐데.”

“안 돼, 민윤기 먹여 살리려면 광고 찍고 모델 하고 이런 것도 해야 돈 많이 벌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능청스러운 대답에 웃음이 터져 윤기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는다. 윤기가 손목에 붙은 시계를 한 번 보고 태형의 얼굴을 잡아 키스한다. 짧게 섞이고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입맛을 쩝쩝 다시던 태형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나 다 봤어.”

“뭐를?”

“나한테 선물하겠다고 얼굴 다 가리고 와서 음료수 주려던 사람들. 그 음료수 다 뚜껑 열려 있었던 거.”

“…아.”

“다 잡았어?”

“응, 나가는 대로 다 따라가서 잡았어.”

“나를 왜 싫어할까? 왜 나한테 이상한 거 먹이려고 할까? 난 그냥 잘생겼고 수영을 잘하는데. 내가 우리나라에 금메달도 엄청 따다 줬는데.”

“그래서 그럴걸. 괜찮아, 내가 다 죽일게.”

으흐흥, 웃고 윤기의 입술에 쪽쪽, 입술을 두어 번 붙였다가 뗀다. 윤기가 태형의 어깨를 주무른다. 다시 나가볼까. 으응. 윤기가 먼저 일어나 손을 내민다. 태형이 하얗고 마른 손을 잡고 소파에서 일어난다.

“…윤기야.”

“응?”

“도망갈까?”

“…태형아.”

“아냐, 돈 쫌 더 벌고 가야지. 저녁에 같이 수영장 가자.”

“…그래.”

태형이 문고리를 잡는다. 윤기가 반대쪽 손을 잡는다.

“태형아.”

“응?”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알지?”

“알지.”

태형이 입술을 쭉 내민다. 윤기가 똑같이 입술을 쭉 내밀어 쪽, 뽀뽀한다.

“근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두 알어.”

태형이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연다. 플래시가 터진다. 사인회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플래시 터뜨리지 마세요-. 태형이 웃는다. 괜찮아요.

 

***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태형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딸 것이다. 아니, 따야만 한다. 그냥 메달도 아니고 금메달. 타고난 신체 조건의 한계인 건지, 대한민국은 수영 불모지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다 갑자기 김태형이 나타났고, 국민들은 수영선수 김태형을 뭐, 선물이라고 불렀다. 살기 팍팍하고 힘든데 갑자기 신의 선물처럼 뚝 떨어진 김태형이 금메달을 뚝뚝 따다 주니 웃을 일이 생긴다며. 세상은 김태형 선수에게 마린보이니 뭐니 하며 우리의 마린보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주제가까지 만들었다. 응원가가 아니라, 예수에게 부르는 할렐루야 같은 노래. 대단한 우리의 마린보이 신의 선물 김태형은 대한민국에 영원히 꿈과 희망을 가져다줄(금메달로) 존재라는 내용을, 어떻게 잘 풀어낸 노래다.

말도 안 된다.

수영 국가대표 김태형 선수는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김태형은 금메달을 뚝뚝 따가지고 오는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 수영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 국가대표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싶어 수영장에 학창시절이니 뭐니를 전부 바쳐 국가대표가 되었다. 탈골된 어깨를 끼워 맞추고 늘어난 인대를 다잡으며 훈련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태형은 최근 광고 하나를 더 계약했다. 자동차 광고다. 물론 모든 광고가 그렇듯, 자동차보단 태형을 광고한다. 모델 계약 기사가 나간 후 태형은 또 악플에 시달렸다. 부상이니 뭐니, 훈련할 장소도 시간도 없다며 징징대더니 광고 찍을 체력과 시간은 있냐는 것이다. 태형이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도 악플 공격에 힘을 보탰다. 면허도 없는 게 돈 벌려고 광고나 찍는다. 지가 연예인인 것처럼 군다. 그 시간에 훈련이나 해라. 이래놓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못 따오면 국민 역적.

맞다. 태형은 돈 벌려고 광고 찍는다. 훈련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수영장을 빌려야 한다. 광고 계약금과 수익금은 거의 수영장 대여 비용으로 쓰인다. 그것도 운이 안 좋으면 어떤 날은 대여 못 하는 날도 있다. 또 호주로 전지훈련을 갈 때도 있는데, 그 비용이, 어마어마한데, 대부분 선수 본인 부담이다. 광고 안 찍으면 그 시간에 쉬거나 훈련할 수 있고, 팬사인회 같은 거 안 해도 되고, 무서운 대중 앞에 서지 않아도 된다. 김태형이라고 왜 훈련에만 매진하고 싶지 않겠는가. 못 하게 하잖아. 아무도 도와주지 않잖아.

국가대표인데.

당신들이 그렇게나 떠받드는 마린보이 김태형인데.

금메달도 따다 줬는데….

감은 양쪽 눈꺼풀 끝에 촘촘하게 박힌 속눈썹을 본다. 가끔 파르르 떨린다. 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 커다란 눈, 두 눈 사이로 높게 자리한 콧대, 균형 잡힌 입술, 단단한 턱…. 눈을 뜨고 있을 땐 더 잘생겼다. 무표정일 때는 정말 카리스마 있는 배우처럼 잘생겼고, 웃어도 잘생겼고, 울면 조금 웃겨지지만, 하여튼 뭘 해도 잘생겼다. 차라리 배우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운동선수이든 배우든 힘든 건 마찬가지이니, 돈 더 잘 벌고 운동선수보다 수명도 더 긴 배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잘 살았을 텐데.

괜히 억울해져서 하, 숨을 크고 짧게 뱉는다. 주먹을 쥐고 베개를 내리치고 싶은데 그러면 태형을 깨운다. 김태형 선수는 예민하다. 전체 기록도 그렇지만, 스타트 시간 기록에서 언제나 세계 신기록을 만드는 김태형 선수는 아마, 아까부터 깨어 있었을 거다. 순간 숨을 뱉어놓고 놀라서 합, 입을 다무는데 역시나 태형이 눈을 뜬다.

“왜 안 자.”

“…그냥….”

“생각 중?”

“…어.”

“무슨 생각?”

“그냥….”

“나쁜 생각?”

태형이 베개에 옆얼굴을 파묻고 윤기를 보다가 흐흐흥, 웃고 눈을 감는다. 윤기가 아래로 조금 내려간 이불을 끌어 올려 벗은 몸을 덮는다. 김태형의 벗은 몸도 덮고, 민윤기의 벗은 몸도 덮고. 벗은 두 다리가 이불 속에서 엉킨다.

“나쁜 생각, 힘든 생각 하지 마…. 그거 다 나 때문에 하는 생각이니까 그런 건 나만 할게….”

나른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웅얼대던 태형이 눈을 슬쩍 뜨고 윤기의 입술에 쪽쪽쪽 세 번 뽀뽀하더니 으흥, 웃고 다시 눈을 감는다. 꼭꼭꼭 세 번 눌렸던 입술을 한 번 안으로 말아 물었다 놓은 윤기가 눈을 깜박인다. 그러다가 눈을 감는다. 태형에게 눌렸던 입술이 이번엔 태형의 아랫입술을 누른다. 조금 열어서 아랫입술을 짧게 빨 듯이 뽀뽀하고 놓으면 태형의 팔이 등을 안아온다. 열린 입술 사이로 혀끝을 꾹 눌렀다가 날카롭지만 무딘 윗니 끝을 문지른다. 얕고 감질나는 움직임에 아랫배가 간지러워져서 태형이 몸을 더 붙이고 입술을 더 꼭 맞물린다. 윤기는 고등학교 때 치아 교정을 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안쪽에, 유지기라고 부르는 철사가 붙어있다. 손으론 만져봤는데 혀로는 못 만져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혀끝으로 그걸 문지르는 모양이 너무 괴상망측해서…. 윤기가 태형을 슬쩍 밀고 그 위로 엎드린다. 발기했지만 섹스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체온을 있는 힘껏 많이 붙이고 싶어서.

 

나쁜 생각 하지 말랬지만, 해야겠다. 김태형한테 나쁜 짓 하는 사람 다 죽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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