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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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무실 문은 일찍 여는 것이 재환의 습관이었다. 

재환이 저절로 떠진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찾았지만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벽시계를 보고서야 재환은 평소 기상시간과 비슷한 아침 일곱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시계가 너무 낯설었다. 시계 뿐만이 아니었다. 벽지, 천장, 이불, 침대... 그리고 침대 옆 바닥에서 자고 있는 사람까지?????

'뭐!? 사람?!!!!!!!!!!!!!!!!!'

소스라치게 놀란 재환이 경련을 하며 일어났다. 성인 남자 둘이 자기에는 좁은 싱글 사이즈 침대 때문인지 자신에게 침대를 양보한 남자는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는 불편한 상태로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남자는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자고 있는데도 성난 등근육이 참 군침을 돌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재환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게이라는 생각에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에 정신 없이 흩어져 있는 옷가지를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

"서... 설마... 내가... 워.. 원나잇을...?" 

남자의 허리 아래는 이불 밑에 가려져 있었지만 차마 들춰서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있는지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는 참새가 그려진 귀여운 박스티와 펑퍼짐한 트레이닝 팬츠가 입혀져 있었다. 

재환은 자신이 먼저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미쳤어 미쳤어 김재환 ㅠㅠㅠㅠㅠㅠ 지성이 형이 술 먹지 말라고 할 때 끊을 걸... 이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추태냐... 아니 근데 꽐라된 인간을 모텔도 아니고 자기 집으로 데려갈 정도면 저 놈도 얼마나 형편 없는 놈일까..." 

재환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박우진은 결코 쉽게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꽂히게 되면 후진을 모르는 돌진형이었다. 

어젯밤, 우진은 친구 성우의 승진 축하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함께 먹고 마시고 있었다. 성우가 화장실에 가서잠시 대화가 끊어진 타이밍에, 우진의 눈에 신기한 사람이 보였다. 불 앞에 앉아서 혼자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는 귀여운 남자였는데 간헐적으로 혼자 흐느끼다가 웃다가 할 때 작게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우진의 귓가를 자꾸 괴롭혔다. 무엇보다도 얼핏 보이는 몸의 선이 제법 취향이었다. 우락부락하지도 야들야들하지도 않고 딱 적당히 탄탄하고 적당히 말랑해보였다. 

잠시 후, 다시 성우가 돌아온 후에도 몇 번 더 그 남자를 바라보느라 숯불에 옷도 태워먹을 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우진은 성우와 함께 가게를 나서면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그저 스쳐지나갈 귀여운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운명 혹은 필연이었을까? 

자리를 옮겨서 3차까지 달린 후에 대리를 불러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잠시 빨간불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구역질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취한 듯한 그 남자가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헛구역질 중이었다.

"어어? 어디 가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어느새 차에서 내려서 그 남자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 

남자는 붉게 상기된 고개를 들어 우진이 누군지 파악하려고 열심히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상이 잘 맺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답할 정신도 없어 보이는 생판 모르는 사람. 그냥 이대로 가버려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우진은 절대로 즉흥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간밤의 자신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게 계속 뭔가에 이끌리듯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 

그 남자를 부축해서 함께 차에 오른 뒤, 자신의 집까지 데려온 것이다. 

'저 회사가 빨리와서 좋았는데 이제 못 부르겠네.'

끝까지 수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대리기사의 눈초리를 떠올리며 우진은 허탈하게 웃었다. 'ㅋㅋㅋ 술취한 사람 납치했다고 어디 가서 신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 남자를 옮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역시 핏이 좋아보였어." 남자를 등에 업으며 본의 아니게 허벅지를 감싸게 된 우진은 아무도 묻지 않은 소감을 입 밖으로 내다가 스스로를 타박했다. "박우진 이 미친놈아 자는 사람한테 뭔 변태 같은 생각이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담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키도 자신과 큰 차이가 없었고, 그렇게 안 생겨서는 무게도 꽤 나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 안까지 데리고 들어온 우진은 남자를 거실 소파에 앉혀놓은 채, 성우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잠시 베란다로 나갔다 왔다.

돌아온 우진을 마주한 것은 그 사이에 깨어난 남자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또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으악! 잠깐! 잠깐만요!"

아래에 받쳐주기 위해 우진이 서둘러서 대야를 하나 가지고 돌아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하아..."

우진은 사고를 쳐놓고는 잠든 남자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남자를 챙겨서 구토물을 치우고,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물을 먹이는 데까지 장장 30분 가까이가 걸렸다. 

원래는 덜 걸릴 수도 있었지만 막상 벗겨놓으니 옷 아래에 숨어 있던 몸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예뻐서 이성과 욕망이 싸우느라 꽤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처음에 후드티를 벗길 때는 무방비하게 잠든 사람을 덮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고, 얄쌍한 허리라인이 드러났을 때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고, 마지막으로 드로즈만 걸친 모습을 봤을 때는 살갖에 입술을 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꾹 참아낸 우진은 자신이 아끼는 참새 티셔츠를 꺼내서 남자에게 입혔다. 아랫도리를 갈아 입히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축구라도 했는지 묘하게 자신보다 더 튼튼한 것 같은 허벅지에 괜히 지기 싫어서 처음에 입혔던 반바지를 도로 벗기고는 허벅지를 완전히 가리는 트레이닝 팬츠로 갈아입히느라 그랬다.

자신을 그렇게 고생시킨 사람인데도 막상 갈아 입혀놓은 옷을 입고 새근새근 잠든 모습은 참 예뻤다.

"와... 성우가 알면 나보고 진짜 미친놈이라 그러겠다 ㅋㅋㅋ"

심지어 우진은 하나 뿐인 침대를 남자에게 양보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그 옆 바닥에 얇은 담요를 하나 깔았을 뿐이었다.

한참동안 잠든 남자의 얼굴을 감상하던 우진은 자명종 소리에 어느새 새벽 4시가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잠을 청했다.



그런데... 최소한 고맙다는 말은 해야하는 거 아냐?

우진은 눈을 떴을 때, 텅 비어버린 침대 위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내가 새벽에 그 생쇼를 했는데...'

하지만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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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편만 던져놓고 중단한 단편 리퀘가 많다고 펭귄님이 하도 그러셔서... 자 하나 썼으니 저는 또 3달 후에! (쳐맞)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녤른! 특히 윙녤에 환장하고 워너원 고루 아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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