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은 운이 좋은 날을 경계했다. 그런 날은 꼭 한 번씩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에, 불운이 늘 따라붙는 날이면 외려 안심하곤 했다. 소망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19년간의 경험이 뒷받침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확신하게 된 것은 지난 달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그 날, 항상 지각하던 우유 배달원이 제시각에 왔을 때 소망은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배달원이 터진 우유를 두고 가길 무릎이 갈리도록 빌었다. 그러나 바구니를 열었을 때, 멀쩡한 우유팩이 무려 다섯 개나 담겨져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소망은 차라리 기절하고만 싶었다.


 "이 지랄맞은 배달원 새낀 이럴 때만 꼭……."


 소망은 욕을 뇌까리며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오늘은 몸을 사려야 하는 날이지만, 그의 일은 하루 걸러 하루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런 일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시궁창 들쥐들이 떼로 덤벼들다 뭣모르고 죽는 그런 일. 번지르르한 도시의 불연소성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청소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깡만 있다고 시켜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자리에 9살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이나 버티고 있는 소망을 사람들은 '끔찍하게' 여겼다. 말그대로 끔찍하게.

 그는 혐오의 시선에 익숙했다. 간혹 침을 뱉는 미친 놈을 만나면 두 배는 더 미친 놈처럼 굴었다. 머리를 처박아도 도끼눈을 뜨고 개처럼 짖어댔다. 그러면 상대는 질겁하며 놓아주거나, 어떻게든 굴복시키려 지랄맞게 팼다. 하지만 끝내 비명 한마디조차 내지르지 않는 소망에게 질려 놔주곤 했다. 그래서 그는 주인 없는 들개처럼 떠돌아 다녔다. 어떤 운치 있는 깡패는 소망을 두고 얼룩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 그 깡패는 며칠 전에 죽었다.


 "아저씬 어쩌려고 거길 쳐들어 갔대?"

 "몰러. 미쳤나부지."

 "할매는 신경도 안 쓰였나 봐. 할매 두고 한 걸음도 못 떼는 척 하더니."

 "눈물이나 닦구 말혀, 기지배야."


 깡패는 제법 사람다운 쓰레기였다. 장례식장에서, 소망은 빈손으로 들어와 절만 하고 나갔다. 아무도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야 구석에 몸을 웅크린 노인과 소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망은 깡패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쓰레기장에서 장례식까지 열어줄 사람이 있다니. 그 소중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리고 우유에 뒤이어 몰려오는 불안감에 담배를 찾았다. 그런 드문 풍경을, 소망은 방금 운좋게도 목격한 것이다. 오늘은 대체 무슨 사고가 터지려는지.

 소망은 장례식장을 나서 곧장 일터로 향했다. 시비가 붙을 만한 얼굴들을 마주치면 무조건 피했다. 오늘 할 일은 병에 걸려 숨이 넘어가는 도련님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도시에선 심심찮게 있는 일이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부잣집에 운좋게 태어났지만 전염병에 걸려 결국 매장당하고 마는. 참 부질없이 살다 가는 인생이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행복이란 걸 맛보았을테니 소망 자신보다는 나은 인생이었다. 어떤 인생이든 그랬다. 그래서인지, 소망은 단 한 번도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하던 일이라 무감각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소망은 제가 애초부터 그런 종자라고 확신했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태어났으면, 어떻게 자랐으면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합리화들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만들어지길 이미 이랬던 것이다.


 "살려주세요……."


 힘없는 목소리가 땅끝까지 늘어졌다. 소망은 말없이 우유에 약을 탔다. 어린애들한테만 쓰는 독약이었다. 그에겐 도의는 없었지만 눈치는 있었다. 어린애를 평소 하던 것처럼 죽여 묻어버렸다간 아무도 소망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인데 방법이 무슨 상관이랴. 소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윽고 도련님에게 우유를 가져다 주었다. 어린애들을 매장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무법지의 암묵적인 규율이다. 일종의 강제적인 선택권이라고, 어렸을 적에 어떤 개자식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소망은 이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흑…착하게, 흑, 말도 잘 들을게요……! 흑, 제발, 어흑, 제발……."


 도련님은 우유를 두 손에 쥐고 벌벌 떨었다. 소망은 재촉도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어린애들은 반항이 적다. 왠만한 어른들보다 상황파악이 빠르고, 멋대로 다음을 예측한다. 그리고 소망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우유를 마셨다. 소망은 그럴 때면 기분이 찝찝했다. 그가 한 것이라곤 독약이 든 우유를 건네고, 가만히 앉아 그들을 바라본 것뿐이었다. 어떤 자극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넌지시 눈치를 주지도 않았는데도 애들은 지레 겁먹고 마치 혼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우유를 마셨다. 그렇지만 다 마신 후에 칭찬은 기다리고 있지 않다. 소망은 기계적으로 시체를 묻고 다음 일터로 향할 뿐이었다.


 "흑…어흑…흑, 그럼, 흑, 이거 마시면…죽는 거예요…?"

 "맞아."


 소망은 무료하게 삽으로 흙장난을 했다. 시큰둥한 대답에 농담기는 묻어나지 않았다. 도련님은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다시 꾸역꾸역 삼켰다. 소망은 이상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콧물이 질질 흐르고 눈은 시뻘겋게 부었는데도 우습지가 않았다. 그는 괜히 도련님을 이모저모 뜯어보았다. 도련님은 소망이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어린애들보다도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또렷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진 흐리멍텅했던 것 같은데. 소망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흑, 그럼…마실게요. 그 전에 할 말이…아. 형…은 바쁘시죠…?"

 "어, 아니. 별로…."


 소망은 무심코 거짓말을 했다. 사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이런 도련님이나 상대해 주고 있을 시간은 없는데. 그런데 전부 머릿속에서만 부유할 뿐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이 순간이 바로 한 달 후의 소망이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이때 그냥 마시라고 할 걸. 바쁘다고 딱 잘라 말할 걸. 괜히 뜯어보지 말 걸. 그러나 이미 한 달이 지났다.

 어쨌든 한 달 후의 일은 모르는 소망은 이어질 도련님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평생 가장 온순한 태도였을 것이다. 도련님은 소망의 지긋한 시선에 못이겨 얼굴에 난 거뭇한 반점을 긁적이며 마주보았다. 그리고 입이 달싹이길 여러 번. 소망은 인내심있게 기다렸다. 도련님의 할 말이 어떤 연예인의 스캔들보다도 궁금했다.


 "큼, 그게…그냥 제가 누군지 형이 알았으면 해서요. 음…여기서 나가고 싶으시다면요."


 소망은 삽을 떨구었다. 쓰레기장에서 나가고 싶으냐 묻는다면 그는 대번에 그렇다고 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것이 소망에게 실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득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청소부'란 직업은 소망에게 내재된 도덕의 결여를 메울 수는 있지만 '운수 좋은 날'의 사고를 막아주진 못했다. 때문에 그는 살기 위해서 언젠가는 쓰레기장을 떠나야만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도시에서 연쇄살인마가 되는 한이 있어도. 소망은 도련님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쩐지 좋은 옷을 입고 있더라니, 어쩌면 국왕의 숨겨진 자식일지도 몰랐다. 천한 피가 섞였다고 멸시 받다가 전염병에 걸려 운나쁘게 굴러들어온 호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소망이 쓰레기장을 벗어나는 데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왕자 정도는 되어야…….


 "킁, 저는 엡실론이에요."

 "뭐?!"


 소망은 벌떡 일어났다. 이제 쓰레기장 탈출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소망은 그제서야 우유를 떠올렸다. 도련님은 운수 좋은 날의 행운같은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재앙 덩어리, 지금 당장 저 우유를 마셔주기를 그는 간절히 빌었다. 오늘 아침처럼 무릎이 갈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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