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겪었던 일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저는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죠.


거의 그때 당시 저는 언제쯤이면 내가 죽을까? 이런 생각밖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고 싶지 않았어요, 살고 싶었죠. 다른 여자애들처럼 친구들과 놀러도 다니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던 것은 소설가가 되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날이 몸은 나빠져만 갔고,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 한참 여름축제로 주변이 떠들썩했었죠.


몸이 조금은 나아져 옥상으로 올라간 저는 멀리서 터지는 폭죽을 보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몸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소원을 빌고 있었을 때
분홍 머리카락의 험상궂게 생긴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성한 곳이 없는 딱 봐도 무서운 성격의 남자아이.
그 아이는 묵묵히 제 곁으로 다가왔고 전 양손으로 난간을 꽉 잡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어요.


그 아이가 제게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를 바라보는 그 날카로운 시선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고 또 무서웠거든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전 상당히 겁이 많은 겁쟁이랍니다.


아무튼, 제 곁으로 다가온 남자아이는 멀리서 터지는 폭죽놀이를 감상하듯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자길 쳐다보고 있는 제 시선을 느꼈는 듯, 고갤 제 쪽을 돌렸었죠.


그 매서운 눈빛과 마주치자 전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어요.


"괜찮냐?"
"아.. 네!"
"자."
"가.. 감사합니다!"


그 아이는 생긴 것과 달리 무척 착하고 또 매우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를 잔잔하게 녹여주는 목소리는 제 어린 가슴을 마구 뛰게 만들었죠.



"난 나츠 드라그닐. 넌?"
"루.. 루시 하트필리아에요."
"넌 어디가 아파서 입원했냐?"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에.."
"아, 미안."
"아. 아니에요!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양손을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이 그렇게 웃겼던 것인지 남자아이는 절 보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었어요.


배를 잡고 정신없이 웃는 그 아이에게 전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솔직히 어린 나이에 사랑을 느꼈다고 말하면 우습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정말 사랑을 느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었죠.


"너 마음에 든다."
"에?"
"마음에 든다고 나랑 친구하지 않을래?"
"조, 좋아요."


전 그렇게 그 남자아이, 나츠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니 정말 그때 당시 느꼈던 제 기쁨을 지금도 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


나츠는 저와 동갑이었어요, 친구들과 놀다 계단에서 굴렀고 심하게 몸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거죠.
그렇게 동갑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 나츠는 저에게 너무 잘해줬어요. 마치 처음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그런 나츠를 전 너무나도 잘 따르며 늘 함께 있고 싶어 했죠.


정말 신기한 건.. 나츠를 만나고 나서부터 지옥 같았던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었어요.


나츠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과 행복이 늘 넘쳐흘렀고 사소한 것을 하더라도
나츠와 함께라는 것 자체가 저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나츠와 매일 같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었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츠와의 행복한 나날들은 점점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어요.


전 처음 느껴보는 행복과 기쁨에 젖어 나츠와의 이별을 생각할 수 없었어요.


거의 여름이 끝나가던 날, 나츠를 만나 행복한 추억들만 쌓고 있던 제 몸이 더는 제 나라에서 바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고, 절 살리고 싶었던 부모님께선 외국 병원을 선택하셨습니다.


솔직히 그때 저는 죽더라도 나츠가 있는, 이 나라에서 죽고 싶다고 못난 생각을 했었어요.
타국에서 죽어버리면 마지막까지 나츠와 같이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전 부모님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드릴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으로 나츠와 함께 늘 만나서 놀던 옥상에서 만났습니다.


"나츠.. 나 내일이면-"
"알아. 꼭 돌아올 거지?"
"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여기서 네가 올 때까지 꼭 온다고 약속해줘."
"나츠..."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던 나츠의 울먹이는 모습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네요.


"응.. 나 꼭 돌아올게. 나츠."
"좋아. 루시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지켜야 돼. 난 약속 안 지키는 사람 제일 싫어."
"응."
"루시."
"어?"
"언제든지 기다릴게. 그러니까. 꼭 와. 너한테 꼭 해줄 말이 있으니까."
"응. 나츠.. 나도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나츠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복사와 도장까지 꾹 찍으며 전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잠깐의 헤어짐이 될지, 아니면 영원한 이별이 될지 모르는 이별을.


그렇게 전 나츠와 헤어져 외국으로 넘어왔고 살고 싶은 마음보다는 오로지 다시 나츠와 만나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외국에서 병과의 사투를 계속 벌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지만 전 이렇게 살아서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지금 제일 보고 싶은 건, 가족들이 아닌 나츠, 그 아이.
20년이 흘렀어도 나를 기다려줄 수 있을 보장은 없지만 전 믿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제 마음처럼 나츠도 나와 똑같기를...


그렇게 저는 지금 택시를 타고 그 아이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합니다.


*


택시에서 내린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
그녀는 그 시선을 일제히 무시하고 앞만 보고 걸어 병원 안으로 들어와 20년 만에 그곳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올라 미친 듯이 요동치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지잉-


2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여자는 계단을 올랐고, 옥상 문 앞에 섰다.
깊은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음과 동시에 문을 열고는 차마 앞을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루시?"


엄청 낮은 목소리지만 여자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 그녀의 앞엔 여전히 예쁜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 아니, 이제
너무나도 완벽한 남자가 된 그가 서 있었다.


"나츠-"
"루시!"


품에 안기게 된 그녀의 두 눈에선 방울방울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고,
잠시 그 품에 안겨 소매를 꽉 부여잡았다.


"너무 늦었잖아."
"미안해."
"아냐,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정말."
"나츠."


조금은 오랜 시간 동안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의 따스한 품에 안겨 있던 그녀는
품에서 빠져나와 아주 조금 달라진 얼굴을 마주 보고 섰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나도 그래."
"이제 다신 내 곁을 떠나지 마."
"응. 그럴게."
"루시.. 널 정말 많이 좋아해.. 아니 이제 널 많이 사랑해."
"나츠.."
"다시 돌아오면 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내 여자친구가 되어줘."


그가 내민 은색 반지는 조금 녹슬어 보였다.


"10년 전에 사둔 건데... 결혼할 땐 더 좋은 걸로"
"아니. 난 이게 좋아 나츠."
"루시."


떨리는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는 그녀는 진심 어린 고마움과
절절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여 주었다.


"나츠 우리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하자."
"물론이지."


부드럽게 다시 품 안에 안아주는 그의 품에 안긴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점점 다가오는 입술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지금까지 날 기다려 준 거야?"
"물론이지. 약속했으니까."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했으면..."


이마에 닿는 입술 감촉으로 하여금 여자는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믿고 있었으니까. 루시를"
"나츠."
"우리 이제 영원히 함께야."


따뜻한 손으로 꼭 잡아주는 그의 달콤하고도 황홀한 한마디에 수줍게 미소 지어 보이는
그녀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소중한 비밀 아지트인 옥상에서 나와
좀 더 멋진 미래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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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와 루시 나츠루시를 사랑하는 개성무한점! 글쟁이랍니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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