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마법사 세번째 입니다...

-이 쯤 되면 그냥 연재로 돌려버려야 하는건가 싶지만.

-모르겠습니다.

-아마 스토커 소장본 작업으로 인해 당분간 소설은 올리지 않을 듯 싶기도 하고 그러합니다....

-그냥...가볍게 읽어주세요.

-라고 해도 꽤 길게 써버렸네요.....(먼산)

-오타는 당연히 있을겁니다!!











*

그 날은 바람한 점 없이 함박눈이 포근히 내리던 겨울이었다. 태형은 제 어미의 손을 잡고 뽀득뽀득, 쌓인 눈길을 걸으며 오랜만의 외출에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런 태형과 달리 어미의 얼굴엔 근심과 함께 그을린 그림자가 서려 있었고, 태형은 그런 어미의 기분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눈길을 밟는데 신이나기만 했다.



“엄마 여긴 어디에요?”

“…앞으로 살 집이란다.”

“우..우와- 우리 이사한 거야?”



그러나 챙긴 물건 하나 없이 빈손인 채 들어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태형은 제 눈앞에 펼쳐진 대저택을 보며 정신이 팔렸다. 한눈에 다 보기 힘들 정도로 큰 집은 얼마 전 책에서 우연히 본 바로크 양식을 떠오르게 했다. 저절로 열린 대문을 지나 화려한 대리석으로 만들진 길옆으로 알 수 없는 조각상들이 일정한 간격에 맞춰 나란히 세워져 있었고, 길 중심으로 난 분수대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불규칙 적인 곡선과 곡면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분수대의 옆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몇 걸음 채 되지 않아 현관문 앞에 서자 대문처럼 자동적으로 문이 열린다.



“어서오세요.”

“주..주인님은요?”

“누워계십니다.”



마중을 나온 이 집의 하녀가 태형의 어미의 물음에 대답을 하며 태형을 지긋이 바라본다.



“먼저 주인님께 인사를 드리는 편이 좋으실 듯 합니다.”



주인님? 무슨 뜻이지? 저를 보며 말하는 하녀의 말에 태형이 의아해 하자 태형의 어미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태형의 몸을 돌려 자신을 보게 한다. 추위 때문이었을까, 파랗게 질린 제 어미의 입술을 보며 태형은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어.엄마.”

“태형아 잘 들어.”

“??”

“넌 이 집의 양자가 될 거야.”

“뭐?”



양자? 양자가 뭐더라? 태형이 눈을 깜빡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 된 것에 어미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너는 원래 이 집안의 자식이야. 이 집 주인이 네 친 아버지란다.”

“어? 아버지는 죽었다고…”

“미안하다 태형아. 이곳에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엄마?”

“엄마는 더 이상 너를 키워 줄 수가 없어.”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내뱉는 그녀의 말에 태형이 충격을 받은 듯 눈이 동그래져 초점이 흐려진다. 아니 분명 진실의 일부분을 들었으나 이해를 하지 못해 얼떨떨해 진, 저를 두고 일어선 어미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가려는 것에 태형이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하자 옆에 있던 하인이 제 어깨를 단단히 붙잡는다.



“엄마!! 엄마!!!”



쾅, 재빨리 나가버린 어미의 뒷모습이 문이 닫히며 완전히 사라지고, 저를 붙잡은 하인의 손을 뿌리친 태형이 문을 재빨리 열려고 하자 문이 접착제로 붙여지기라도 한 듯 문이 닫힌 채 꿈쩍도 안하는 것이 열릴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버려진 상황에 태형이 놀라 눈에서 눈물샘이 터진다.



“엄마! 거..거짓말이죠? 네?! 엄마!! 내가 잘 못 했어요! 엄마!!”



무엇을 잘 못했다는 것일까. 잘 못 한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혹여 태형 자신이 무언가 잘 못한 것은 아니었나 싶어 열리지 않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주인께 혼이 나실 거에요.”

“흐어엉- 어.엄마. 흐엉- 열어줘! 열어줘요!!”



태형은 지난 날, 평소 잘 먹기도 힘든 고기 음식을 해준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먹은 고기 음식과 함께 나름 진수성찬에 신이 났더랬다. 게다가 생일도 아닌데 케익까지 먹고 있으니 그런 저를 가만히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고 태형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으나 그냥, 이런 날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말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안 엄마가 마지막으로 제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한 것이라는 생각에 태형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야! 시끄러워!!”



퍼억, 제 뒤통수를 강하게 강타한 아픔에 태형이 악! 하고 신음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자 저와 얼굴도 피부색도 다른 여자 아이가 저를 노려보고 있는 것에 제 머리를 강타하고 옆으로 굴러 떨어진 것을 보았다. 목재 인형.



“셋째 아가씨. 위험한 물건을 던지는 것은 삼가시는 것이…”

“시끄럽잖아! 얘가 걔지? 진짜 뻔뻔하게 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잡종은 얼굴도 참 두꺼워.”



뭐라고? 태형은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으나 저를 가리켜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나쁜 말을 내뱉는 여자 아이에게 울컥하다 이내 어깨를 움츠린다. 방금 하녀가 셋째 아가씨라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일 터였다.



“손님이..아니지 이제부터 가족이 될 아이가 온 모양이군.”

“사모님.”



초췌한 얼굴을 한 중년의 여인이 온통 까만 옷을 입은 채 뒤로 조금 나이가 있는 하녀들을 데리고 등장한 것에 태형이 히끅, 놀란 듯 딸꾹질을 하며 울음을 뚝 멈춰버린다. 눈빛이 시리다는 표현이 저 사람을 위해 있는 말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지, 먼저 네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려야겠지.”

“……”

“나는 오늘부터 네 어머니가 될 사람이란다. 너도 이 집의 사람이 되었으니 앞으로 언행이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게다.”



태형의 9살 겨울. 얼굴도 피부색도 다른 가족을 처음 만나게 되면서 생활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먼저 태형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을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하기 전에 형제가 된 세 명의 누나들의 괴롭힘에 금방 알 수 있었다. 현재 이 집의 주인은 정말로 제 아버지가 맞았으며 자신의 어미는 이 곳에서 일하던 하녀였다. 가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했던 집안이었으나 안주인인 새 어머니가 병으로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자 주인인 아버지가 한 눈을 판 상대가 자신의 친 엄마였고, 임신을 한 친 엄마가 새 어머니의 모진 구박에 도망치듯 이곳에서 나와 태형을 낳아 기른 것이었다.


동양인. 머글의 피를 가진 혼혈. 후플푸프 출신. 현 집안과 가장 동 떨어진 여자. 최강의 마법사 멀린 집안의 피가 옅어진 와중에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집안은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물론 주인이 형제가 없는 것 또한 아니었고, 어쩌면 대를 이을 조카 또 한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대부분 집안을 짊어지는 것을 꺼려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겠지. 이름 있는 유명한 가문이라고 한들 첩이 있었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태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태형의 어미가 멀린 집안의 품격과는 전혀 다른 여자이기에. 태형이 어미의 피를 가깝게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는 것처럼 가문도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것이지.”



현 주인인 태형의 아버지가 태형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물론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었으나 어찌되었건 조카들 중 누군가가 가문을 이어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상황에 변수가 따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태형은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제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 또한 이 집에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정교사에게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 와중에도 잡종이라며 매일같이 누나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다. 그나마 그녀들이 호그와트에 있는 동안 조금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도 이 집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은 괴롭기만 했다.


웃음을 잃었다. 이 전 생활은 가난해도 따뜻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크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 대신 그 따뜻함이 없었다. 매일 아침 조용한 식사 속에서 마주하는 새 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는 형식적인 대화를 할 뿐이었고, 저 또한 굳이 할 이야기가 없으니 점점 말 수 또한 줄어들었다.



“올해 9월이면 태형이도 호그와트에 입학하겠구나.”



새해가 지나 11살이 되는 해. 이 곳에 온지 1년이 지났을 때 쯤 부활절 연휴로 온 배다른 누나들과 부모님들과의 식사가 조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버지의 말에 모두들 식사를 하던 것을 멈춘다.



“누나들도 학교에 같이 있을 테니 집에 혼자서 지내는 시간 보다 덜 심심하겠지.”



분명 누나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가? 아버지의 말을 끝으로 태형은 더 이상 식사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같은 학교에 있구나. 현재 큰 누나는 6학년에 둘째 누나는 4학년, 막내 누나는 3학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너 때문에 세간이 시끄러운 거 알아?”

“나..나 때문에?”

“네 존재가 우리 집안의 격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악!!”



쾅!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돌아온 세 명의 누나들이 태형을 데리고 비어있는 방으로 데려가 몰아붙인다. 익숙한 듯 낡은 옷장 안으로 태형을 거칠게 밀어 넣으며 발길질을 한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첫째가 태형에게 충고하듯 입을 연다.



“너 학교에서 우리 아는 척이라도 해봐. 절대 가만 안 둬.”



무서웠다. 학교에 가서도 누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그 날은 어느 때 보다 더 울었던 것 같다. 옷장 속에 갇혀 울고 있을 때 쯤 누군가 조심스레 옷장 문을 열었으나, 태형은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들 생각도 없이 울기만 했다.



“도련님. 고개를 드세요.”

“흐, 흐윽, 윽,”

“얼른 방으로 돌아갑시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맞이해 주던 하녀. 지금은 태형을 담당하고 있는 아스카였다. 집안에 몇 없는 동양인들 중 한 명인 그녀는 태형이 유일하게 따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아스카.”

“네.”

“무.무서워요. 끅, 하..학교에도 가.가기 싫..”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학교에는 가셔야 해요.”

“그치만 흑, 누.누나들이…”

“도련님 제 말 잘 들으세요.”

“??”

“세상은 도련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 보다 넓어요. 그만큼 새로운 것들도 보게 될 테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겠죠.”



분명 학교에 가게 되는 것은 도련님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 될 겁니다. 지금 세간에서 도련님에게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실 수 있으셔야 해요. 이렇게 울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마음을 독하게 먹으셔야 됩니다.



“뻔뻔해 지셔도 되요.”

“……”

“누가 욕을 하든 당당해 지시라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도련님이 이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없어요.”

“……”

“자신감을 가지세요. 도련님이라면 분명 괜찮을 겁니다.”

“그..그치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걸요. 태형이 눈물에 젖은 얼굴로 두려움에 떨자 그런 태형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등을 가볍게 토닥인다.



“노력하셔야 되요. 이름을 떨친 마법사들도 물론 재능이나 소질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들 또한 노력을 했거든요.”

“아스카.”

“그리고 친구를 만드세요. 세간이 시끄러운 만큼 도련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요.”

“내..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태형이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묻자 태형을 끌어안았던 아스카가 떨어진다. 그리곤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태형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음기를 머금은 채 입을 연다.



“물론이죠. 게다가 도련님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모르죠?”

“내가?”

“네. 앞으로 도련님이 성장하면 더 멋져질 생각을 하면 제가 더 뿌듯한 걸요?”

“훌쩍.”

“여자 애들 사이에서도 인기 많을 거에요.”



제 손을 잡아주는 아스카의 손길이 따뜻해서 태형은 더욱 울컥했다. 만약 아스카 또한 집안사람들과 똑같았더라면 아마 자신은 이곳에서 마음편이 잠드는 것조차 하지 못했을 터였다.


여름방학 동안 저를 괴롭히는 누나들에게 태형은 조금씩 반항을 해 보았다. 그럼에도 아직은 누나들을 이길 재간이 없어 언제나 옷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리지만 태형이 스스로 자신이 변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이 중요했다.


입학 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다 구입을 해 두고, 드디어 호그와트로 가기 전 날, 아스카가 염색약을 준비했다. 태형은 처음 하는 염색에 약간 주춤하면 서도 의자에 앉아 아스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어울릴까?”

“물론이죠.”

“안 어울리면?”

“분명히 어울릴거에요. 제가 장담합니다.”



검은색의 머리가 은색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머리 스타일도 바뀌면서 전혀 색다른 자신의 모습에 태형은 몇 번이고 거울로 제 모습을 확인했다. 어색하긴 했으나 전혀 안 어울리는 것 또한 아닌 듯 집안사람들이 저를 보고 놀라며 잘 어울린다는 말을 꼭 한 마디씩 내 뱉었고, 누나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놀라 주춤해선 언제나처럼 괴롭히던 것이 그 날 만큼은 얌전하기만 했다.



“그럼 나 다녀올게.”



킹스 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 태형은 유일하게 저를 배웅해 주는 아스카에게 인사했다. 두근두근, 새롭게 시작될 나날에 아직도 설렘과 긴장감에 진정이 되지 않은 태형에게 아스카가 응원의 말과 함께 표정을 굳히며 충고하듯 입을 연다.



“도련님. 기숙사만큼은 꼭 슬리데린으로 배정 받으셔야 해요.”

“…응.”







박지민이라고 했다. 아스카에게 들은 박씨 가문의 아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태형은 떨리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타 자리한 곳에서 만난 지민과 금새 친구가 되었다. 제 집안이 슬리데린이기는 하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느낀 것은 제 성격에 슬리데린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으나 지민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슬리데린이라고 해서 나쁜 마법사만 있는 건 아니야.”

“그건 알아.”

“우리 집안도 대체로 슬리데린이긴 하지만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집안이고.”



지민의 집안이 유명한 것은 저 또한 들은 것이 있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꼭 슬리데린만을 고집하지는 않는 것인지 가끔 래번클로나 그리핀도르가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하면 자신은 꼭 슬리데린으로 배정을 받아야 했다. 불안 했던 제 마음속이 지민을 알게 되면서 침착해진다. 지민이 슬리데린으로 배정받게 될 확률은 높을 것이고, 지민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뿐이지만 분명 나쁜 아이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강해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유명한 집안의 사람이니 분명 저가 지민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달갑게 생각 할 것이다.



“와- 긴장된다.”

“사람 진짜 많네.”

“푸핫, 야. 너 그 말 웃긴다? 당연히 7학년까지 있으니까 많겠지!”



지민이 웃으며 말하자 태형이 그런가? 하며 둘이서 엉뚱한 대화를 하면서도 자신의 또래와 함께 회장 안에서 저를 향하는 선배들의 시선들을 느끼며 태형은 마른침을 삼켰다. 주위에서 간간히 멀린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김태형.”



제 이름이 불리며 순간 회장 안에 정적이 감돈다. 꿀꺽, 누군가의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태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씌어진 모자에 태형은 중얼 거렸다.



“슬리데린인가, 아니면…”

“슬리데린, 슬리데린.”

“오호- 슬리데린으로 배정 받고 싶은 게야?”



자신의 중얼거림에 모자가 묻는다. 그 질문에 태형은 슬리데린으로 배정받기를 원한다는 듯 슬리데린을 계속 중얼거렸고, 모자는 태형의 말을 듣기보단 고민에 빠진 듯 중얼거렸다.



“너는 슬리데린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데.”

“슬리데린, 제발 슬리데린으로 가게 해주세요.”

“네 피의 반은 슬리데린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슬리데린. 슬리데린.”



모자가 고민을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동시에 회장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해 진다. 모자걸이. 분명 저를 알고 있는 다른 이들 또한 슬리데린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터였으나 이렇게 쉽게 결정이 나지 않을 줄은 몰랐을 터였다.



“그렇군. 그게 네가 선택한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후회하지 않겠어?”

“후회하지 않아.”

“흐음, 그렇다면, 슬리데린!”



모자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슬리데린 쪽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모자가 벗겨지고 고개를 든 태형이 후플푸프 쪽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동양인과 시선이 마주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려와 슬리데린으로 향한다. 두근두근,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지민이 슬리데린으로 배정받게 되면서 태형은 지민과 함께했다. 지민 또한 태형이 나쁘지 않은 것인지 같이 다니는 것을 선택한 듯 했다. 슬리데린으로 배정 받은 소식을 들은 집에서 축하한다는 편지가 날아오고, 아스카에게서도 안부를 묻는 편지가 와 답장을 해주었다.



“뭐야 그 나비는?”

“응? 아아- 우리 가문이 나비를 상징하고 있거든.”

“흐응-”



지민이 교복에 단 핀 뱃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나비처럼 날개가 이따금 퍼득거리며 날개 짓을 하는 뱃지가 신기하다. 지민의 가문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은 지민의 뱃지를 보고 수군거리기도 하고, 또 또래들 중에서는 잘 보이려고 하는 애들도 있어서 지민과 친하게 지내게 된 제 자신이 문뜩 신기하게 느껴졌다.


입학하면 제일 걱정 했던 것이 누나들의 괴롭힘이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누나들은 저를 괴롭히지도 않았고, 오히려 누나들 외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어느 순간 슬리데린 안을 비롯해 전교생들 사이에서 멀린 집안의 사생아라는 이유로 화제가 된 것이 아닌 자신의 외모에 더 초점을 두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잘 생겼나?”

“와- 김태형 재수 없어.”

“나 진지하거든?”

“너는 매일 거울로 네 얼굴을 보면서도 모르냐?”



지민이 짜증나 너, 라며 얼굴을 구긴다. 그런 지민을 보면서도 태형은 아직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 일까 진짜로 모르겠다. 문뜩 아스카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진짜로?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삼 멀린 집안의 사생아라는 타이틀 따위 저리가라가 되어버린 이 상황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야야야! 싸움 났어 싸움!!”

“누군데?”

“리키랑 호석이!!”



뭐? 갑작스레 소란스러워 진 것에 태형과 지민이 놀란 얼굴로 학생들이 모여든 곳으로 시선을 향한다. 싸움을 구경하는 이들이 호응하고 있는 것에 호기심이 생긴 태형과 지민이 싸움을 구경하는 무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리키 밸런스. 한 학년 위의 선배로 슬리데린 내는 물론 다른 기숙사들 사이에서도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태형의 무리들과도 이따금 같이 뭉쳐 지내기도 했는데, 태형은 솔직히 말하면 그가 싫었다. 그러나 한 학년 선배인데다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문제를 일으켜 무슨 해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사람이 정호석인가?”

“정호석?”

“리키 선배가 엄청 괴롭히는 잡종..이아니라 머글이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



잡종. 태형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 그러나 슬리데린 안에서는 그 단어가 평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태형은 지민을 비롯해 자신의 무리들에게 제 앞에서 만은 잡종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말아달라고 할 정도였다. 저 또한 누나들에게 잡종이라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좋아 하게 될 리가 없다.



“야야! 그만 안 해?!”



서로 주먹질을 하며 싸우고 있는 사이로 누군가 중재를 하듯 둘 사이를 떨어트린다. 그리곤 리키를 향해 입을 연다.



“리키, 너 적당히 해!”

“퉷! 먼저 주먹을 날린 건 저 녀석이거든요?!”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어, 저 선배 그리핀도르에서 동양인 최연소로 퀴디치 수색꾼이 된 김석진이야. 지민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태형이 둘 사이를 중재한 석진을 바라보곤 호석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문뜩 입학 첫 날 기숙사를 정하고 시선이 마주쳤던 호석을 떠올린다.



“뭐야, 정호석이랑 친하다고 지금 나한테만 따지는 거에요?”

“적당히 해. 너. 윤기한테 혼나고 싶냐?”

“나 여기 있다.”



흠칫, 석진의 말을 끝으로 언제부터였는지 윤기가 나타나 서있는 것에 리키를 비롯해 근처에 있던 리키의 무리들이 놀란 얼굴이 되어 윤기를 바라보았다. 윤기의 등장에 몰려있던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멀어진다. 뭐야? 저 선배가 뭔데? 어째서 인지 윤기의 등장에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듯 흩어지는 구경꾼들을 보며 의아해하자 지민이 입을 연다.



“너 몰라? 리키 선배들 윤기 선배한테 꼼짝도 못하잖아.”

“왜?”

“리키 선배 집안이 윤기 선배 집안에 하청하고 있거든.”



윤기가 리키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키를 비롯한 같은 무리들이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석진이 호석을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히며 괜찮냐, 걱정하는 질문에 호석이 이내 울먹이듯 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저와 시선을 마주치고선 놀라 시선을 돌려 피해버리고, 저 또한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이상해서 지민과 함께 자리를 떴다.


후에 들은 이야기론 윤기는 무역을 하는 집안의 사람으로 꽤 큰 손들과 이어져 있어 무시하지 못 하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원래는 마법부에 관련되어 있는 집안이기는 하나, 몇 대 전부터 시작한 무역사업이 번창하게 된 덕에 집안 내에서는 무역을 이어 받거나 마법부에 종사하는 계열로 나뉜다고. 특히나 래번클로의 피가 강한 집안이지만 이따금 슬리데린이 종종 있다는 말을 듣고 태형은 기회가 생긴다면 윤기와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호석 그 새끼 내가 언젠가 진짜로 무릎 꿇게 만들겠어.”



태형이 기숙사로 돌아와 울분을 터트리는 리키와 그 무리들을 바라보다 제 방으로 돌아왔다. 정호석이 대체 무슨 짓을 해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냥 머글이라서 싫어하는 것이 이유라는 것에 하, 하고 비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머글이 어디 정호석 밖에 없어? 어이가 없네.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학교에 남았고, 부활절 연휴에 집으로 가니 누나들은 그저 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없었고, 괴롭힘도 없었다. 그러나 새 어머니는 여전히 저를 대하는 것이 차가웠으며 아버지 또한 별로 크게 관심을 가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스카! 학교가 즐거워. 빨리 연휴가 끝났으면 좋겠다.”

“다행이에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태형은 아스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말했다. 물론 편지로 주고받은 것은 있었으나 역시 직접 말해 주고 싶었던 부분들도 많아서 태형은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정호석이라는 분은 기숙사가 어디에요?”

“후플푸프.”

“그 분도 많이 힘들겠어요.”

“뭐어… 나랑은 상관은 없지만 어찌됬든 리키 선배들하고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



랄까, 리키랑 동갑이었던 것 같은데, 선배인가? 동갑들 사이에서는 본 적 없는 얼굴이니 선배임은 분명하다. 태형이 어리둥절해 하다 이내 생각하기를 거둔다.


이상했다. 리키가 단순히 머글이라는 이유로 괴롭히고 있는 호석과 종종 시선을 마주 하게 되어 처음엔 기분 탓인가 싶었다.


한 번은 식당 안에서 꺄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 소리에 놀라 바라보니 같은 무리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호석을 바라보았다. 깨방정을 떨며 무리들 사이에서 중심인 듯 모두의 이목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인간관계가 그리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저런 모습들이 리키를 거슬리게 한 것은 아닐까.


이따금 보게 되는 호석은 정말 순수하다 못해 무해했다. 게다가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늘 웃고 있었고, 그런 그를 따르듯 이끌리는 듯 했다.



“나 얼마 전에 호석 선배랑 같이 밥 먹었다?”

“부럽다. 어땠어?”

“완전 재밌었어!”



제 동기들 중 슬리데린을 제외하면 호석은 꽤 유명했다. 물론 리키의 괴롭힘이 한 몫을 하긴 했으나 그와 별개로 호석은 슬리데린을 제외한 다른 기숙사 선배들에게도 귀여움을 받는 듯 했고, 특히나 현재 학교 내에서 가장 핫 한 그리핀도르의 김석진이 예뻐하는 후배로 유명하기까지 했다.



“지민아.”

“왜?”

“정호석 말이야.”

“??”

“슬리데린 싫어하겠지?”

“글쎄? 윤기 선배랑 있는 거 보면 아닐 것 같은데?”



그냥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다른 게 아닐까? 태형의 질문에 책을 보며 무심하게 대답하는 지민에게 태형이 그런가? 하고 조금 떨어져 있는 호석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무리 속에서 깔깔거리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집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 태형의 변화에 그렇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나들은 더 이상 태형을 괴롭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괴롭히지 못하게 된 것 일 테다. 멀린 집안의 사생아라는 타이틀 보다 태형이라는 존재감에 학교 내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다 보니 당연히 배다른 형제인 누나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오히려 태형을 욕하면 자신들이 더 욕을 먹게 되니 몸을 사리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점점 성장하는 태형을 괴롭히기엔 여자인 자신들이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있었다.


게다가 별다른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없고, 오히려 수업에서도 꽤 활약을 하고 있으니 당연 집안에서도 태형을 깔보는 사람 또한 없어졌다. 그렇다보니 태형은 자신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에 이를 악 물었다.


그러나 나이 대에 맞게 아직 덜 성숙한 태형이었다. 그나마 아스카가 태형의 곁을 돌봐주고는 있으나 태형은 힘이 들었다. 그래서 제게 호감을 보인 여자아이와 사귀기도 해 보았으나 자신이 기대는 것 보다 오히려 상대가 제게 더 기대오니 지쳐서 헤어지게 되는 것이 큰 것 같다. 얼마 전 래번클로의 여자친구와 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사귀고 있는 슬리데린의 여자친구와도 곧 헤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혀엉- 호석이 형-”

“어서와 울 아들~”

“아들은 무슨!!”

“왜? 무슨 일인데?”

“으헝, 망했어! 테스트 망했다구요!!”



약초학 수업 엿 먹어라! 라며 호석의 곁에 앉아 앙탈을 부리며 끌어안듯 치대는 정국을 바라본다. 자신 보다 한 학년 아래인 그리핀도르 학생인 정국은 석진이 친 동생처럼 아끼고 있는 후배로 유명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호석과 연결되어서 일까 이례 지금처럼 호석에게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호석이형 오늘도 좋은 냄새나!!”

“그러냐?”



물론 정국뿐만이 아닌 제 동기나 밑에 후배들이 이따금 호석에게 치대며 앙탈을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 기분이 묘했다. 어떤 느낌일까? 게다가 좋은 냄새도 난다고. 무슨 냄새지?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은 귀찮지도 않은 걸까? 귀찮을 법 한데도 불구하고 다 받아주고 있는 호석을 보고 있자니 왠지 한심하기까지 하다.



“왜? 너도 호석 선배한테 기대고 싶냐?”

“왜 말이 그렇게 돼?”

“나는 친해지면 기대고 싶은데.”

“뭐? 박지민 너 어떻게 된 거 아니냐?”



태형이 허,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내심 속으로는 이상하게 찔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도 기대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어. 아니라고.



“친해지고 싶으면 먼저 말 걸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저 선배, 너 좋아한다는 소문 돌고 있잖아.”



3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기분 탓이라고 여기기엔 이상하리마치 호석과 마주치는 시선이 거의 매일같이 있다 보니 어쩌면 주변에서도 그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신경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이따금 호석이 저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느낄 적이면 진짜인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해?”

“흐음- 너는 아니야?”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지민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눈앞에 차려진 음식을 입에 넣는다. 그런 지민을 보다 다시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호석에게 향한다. 동그란 뒤통수가 깔깔 웃는다.



“이번에 그리핀도르 우승할 거 같지 않아요? 석진이 형 올해 완전 날아다닐 것 같던데!!”

“야야, 후플푸프도 장난아니거든?”

“아니 진짜, 석진이형 장난아니라니까요?”

“제길, 석진이 형 너무 날아다니는 거 아니냐? 아니 매년 그래. 그 형 볼 때마다 진짜 너무 멋진 거 아니냐고!”

“화를 내던지 칭찬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하지 그러냐.”



퀴디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듯 정국이 흥분하자 덩달아 흥분한 호석에게 남준이 웃기다는 듯 호석에게 대꾸한다. 퀴디치…



“퀴디치나 해볼까.”

“뭐?”

“올해 새로운 선수 모집한다고 했지?”

“진짜로? 야. 너 그러다가 인기 더 많아져서 안돼.”



그거 칭찬이지? 태형이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어 지민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 사감에게 향했다.


슬리데린의 새로운 수색꾼이 되었다. 태형이 수색꾼이 된 것에 학교 전체가 들썩이고, 여자들의 음성이 높아졌다. 동시에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질투로 제게 더 기대오는 것에 귀찮아졌다. 딱히 수색꾼을 노린 것은 아니었으나 어째서 인지 테스트에서 수색꾼의 면모를 뽐낸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한층 더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어째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어서 괜히 부끄러워졌다.



“쳇, 여자애들한테 더 주목 받으니까 좋냐?”

“하여간 멋있는 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부럽다 야.”

“얌마, 부러워하지마. 지는 거라고!!”



지민을 비롯해 같은 무리들의 핀잔에 어느 때와 다름없이 묵묵히 들으며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려버리고 만다. 인덕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1학년 때부터 같이 지내온 무리들은 태형이 어울려 지내는데 별 불편한 것 없이 편하기만 했다. 물론 슬리데린 본연의 성격이 있어서일까 다른 기숙사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김태형.”



음? 무리들과 한참 떠들고 있을 때였다. 저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시선을 향하니 윤기가 서 있는 모습에 의아해진다.



“사감이 네 유니폼이래.”

“아…”

“연습할 때도 입고 나오라고 전해달라더라.”



유니폼이 든 종이가방을 내미는 윤기에게 태형이 건내 받는다. 어째서 윤기가 이것을 제게 전해준 것일까 싶었으나 그가 5학년 반장으로 사감인 교수님에게 전해 받았을 확률이 높다는 것에 태형이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같은 기숙사 내에서 사이가 좋을 수 있는 것은 슬리데린 안에서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이좋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보니 태형 또한 선배나 후배에게 쉽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윤기의 경우엔 태형이 기회가 된다면 친해지고 싶은 선배이지만 어째서 인지 성격이 나쁜 리키 같은 선배들만이 태형에게 가까이 다가올 뿐이었다.



“뭐, 그렇다고 꼭 남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응. 솔직히 나도 윤기 선배랑은 친하게 지내고 싶고.”

“그럼 네가 한 번 말 걸어봐.”

“몰랐냐? 나 매일 윤기 선배랑 인사하는 사이인데?”

“헐. 언제부터?”

“1학년 때부터.”



태형이 놀란 눈으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아니, 인사를 하는 사이라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1학년 때 부터!



“뭐어- 그냥 진짜 인사만 하는 사이야.”

“치사한 놈.”

“치사하면 너도 내일부터 당장 인사해라? 혹시 아냐? 친하게 지내게 될지.”



그럴까?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윤기와 대화를 했다. 아니 대화라고 하기엔 이상하긴 하지만 오늘 일을 계기로 인사를 해도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김태형 신기해.”

“뭐야 갑자기?”

“아니 그렇잖아. 모두들 네가 차갑고 무뚝뚝한데다 전형적인 슬리데린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말 그렇게 보여?”

“응. 특히 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더 그래. 다가가기 쉽지 않아.”

“너무 잘 생겨서 그런가?”

“재수 없다 진짜.”



지민이 짜증난다는 얼굴로 태형을 보곤 그대로 침대에 바로 누워버린다. 그런 지민을 보며 태형 또한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윤기는 자신의 무리들 외에 같이 있는 사람은 석진이나 호석이었다.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게다가 윤기가 석진과 호석이 같이 있는 것에 슬리데린 내에서 별로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이 없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어쩌면 <민윤기 이니까>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일까. 물론 그의 집안이 한 몫 한다는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야 태형아.”

“네?”

“정호석 그 잡종이 너 좋아한다는 거 사실이냐?”



아 귀찮아. 태형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물론 징징대는 여친을 상대하고 온 것에 피곤을 느끼고 있는 저를 붙잡은 리키의 무리들에게 속으로 짜증이 나버린다. 그리고 제게 던진 질문은 태형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한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잡종이 너 좋아한다는 소문 몰랐냐?”

“글쎄요. 저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어야죠.”



옆에 같은 무리들이 있었다면 재수 없다고 꼽을 줄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자 리키를 비롯해 리키의 무리들이 갸우뚱한 얼굴이 되는가 싶더니 이내 리키가 입을 연다.



“뭐, 상관없어. 그 자식 쪽팔리게 하..”

“무슨 이야기냐?”



흠칫. 태형은 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것과 동시에 리키들도 놀란 듯 태형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향하고 태형 또한 몸을 돌려 뒤를 향하자 팔짱을 낀 윤기가 서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움츠린다.



“아..서.선배님.”

“네가 말하는 그 자식은 호석이냐?”

“그.그럴..그럴리가요.”



맞잖아. 태형이 어린애처럼 꼰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는다. 괜히 입을 잘 못 놀렸다 리키무리에게 적이 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것이었다. 게다가 같은 기숙사이니 말이다.



“호석이가 김태형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 모양이던데. 그걸로 장난 칠 생각이었나 봐?”

“아..아니라니까요. 하하-”

“그런데 어쩌냐 호석이랑 친한 나는 그 소문이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데.”



뭐? 아니야? 태형의 가슴 한 구석이 울렁인다. 어… 그렇구나. 호석과 친한 윤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분명 사실일 터였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자.”

“그럼요! 다..당연하죠!!”



윤기의 충고에 리키는 물론 같은 무리들이 억지스런 웃음을 띠운 채 그대로 뿔뿔이 흩어진다. 둘 만 남은 공간에 어색해진 태형이 윤기에게 가볍게 인사하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그대로 돌아선다. 뭐지… 뭘까. 뭔가 답답해지는 기분이 든다.



“너는 어떤데?”

“예?”



제게 말을 건 윤기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윤기를 바라본다. 무슨 뜻이지?



“…하아,”

“??”

“아무것도 아니다.”



윤기가 한 손을 들어, 가도 좋다는 듯 손을 까딱거리곤 그대로 뒤돌아 가버린다. 멀어지는 윤기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 쯤 정신을 차린 태형이 윤기의 질문을 곱씹어본다.


윤기의 알 수 없는 물음 다음부터 이상하게 호석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가끔 리키 무리들과 말다툼을 하는 호석을 볼 때면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을 왜 저렇게 일일이 반응하며 상대를 하는 걸까 싶은 것이 의외로 멍청한가? 싶은 것이었다. 아니면 정말 멍청할 정도로 착해서. 어쩌면 모두가 호석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니 더욱.


그런 그가 저를 좋아하고 있는 소문도 있어서 일까 물론 윤기가 사실이 아니라고는 했으나 어느 순간 호석이 제 시야에 나타나면 괜히 멋을 부리는 척 입을 다물어 버리는 제게 무리들이 처음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하더니 이내 지민이 먼저 눈치를 채곤 허, 하고 비웃는 것인지 어이가 없는 것인지 모를 짧은 웃음을 흘리며 무리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야, 너 호석 선배 좋아하지?”

“뭐..뭐가?”

“진짜? 야, 그 선배 너 좋아한다는 소문 돌지 않았냐?”

“뭐야뭐야? 설마 태형이 네가 좋아하는 거였냐?”

“무.무슨 소리야? 나 이 틀 전에 로티랑 헤어진 거 몰라?”

“혹시 모르지 로티랑 있으면서도 호석 선배 의식 했을지?”



날카롭게 날아든 지민의 말이 태형의 가슴에 비수가 꽂힌다. 그럼에도 아닌 척 하자 모두들 제 말을 믿는 낌새 였으나 지민만이 하여간 연기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라며 신용하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인기 많으니까 뭐… 태형이 네가 양다리를 걸쳐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은 건 인정한다.”

“큭큭, 설령 태형이가 호석 선배를 좋아한다고 해도 오래 가겠냐?”



아… 뭔가. 무리들의 말에 태형은 왠지 나쁜 남자가 된 듯한 이미지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러고 보니 제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야 많고, 누가 저를 좋아한다는 소문 또한 많아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스스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독서실에서 만난 호석이 책장으로 향하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뒤따르듯 읽을 책도 없으면서 책들을 훑으며 자연스럽게 호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고 놀라선 저를 피하듯 자리를 옮겨버리는 호석의 행동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일부러 호석과 부딪히니 마침 안경을 벗어 닦고 있었던 것인지 안경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무슨 용기가 생긴 것인지 안경을 안 쓴 얼굴이 고운 얼굴선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안경을 안 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파직,


안경이 부서졌다. 안경다리 한 쪽이 부러져 바닥에 떨어진 본체를 밟은 호석의 행동에 저 또한 놀라 당황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안경을 밟은 호석의 얼굴이 마치 세상이라도 무너진 듯 한 얼굴이 된 것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멍청하다 못해 귀엽다. 3학년이 끝 날 무렵 호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한테 건방지게 반말해버렸네.






*

덜덜덜덜.



“호석이 형. 다리 너무 떠는 거 아니에요?”

“어? 어? 어..어,”

“정국아 내버려둬. 호석이 지금 제정신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호석의 친구들이 웃음기가 담긴 말로 정국에게 <네가 이해 좀 해라.>라는 의미로 말하자 정국이 시큰둥해진다.


호석이 태형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이미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호석이 4학년 때부터 떠돌고 있는 소문이니 당연할까. 본인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기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었으나 태형을 좋아한다는 학생들은 많아도 호석처럼 계속해서 도는 소문은 없었기에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모른다는 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떠돈 새로운 소문이 김태형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전의 여친들은 진지하게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되니 어떻게 보면 쌍 놈이었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괜히 호석이 상처받을까 태형이 나타나면 괜히 한 번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웃긴 것은 태형의 소문을 호석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형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 하긴 작년엔 호석이 그 소문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호석에게 호감을 보였던 여학생이 있어서 그 부분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태형이 호석에게 연회 때 춤을 추기로 먼저 권했다는 소식은 학교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어째서 인지 태형이 4학년 때 마지막으로 사귄 케이티 이후로 사귀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작년 태형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람이 호석이었던 것이었냐,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는데 지금 이루어지려는 것이냐, 이게 무슨 연애 소설 같은 이야기냐, 등등 특히나 여자애들이 흥분으로 난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리가 따갑기만 하다. 게다가 입학 후로 단 한 번도 검은색으로 물든 태형의 머리카락을 본 적이 없어 뜨겁게 화제가 되고 있으니 더욱 시끄러웠다.



“나..남준아. 너 어… 오늘 시간 되냐?”

“왜?”

“나랑 공부할래?”

“몇 시에?”

“저..저녁 먹고?”

“너 저녁 먹고 김태형이랑 춤 연습하는 거 아니었냐?”



남준이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호석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잠도 못 잔 것인지 눈이 충혈 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밤을 샌 건 아닌가 싶다. 괜찮아 졌나 싶다가도 지금처럼 긴장으로 불안해하는 호석을 보니 주변에서는 귀엽다는 듯 웃어넘기고 있었으나 이쯤 되니 남준이 더 신경이 쓰인다.



“걔가 잡아먹기라도 한 대?”

“무..무슨 말을 그렇게 까지 하냐?”

“너무 긴장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무슨 걱정이라도 되는 거야?”

“으.응.”

“무슨 걱정?”



남준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진지하게 호석을 보며 입을 열자 호석이 양 손으로 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입을 연다.



“음- 나 춤 못줘.”

“김태형도 못 춘다며? 그래서 연습하는 거 아니야?”

“그.그렇긴 한데.”

“뭐가 문젠데?”

“…그게.”

“??”

“……부끄러워서..내가 혹시라도 엉뚱한 짓 하면 어쩌지 싶기도 하고.”



맙소사 정호석, 정말 같은 남자지만 진짜 귀엽다. 애초에 후배라곤 호석이 밖에 아끼지 않는 윤기의 마음을 이해한다. 전형적인 후플푸프는 정호석을 보고 하는 이야기다. 라는 석진의 말을 떠올리면서도 애초에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본적이 없으니 걱정이 든다. 그래도 작년엔 연애 직전까지 갈 뻔 한 메리가 있었는데 말이지.



“김태형 좋아해?”

“내..내가? 내가 ㅇ.왜!!”

“그럼 너무 신경 쓰지마.”

“어?”

“별로 걔 앞에서 못난 모습 보여도 상관없지 않아?”



그.그런가? 호석이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쉽게 납득을 해버린다. 그런 호석을 보며 귀가 얇아서 다행이다 싶다. 아니다 안 좋은 건가. 남준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하긴 호석이 지금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이야기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간이 떠들썩한 이야기도 제가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학교 내에 떠도는 소문 또한 뒤늦게 알게 되거나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흔하니 말이다. 이미 태형이 호석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모두들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호석 또한 스스로 부정할 뿐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4학년 때부터 떠돌던 소문이기에 태형이 싫은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아무튼 잘 해봐.”



태형과의 관계를 옆에서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응원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긴장으로 저녁도 다 먹지 못한 채 약속한 장소로 온 호석은 으스스 추운 겨울바람에 어깨를 작게 한 번 떨었다. 약속시간 보다 20분 빨리 와버렸다. 으아 추워. 그런데 어디서 춤 연습을 할 생각인 걸까? 하아- 하얀 입김이 나오기 시작한 날씨에 겨울이 라는 것에 실감한다.



“선배.”



흠칫, 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뒤를 바라보자 태형이 서 있다. 어색하게 하하, 하고 웃는 제게 태형이 가까이 다가와 제 한 쪽 손을 꼭 잡아오는 것에 또 다시 흠칫하며 온 몸이 긴장으로 굳어버린다.



“많이 기다렸어요?”

“어? 으..아니,”

“손이 많이 차가운데?”



태형이 양 손으로 호석의 양 손을 감싼다. 따뜻해. 저보다 큰 손으로 꼭 감싼 태형의 손길에 호석의 심장이 쿵쿵, 크게 뛰고 저절로 온 몸의 체온이 올라가는 착각이 든다.



“그.그런데 우리 어디서 연습해?”

“제 비밀기지요.”

“비밀기지?”

“가요.”



태형이 호석의 한 손을 잡아 이끌고, 호석 또한 태형의 손길을 놓을 생각 없이 따른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벽 앞에 멈춰 선 태형이 호석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한다.



“눈 감아 봐요.”

“??”

“그리고 나랑 같이 있는 것을 그려봐요.”

“너랑?”



호석이 놀라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다시 심장이 요동친다. 태형과 같이 있는 이미지라니.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제게 태형이 한 손으로 제 눈 위를 덮어오고 태형의 숨결이 제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가 되어 속삭인다.



“어서요.”



마법에라도 걸린 듯 호석이 눈을 감은 채 태형과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니 상상이라기 보단 지금 태형의 손을 잡고 있는 감각을 느끼며 이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하자 순간 후욱- 하고 몸이 붕 뜬 기분에 눈을 떠 보니 알 수 없는 방 안에 있는 것에 놀라 의아해져 태형을 바라보았다.



“필요의 방이에요.”

“진짜로 있었던 거야?”

“네.”

“어떻게 찾은 거야?”



호석이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필요의 방을 둘러보자 태형이 방 한 쪽에 설치 된 축음기로 가 전원을 켜며 말한다.



“호석 선배랑 둘이서 같이 있고 싶다고 빌었더니 여기더라구요.”

“뭐?”



화르륵, 호석의 얼굴이 눈에 띨 정도로 붉어진다. 필요의 방. 학교 내에 곳곳이 숨어져 있는 필요의 방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작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의 방을 발견 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다. 아니, 필요의 방을 발견한 학생은 있지만 남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일 터였다. 그만큼 미스터리한 방이 분명했다. 게다가 필요의 방이 저와 같이 있고 싶다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발견 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인지 허무한 기분도 든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 소리가 방안을 채운다. 어쩌지? 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호석에게 태형이 가까이 다가와 한 손으로 호석의 허리를 잡자 호석이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양 손으로 태형의 팔을 붙잡은 채 당황한다.



“아, 선배가 리드 하실래요?”

“미안, 노..놀라서.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니, 문제는 춤을 못 추니 제가 리드를 할 수 있을 리가. 아니지 태형 또한 춤을 못 춘다고 하니 누가 리드를 하든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겠지. 어쩌지? 하며 바보처럼 멍해져 있자 태형이 입을 연다.



“그럼 우리 번갈아 가면서 리드해보고 정해요.”



그러니까 오늘은 제가 선배 리드할래요. 태형이 호석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가까워진 거리에 괜히 숨이 턱 막힌다. 그런 제게 긴장 풀어요. 라며 귓가에 속삭이며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호석이 제 허리를 잡고 있는 태형의 팔과 어깨 사이로 제 손을 올리고 다른 한 손은 서로의 손을 붙잡는다. 간질간질,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워진다. 동시에 제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페퍼민트 향이 희미하게 태형에게서 맡아진다.


아 뭔가… 딱딱했던 움직임이 음악소리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조금씩 익숙해진다. 어느새 긴장이 풀린 호석의 눈이 점점 반쯤 풀려 얼굴을 태형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다. 졸려.



“선배, 어디 아파요?”

“…졸려.”

“푸흡,”



방금 비웃은 건가? 그러나 비웃은 것과 상관없이 호석은 졸음이 밀려왔다. 하긴, 태형과 약속을 하고 이틀 동안 제대로 잠도 못자고 혼자서 긴장한 채 걱정을 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같이 춤을 추며 저 혼자 괜한 걱정을 했었다는 것을 느끼고 태형과 붙어 있으면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함께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충분히 졸리게 만들었다.



“졸리면 자도 되요.”

“으응-”

“깨워 줄게요.”



낮게 속삭이는 태형의 음성이 기분 좋아서 안심이 되기라도 한 것인지 점점 호석의 움직임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지는 몸에 호석이 완전히 잠에 든 것을 확인한 태형이 호석을 들어 소파에 눕혀 소파 아래에 앉아 호석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호석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는다.



“좋은 냄새.”



정국이 호석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며 꽉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하던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보니 괜히 심술이나 호석의 목덜미 위로 제 입술을 가져가 강하게 빨아들인다.



“으으- 응-”



호석이 몸을 뒤척이며 신음하는 것에 고개를 들자 호석의 목덜미에 새겨진 붉은 점에 태형이 장난스럽게 씨익- 웃어버리고 만다.







“형 저 정말 화 안 낼 테니까.”

“정국아.”

“그 자식이 어디까지 형한테 손댔는지 솔직히 말 해봐요.”



아니 너 지금 얼굴 화난 거 아니냐? 말이랑 얼굴이 다른데? 호석이 난감한 얼굴이 되어 이내 주위를 바라보자 저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들이 이내 저와 마주친 시선에 놀라 휙- 고개를 돌려 피해버린다.



“그..그냥 벌레에 물린 거라니까.”

“아닌데. 벌레에 물린 거 아닌데.”



제길. 호석이 제 목 가운데 위로 잘 가려지지 않는 위치에 새겨진 붉은 점에 아침부터 난감해졌다. 정신이 들고 보니 어째서 인지 기숙사 안, 제 침대였고, 사정을 들어보니 태형이 저를 업고 후플푸프 기숙사 앞에서 서 있었다며 자고 있는 저를 넘겨주었다는 후배들의 말에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끝난 일일 줄 알았다.


아침 식사가 시작되고 언제나와 같이 같은 무리들 사이로 들어와 아침인사와 함께 식사를 하려는 제게 모두의 시선이 평소와 이상한 것이 아닌가. 처음엔 뭐지? 하는 생각으로 의아해 하고 있자 케이가 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호석아, 너 목에… 그거 키스 마크아니야?’



키스..뭐? 호석이 우유에 만 콘프로스트를 한 입 떠먹다 말고 그대로 굳어 놀란 얼굴을 한 채 케이가 가리킨 자리를 한 손으로 더듬자 만져도 모를걸? 봐야 알 걸? 이라며 옆에 있던 같은 무리의 여자 친구인 도로시가 거울을 내민 것을 받아 제 목에 비춰보았다. 그리고 셔츠 깃으로도 가려지지 못할 위치에 새겨진 붉은 자국에 호석이 뭐지? 하고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것은 모두를 오히려 기겁하게 했다.



‘이거 벌레 물린 거 아니야?’



김태형이 진짜로 정호석한테 진심 인가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제가 멍청하다는 것을 오늘 하루 종일 느꼈다. 오전 수업에 모두들 제 쪽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에 결국엔 머플러로 목을 감쌌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정국이 지금 제 눈앞에 앉아 제게 닦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제 춤 연습 한 거 맞아요?”

“다..당연하지. 춤만 췄어.”

“그럼 목에 있는 그건 뭔데요?”

“벌레에 물린 거래도.”

“형 멍청하다는 소문까지 난거 알아요?”



뭣이?! 호석이 그 소문만큼은 용서 할 수 없다는 듯 울컥하다 이내 진지한 정국의 얼굴을 보며 입을 꾹 다물고 ㅅ이 되어버린다.



“거짓말이에요.”

“뭐?”

“내가 그냥 좀 답답해서 그랬어요. 형 멍청하다는 소문 안 났다구요.”

“야, 아무리 그래도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하냐?”

“솔직히 말해봐요.”

“뭐가. 솔직히 말하고 있잖아.”

“김태형 좋아하죠?”



이게 대체 몇 번째 듣는 질문인거냐. 호석이 가만히 정국을 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저녁 식사에 집중하기로 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분명 평범하게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이 분명했다.



“야 잡종!”

“컥?!”



갑자기 제 머플러를 거칠게 잡아당기는 손길에 호석이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몸이 뒤로 기울어져 그대로 넘어진다. 그런 호석의 모습에 정국이 야!! 하고 크게 외치자 식당 안에 있던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버리면서 빠르게 몰려든다.



“어쭈 전정국? 너 또 맞고 싶어서 반말하냐?”

“선배 소리 듣고 싶으면 똑바로 행동하시던지. 유치하게 짝이 없어선!!”



호석이 뒤로 넘어진 아픔과 함께 제 머플러가 리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리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린다. 그런 제 행동에 익숙한 듯 리키의 무리들이 호석을 양 옆에 꼭 붙잡아 못 움직이도록 하는 것에 호석이 반항하듯 몸을 비틀고, 호석에게 맞아 비틀 거리던 리키가 욱해선 호석에게 달려들려는 것에 정국이 그 사이를 막으려 서자 의외의 인물이 정국과 리키의 사이에 빠르게 끼어든다.



“뭐? 박지민?”

“적당히 좀 하시죠 선배님. 질리지도 않나.”

“아?”



퍼억- 리키의 시계가 완전히 돌아가고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대자로 뻗어버린다. 강렬한 아픔이 리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눈만 뜬 채 멍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는 리키의 모습에 구경을 하던 학생들이 놀라 수군거리고 정국 또한 놀라 눈만 깜빡인 채 지민을 바라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무슨 마법이었나?



“선배님들도. 얼른 리키 선배 데리고 양호실이라도 데려가셔야 될 것 같은데요.”

“……”

“빨리 안 데려가면 영영 저대로 움직이지 못할 걸요?”



몸부림치는 호석을 붙잡고 있던 리키의 무리들이 지민의 말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리키를 들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구경하던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흩어지기 시작하고 지민이 호석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자 호석이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지민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팔락-


음? 지민의 교복에 붙어있는 나비가 날개 짓을 하는 것을 바라본다. 어디서 본 나비 날개 같은데… 뭐지?



“아아- 이거 그냥 뱃지에요.”

“그..그래?”

“괜찮으세요?”

“응. 고.고마워.”



그나저나 조금 전 리키를 쓰러트리던 지민의 움직임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지민이 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키가 뻗어버린 것이 신기했다.



“원래 대대로 무술을 해온 집안이라서 조금 재주부려 봤어요.”

“무술?”



저와 지민의 사이로 정국이 흥분한 듯 호석의 옆으로 서서 지민을 보며 입을 연다.



“와 쩌..쩔었어. 그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

“응? 음- 잘?”



눈을 반짝이는 정국이의 시선이 석진이나 남준이를 보는 것과 똑같아서 어쩌면 지민이 마음에 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정국을 뒤로 하고 호석이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지민에게 묻는다.



“저기, 고맙긴 한데 괜찮겠어?”

“뭐가요?”

“아니… 너 슬리데린..”

“아아 괜찮아요. 원래 저나 같이 다니는 애들이나 리키 선배들 별로 안 좋아했어요. 게다가 선배들 올해 졸업하니까 이제 상관없어요.”



멋지다. 정국의 눈이 더욱 빛을 내는 것을 보며 지민이 씨익 웃는다. 원래 싫어했다고? 그렇다는 건 이따금 리키의 무리들과 같이 있던 태형의 무리들을 떠올린다. 좋아서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왠지 지금까지 보았던 시선들이 바뀌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

“태형이가 진심인가 봐요.”



무슨 소리야? 호석이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자 리키의 손에 들려있던 머플러를 제게 건내는 지민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져 얼른 지민에게서 머플러를 받아 제 목에 두른다. 그런 제 행동에 작게 웃음을 흘리는 지민이 어째서 인지 놀리는 것 같아 짓궂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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