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 아닌데 상처가 나? 우리 아부토 변명도 정도껏해야지??”


하루코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다들 대가리 박아”


쭈뼛쭈뼛오던 놈들이 급하게 달려와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물론 아부토도 박았다. 아부토가 일행을 보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게 내가 자수하자고 했잖냐. 그걸 바로 들킬 줄 누가 알았냐. 하루코가 우산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우산과 맞닿은 부분의 땅이 움푹들어갔다. 그들은 조용히 입을 막았다.


“명령 불복종은 할복이다 실시”


하루코가 친절히 그들의 허리에 누워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자 쫄병들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머리로 하는 팔굽혀펴기를 시작해왔다. 물론 터질듯한 머리통을 참으면서 명령 불복종은 할복이다라고 제창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제창 했을까 하루코가 이만 쉬어도 괜찮다며 머리통을 톡톡 건드렸고, 쫄병들은 바닥에 뻗었다. 물론 하루코는 쓰러진 그들의 허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하루코가 저의 발치에 있는 아부토의 허리를 발로 툭툭 쳐왔다.


“이제 해명이나 들어볼까?”


아부토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번쩍 몸을 일으켜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여기에서 아까처럼 어물쩡거리면 끔살이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저번에 구해준 아기 토끼를 단장에게서 구하다가 맞았습니다.”


“걔를 왜 영감한테서 구했는데?”


아부토의 눈이 도르륵 굴러갔다. 그러자 하루코의 밑에 깔려있던 쫄병들이 제창했다. 그들은 죽고싶지 않았다. 아부토처럼 하루코가 아끼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부토가 자신에게로 공격하려던 아기토끼를 피한 후 진심을 다한 공격에는 진심으로 해야한다며 단장님이 아기토끼에게 진심으로 차는 것을 대신 막아섰습니다!!”


“아, 동족성애자 기질이 나왔다 이거로군, 그런데 너흰 뭐했지?”


“그..”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아부토가 공격당하는 것을 낄낄거리며 구경하다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면 이어질 하루코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왔기 때문이다.


“아하, 또 구경했구나-! 좋았어 너네 전부 이번달 월급 삭감이다! 반정도 깎으면 정신 차리겠지??”


쫄병들은 좌절했다. 지옥에서 찾아온 악마가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없었다. 야토 가라사대. 야토에서는 강한사람이 뭐든 할 수 있었다. 하루코가 후후 낮은 침음을 흘리며 방글방글 예쁘게도 웃어왔다. 왠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 같았다.


“아 맞아! 아부토 그래서 그 아기 토끼는?”


“뭔가..어미를 납치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악당의 기질이 넘치는 아이 같았다니까 그보다 너 계속 단장이랑 있던거 아니었어?”


“아-! 방치플했거든!! 오랜만에 불끈불끈 했다니까-!!”


함선 안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지다못해 싸해졌다. 그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얼굴로 다급히 얼굴을 돌리고, 몸을 돌려서 사라졌다. 물론 아부토와 그쫄병들은 하루코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부토랑도 방치플 할까하고!!”


“아하하, 다시 생각하는게 어때? 이 아저씨는 그런 험한거 안하고 싶...”


“물론 선택권은 없어 아부토!!”


하루코의 손에 아부토가 질질 끌려갈 무렵 아부토가 팔을 버둥거리며 손가락으로 저의 동료들을 가리켰다. 쟤들은 어쩌고? 아, 쟤네도 같이 해야지. 방치플. 근데 썩 꼴리는 얼굴이 아니라 아무래도 돌아가면서 하려고!! 제일 꼴리는 아부토부터!!


“악취미 같으니라고”


“아잉- 그런 나를 사랑하면서?”


하루코가 뀨잉이란 말을 내뱉으면서 나 귀엽져? 하는 표정을 만들어냈으나 이미 그런표정에 면역이 되어있는 아부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지르며 몸에 힘을 풀었다. 지금 긴장을 해보았자 나중에 근육이 굳어 저만 힘들터였다. 그럴바에야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게 낫지 아무렴. 저도 잘못한게 있었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코가 말을 하기 전까지.


“아, 맞다 아부토. 오늘 함선 떠나던데. 그 아기토끼는?”


아부토는 급하게 함선 밖으로 나섰다. 무참히 버려진 하루코는 눈물을 광광 되새기다가 짜증이나 쫄병들을 조금만 더 괴롭히다 아부토를 따라가기로 했다.


아부토를 따라오는 붉은 머리칼의 인영을 한 번, 그 얼굴을 되새기길 두번, 다시 붉은 머리칼의 인영을 바라보자 아부토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멋쩍게웃어왔다. 아니 그게 말이지.. 어쩌다보니 데려와버렸지 뭐야? 싱겁게 머리를 긁적이는 그가 왠지 보기 싫어 머리를 한대 후려치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사진에 있던 걔가 맞는 것같은데.. 그.. 누구냐


“음.. 카나리아? 라는 이름이었던가???”


“어이, 카말고 전부 틀렸거든? 그보다 뭐하는거야? 때려맞추는거야??”


아부토의 어이없는 속삭임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음, 역시 바다돌이를 닮아 성격이 더럽군! 제 딴에는 기분나쁜 얼굴을하며 나를 바라보는 모양새가 참 웃겼다.


“바다돌이가 잘생겨서 기대했더니, 별로 잘생긴것도 아니네. 저 혼자의 어둠에 사로잡힌것 뿐이잖아”


실망이야. 그래뵈도 기대 많이 한 편이었는데. 이러면 저번에 넘어간것도 왠지 무용지물일것 같단 말이지. 애초에 그 인간은 대머리니까 저정도면 준수한건가? 그런데 눈동자가 마음에 안드는데 어떡해. 차라리 썩어빠진 동태눈이 낫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지으며 몸을 뒤돌리려던 찰나 등 뒤로 가격해오는 공격에 신나게 배를 까줬다. 애써 좋게 봐주려고 하니까 이놈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네.


“아아- 그래서, 이게 나와의 함뜨를 포기하고 얻어온거야? 아부토”


물론, 건방진 애새끼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아부토를 썩은 동태눈을 하고 바라보자 아부토가 단장도 허락했다며 별 시덥잖은 변명을 하고있기에 괜스레 아부토의 명치를 손으로 톡하고 치고 곱게 한줄로 땋여져있는 애새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명치가 아픈지 왁왁 거리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함뜨를 무시하고 애새끼를 데려온 아부토에게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야, 카나리아. 네가 네 가족에게 무슨 멍청한 짓을 하고 온지는 모르겠는데, 그딴 표정으로 이 함선에 들어올거면 그냥 나가라. 여기는 보육원이 아니야. 후회할 짓은 시작하지도 마.”


“더 이상 후회는 안 해”


“멍청해 빠진 애새끼네.”


과거 일을 더듬는 애새끼의 눈은 처량하기 그지 없어서 외면해버렸다. 괜히 쓸데없는거 생각나고 난리야 진짜. 애새끼의 머리카락을 놓고 그들에게서 등져왔다. 뭐, 내가 떠나면 아부토가 잘해주겠지. 동족성애자니까. 티나지 않게 입술을 짓이기고 함선 내부로 발걸음을 돌렸다. 


“짜증나”


괜히 머리카락을 흩뜨려놓았다. 비참해지는 건 질색이었으니까. 그리고 알고있었다. 저에게 말을 붙여준것도 그 소중한 동족이었기 때문이라는걸. 댓가 없는 호의를 준 것또한 그것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씨*”


아무래도 오늘은 호우센의 방에 들어야겠다. 그리 생각하면서.






***




“아흐- 아파라. 하여간 성질도 더러워요. 어이- 괜찮냐?”


하루코가 함선 내부로 발걸음을 돌리고 아부토가 신음을 내지르며 바닥에 누워있는 카무이에게 손을 내밀어왔다. 카무이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나 아부토에게 말을 걸었다.


“저사람 강해?”


카무이의 푸른눈이 일렁여왔다. 아부토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무래도 강하지? 저렇게 칠렐레 팔랠레해도 이 함선의 2인자인걸? 뭐,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은, 단장빼고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야. 대화가 다른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하루코가 지나쳤을 때의 미묘한 신경변화에 쏠려있었다. 


“그보다 아기토끼짱? 손을 세게 쥐는건 그만해줄래? 이 아저씨, 손 아프다??”


“알게뭐야. 대머리나 되어버려라”


“아? 그건 안된다구? 이 아저씨는 말이야 버림받기는 싫단 말이지. 나는 평생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을거야”


아부토가 장난처럼 카무이를 놀렸고 카무이는 아, 그렇구나- 하고 아부토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아부토가 아프다며 놓아달라고 오열할때쯤에야 풀어주었다. 아부토가 카무이를 제어하기 포기하고 함선 내부를 이곳저곳 알려주려 몸을 돌려왔다. 애써 하루코를 신경쓰지 않으려 애쓰면서.





***




하루코는 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호우센에게 돌진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고개를 박았다. 있지 할아범, 우린 역시 사랑을 받을수도 줄 수도 없는 족속인걸까. 호우센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것이 되었다면 너를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


“그치”


하루코가 우울하게 중얼거려왔다. 부루퉁한 얼굴로 그는 호우센의 가슴팍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역시나 아부토는 내가 일순위가 아닌가봐. 그 다정함이 나에게만 다가왔으면 좋겠는데, 동족이라면 누구든 다정한거였어. 나도 동족이니까 다정하게 대했던거겠지? 하루코가 입술을 짓씹었다. 호우센이 손을 들어 하루코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도닥여왔다.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그러니 다시 얼굴에 멀쩡한 얼굴을 씌우도록 해”


“근데, 너무 가슴이 아파 괴로워.”


하루코가 눈 끝에 방울방울 눈물을 매달았다. 호우센이 가슴팍에서 하루코의 얼굴을 떼고 눈가를 손가락으로 두드려왔다.


“마약이던, 전쟁이던 네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준비해줄테니 써라. 네가 나를 처음만났을 때 가장했던 태연함처럼. 어차피 우리네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은 없다. 그 예쁘장한 얼굴에 다시 얼굴을 씌워 그리고 견뎌라. 이번엔 지구에 데려가주마”


“멍청한 할아범. 양자라고 신경쓰는거봐. 징그러”


마침내 평정을 가장한 하루코는 멍청하게 웃으며 눈가에 눈물을 단채 팔을 부르르 떨었다. 그에게 언제든 가장은 쉬웠으니까. 가슴이 찢어질것 처럼 아프고 괴로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언제고 아부토에게는 한없이 약자였다.


“마약이나 내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여미지 않은채 하루코가 호우센에게서 멀어져 손을 내밀었다. 그는 호우센이 내미는 곰방대를 잡아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다댔다. 하아- 느른한 얼굴과 함께 진정된 그의 얼굴에 호우센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눈이 점점 풀려가던 하루코는 괜스레 저의 몸을 감싸던 복잡한 옷가지와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고 이불시트를 얼굴 끝까지 둘러썼다. 머리가 몽롱했다. 하루코는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냥 동정이었잖아”


괜히 기대했네. 멍청한 애새끼의 모습에서 저의 어린시절을 발견했던 하루코는 뭉게뭉게 떠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며 웃었다. 그럼그렇지. 저에게 댓가없는 친절을 줄 리가 없지. 그럼에도 그는 아부토를 없앨 수 없었다. 이미 마음 한켠에 단단히 자리잡았으니까. 그랬기에 아부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하루코는 행성의 내핵까지 들어갈것같은 얼굴로 뇌까렸다.


“그래도. 나는 절대 못잊어”


그러니까 다시금 평온을 가장할래. 네가 그저 동족을 위한 호의로 다가왔다가 나에게 묶인거라고 해도. 이쪽은 절대 널 못놓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은 조금 아프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참다가 도망갈래. 내가 네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까지. 하루코는 우울한 얼굴로 담배를 바닥으로 던져버리고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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