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있어서 넘어지는 일은 정말 흔한 일입니다. 조금 과장을 섞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넘어진다고 할 정도로, 저 아마미 하루카는 자주 구르는 여자아이니까요. 다행히 넘어져도 별로 다치지도 않고, 언제나 손바닥을 탁탁 털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 이후로는 뭔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게 되버린 것 같아요.

그 뿐만이 아니라, 넘어지는 것 자체도 몹시.....무서워지고 말았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 날,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니었습니다. 아주 대차게 넘어지는 것에 비해 발목을 조금 접지르는, 대수롭지 않은 부상으로 끝났었죠. 하지만 그 넘어진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던 것이에요. 무대에서- 이제 막 제 차례가 나올 때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던 거죠.

시야가 급격히 휘청거리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무릎과 발목에는 아픔이 찌르르 달렸습니다. 관객 여러분이 저를 부르는 소리는 우당탕하는 소리에 끊어졌죠. 저는 언제나 그랬듯 벌떡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민망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기고, 실수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다 마주친, 관객들의 시선이 아주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마치 저에게 '이런 초보적인 실수나 저지르다니, 그러고도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겠냐' 라고 꾸짖는 듯한 눈빛들.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어서, 한참이나 주저앉아있었습니다. 뒤늦게 프로듀서씨가 달려와 저를 부축했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뒤 공연을 재개했지만.....결과는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라이브들 중에서도 단연 최악, 이라고 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실패를 경험한 적은 많았습니다. 신발을 바꿔 신었다던가, 집에 물건을 두고 왔다던가, 전철이나 버스를 잘못 탔다 같은, 살다보면 거의 누구나 한 번쯤은 저지르는 것들도 있었고, 댄스 레슨에서 스텝이 꼬여 허둥댄다던가, 스케쥴을 깜빡한다던가 같이 일과 관련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어쩌지, 어쩌지라고 당황하면서도 어떻게든 수습하고, 일어나려고 했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기가 정말 힘든 것,

아니- 힘들어요.

그 때부터 계속 그 날의 엄격한 눈이 떠오르는 걸요. 다른 걸로 기분을 전환해보려도, 자꾸만 생각나고, 심지어는 관객 여러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넘어지는 꿈까지 꿀 정도라서 괴로워요. 프로듀서씨는 말했습니다. 다음 라이브에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저는 자신이 없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건 '네! 그때야말로 연습한 성과를 보여줄테니까요!' 같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뭐가 연습한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건지.....도저히 무리인데.

하아, 그렇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저는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숨긴 체 모두와 레슨을 계속하고, 대화를 나누고, 스케쥴에 나갑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후우......"

이렇게, 아무도 없는 댄스 레슨실에서 또 다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닥에 검정 테이프로 선을 만들고, 그 선을 넘는 연습. 아하하, 선의 앞은 무대 뒷편, 선을 넘어서는 순간 무대라는 설정이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연습을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단 한 번도 제대로 선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7할은 물끄러미 검은 선을 둘여다 보고, 나머지 2할은 발을 조금 떼어 옮겨보지만 결코 선을 넘을 수 없고, 나머지 1할은 큰 마음 먹고 선을 밟지만-

"아, 아, 아와앗!?"

이렇게 또, 바보같은 소리를 내면서 부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일 뿐. 어딘가 또 잘못 발을 딛어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급한 건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는 것.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균형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습니다. 차라리 손을 바닥에 대서 가볍게 엎어지고 금방 다시 일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게, 넘어지는 게 무서워졌으니까요.

"후아아...."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는 데 성공하자 다리에 힘이 쫙 풀려서 그만 스르륵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힘이 나지 않아서, 차가운 마루바닥에 앉아 멍하니 그어진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작 저것도 넘지 못해서는 어떻게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 때처럼 또 넘어지곤 말겠죠. 그리고 관객분들이 정말 질렸다는 눈빛으로 이쪽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으, 우, 아와아앗! 또,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가 마구 흐르려합니다! 저는 붕붕 고개를 돌리면서 그것을 겨우 끊어내고, 바지를 툭툴 털면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어요. 좀 더 연습해야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연습이라고, 트레이너씨도 말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별 성과가 없지만, 계속 하다보면 분명 성과가 있을거에요. 네, 그럴 거에요!

"후으으....."

먼저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바닥의 검은 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의를 세심히 기울여서 넘어지지 않게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발을 옮깁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선에 가까워질 수록, 정돈되었던 숨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후, 후우......"

이 이상 걸어가면 안된다고, 마치 경고하는 것 같아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곧 어떻게든 넘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다리를 올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습니다. 발이 그 자리에 딱 붙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움직여보려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제 의지를 거부하는 몸과 씨름하던 저는 결국 항복해서, 이번에는 뒤쪽으로 발을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움직여지는 다리.

"정말, 어쩌지....."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는 울음이 섞여있었습니다.

.....

어느덧 9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며,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다음 라이브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내일이라도 좋으니 당장 프로듀서씨에게 참가를 보류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참여하는 걸로 정해진 것이고, 또 자기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고, 또 라이브 준비에 한참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제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문제입니다.

으, 막차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 더 연습하고 가도 괜찮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태세를 정비하고, 선 앞에 선 순간-

끼이익-

에? 저 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도망치려고 해도 뒤 쪽의 문이 전부라 분명 마주치고 말테고, 숨으려고 해도 탁 트인 이 곳에는 그럴 공간이 없습니다.

뚜벅뚜벅,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 지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문을 연 사람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누굴까요? 저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치하야쨩.....?"

"하루카?"

어째서인지, 치하야쨩이었습니다.

"뭐하고 있어?"

"아, 아 그게.....댄스 연습을 좀."

치하야쨩의 물음을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뭐, 뭐어- 연습은 연습이니까요. 딱히 거짓말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부터 계속 불이 켜져있다 했더니, 하루카였구나."

"으, 응....."

"연습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해."

"아하하, 그러도록 할게. 그런데 치하야쨩은 무슨 일로 여기에?"

"볼 때마다 불이 켜져있길래 누군가 해서 올라와봤을 뿐이야."

그, 그랬구나.

"치하야쨩, 이제 늦었으니 빨리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오히려 네 쪽이 그래야하지 않을까? 막차라도 끊기면 곤란할테고."

치하야쨩을 빨리 돌려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역으로 당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막차 시간에 맞춰서 나갈 거라고 말했지만 치하야쨩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더니,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저기, 하루카."

"응?"

"같이 댄스 레슨을 받을 때, 그렇게까지 뒤쳐져보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마코토나 가나하씨만큼 댄스에 대한 눈썰미가 있지는 않지만, 이라고 덧붙여가면서도 '댄스 연습' 이라는 제 핑계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하는 치하야쨩. 저는 그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랬나? 그렇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라고 대답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그 그랬었......나?"

하지만 목소리는 제가 생각해도 몹시 수상할 정도로 떨려있었습니다. 아하하하, 웃음으로 흘려보내려고 했지만.....

"뭔가 숨기고 있구나."

역시, 이미 늦고 말았던 것입니다. 치하야쨩이 날카롭게 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에이~ 별 거 아니야."

숨길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해버립니다. 물론, 감 잡은 치하야쨩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치하야쨩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그 검은 선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댄스 연습을 할 때, 이런 선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지."

"아, 그게....별 건 아니지만서도.....혹시 다음 라이브때 또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해서."

이렇게 된 이상 말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알려줄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문제를 가볍게, 작게,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포장했습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하야쨩은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네가 그렇게 힘들었을 줄은 몰랐는데, 같은 말들을 중얼거렸습니다.

"아, 아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니까-"

그 말에 거짓말로 응수하며 어떻게든 치하야쨩이 신경을 덜 쓰게끔 만드려고 했습니다.

"프로듀서나 리츠코한테 말해두는 게....."

"안돼!"

그렇지만, 치하야쨩이 그렇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려고 해서- 참을 수 없게 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하루카.....?"

"아, 아하하......큰 문제는 아니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야할까....."

".....모두에게 알리는 건 싫은 거네."

"그, 그렇지!"

제가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얼버무리는 말 안에 담긴 속 뜻을 알아챈 치하야쨩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끄덕거렸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나한테는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에.....?"

"지금 네 심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아주 자세하게."

싫어,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치하야쨩의 눈빛이 '그러지 않으면 모두에게 말해버린다' 라고 단단히 이르는 듯한 그런 것이었기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음.....나 말이지, 넘어지는 게......무서워. 무섭게 되어버렸어."

이렇게 말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전에는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어. 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미안해할 수 있었는데.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는데 같은, 이런 속 안에 담아두었던 말들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치하야쨩은 진지한 표정으로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저번 라이브에서 넘어졌을 때, 순간 관객들의 눈빛이 아주 무섭게 느껴졌어. 그래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지금이라도 당장 기억해낼 수 있는, 그 차갑고 싸늘하고 엄한 눈빛. 부르르 몸이 떨려왔습니다.

"나, 두려워. 혹시 이번 라이브에서도 넘어져버리지 않을까해서."

첫 번째 실수에서도 그렇게나 무서웠는데, 두 번째에 가서는 더욱 심해지겠지요. 분명 야유가 쏟아져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절대 견딜 수 없을테고, 라이브 회장에서 도망치고 말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아이돌 활동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처음 아이돌이 되어서, 작은 지하극장조차도 들어갈 수 없이 공원에서, 백화점 옥상 같은 데에서 시작한 라이브를 지나서, 작고 외진 라이브 하우스, 변두리 소극장을 건너- 아직 돔은 아니지만 나름 어엿한 공연장에 이른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들을, 그것을 위해 지내왔던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싶고, 더 나아가 반드시 톱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그 때도 넘어져버린다면, 분명 저는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리겠죠.

"그래서 계속 연습하고 있던 거야. 절대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전혀 진전이 없지요. 이런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랬구나."

긴 이야기를 다 들어준 치하야쨩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연습을 도와줄게."

치하야쨩은 진심이었습니다.

-------------------------------
하루카에게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써봤습니다.

remainder72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