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벅차고 힘든 하루였다. 갑작스럽게 비와 마주한 것도 오랜만이었고, 급히 우산을 산 것도, 엄마와 이야기를 한 것도, 뽀뽀를 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모던 하우스에서 까만 장우산을 샀다. 명도가 낮은 회색, 네이비 우산도 있었지만 오늘 기분은 까망이었다. 다른 색깔을 쓰려 그러니 도저히 용기가 안 나더라. 아무래도 오늘은 검은 기분이었다. 뭐가 그렇게 벅차고 힘든지, 또 왜 이렇게 외로운지 알 수가 없다. 외롭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마냥 숨 쉴 때마다 덤으로 외로움이 얹어진다. 

 서글프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할 때마다 묻어나오는 슬픔은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 서글프게 사랑하기 시작하면, 사랑만이 존재할 때로는 돌아가기가 힘들다. 서늘한 사랑 속에서 첨벙거리면 익사하지도 않는다. 사랑해서 죽어 버리기 힘들다.  

 너무나도 힘든 매일이다. 부담감과 죄책감에 몸둘 바가 없다. 잘못된 모든 것의 시작을 내가 쥐고 있는 기분이다. 만약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렸을 적부터 아역 배우로 돈을 벌었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라는 상상에 기대어 하루를 넘기는 날이 많다. 만약에 내가 유언장을 쓴다면, 만약에 내가 사라진다면, 만약에 내가 미안하다 그런다면, 만약에 내가 미안하다 그런다면.... 상상 뒤에 덩그라니 남겨진 대답들이 안쓰러워 다시금 내가 미워진다.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돌이켜 보려 고개를 돌리면 풍경처럼 마주하는 것은 어둠 뿐이다. 엄마에게 25만원을 빌려 주었다.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말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돈 빌려도 될까'라는 말을 타닥타닥 비내리듯 두드리는 엄마를 떠올리면 울음이 치솟는다.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까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건 왤까. 이유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열이 오른 밤이 이어졌다. 이번에 든 감기는 내가 미워서 걸린 거다. 조금이라도 아파야 마음이 개운하니까. 수많은 웅성거림 속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알겠다고 엄마에게 갔어야 했다. 이천원도 안 하는 거 아끼겠다고 쨍하게 울며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비도 맞지 않았는데 어찌나 마음이 묵직하던지, 내려앉는 줄 알았다. 철저하게 외롭다. 뭐든 적다 보면 온 새벽이 욱신거린다. 눈 뒤쪽이 얼얼하게 당겨 오면 깨닫는다. 아, 나 지금 지쳤구나. 바닥까지 지친 탓인지 힘내는 것도 버겁다. 나는 정말 조금이라도 잘 살아 보려고 늘 노력한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싶어서 바둥거렸는데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를 벗어난 일들이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외롭지 않은 순간이 없었기에 침묵을 다진다. 나는 외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 외로움을 위해 태어난 인간처럼, 외로움을 외롭지 않게 해 주기 위하여 태어난 것마냥 평생을 외롭게 지내지 않을까 싶다. 문득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는 무한의 애틋함 대신에 무한의 외로움을 좀먹고 살겠구나. 사랑 받는 데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엄마가 보고 싶다. 

 세찬 바람에 못이겨 새로 산 까만 장우산이 부러져 버렸다. 바람이 난도질하는 데로 스러지고 싶었다. 

쓰고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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