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val 외전1과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니, 1을 읽지 않으셨더라도 관계없습니다.



Rival




"규빈!" 

"어? 리암!" 


규빈은 공항까지 마중 나온 리암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가 반갑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리암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으로 사진전을 여는데 그동안 찍었던 대표 작품들과 함께 새로운 사진을 전시할 예정이었다. 리암은 규빈과 도형에게 모델 요청을 해왔고, 규빈과 도형은 리암의 부탁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OK를 하고 스케줄을 맞추었다. 


"잘 지냈어요?" 

"그럼요, 리암은요?" 

"저도요, 도형은?" 

"뭐... 올 때 되면 오겠죠."

"음? 싸웠어요?" 


규빈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리암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규빈의 반응에 리암 작가는 10년 전에도 티격태격하더니 여전하구나. 생각하며 일단 규빈을 데리고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면서 리암은 앞으로 촬영 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도형의 얘기는 꺼내지 않으려 했지만 앞으로 두 사람과 함께 촬영을 해야 했기에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요. 이대로 괜찮은 건지... 그동안 서로가 곁에 있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긴장감이 없었던 거 같아요."

"서로의 곁이 익숙해졌다는 건 그만큼 믿음도 깊어졌다는 거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가끔 실수도 하고 깜빡하기도 하고, 그렇게 익숙해지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어찌 보면 가장 단단한 사랑과 믿음이 밑바탕 해주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 

"우선 푹 쉬어요. 복잡한 머리도 좀 비우고 천천히 생각해요. 복잡한 상태에서 생각하면 더 복잡해질 뿐이니까." 

"고마워요." 

"고맙긴, 규빈과 또 작업할 수 있게 해줘서 내가 고맙지. 쉬어요." 


리암은 규빈이 묵을 룸에 캐리어를 옮겨주고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준 뒤 룸을 나갔다. 규빈은 통유리로 된 창에 서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형은 첫 사극 도전에 정신이 없었다. 연기 수업도 받아야 했고, 무술도 익혀야 해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 건 규빈도 마찬가지였다. 쇼핑몰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규빈은 틈틈이 디자인도 배우고, 도형과 함께 몸담고 있던 회사의 이사직을 맡게 되고, 후배들을 케어해주느라 규빈 역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그런데도 도형과 규빈의 사이는 변함이 없었다. 더 단단해져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틈나면 메시지로,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속삭이고, 가끔 잠든 모습 밖에 보지 못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러다 리암 작가에게 연락이 왔고, 지금 도형이 들어간 작품이 끝나면 함께 촬영을 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하는 촬영이라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 둘만의 시간도 가질 생각에 힘든 것도 모르고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도형의 촬영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두 사람의 기념일이 다가왔다.


규빈은 서프라이즈를 위해 도형 모르게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규빈이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스태프들이 촬영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규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지나가는 스텝을 붙잡고 물었다. 


"김도형 배우 어디 있어요?" 

"촬영 끝나고 회식 장소로 이동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규빈은 혹시 도형이 연락을 했는데 받지 못한 것인가 싶어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와있지 않았다. 규빈의 깜짝 서프라이즈는 실패로 돌아갔고, 규빈은 집으로 돌아와 도형을 기다렸다. 새벽이 지나도록 도형은 연락을 받지도, 오지도 않았다. 규빈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도형을 기다렸으나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아침, 도형의 스캔들 기사였다. 

〃 김도형 ♥ 차소희 핑크빛 기류. 영화가 맺어준 커플 


매니저 식이의 전화로 소식을 들은 규빈은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도형의 이름으로 도배 된 실검과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연예계 활동 이후 도형의 첫 스캔들은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파트너로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사진들만 담아 올린 기사라는 걸 알면서도 규빈의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애인의 스캔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케이크와 꽃다발.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한지 10년이 되는 날, 놀래주기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라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네, 형. 안 그래도 방금 도형이 형 매니저랑 연락했는데, 지금 같이 촬영장에 가고..

"그 얘기는 됐고, 비행기 표 좀 알아봐 줘." 

-네? 

"어차피 다음 주에 리암 작가님이랑 촬영 있잖아, 먼저 가서 머리도 식히고 그러게." 

-도형 형님도 알아요? 

"내 일인데 그 새끼가 왜 알아야 해." 

-그래도... 

"끊어. 내가 알아볼게. 대신 어디로 갈지 나도 몰라." 

-아, 알았어요! 형! 

"그 새끼랑 걔 매니저한테 입 뻥끗하면 죽는다." 

-하... 네. 



그러한 이유로 리암에게만 알리고 먼저 출발했다. 지금쯤이면 도형도 알았으려나, 알게 되었다고 한들 촬영에 발 묶여 있으니 도형은 예정대로 올 수밖에 없을 터였다. 거기다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핸드폰 전원을 꺼둔 상태로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었다. 


도형과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10년을 만나면서 늘 좋을 수는 없었다. 도형이 많이 맞춰주긴 했지만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하지만 도형의 노력으로 금방 화해하고 다시 뜨겁게 불타오르기를 반복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도형이라고 변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연락을 해왔고, 술을 많이 마셔도 집에는 꼬박 들어오던 도형을 이제 바라면 안 되는 것일까. 도형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도형으로 인해 치유된 줄 알았던 지난 상처들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에 규빈의 기분은 계속해서 가라앉았고, 그 끝은 과연 김도형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규빈이 땅굴 속을 파고 들어가며 삽질을 하고 있을 때, 도형은 밤새 촬영을 하고 대표실에 대표와 마주 앉아 있었다. 


"싫습니다. 기사 내주세요." 

"기사를 안 낸다는 게 아니라 조금만 미루자는 거라니까. 생각을 해 봐, 곧 촬영 마무리고 개봉하고 나서 기사를 내도 늦지 않다니까." 

"대표님!"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생각하면.." 

"제가 그걸 이용할 위치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규빈이도 이해해줄 거야, 내가 잘 설득해볼게." 

"한규빈이 지금 어디 있는데요?"

"회사에 없으면 집에 있겠지." 

"하." 


대표의 대답에 도형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표와 마주하기 전, 도형은 리암 작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규빈이 지금 그곳에 와 있다고. 표정이 안 좋아서 무슨 일이 있구나 했더니 도형의 기사를 지금 보았다고 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대한민국 배우는 손에 꼽히는데 그중 한 명이 도형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한규빈이 아무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라고 하나 일에 있어서는 프로였다. 곧 있을 촬영을 내팽개치고 잠적을 할 규빈이 아니었다. 


"지금 기사 안 내보내면 저 재계약 안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기다려 드렸습니다."

"쯧, 어째 점점 한규빈이랑 성질머리가 똑같아지냐."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 중 도형과 규빈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10년을 붙어있었는데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규빈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도형은 돌아버리기 직전인데 대표가 규빈의 이름을 들먹거리자 도형은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회사 입장에서 도형은 놓치기 아까운 배우였고, 대표에게는 아들과도 같은 존재가 도형과 규빈이었다. 저를 죽어라 노려보는 도형의 눈빛에 대표는 결국 백기를 들고 흔들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노려보고 가." 

"지금, 당장." 


쯧, 혀를 차면서 대표는 전화기를 들었다. 


"어. 김도형 기사 지금 올려." 


이미 먹히지 않을 것을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이제 됐냐.라는 말에 도형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을 나왔다. 


"일정은?" 

"조절했습니다." 

"그래, 티켓은?" 

"구하긴 했는데 그래도 조금 여유를 두고 가는 게.." 

"지금 시간 여유 얼마나 있어?" 

"반나절 정도.." 

"집에 들렀다가 가자. 짐은 챙겨야지." 

"제가 챙겨올 테니 형님은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디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도형의 매니저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인 도형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이게 다 저 때문이었다. 도형이 바쁘다는 것은 매니저인 자신도 바쁘다는 얘기였고, 피로와 알코올에 취한 도형을 그나마 가까운 제집에서 재우고 규빈에게 연락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쓰러지듯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촬영장을 기웃기웃하던 기자가 스캔들 기사를 내버린 것이었다. 제가 도형을 집에 데려다줬다거나 규빈에게 연락 한 통만 했더라면 도형이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도형은 스캔들 기사를 확인하고 바로 규빈에게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도형은 바로 촬영 일정 조절을 부탁했다. 감독과 출연자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하고 매니저들끼리 스케줄을 정리하는 동안 도형은 남아있는 에너지를 촬영에 쏟아부었다. NG를 내어 촬영이 지체되면 겨우 구한 비행기 티켓이 무슨 소용인가. 더군다나 어디서 혼자 숨어 끙끙거리고 있을 규빈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촬영을 끝내고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한 도형은 매니저를 재촉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탑승 수속을 할 수가 있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너 때문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은지랑 애들 잘 챙겨서 조심히 와." 

"네. 도착하면 연락해주세요." 

"그래."


매니저는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예정대로 오기로 하고는 도형을 배웅했다. 도형은 규빈에게 가는 내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첫 사극 도전에 잘 하고픈 욕심에 규빈에게 소홀했던 제 탓이었다. 고난도 무술 장면도 스턴트맨 없이 직접 촬영해 온몸 여기저기 타박상이 가득했다. 규빈도 그걸 알기에 지금까지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견뎠을 텐데 이번 일로 인해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도형은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면서 리암에게 연락을 했다.


-도형! 

"오랜만이에요." 

-촬영은? 

"스케줄 조절해서 다 끝내고 지금 도착했어요. 규빈이 묵고 있는 방 몇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다행이다. 연락하고 싶어도 촬영 중일까 봐 연락 못했는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게... 규빈이 도착한 뒤로 방에서 꼼짝을 안 해요. 문 따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아..."

-프런트에 얘기해서 키 받아 가지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와주는데 이 정도도 못할까. 규빈이랑 잘 풀기만 해요. 


전화를 끊은 도형은 역시나 제 예상이 맞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0년이나 함께 했는데도 뭐가 그리 불안할까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저 역시도 규빈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으니‥.


하필이면 왜 제가 없는 곳에서 그러고 있는 걸까. 안아줄 수도 없게. 차라리 네가 어떻게 했길래 이런 기사가 나는 거냐고 욕하고 때린다고 해도 다 받아줄 수 있게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호텔에 도착한 도형은 리암 작가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 규빈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서는 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규빈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캐리어를 구석에 놓고 침대로 걸어가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옆에 누워 규빈을 안았다.


그리웠던 향기와 제 품에 맞춘 듯 들어차는 몸. 그제야 고단함이 몰려와 도형은 규빈을 안은 채 눈을 감았고, 규빈은 끙끙거리며 잠결에 도형의 품을 파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힘겹게 눈을 뜬 규빈은 제 몸을 감싸 안고 있는 묵직함에 흠칫 놀람도 잠시 그 묵직함과 내뱉는 숨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도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명 아직 촬영이 남아 있을 텐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야윈듯한 얼굴과 까슬하게 올라온 수염을 보고는 손을 뻗어 볼을 쓰다듬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체중관리까지 하느라 다른 작품 할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했었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잠든 도형을 깨우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물고 참고 있는데, 도형이 규빈의 작은 움직임에 잠이 깨어 느릿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몸은 어때? 예쁜 입술 상한다." 


도형이 손을 들어 규빈의 이마를 짚어보고는 규빈의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자기 보고 싶어서 빨리 끝내고 왔지."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한규빈은 김도형 손바닥 안이라는 거 몰라 물어? " 

"...." 

"울지 마,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응?" 

"안 울어, 흐읍." 

"그래그래, 우리 자기 안 울어." 

"나쁜 놈." 

"응, 맞아. 이번엔 내가 나쁜 놈 맞아. 그동안 너무 외롭게 했지.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규빈은 알고 있었다. 도형이 얼마나 연기에 욕심이 많은지, 맡은 일은 절대 대충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하루가 멀다고 몸에 멍을 만들어오고, 매일 파스를 붙여가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노력해왔는지 알아서 저를 너무 방치하는 게 아니냐 칭얼거릴 수도 없었다. 그게 참다 참다 기념일을 잊은 듯한 도형과 하필 그 타이밍에 터진 스캔들에 그동안 참아온 게 한 번에 터져버린 거였다. 


도형이 규빈을 등을 토닥이다 멈추고는 손을 내려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열어서는 규빈에게 보였다. 규빈은 상자에 들어있는 그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도형을 쳐다보았다. 


"늦어서 미안해." 

"...그놈의 커플링, 지겹지도 않냐? 작품 들어가면 어차피 끼고 다니지도 못하는 거..." 

"이건 커플링 아니고 결혼반지, 그리고 이거는 절대 몸에서 안 떨어트리려고 여기 이렇게 매달아 놨지." 


목에 걸린 체인에 달린 반지. 


"결혼하자, 규빈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랑 나랑 어떻게 결혼을 해." 

"다 때려치우고 해외로 나가서 살까? " 

"네가? 연기를 포기하고?" 

"응. 한규빈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아무 의미 없어." 

"....." 

"결혼해주라. 응?"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내가 불안해서 그래. 사람들 앞에서 한규빈이 내 거라고 도장을 찍어도 불안할 거 같은데 어떡해 그럼." 

"어?" 

"날이 갈수록 매력이 넘쳐서 누가 채갈까 봐 얼마나 불안한지 알기나 해? 한규빈은 내게 그런 존재야.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연기 그만두는 건 안 돼. 그럼 우리 뭐 먹고살아." 

"동냥질을 해서라도 우리 자기 절대 굶기지 않을게." 

"싫어. 나 많이 먹을 거야. 내가 전에도 말했지? 나 엄청 먹을 거라고. 결혼식은 민석이네 카페에서 해. 너랑 나 아는 사람들 몇 명만 초대해서 언약식처럼, 뭐해 빨리 안 끼워주고."


규빈의 말에 도형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약지에 끼워진 커플링 위에 상자 속에 있던 반지를 끼워 주었다. 


"예쁘다." 

"알이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다음에는 더 큰 거 해줄 게." 

"싫어. 이런 거 나중에 팔아봤자 값어치 없어. 금으로 해줘." 

"어이구, 이제 좀 살아났어?"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어... 그전에 다른 거부터 먹고 가면 안 될까?" 

"뭐...? 야, 이, 변태 새끼야!"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그것을 세운 건지 얽혀있는 다리 사이에서 단단해진 도형의 것을 느끼고서는 규빈은 도형을 밀어내며 벗어나 보려 했지만 다시 도형의 품에 안겼다. 


"잠깐만, 잠깐만 안고 있자.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자기가 어디에 있을지 뻔히 알겠는데 혹시나 나쁜 생각하고 나 안 본다고 할까 봐." 

"그러려고 했어. 그랬는데 너 보니까 내가 아직 너 없이는 못 살 거 같아. 그래서 너 없이도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옆에 두려고."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게 해야겠네, 평생 옆에 있으려면." 


도형의 품에 안겨있던 규빈은 몸을 움직이더니 도형의 위로 올라타 상체를 숙여 도형의 머리 양옆으로 손을 뻗어 짚었다. 


"아, 안 되겠다. 제대로 충전 좀 하고 밥 먹으러 가자. 오늘 김도형 뒤 좀 뚫어보자." 

"또또 입만 살아서는, 10년째 못 뚫고 있으면서." 

"쓰읍, 뭘 잘했다고 떠들어? 혼나려고, 죽었어. 김도형, 각오해." 


사랑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어떻게 보면 이번 일은 싸웠다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도형의 뒤를 뚫겠다고 덤빈 규빈은 끝내 도형의 뒤쪽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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