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무리 헤매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대가 바로 검은 꽃들에 뒤덮인 나의 묘지입니다.

-이응준, 미궁 中


1.

"약쟁이들이 이선생을 무슨, 스티브잡스처럼 여기잖아요."

마약반 형사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선생은 약을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꿰뚫어봤고,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하는 약을 만들어냈다. 마약 말고도 다른 사업을 했으면 기가 막히게 잘 굴렸을 거라고, 환락에 젖어 손을 떨다가 취조실에서 늘어진 어떤 젊은 마담은 그런 말을 했다. 이선생이 유통시킨 약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마약 사범들은 점점 늘어갔다. 이선생 일당이 어떤 마케팅을 펼치는 지는 몰라도 강남의 클럽부터 촌구석 다방까지 신약이 안 뻗치는 곳이 없었다.

좋은 재료로, 천재 제조업자들이 손을 댄, 거의 제로에 가까운 탁도. 그런 약들은 중국이나 고위급 인사들의 파티장으로 넘어갔고, 이선생이 조합한 공식을 알음알음 따라 한 저급 약들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돈을 당겨 약을 사는 사람들 손으로 넘어갔다.


2.

그리고 '그녀'는 돌고 돌아 남는 저급한 약 한줌으로 인생을 개와 맞바꾼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약이라는 건 영화 속에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던 평범한 사람. 약에 대한 공포를 키울 틈도 없었던 평범하고 안온한 인생을 살아온 여자. 

그녀가 평생 보았던 중독자는 가벼운 알코올 중독자, 혹은 섹스 중독자 뿐이었지 약에 중독 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이 진창으로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외로웠던 그녀가 언제나 그랬듯 처음 보는 사람의 사랑에 허덕이던 밤. 이선생이 도시를 미치게 만들 구원을 보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나누는 몸짓에도 꽤나 사랑스럽게 굴었던 그녀는 선물로 지옥같은 미래를 받았다.

그녀가 잔뜩 취했을 때 흡입한 가루는 머리 한 구석을 완전히 망가트려놨다. 빙빙 돌며 하늘을 날다가 지옥으로 떨어진 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침에 손에 쥐여져 있던 병 하나와 뇌 안을 한쪽을 긁어대는 기갈. 떨리는 손. 

안돼. 돼. 괜찮을까? 죽지는 않을거야. 하지 않으면 죽을거야.

찡하게 돋는 코와 눈 아래의 알싸함도 잠시, 하늘을 붕붕 날게 하는 자유가 그녀를 찾아왔고 이내 떠났다.

그녀는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았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던 팔아 향락과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했다. 불행이면서 다행인 건,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3.

그녀의 상태를 알아챈 부모는 울부짖는 그녀의 입을 막고, 몇개 남지도 않은 옷가지로 몸을 묶어 집으로 데려왔다. 부모의 손에 끌려 내려온 태안 변두리엔 쿵쿵거리는 음악도 없었고 혀에서 혀로 약을 넘겨주는 남자도 없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정신이 들 때 마다 미친 듯 약을 찾아다니는 그녀가 혹여 쥐약이라도 삼킬까봐 그녀의 목에는 줄이 걸렸다. 

개같은 꼴이어도 살아만 있다면, 그러다가 중독을 이겨내는 날이 온다면.  


4.

서영락은 소금공장으로 차를 몰다가 맨발이 염분에 하얗게 삭은 여자를 보았다. 소금물에 뛰어들어 덩어리 진 소금을 씹어삼키고 켁켁대는 여자. 개 목걸이를 한 여자. 짤랑거리는 쇠사슬이 등 뒤로 길게...

서영락의 시선을 잠깐 사로잡았던 그 여자는 늦은 밤 산뜻한 표정으로 소금공장 남매의 집에 김치 한 봉다리를 들고 왔다.

[엄마가, 주래요.]

어설픈 수화로 주영과 간신히 대화를 이어가다가 서영락에게 시선을 둔 그녀는 갑자기 답답한 듯 자기 목을 매만지곤 그에게도 수화로 말을 걸었다. 아까, 봤어요?


5.

"전에 기르던 개 이름이 보이저예요. 얘 이름은 라이카."

서영락은 한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남은 한 손에 오목하게 새하얀 가루를 담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 앞에 그 손을 들이밀었다. 그의 발치에 앉은 라이카는 눈을 껌뻑이며 혀를 내밀고 학학댔다. 그리고 라이카의 허덕임보다 더 가쁜 숨이 그의 손에 닿았고, 생명수를 들이키듯 그녀는 손 안의 가루를 모조리 삼켰다.

이선생이 베푸는 단순한 연민, 개와 인간을 오가는 사람에 대한 자비.

서영락의 호기심, 파괴욕.


"보이저는 알죠, 당신이 처음 삼켜던 거니까. 아까 그랬잖아요. 붕붕 나는 것 같았다고. ...라이카는, 못 해봤을 거고. 이건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둔중한 것에 머리라도 맞은 듯 뒤로 쓰러진 여자는 까딱까딱 넘어갈 것 같은 숨을 간신히 이어갔다. 땀으로도 쉽게 젖어 붙는 얇은 옷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이전 작품들은 개 이름을 붙인 거거든요. 내가 아끼는 애들이니까."

그리고 이번 건, 당신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아요.


6.

태안의 작은 마을, 딸이 미쳐버렸다던 집에 큰 불이 났다. 절그렁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바다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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