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마치 도원향과도 같이 아무런 흠결 없이 이상적인" 로맨스를 그려내고, 또 향유하길 좋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현실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완벽하지도 않고, 불편함이 일절 없지는 않은" 이야기로 써내고 싶어하고, 향유하기를 즐기는 듯하다.


매끈하고 덜컥 걸리는 부분이 없으며, 모든 부분이 "여성들의 (정신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포르노"와 같은 로맨스물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여성들의 욕망 자체에 부정적인 일부 남성들 뿐 아니라, 같은 여성들에게서도 그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장르 로맨스가 반드시 공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현실 인간- 이성간 로맨스에서는 현실 여자와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해서는 안되느냐고. 여자와 남자의 좋은 점과 싫은 점, 향유자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그 장르에서 코드화된 캐릭터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인간에 가까운 날것의 인물들을 그려내는 것.

어떤 로맨스 창작자들은 장르 로맨스에서 일부러 그러한 "덜컥 걸리는" 지점을 집어넣는 듯하고, 그런 취향인 듯 보인다. "현실 인간은, 그리고 현실의 연애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그렇지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결함으로 가득한 인간에게서도 발견되는 희미한 선의, 서로에 대한 애증, 짜증과 미움과 분노,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어떤 서사에서는 "인간은 절대 완벽하지 않고 개 쓰레기지만 사랑을 한단다", 즉 "Love Wins"라는 메세지를 이상적인 로맨스물에서보다도 강하게 이야기하는 듯도 보인다. 그렇게 불완전한 인간들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김휘빈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로맨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흠결 1도 없거나, 최소한 독자들이 아무 비판을 하지 않을만큼 흠결이 적고 완벽한" 인물로 조형하지 않는다. <추상의 정원>에서 프랑스혁명 직후의 귀족의 딸 여주와 평민의 아들 남주의 로맨스를 그릴 때도, 남주인 알랭은 주인공인 나딘을 보좌하는 위치이지만 결코 사람들이 칭송하는 "이상적인 조신남"의 형태로 그려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기대를 일부러 (다소) 비튼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간성이 부여된다. 단순히 로맨스,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숨쉬고 자신의 욕망을 가진 인간-남자라는 사실이, 부각된다.


그의 가상-시대물 판타지 소꿉친구 로맨스 <바보개와 아가씨>에서도, 현대물 로맨스인 <계약 좀 합시다>에서도, 그리고 로판계에서 성녀/성직자 여주하렘물 19금 붐의 시초가 된(``-/) <세계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에서도 남자들은 결코 "여자들이 로맨스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 즉 로맨스 남주의 이데아"가 아니다. 물론 그의 10년 전 구 완결작이자 용과 성과 근친과 가문에 대한 판타지 소설 <디센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남주"에 대한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남자들은 어린 나이답게 결함이 있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완벽해 보이지만 어쨌든 중간중간 송곳처럼 인간다운 폭력성이 드러나거나, 과거에 실패한 사랑을 했거나... 아무튼 주인공에게 "완벽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주듯,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에 대해 진심으로 회의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로맨스의 여자들 역시 흥미로운데, 그의 여자-주인공들은 반드시 "익숙하고, 그림으로 그린 듯한 성녀"는 아니다. <디센트>의 주인공은 남장을 했고 남성의 가치관을 체화한 명예남성, <추상의 정원>의 나딘은 "아버지의 딸"로서 계승권을 인정받고자 하지만 "사회적 남성성"을 또 숭배하지는 않고 자신이 여성임을 긍정하는 여성, 그리고 <계약 좀 합시다>의 주인공 아린이는 "낭만적이고 완벽한 사랑(및 결혼으로 인한 완성)"에 대해 극도의 회의와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결말부에서는 정말 "사회 통념에 결코 복종하고 순종하지 않는" 그의 반골적 가치관이 정말 일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요즘 사람들이 로맨스물에서 소위 (남주/여주가, 혹은 그들의 관계가) "빻았다"라고 이야기 할 때, 그것은 때로 "향유자들이 싫어하는 폭력성, 완벽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결함"이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쩌면 인물들이 "여성들의 종이-포르노에 불편함을 일절 주지 않고 100% 복종하지 않는다, 이건 반역이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때로는 "폭력은 나쁘다"라고 명백하게 의도된 이야기에서도 "이런 요소가 흔히 나오다니 역시 장르소설은 남판이나 로판이나...ㅉㅉ"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느냐...

그냥 독자들이 극도로 불편해하는 여주-남주의 관계란, 어쩌면 "이상적인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의 결함있는 인간들의 인간성(+로맨스)"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걸 단순히 "나쁜 관계를 옹호하는/그게 이상적인 관계라고 하는, 불쾌하고 빻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 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 싶었음 (나 스스로도...)


그런 의미에서 작중 인물들이 "현실에서 좋은/만나고 싶은 인물은 아니지만"(애초에 집착남주/재벌남주/상사 남주도 현실서 그닥 만나고 싶진 않음...ㅋㅋ) 어쨌든 인간이란 본래 완벽하지 않은 종자들이며 그런 그들의 인간적인 희로애락과 선악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취향 소나무라 그런 게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불편함 1도 없는 로맨스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걸 보지?"라고 지칭하는 타입의 로맨스물과... 그걸 향유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좀더 이해할 수는 있을 거 같음. 특히 피폐함에 괴로워하지 않고, 글이 인간의 바닥을 긁을수록 좋아서 찬양하는 스타일의 독자들...ㅋㅋ (물끄럼)



물론 ㅇㄸ같이 주제의식마저 개판난 남성향 포르노물은 이 논의에서 예외임을 밝힌다...(꾸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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