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25일. 성탄절. 크리스마스. 주 예수의 탄신일이라지만 현대에 그런 사항은 대부분 잊혀져버리고 많은 이들이 그저 특별한 날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송하나도 그 중 한 부류에 속했다. 사실 유럽 쪽 문화권에서 유래한 날이니, 어지간히 역사를 잘 파고들지 않는 이상 하나뿐만 아니라 겐지, 한조, 메이, 시메트라 등 동양 쪽 문화권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만 알고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낮방이에여~'


오늘따라 유난히 D.Va의 방송이 일찍 켜졌다. 크리스마스라고 명 대장이 그 전전날인 23일 오전 12시부터 휴가를 내준 덕분이었다. 오래간만의 스트리밍이라 그런지 몰려드는 시청자들과 대화는 일상. 약간의 도네이션, 퀘스트 등을 받으며 하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슬슬 출발해야겠다! 그럼 여러분 다음에 봐여~ 안뇽~!! GG!!"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오후 2시 50분경. 하나는 컴퓨터의 시계를 보고는 뭔가 조급함을 느끼는지 급하게 인사를 하고 방송을 마무리지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조명으로 꽃단장한 메카에 탑승한 하나는 오랜만에 부스터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샤토 기야르의 최하층 로비. 조리 테이블을 앞에 둔 위도우메이커가 표정을 한껏 일그러뜨린 채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주변엔 조리된 케이크 시트가 다섯 장. 모두가 사각형 기초에 롤 형태로 말려 있었다. 개별로 롤 형태의 중간, 나선을 그리는 시트의 안쪽 부분에 생크림, 딸기잼, 누텔라 등이 발라져 있었다.


"아, 이런... 제누와즈(génoise*)가..."


아무래도 작게 만들다 보니 다섯 장만으론 시트가 모자랐다. 머랭(meringue*)도 구워야 하고, 슈가 파우더도 뿌려야 했다. 조촐한 디저트 파티라곤 해도 이래서야 조촐한 걸 넘어서 비루해보일 게 뻔했다. 그래서였을까. 위도우메이커는 막 완성된 시트를 식히면서 이것저것 부재료들을 준비했다.


"...정신 차리자."


장식용 부재료인 머랭을 위해 달걀 흰자, 설탕, 바닐라, 코코넛을 ㄷ자 테이블의 좌측에, 크림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달걀 흰자, 설탕, 중탕용의 냄비, 버터, 헤이즐넛, 브랜디, 커피 파우더를 우측, 그리고 중앙 테이블엔 방금 전 완성된 롤 케이크 시트들과 함께 막 오븐에서 꺼낸 시트를 식히기 위해 올려뒀다. 


"좋아, 좋아. 이대로만..."

우선은 머랭, 장식용 머랭이니 스위스 머랭이 필요했다. 위도우메이커의 손이 급격히 바빠졌다. 달걀흰자와 설탕을 믹싱 볼에 넣고 잘 혼합한 후, 향을 위해 바닐라 파우더를 약간 첨가한 뒤 중탕냄비의 온도를 체크했다. 45℃. 43-49℃ 사이의 온도에서 중탕해야 하니 적당한 온도라고 할 수 있었다. 지체 없이 그녀는 중탕냄비 위에 믹싱 볼을 올리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중탕했다. 중간중간 타지 않게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Magnifique!"


드디어 달걀흰자에 설탕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중탕냄비의 불을 끈 위도우메이커는 그 다음, 믹싱 볼을 다시 테이블에 옮겨 팽팽한 정도가 될 때까지 거품을 내기 위해 마구 휘저었다. 이제 이 머랭 베이스를 구워서 각종 장식 모양을 만들 때 사용하면 끝, 마지막으로 적정 크기로 올린 머랭 크림이 오븐에 들어가는 것으로 머랭의 조리과정이 끝났다. 


"다음..."


이번엔 크림 차례. 지체 없이 좌측 테이블로 향한 위도우메이커는 믹싱 볼에 또다시 달걀 흰자와 설탕을 넣고 다시금 마구 휘저어 섞었다. 중탕 온도는 아까와 같은 45℃. 혼합물이 담긴 믹싱 볼을 올린 후 중탕하여 잘 저어주면서 설탕을 녹이고, 설탕이 녹은 걸 확인하면 즉시 중탕냄비에서 내려서는 다시금 섞기 시작했다. 


"Parfait."


이제 혼합물이 중간 정도의 온도로 식었다. 여기에 부드러운 버터를 추가해 저어준 위도우메이커는 내용물을 믹서기에 옮겨 담고는 최대한으로 돌렸다. 드디어 버터크림 베이스가 완성되자 이제 그녀는 커피 파우더와 브랜디를 섞어서 믹서를 돌렸다. 금세 채도가 낮은 은은한 갈색빛의 커피 버터크림이 완성됐다. 이제는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방금 꺼내서 식혀둔 시트의 온도를 체크했다. 시원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식은 걸 확인한 위도우메이커는 그 위에 버터크림을 고루 펴 바른 뒤 돌돌 말아 롤케이크를 하나 더 완성했다.


"Ah. Impeccable."


위도우메이커 스스로가 보기에도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로 롤케이크들이 완성됐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잠깐의 감탄사를 내뱉고는 이어 식칼을 들어 차분히, 시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케이크 끝자락 5/1 정도 구간을 각각 대각선과 직선으로 잘라내서는 대각선으로 잘린 부분은 본체의 옆, 직선형으로 잘린 부분은 본체의 위쪽에 이어붙이듯 두었다. 이어 남은 커피 버터크림을 퍼올려서는 짝수 위치에 놓인 케이크를 뒤덮다시피 올리고는 골고루 펴발랐다.


"...Merde..."


...문제는 가장 중요한 홀수 위치에 놓인 케이크에 덮을 초콜릿 크림이 없었다. 하필 이런 중요한 때에... 그래도 초콜릿 버터크림이라면 같은 과정에 조합만 약간 달리 해서 만들 수 있었다. 잠깐 손이 멈춘 것은 그런 간단한 것을 생각 못한 자신에 대한 자조에 가까웠다. 이내 정신을 차린 아멜리는 같은 과정을 거쳐서 초콜릿 버터크림도 제조하고, 드디어 홀수번 케이크에 크림을 덮었다. 적당히 구워진 머랭을 오븐에서 빼내 식혀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Même pas mal.*"


조리는 모두 끝났고, 디저트는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플레이팅. 최우선적으로 모양새를 내는 것이었다. 위도우메이커는 우선 케이크에 덮인 크림을 포크의 등으로 살살 긁어 통나무 형태로 결을 내고, 약간량의 슈가 파우더를 체에 걸러서 눈처럼 크림 위에 흩뿌렸다. 적당한 온도로 구워져 흰색, 중간중간 약간의 갈색을 띄는 머랭은 버터크림이나 생크림 등과 조합해 버섯 형태로 만들어 크림을 접착제 삼아 올렸다. 미리 준비해 둔 초콜릿 낙엽도 장식삼아 몇 장.


"디저트는 끝났고, 이제..."


디저트로 쓸 케이크, 뷔슈 드 노엘이 완성되자 지체 없이 위도우메이커는 오븐 위에 얹혀진 텅 빈 냉장고의 냉장실에 넣었다. 다음으로 그 옆에 있는 커다란 냉장고를 열자 온갖 식재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위도우메이커의 손길이 식재료를 거쳐갈 때마다 요리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Eh, c'est comme ça.*"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안심과 채끝살 코트 뒤 뵈프*, 또띠야 위에 고기, 토마토, 소스, 그리고 양상추를 올려 둘둘 말아낸 유로*, 디저트 조리 시작 전에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올리브 오일을 발라 로즈마리와 함께 재워뒀던 연어를 사용한 파피요트*, 탈론 멤버들에게도 대접하지 않던 초고급 화이트 와인이 아낌없이 들어간 코코뱅*, 구운 소 뼈까지 들어간 식사용 콩소메*,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등심을 사용한 코르동 블루* 등의 요리가 만들어졌다. 물론 아무리 많게 잡아도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은 2명이 한계이니 혹여 요리가 남지 않도록 양 조절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 5시 정각부터 시작되어 반나절에 걸친 위도우메이커와 하나의 조촐한 성탄절 파티의 준비 과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슬슬 하나가 올 시간이 됐는데, 샤토 기야르의 최상층 라운지에서 손목시계를 보며 위도우메이커는 어느 틈엔가 어둑어둑해져 가는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 메카의 부스터 화염이 어두워지는 밤하늘 아래 선명한 밝은 빛으로 드러나자 그제야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렴, ma petit chou-fleur."

"오랜만이야~!! 아멜리이이~!!!"

"어허허허, 얘도 참."


1층의 정문, 그 옆에 있는 나무 근처에 메카를 세워둔 하나는 자신을 맞이하러 라운지에서 갈고리를 걸고 내려온 위도우메이커에게 달려가 안겼다. 오랜만에 보는 연인이라서였는지, 아니면 호수 한가운데의 외딴 성이라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몰라도 가식 같은 건 일체 담기지 않은 순수한 미소였다. 오랜만인 건 위도우메이커도 마찬가지였다. 은은한 미소로 그녀를 반기며 달려오는 하나를 품에 안았다.


"우와...!! 달달해!! 맛있어!!!"

"Hmmm... Un vrai chef-d'œuvre.*"

"그나저나, 상당히 칼로리가 높은 요리들이 많아보이는데~"


아무래도 프랑스식이다 보니 코스 요리 형태로 각 개별 요리가 따로따로 대접되었다. 반응은 상당히 요란을 떨면서도 식사 자체는 막상 정숙하게 하는 하나와 달리, 위도우메이커는 침묵 속에 잠깐의 한 마디만을 남기며 식사를 이어갔다. 전채로 콩소메, 본요리로 코르동 블루-코코뱅-파피요트 순으로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다음 코스인 코트 뒤 뵈프까지 끝나자, 문득 하나는 이렇게나 육류를 많이 섭취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후후후, 뭐, 괜찮지 않겠어? 그야, 동계훈련이 있잖니."

"메카는 특수부대라 동계훈련 안 나가!!"

"Ooh La La,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유격훈련도?"


유로가 담긴 접시를 가지고 오면서 위도우메이커는 동계훈련이 있으니 이 정도 칼로리는 괜찮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볼을 잔뜩 부풀린 하나의 특수부대라 동계훈련 안 나간다는 대답이었다. 은근 한국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위도우메이커라 잠깐 당황한 듯, 이내 유격훈련도 안 나가냐는 질문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응, 유격도 안 나가. 제설도 안 하고. 조리병들이나 일부 운전병들이 그런 거 안 하는 거 생각하면 돼."

"오호, 그렇구나..."


자기도 모르는 새로운 한국군 체계에 대해 하나의 대답으로 알게 되지 위도우메이커는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유로를 한 입 베어물었다. 식사는 언제나 배가 최대한 부르되, 각 요리별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그래야 코스를 모두 즐기면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으니. 언제부턴가 그런 위도우메이커의 방식에 맞춰서 하나도 따라가고 있었다.


"자아, 이걸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볼까."

"우와!! 이거 뭐야!! 통나무같아!!"

"호호호, Bûche de Noël. 성탄절 기념 케이크란다."


기나긴 파티 타임도 이제 슬슬 끝을 맺을 때가 왔다. 드디어 뷔슈 드 노엘이 식탁에 올라왔다. 각각 시트 속에 딸기잼, 생크림, 누텔라, 커피 버터크림, 땅콩 버터크림, 블루베리 잼 등이 발라져 있는 6종이었다. 하나도 뷔슈 드 노엘에 대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기에, 마치 통나무처럼 생긴 그 외형을 보고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아멜리의 데코레이션이나 플레이팅 때문이었을까, 훨씬 더 맛있고 예뻐 보였다.


"우와... 어제 음료수 사놓는 걸 깜빡해서 당분이 엄청 모자랐는데 한 방에 보충되네. 헤헤, 땡큐~ 아멜리~"

"Merci. 슬슬, 가야 할 때 아냐? 내일 복귀잖아?"

"그러네? 그래도, 기왕인 거 대장님한테 혼 좀 나고 말래! 그냥 아멜리랑 같이 있다 늦었다고 하면 되지 뭐!"

"Ahh... 뭐, 그렇다면야."


사실 염분만 가득한 본요리 탓에 디저트도 짠 맛이 섞인 걸로 나오면 어쩌나 우려하던 하나의 걱정은 딸기잼 뷔슈 드 노엘을 한입 떠먹는 순간 슈가 파우더마냥 눈처럼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함, 그리고 과일을 통해 산미까지 챙겼다. 이런 별미가 또 있을까. 아멜리 또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한 입 크게 떠넣어 삼켰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둘만의 조촐한 파티가 끝을 맺었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와, 돌이켜보니 진짜 순식간이네... 음, 역시 내일 복귀하려면 지금 가야겠지?"

"복귀 시간이 언제까지니?"

"아침 9시까지. 그럼, 잘 있어~ 아멜리~"

"Adieu. ma petit chou-fleur."


황홀한 성탄절을 보내고 이제 다음날부터는 현실에 도전해야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조명으로 아름답게 수놓인 메카를 보며 하나와 위도우메이커는 잠시 회포를 풀고, 이별의 인사를 나눈 뒤 걷는 방향을 달리하여 멀어졌다. 하나는 다시 한국으로, 위도우메이커는 샤토 기야르로...


*제누와즈(génoise) : 프랑스어로 케이크 시트.

*뷔슈 드 노엘(Bûche de Noël) : 프랑스의 성탄절 기념 케이크. 롤케이크 형태로 만들어 그 위에 초코 크림이나 버터 크림을 얹은 뒤 포크로 통나무 형태가 되도록 결을 내어 무늬를 새긴다.

*Même pas mal. : 나쁘지 않은걸.

*Eh, c'est comme ça. : 그럼 그렇지.

*코트 뒤 뵈프(Cote du Boeuf) : 프랑스식 고기 구이 요리. 간단히 말해 '스테이크'.

*유로(Gyro) : 프랑스의 길거리 음식. 본래 그리스 요리로 북아프리카와 중동및 아랍계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서 일종의 퓨전 거리음식으로 발전하였다.

*파피요트(Papillote) : 가금류나 생선류 등을 종이로 덮어 요리하여 서브할때 장식의 종이로 모양있게 내는 요리. 동의어로 '기름종이'가 있음. 본 이야기에서 나온 연어 파피요트는 연어와 함께 쥬키니, 레몬,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여, 아스파라거스-쥬키니(+소금/후추 간)-연어-레몬-로즈마리-파프리카 순으로 쌓은 뒤 올리브 오일+소금/후추 간을 하여 화이트와인을 부은 뒤 유산지에 감싸 밀봉한 채로 오븐에 구워 조리했다.

*코코뱅(Coq au vin) : 프랑스 요리로 이름의 의미는 와인이 들어간 닭. 이름 그대로 닭을 포도주로 푹 삶는 스튜다.

*콩소메(Consommé) : 맑은 수프. 보통은 브라운 스톡에 간 쇠고기, 머랭, 미르푸아(당근 2/양파 1/샐러리 2)를 넣고 푹 끓인 국물을 헝겊으로 걸러내어 맑게 하고 간을 해 만든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육수(stock)에서 더 나아간 간한 육수(broth)라 할 수 있겠다.

*코르동 블루(Cordon Bleu) : 얇게 편 소고기에 치즈와 햄을 넣고 둘둘 말아 튀긴 것.

*Hmmm... Un vrai chef-d'œuvre. : 흠, 걸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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