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라니까.”

“으응...”



이제 막 귀가한 민현이 탁자에 엎드려 잠든 진영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걱정이 담긴 목소리. 한참동안 졸았는지 한쪽 뺨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다.


민현은 진영이 학교에 적응함과 동시에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돈을 대가로 흡혈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직업여성을 샀다. 가장 간편한 방법. 그간 금욕했던 몸은 기다렸다는 듯 피와 쾌락을 빨아들였고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즘 같이 피를 구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예약이 밀려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다보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진영은 먼저 잠들지 않고 민현이 오기를 기다렸다.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지 그랬어.”

“안 돼. 그럼 잠이 오니까.”



그래서 누워있으라고 하는 건데. 민현은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벅벅 눈을 비비는 손을 저지하며 어깨를 감싼다.



“금방 씻고 올 테니까 가서 누워.”



네, 하고 마주 웃은 진영은 터져 나오는 하품을 감추며 방으로 들어간다. 희미한 비누 향 사이로 향기로운 맥박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낯을 가리는 진영이 학교와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한동안 의기소침해진 모습을 보며 걱정이 많았다. 매일 손을 붙들고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 뒤 돌아왔지만 수업시간 도중 혼자 그냥 집에 와버렸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혼자서 집은 어떻게 찾아 온 건지. 데리러 가려 했는데... 땀범벅에 지쳐 주저앉는 아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달래주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처음부터 너무 가둬 키운 게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회와 걱정이 몰려왔다. 독립심을 키워줬어야 했나. 그러던 어느 날 진영의 책가방 안에 구겨져있던 가정통신문 한 장을 발견했다. 학부모 상담.



“진영아 이거 왜 안 보여줬어?”

“......!”



화들짝 놀란 아이가 종이를 빼앗으려고 막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민현이 아니었다. 손을 뒤로 빼자 중심을 잃은 몸이 민현의 가슴으로 풀썩 넘어졌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였다.



“보여주기 싫었던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런 거, 나는 없으니까... 애들이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애는 상담이 필요 없다구 하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순간 열이 받은 민현은 하마터면 종이를 확 구겨버릴 뻔했다.


아이들끼리 만나면 보통 너희 아빤 뭐하셔? 엄마는? 어디 살아? 그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묻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영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대답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아빠 하나뿐인데. 그것도 평범한 아이들의 아빠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대충 얼버무렸다. 그럼 너희 아빠 이름 뭔데? 황민현... 에, 너는 배씨인데 왜 아빠는 황씨야? 원래 아빠랑은 똑같은 건데? 아빠 아니지? 철없는 아이들은 진영이 부모 없는 애라는 소문을 만들어 놀렸다. 


같은 성으로 올렸어야 하는데. 안 쓰는 호적을 사 짓다보니 성이 다르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소심하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진영은 무어라 대답 하지 못했다. 당혹스럽고 부끄러워 그저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민현은 매일 같이 ‘학교에서 뭐했어?’ 하고 물었을 때 그냥 책 봤어요. 혼자 앉아있어요. 하는 진영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우선 침착한 태도로 대응했다. 아이를 책망하지 않았다.



“진영아. 너한테는 아무것도 없지 않아. 아빠가 항상 지켜주잖아. 그치?”



끄덕끄덕. 조금 눈시울이 붉어진 진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국 남는 다니까. 민현은 손가락으로 턱을 당겨 조그만 이에 짓눌린 입술을 빼냈다.



“말할 땐 어딜 봐야하지?”

“눈...”



주저하듯 겨우겨우 시선을 드는 진영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곤 뺨끼리 맞닿도록 꼭 안아주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다른 애들은 모르는 거야. 우리는 이렇게 행복한 걸. 그치?”



굳이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했던 민현은 생각을 고쳤다. 곧장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진영의 학교로 향했다.


학부모 상담.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도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젊은 여선생은 민현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고 진영의 보호자라는 말엔 더 크게 놀랐다. 이렇게 젊은 아버지가 있었나? 훤칠한 키에 격식 있는 태도와 말투까지. 생긴 건 전혀 닮지 않아보였지만 잘 생각해보니 행동에서 닮은 데가 있었다. 진영은 어린 아이임에도 깔끔하고 품위 있게 구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를 오고가며 교무실을 들여다본 아이들은 진영이 아빠 오셨다! 뭐야 아빠 있잖아! 대박 멋있는데? 라며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왠지 부끄러워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던 진영은 심장이 빠르게 뜀을 느꼈다. 왜 이렇게 빨리 뛸까. 내려가지 않는 입 꼬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팔뚝 사이에서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자신을 위해 학교에 와준 민현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 다른 애들한텐 없는 거야. 우리는 둘이서 가장 행복하니까.





그 이후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진영은 곧 ‘친구’라는 관계를 맺을 줄 알게 됐다. 부모 없는 이상한 아이라는 누명이 벗어진 것도 계기가 됐지만 착한 심성과 오목조목한 생김새도 썩 도움이 됐다. 조금 호감을 얻고 나자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걷히고 가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을 정도로 성장했다.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한밤중에 대리점에 가기까지 했다. 애들 다 있어 나도 갖고 싶어. 민현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오늘도 바로 들어가야 해?”

“응.”

“뭐야 정말. 애인은 따로 있는거냐구.”

“애가 기다리고 있다니까.”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린 여자가 젖가슴을 다 내 놓은 채로 담배를 피웠다. 목덜미와 허리께에 짐승마냥 물어놓은 잇자국이 눈에 띄었다. 한 시간을 정확히 채우곤 혼자 나갈 채비를 하는 민현의 태도가 섭섭한 모양이었다. 애새끼 냅두고 좆질하러 다니는 거, 그거 쓰레기 아냐? 자기는 참 다정다감한데 에프터가 꽝이야. 장난치듯 뱉은 여자의 말에 민현은 웃음이 터졌다. 이게 다 애 지키려고 하는 짓인데. 그렇게 말하니 모순이네.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더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또 보자고. 툴툴거리긴 해도 뒤끝 없는 여자가 싱긋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아동기에서 한참 벗어난 진영이 딱 한 가지 나아지질 못하는 것은, 민현을 끌어안고 있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기 때 칭얼거릴 때마다 당연한 듯이 품에 안아든 것이 버릇이 든 건지 진영은 민현의 품에 안겨야만 잠에 들었다. 귀와 뺨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잠들곤 했는데,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민현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가끔은 혼자 밥도 차려먹고 집 청소도 나서서 하고, 민현이 하는 모든 말에 순종적인데 반해 잠자리에 대한 것 만큼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빠하고 같이 잘래. 같이 아니면 안 잘 거야. 뾰루퉁한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그런데 사실 고집을 부리면서도 민현이 실망하면 어쩌지, 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읽기 쉬워 민현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애같이 구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기도 했다. 평소엔 이상할 만큼 착하기만 한 아이니까.



하지만 그 바람도 영원할 순 없었다. 한여름에도 찰싹 달라붙어 자던 진영은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반드시 민현과 떨어져 자게 되었기 때문이다. 13살, 진영이 첫 2차 성징을 보였을 때의 일이다.





한참 잠에 취해있던 민현은 품속의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에 화장실에 간 건가 싶었다. 보통은 깨워서 같이 가는데 이상하네. 곧 돌아오겠지. 기다려봤으나 물소리만 이어질 뿐 아무 기척이 없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체한건가, 하는 생각이 연이어 들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일으켜졌다. 조바심에 인상을 찌푸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진영아, 하고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어두운 거실엔 욕실의 불빛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니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진영의 뒷모습만 보였다.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듯 했다.



“어디 아프니?”



화들짝 놀란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물소리 때문에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붉어진 눈시울.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



“왜 그래. 응?”

“쉬야가 나와서...”

“오줌 눈 거야?”

“네... 근데 쉬가 자꾸만..”



히끅거린 진영이 조금 몸을 떨며 눈물을 훔쳤다. 바지와 팬티를 모두 내려 밑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그제 서야 세면대에 잠긴 속옷이 눈에 띄었다. 바지에 실례를 한 모양이었다.



“아빠한테 말하지 그랬어. 혼날까봐 무서웠어?”

“네. 흑...”



다시 얼굴을 세게 비비는 진영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고, 얼른 옷 갈아입자. 이건 나중에 빨아도 되니까, 하고 달랬다. 어깨를 감싸 안았는데도 진영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여기 아파요.”

“응?”
“여기가 딱딱하고, 또...”




민현은 긴 웃옷 아래에 비치는 작고 붉은 아이의 생식기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첫 몽정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진영을 키운 이래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조금 이른 거 아닌가? 벌써 이렇게 커버렸다고?



그날 밤 민현은 생각지도 못한 성교육을 해야 했다. 철저히 인간 남자의 입장에서. 이건 정말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곳이야. 그리고 다들 겪는 일이야. 처음에는 겁을 먹었던 진영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설명해주는 민현의 태도에 안심을 한 모양이었다. 다시 잠이 쏟아지는 듯 고개를 휘청 거렸다.



정말이지 애 아빠 다 됐네 황민현.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성교육 책이라도 사다줘야겠다 생각하며, 그렇게 소동을 마무리를 하고 다시 자려는 순간. 


민현의 코끝에서 무언가 감지됐다. 비누 향 사이 맥박. 그리고 그 안에...


민현은 황급히 허리를 끌어안은 팔을 떼어냈다. 왜요? 다시 잠에 드려다 깬 진영이 물어왔다. 이 익숙한,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향은...



송곳니가 드러난다.

이 몸을 물어뜯고 싶다.



2차 성징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변화. 정액이 배출될 수 있게 된 몸이라서인지 그 피와 살과 뼈로부터 유혹적인 향이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루 밤 사이 이렇게 되어 버리다니. 말도 안돼. 하지만 짐승과 같은 본인의 본능은 너무나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당장이라도 이 연약한 피부를 찢어버릴 수 있다고. 제정신일 때라면 당연히 진영에게 손댈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결이라면... 실수로 목덜미를 물어버릴지도 몰랐다. 한 번 피 맛을 보고나면 빠는 것을 멈출 수가 없음을 알았다.



풀어진 팔을 다시 벌리며 품에 파고 드려는 진영을 한번 세게 끌어안았다. 숨 막혀... 하지만 힘이 빠지지 않았다. 너를 어쩌면 좋을까. 남자아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정욕은 호감을 가진 상대라면 누구에게나 느껴지는 것인데. 널 향한 내 사랑은 그것과 다르다고,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민현은 가슴이 아팠다. 이제 이 작은 어리광마저 받아줄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진영은 마구 뒤척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난 너를 지켜주고 싶었어. 지켜낼 수 있어.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그렇게 되뇌었다.







*





5월 10일. 호적상 진영의 생일. 원래 호적의 주인인 아이의 생년월일을 그대로 올려서 생긴 날짜였지만 매년 꼭 기념하는 날이다. 진영이가 아빠한테 와준걸 축하하는 날이야. 그 말을 들을 때 진영은 1년 중 가장 밝게 웃어 보였다. 자신을 향한 민현의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무척 행복해하는 아이였다.

민현은 늘 진영의 하교 시간에 맞춰 꽃과 케이크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밤새 함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진영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밤. 올해도 그럴 것이다.


그럼 아빠두 생일 있어요? 나도 축하하게... 부끄러워하며 속삭이던 진영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말 사랑스러운 내 아이. 마지막 정리를 마친 민현이 조금 멀찍이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곧 쿵쾅거리며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문 앞에서 숨을 고른다. 기대감과 기쁨이 담긴 발소리에 너무 티가 나서 웃음이 터졌다. 분명 수업시간 내내 기대하다가 달려온 거겠지.



“짠.”

“우와!”



문이 열리기도 전에 내밀어져있던 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을 끌어안으며, 진영은 눈이 휘어지게 웃어보였다.



“인사는 안 할 거야?”

“다녀왔습니다!”



조금 크게 말한 진영이 가방을 집어던지더니 와락 목을 껴안아 온다.



“감사합니다!”

“이리 와. 선물 보여줄게.”
“선물?”



그동안 물질적인 생일선물을 준적은 없었기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꽃다발을 탁자에 내려두며 금방 뒤를 쫓아온다.



“자, 들어와.”



서재로 쓰이던 빈방을 정리했다. 벽지를 바르고 침대를 집어넣어 진영이 혼자 쓸 수 있는 방으로 만들었다. 그동안은 공부방 정도로 쓰이던 책상 위도 치우고, 진영이 쓸 만한 컴퓨터도 한 대 들여놓았다. 가끔 만지작거리던 민현의 노트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좋은 것으로. 또 어떤 게 필요할까. 진영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채워 넣을 생각이었다. 기뻐해줬으면 좋겠는데...

예상치 못한 풍경에 잠시 당황하던 진영은 곧 새 컴퓨터에 흥미를 보였다.



“우와 이거 좋다.”

“그치? 이제 많이 써도 돼.”

“와 정말! 게임도?”

“응. 여기는 진영이 혼자 쓰는 곳이니까.”



신이 난 듯 본체의 전원을 찾던 진영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그 뒤에 들려올 말이 무엇인지 안 것처럼. 역시 눈치가 빨랐다.



“이제 여기서 자는 거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민현의 옆에 다가간 진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더 이상 함께 잘 수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 민현도 무척 마음이 쓰였다. 상처받은 건 아닐까. 단 한 가지 지켜줬으면 하던 진영의 바람이었으니까. 어느새 더 자란 손이 민현의 옷을 꾹 붙들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진영아?”



울상을 짓건 응석을 부리던, 모두 받아주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입을 꾹 깨물고 잠시 말이 없더니 허리를 파고들며 껴안아온다.



“이제 혼자 자는 거야...”



그것은 민현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혼자 되뇌는 말 같았다. 이제 난 혼자 자는 거야.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턱을 쥐어 고개를 들어올렸다. 울고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의외로 다부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아빠.”

“...착하네. 다 컸다 그치.”



나가서 초 불자. 케이크 사왔어. 그 말에 또 금방 몸을 일으키더니 씩씩하게 거실로 나간다. 조금 어리광 부려도 될 텐데. 진영이 또 불쑥 커버렸다는 감각이 가슴에 꽂혀왔다. 열세개의 초를 꽂고, 불을 끄며 소원도 빌었다.



“이제 곧 중학생이야.”

“치, 아직 멀었는데.”


그래봤자 어린애로 밖에 안 보이지만.


“친구들이 선물 준 거두 가방에 있어요.”

“정말? 오 인기 많은데. 어디보자.”

“잠시만...”





어느새 훌쩍 큰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면 좋으련만. 민현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 날 이후로 언제 그랬냐는 듯 진영은 혼자서 잠을 잤다. 첫 일주일간은 밤중에 달려와 품으로 파고들어도 괜찮다고 조금 봐줄 생각이었는데. 생각 외로 한 번도 민현의 방에 찾아오지 않았다. 


방이 생긴 것을 기점으로 스스로가 어른이 될 거라고 느꼈는지 시키지 않은 집안 일 같은 것도 척척 해냈다.



적어도, 더이상 민현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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