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희나리_w. 제철망개





당장 급한 것은, 납품기일과 물량을 맞추려 밤낮 없이 부린 인부들의 임금을 치러야 했다. 나무값의 결제는 아직 기한의 여유가 있어 도련님은 우선 인부들의 임금부터 계산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미룰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돈으로 바뀐다는 어음 증서는 박씨가 갖고 있었는데 이제 찾을 길이 없어졌으니 수중의 현찰을 꺼내 쓸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있던 현찰을 꺼내어 인부들의 임금을 치르고 나니 두둑했던 금고가 순식간에 휑해졌다.



도련님이 살아 있어도 목재소의 주인은 박씨였고 거친 일을 하는 인부들은 포스라운 도련님의 말을 호락호락 들어줄 위인들이 아니었다. 박씨 없이 도련님 혼자 목재소를 움직여보려 해도 인부들은 박씨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 곳도 끝난 것이 아니냐며 막무가내였다. 돌아오지 않는 박씨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생사가 불분명 하다는 것은 곧 박씨가 죽었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전에는 톱밥 한줌이라도 얻어 보려 갖은 아첨을 하던 장사꾼들도 박씨가 죽었으면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다. 증권을 맡겼던 조선은행마저 일제가 털고 일어나니 태도가 달라졌다. 간판만 조선을 달고 있을 뿐, 식민 통치비용을 조달하는 그들이 우리 사정에 맞춰 줄 리가 없었다.

물량을 맞추려 무리하게 벌목을 한 것도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분명히 기한이 남아 있는데도, 박씨가 죽었다는 소문에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집으로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씨의 차를 몰던 최씨마저 야음을 틈타 목재소에 있던 돈이 될 만한 것을 챙겨 달아나버렸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쳐죽일 놈,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이라며 가슴을 쳤다. 나는 박씨의 방에 들어가 한나절 나오지 않는 도련님을 기다리다 어두워져서도 방이 환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신경이 쓰여 방문을 열었다. 넋이 나간 얼굴의 도련님은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손에는 낡은 종이뭉치가 가득 쥐어져 있었다.



“…도련님.”

“…정국아.”

“….”

“이거, 선산 문서야.”

“…선산요?”

“이걸 담보로 돈을 구하면,”

“안 돼요.”

“….”

“도련님 나중에 어르신은 어찌 뵈려고요.”

“…아비가 물귀신이 되려고 가는 것도 말리지 못했는데, 조상 뵐 낯이 뭐가 남았다고.”

“….”

“산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도련님.”





“…정국아. 어머니 모시고 여기로 가.”

“…?”

“여기, 여기로 가면, 빈집이 하나 있어, 그러니까,”

“도련님.”

“…너를, 내가 더 이상 지킬 수가 없다.”



나는 그때까지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도련님에게 짐짝 같은 존재였으면 도련님은 나에게 기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를 떠나보낼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이게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안 가요.”

“정국아….”

“도련님 혼자 두고 머슴이 어딜 가요.”

“….”

“도련님만 보고 살기로 했는데 어딜 가라구요.”





도련님은 내 고집을 꺾지 못했고 대신 어머니를 보내기로 했다. 내 어머니는 나고 자란 곳이 부산이라 그곳에 돌아가면 아직 면이 남은 친인척들이 살고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발 뻗고 잘 수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 했지만 도련님의 형편은 그렇지 못했다. 이 집도 언제 내놓아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양반 하나에 노비 둘은 가당찮았다. 같이 내려가지 않겠다는 나를 어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그저 도련님이 무사하시도록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말만 몇 번이나 읊조렸다.

어디든 누울 자리가 생기면 연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어머니는 짐을 꾸렸다. 당장 내어줄 돈이 아쉬워 도련님은 어머니에게 금파가 달린 비녀며 산호 노리개, 백옥을 깎아 만든 쌍가락지, 오만 패물이 그득 들어있는 경대를 통째로 내어줬다. 생전에 마님이 쓰던 패물이었다. 여비가 떨어지거나 요긴할 때 팔아 쓰라며 극구 받지 않겠다는 어머니에게 떠맡기듯 넘겼다. 어머니는 종년이 늘그막에 호사를 누린다고 패물이 든 경대를 품에 안은 채 웃는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도련님은 집에 남아 있는 재산 중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처분하기로 했다. 집에 몇 벌 남아있던 비단옷, 큰어르신이 아끼던 도자기, 돌아올 주인이 없는 세간 살림 따위에 값을 매기러 장사꾼들이 몇 번 오갔다. 큰어르신의 방에 있던 것들은 제법 값이 나가는 것들이어서 아직 조선땅을 떠나지 않은 일본인들이 유독 탐을 냈다. 도련님이 직접 처분을 하러 가는 것이 마뜩찮았지만 집을 보고 있으라는 당부에 꼼짝 않고 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털어갈 것이 없는 집에 난영이가 찾아왔다. 박씨의 가리가 아직 남은 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중국까지 같이 가 줘.”

“…뭐?”

“중국까지만 나를 무사히 데려다 놓으면, 이 돈 다 네게 줄게.”



솔깃했다. 난영이가 내 놓은 액수로는 당분간 살림은 걱정 없었다. 대답은 못하고 침 삼키는 소리만 꿀꺽했다. 몸종을 하나 데리고 나오려 해도 기생집에는 늙은 머슴과 어린 계집아이들 밖에는 없고 여자 혼자서 중국까지 넘어가기란 평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에 느이 도련님한테는 비밀로 해.”

“…왜.”

“괜히 따라가겠다고 나설 줄 누가 알아.”

“….”



도련님의 안부가 걱정되어 선뜻 따라 나서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난영이는 거기까지 생각을 해 둔 것인지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봐줄 사람을 부탁해 놓았다고 했다. 거절하기에는 눈앞의 큰돈이 당장 아쉬웠다. 내가 한참 대답을 못하자 난영이는 수락하는 것으로 알고 기일이 되면 사람을 보낼 테니 준비를 해두라는 말을 남기고 대문을 나섰다.






“…부산에?”

“예,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


도련님에게 비밀로 해야만 하는 것이 마뜩찮았지만 나는 태연히도, 부산으로 내려간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잠시 다녀오겠다는 거짓말을 했다. 마침 집에는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글을 쓸 줄 아는 누군가가 적어준 편지였다. 어머니는 먼 친척이 살고 있다는 만덕이라는 곳에 짐을 풀었고 급한 대로 날품 파는 일을 시작했으며 다행히 오는 동안 몸이 성하여 아픈 곳은 없으니 걱정 말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은 도련님도 부산에 다녀오겠다는 나를 말리지 못했다.


도련님이 집을 비운 한 낮, 몰래 찾아온 난영이의 몸종이 중국으로 떠날 시기를 연통해주었다. 그저 말수가 적은 아이려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귀가 먹고 말도 못하는 아이였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팔자는 가여웠지만 숱한 말이 오고가는 기생집에서는 더없이 좋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떠난 날부터 비좁게만 여겼던 쪽방이 혼자 누우니 참 넓다고 느꼈다. 집에는 틀림없이 도련님과 나 단 둘인데, 여지껏 살아온 게 노비의 팔자라 같이 있기만 해도 서먹해지는 기분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도련님과 내가 참지 못하고 달라붙었던 것은 더웠던 여름밤에 끈적한 손으로 도련님을 주무른 그 날 뿐이었다. 그 후로는 나도 도련님도 손길을 보채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박씨가 죽었다는 것과 다름없던 그 서신이 집으로 온 날에도 도련님은, 가만히 내 품에 안겨 소리 죽여 울뿐이었다.


내가 차린 어정쩡한 밥상을 받은 도련님은 이제 그것도 며칠 먹다보니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쌀밥과 고깃국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을 도련님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상을 물린 도련님은 마지막으로 남겨둔 목재소의 서류를 정리하다 눈을 비볐다. 이제는 기름 치고 시동 걸 일이 없는 박씨의 목재소. 도련님은 종잇조각 같은 어음에 미련을 두지 않겠노라, 목재소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정국아.”

“네.”

“…오늘은 나랑 있자.”

“….”



내가 대답을 망설인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도련님과 단 둘이 잠자리를 하게 되는 것이 도련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오직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서로에게 애정을 품은 사이였지만 그래도 나는 도련님을 모시는 종놈이니까.



“…이제 우리 둘 뿐이야.”

“….”

“내일 네가 부산에 가면,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해.”



도련님이 비로소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비쳐 보였을 때 내 명치가 쥐어짜듯 아파왔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털어버릴까. 그까짓 돈, 안 받고 중국 안 가면 그만이잖아. 그러기엔 지금 이 집에 남은 것이 없었다. 되는대로 주저앉기에는 내가 입 속의 혀처럼 모셔온 도련님의 살아온 세월이 너무 고와서 차마 내가 그 꼴을 볼 수는 없었다. 도련님이 나처럼 허드렛일 하는 꼴은, 절대로 볼 수가 없다.



우리가 처음 흐트러졌던 여름밤만큼 다시 마음이 들떴다. 오늘이 지나면, 며칠 밤이 지나야 도련님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슬픈 소리를 하면 도련님이 눈물을 보일까봐서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도련님도 내 속을 알았는지 간간히 짧은 숨만 뱉어냈다. 그간의 마음고생 탓으로 도련님은 눈에 띄도록 말라있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워않고 스스로 단추를 풀고 내 손을 먼저 잡았다. 있는 힘껏 나를 부둥켜안고 내 손을 바지 속으로 끌었고 작게 느껴지는 떨림이 더이상 두려움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희열이란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는 약속이란 걸 알았다. 

칠흑 하늘에 뿌려진 별만큼 무수히 입을 맞췄다. 잠이 들려다가도 손을 더듬어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도련님을 끌어안았다. 두 어 차례 절정에 오른 후 기진맥진하여 처연스레 돌아누운 도련님의 목덜미를 핥고 도드라진 뼈를 쓰다듬었다. 한 팔에 다 감길 허리는 내 욕심대로 껴안았다가는 부서질 것만 같아서 그나마 살이 차오르는 볼기짝을 손으로 한아름 쥐고 주물렀다. 밤새 애정을 갈구하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도련님은 그런 나를 안심 시키려는 듯 품을 파고드는 나를 기꺼이 맞아주었다. 끊길 듯 말 듯 이어졌던 내 손길은 달이 져버린 희뿌연 새벽녘이 되어서야 멈췄다. 




겨우 잠에 빠지려는 도련님의 귀에 대고 한 번 더 달큰하게 거짓말을 속살거렸다. 부산에 다녀오겠다고. 눈을 감은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도련님에게 이번에는 진실을 남겼다. 다녀오면, 도련님과 나 둘이서만 살자고.









***


5월을 5분 남겨두고 올립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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