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아너드 소설 The Return of Daud 부분 번역
* 의역 및 오역, 번역체 주의



Part 1: 던월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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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월, 도살장 거리, 그리브즈 고래 도살장 5번 보조건물

1852년, 대지의 달 18일


“그는 제서민 칼드윈의 생명이 빠져나가는 순간에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실수를 했다. 그는 속았다. 그런 생각은 쓸모없었다. 후회하든 후회하지 않든, 그녀는 죽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가를 보았다. 유명한 암살자도, 역사를 만든 위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알 수 없는 게임의 일부에 불과했을 뿐.”

-던월의 칼

삼류 소설의 3장에서 발췌



  그는 폐허가 된 도살장의 단단하고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대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잔해 더미의 주변을 둘러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깊이 눌러 쓴 후드를 뒤로 조금 넘기며, 밤비에 젖은 조끼 아랫자락을 건성으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장갑 낀 손으로 수염을 잡아당겼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다우드는 한숨지었다.

  이거였다. 제국 전역에 걸친 몇 주, 몇 달 동안의 여행. 소문과 속삭임을 듣고, 결말 없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기이한 광신도들을 찾아내고,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단서를 쫓던 수 개월.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있기만 하다면 빼앗아 조사하고, 움켜쥔 실마리가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게 추적하던 수 개월. 이게 바로 그것이었다. 군도 제국에서 가장 습한 빌어먹을 도시에서도 불쾌한 구역에 위치한, 타버린 고래기름 공장에 쌓인 잔해 더미 말이다.

  장소는 맞게 찾아왔다. 너무 늦게 도착했을 뿐. 이 공장에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그의 임무에 필수적인 어떤 사건이. 하지만 그리브즈 도살장의 5번 보조건물을 뼈대만 남게 만든 재앙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일은 이미 몇 개월 전에 벌어졌다.

  그동안의 모든 시간과 노력은 헛수고였다. 이 공장이 중요한 단서였지만, 이제는 막다른 길이었다.

  다우드는 양손을 엉덩이에 짚은 채 마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뭔가 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기울여 가장 가까운 무더기를 살펴보았다.

  아니. 헛수고가 아니었어. 여기가 막다른 길은 아니야.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랬다. 사건이 벌어진 지 몇 달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한 데다, 아무리 그라 해도 그만큼의 시간을 왜곡할 수는 없었다.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무엇을 할것인가였다. 그는 이곳에 왔다. 그러니 이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비록 흔적은 사라졌지만, 무언가를 찾아낼 거였다.

  그래야만 했다.

  부서지고 뒤섞인 철제 부품, 벽돌, 돌조각들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건물 벽면 중에서도 거리 쪽을 향하고 있는 면은 대부분 멀쩡하게 서 있었고, 공장 바닥의 절반은 잔해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강을 향하고 있는 반대쪽 벽면은 전체가 사라져 버렸고, 어두운 하늘과 강을 향해 뻗은 상부 구조물의 뼈대만이 남아 비바람에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벽면의 대부분이 강물 속으로 무너졌고, 수면에 잠긴 건물 잔해 위로 렌헤이븐 강이 넘실거리자 강둑 근처에서 포말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 강은 던월의 필수적인 수로였기에 분명 많은 품을 들여 강 바닥에 쌓은 잔해들을 파냈을 것이다. 그리고 회수된 것들은 우선 공장에 다시 쌓아두었다가 진짜 작업을 시작했을 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든 조사해보기엔 충분한 큰 사건이었다- 관리들이 시간을 들여 잔해를 옮기고, 분류하고, 재질과 크기별로 정리한 목록을 작성해 조각마다 야광 페인트로 번호를 매겨 달빛 아래에서도 환하게 빛나도록 해 둘 정도로.

  폭발 사고였다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그리스톨로 돌아와 포터스테드에서부터 동쪽으로 여행하는 길에, 다우드는 소문이 사실이라 여겼고 던월에서의 사건이 임무의 성패 여부를 결정할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모을 수 있는 신문기사들을 모두 탐독했다.

  신문에 따라, 기자 개인의 변덕에 따라, 대상 독자층에 따라 서로 다르게 편집되고 과장된 수많은 기사들로부터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공식적인 발표 내용은 단순했다. 그가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인 1851년 어둠의 달 15일, 렌헤이븐 강둑 인근 도살장 거리의 동쪽 구석에 위치한 그리브즈 도살장의 5번 보조건물에서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폭발이 일어나 공장 대부분과 인근의 다른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당국에서는 일반인들의 안전을 위해 도시 경비대를 배치하고 폐허가 된 공장을 중심으로 인근 몇 블록을 봉쇄했다.

  그 경계선은 여덟 달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다우드는 그 점이 흥미로웠다. 그는 도시 경비대의 태만한 순찰을 쉽게 피해 제한 구역으로 숨어들었고, 블록 내의 다른 건물들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경계선은 공공안전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뜻이었다. 당국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시민들이 목격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고래기름의 위험성에 관한 사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기사가 나지 않았다. 던월 신문에서는 독자들에게 고래기름의 추출 및 정제 과정이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사설에서는 군도 제국의 황제, 에밀리 칼드윈이 그리브즈 조명연료 회사의 대표자를 던월로 불러 사건 보고서를 올리게 했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기사를 처음 읽을 때에도 그 내용을 믿지 않았고, 다시 생각해 본 후에도 여전히 믿지 않았다. 그가 아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사건은 고래기름 폭발이 아니었다. 고래기름이 불안정한 물질인 것은 맞지만 저장 탱크 채 터지더라도 그 정도의 손상은 일으킬 수 없었다. 둘째, 던월의 관료제가 아무리 비효율적이라 해도 단순한 산업 재해에 대한 조사가 여덟 달이나 걸리지는 않았다.

  올바른 장소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는 몸을 펴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전히 엄청난 높이로 서 있는 공장의 세 벽면을 지탱하기 위해 받침대와 버팀목들이 새로 설치된 것에 주목했다. 이 폐허는 최소한 공식적인 업무가 종결될 때까지는 보존될 것이다.

  꽤 괜찮았다. 사실, 괜찮은 정도보다 더 나았다. 팔 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잔해 더미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당국에서도 그것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아직까지는.

  그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었다. 아마도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흔적이 차갑게 사라져 버리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 공장이 종점일까? 그는 돌아서서 잔해 더미를 따라 천천히 걸었고, 조사관이 놓친 단서나 증거가 있기를 바라며 조각과 숫자를 살폈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후드 끝을 조금 더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마침내 그쳤지만 이제 공장 바닥은 이 인치 정도 물에 잠겨 있었다. 건물 밖의 제한 구역에서는 도시 경비대가 순찰을 돌고 있었기에, 그는 소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요함, 은밀함, 비밀스러움은 그의 생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도 과거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기는 참으로 쉬웠다.

  어쩌면 너무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는 멈춰선 채, 피어나는 의심과 호흡을 제어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너무 늦었다. 그것은 여기에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있던 적 없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부츠가 물에 첨벙거리는 소리,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부주의하게 공장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소리.

  몇 년에 걸친 훈련과 일생 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다우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싸울 자세를 취했다. 여전히 어둠 속에 숨은 채 그는 잔해 더미로부터 빠르게 멀어졌고 그의 오른편에 직사각형으로 바닥이 꺼진 곳, 파편과 물로 막혀버린 고래기름 배수관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낮게 엎드려, 발각되지 않고 침입자를 관찰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갓이 달린 랜턴에서 나오는 불빛은 공장 벽에 비치다가, 새로 도착한 자가 거리 쪽 출입구의 그림자로부터 부서진 벽을 따라 흐르는 달빛 아래로 나오자 그를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 침입자는 순찰을 나온 도시 경비대원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전혀 다른 조직,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위험한 조직에 속해 있었다.

  침입자는 긴 진회색 상의 아래에 검은 바지를 입었고, 어깨를 가로지르는 하네스와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넓은 소매는 뚜렷한 금색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안면과, 세 갈래의 갈퀴가 대문자 C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문양이 이마에 새겨진 금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만인의 수도원 내 무장집단의 구성원인 주시자였다. 이 잔인한 광신자들은 매우 특별한 사유, 즉 흑마법과 사술처럼 이단적 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만 파견되었다.

  흥미로웠다. 폐허가 된 공장에 찾아온 주시자라. 당국에서 시민들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할 만 했다. 그렇다는 건...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저들은 여전히 그것을 찾고 있었다.

  쌍날검은 실존했다.

  그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시자는 몸을 숨기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고, 잔해 더미와 벽 너머로 랜턴 불빛을 비추며 공장을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다우드가 말 그대로 걸어들어올 수 있을 만큼이나 도시 경비대가 순찰에 관심이 없던 것이 당연했다. 도시 경비대와 만인의 수도원 사이에는 불안정하고 수상쩍은 관계가 있었는데, 최소한 그가 마지막으로 던월에 있었을 때에는 그랬다. 주시자들이 이곳에 있다면 수도원이 관할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 경비대는 그들의 권한에 대해서, 그리고 주시자들은 명령을 내리는데 비해 자신들은 단순한 순찰 업무에 배정된 데 분개하고 있을 거였다.

  다우드는 들어오는 길에 어떤 주시자도 보지 못했고, 바깥을 어슬렁거리지도 않았다. 경계선이 쳐져 있는 구역인 만큼 그의 우선적인 목표는 빠르게 공장에 침입하는 것이었다. 그가 주시자들과 마주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행운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주시자가 홀로 나타난 것도 순전한 행운이었다.

  주시자는 잔해로 가득한 고래기름 탱크에서 돌아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다우드의 기회였다. 그 자신을 시험해볼 시간, 옛 시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볼 시간.

  던월의 칼이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다.

  다우드는 주먹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숨을 뱉으며 정신을 집중하고, 다른 어딘가와의 연결을 끌어냈다. 그가 점점 더 사용하기 꺼리는 연결이었다. 그러나 다우드는 실용적이었다- 어떤 도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확신했다.

  주시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고 있었고, 공허를 통해 도약한 다우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 야드를 가로질러 주시자의 목을 감고 중심을 잃도록 끌어당겼다. 주시자는 랜턴을 떨어트린 채 신음하며 발버둥쳤고, 다우드는 의식을 잃은 주시자를 끌고 반대편 벽을 떠받치고 있는 버팀목 꼭대기로, 그곳에서 다시 무너져가는 공장 벽 위로, 그리고 달빛이 비추는 던월의 지붕 위로 점멸해 올라갔다.

  몇 가지 질문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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