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나자 소요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만천성이 청단보다 먼저 돌아왔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동안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던 청단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단은 말을 가볍게 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기는 법이 결코 없었다. 이틀 안에 돌아온다던 그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피치 못할 일이 더해졌다는 뜻이었다. 소요에게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땐, 좋은 소식이 아닌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혹여나 특이한 점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독각에게 일의 상황을 물었지만 그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모르겠는데? 벌레들 소리가 안 들려~"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직접 가봐야겠어."

가만히 앉아서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려봤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걸 소요는 잘 알고 있었다. 삼일 내내 소요의 옆에 붙어 능글거리던 독각은 소요의 중얼거림을 듣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응? 어딜 간다고?"

"...내 동료가 간 곳 말이야. 나도 가봐야겠어."

"형씨, 그건 정말 말리고 싶은데.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일을 해결하고 오겠지."

"돈을 떼먹고 도망갈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

가지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요의 수중에 있는 돈은 독각이 원하는 보수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돈은 모두 청단에게 맡겨두고 소요가 가지고 있는 것은 노잣돈 조금 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직접 벽린사로 향해 청단을 만나게 되면 바로 부족함 없는 보수를 준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소요의 말에 독각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고 이것 참, 나를 완전히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본 모양인데 꼭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야. 사실 네 동료가 떠난 날 새벽부터 벽린사 부근에 결계가 쳐져서, 벌레들로부터 제대로 된 소식을 받을 수 없었거든. 결계가 쳐졌다는 건 대부분 무언가를 가둬두기 위함이니까. 그곳에 무언가 나타났다는 뜻이 되겠지?"

소요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걸 왜 이야기하지 않았지?"

"왜긴 왜야, 지금처럼 직접 가보겠다 할 것 같아서 그렇지."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왜 상관이 없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도 없는 곳에 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소요는 더더욱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주는 것인가. 물론 제운사 안에서 꼭 붙어지내는 3일간 정이라면 들었겠지만, 그렇다고 사소하게 안위를 챙길 정도로 친밀한 것은 아니었다. 

"내 몸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아니... 그런 문제가..."

다음 순간, 독각의 말을 끊는 냉랭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울렸다.

"갈 테면 가라."

하루 전 제운사로 돌아온 만천성이었다. 탕후루를 든 채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아하고 냉기가 풀풀 넘치는 모습에 소요는 마음이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형을 위해 힘을 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3일간 놀고 먹었으니 이제 썩 사라지라는 소리다. 언제까지 등만 붙이고 있을 생각이지? 개돼지 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머리까지 꽃밭이 된 건가?"

"거참... 왜 그래~ 사실 마음에도 없으면서 괜히 차갑게..."

"너도 꺼져."

독각이 웃으며 중재자 역을 자처하자 만천성이 말했다. 결코 장난이라곤 할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에 독각은 미소를 지은 채로 돌이 되었다. 만천성의 말은 소요에겐 참으로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굳이 자신을 막는 독각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청단을 만나고 난 후의 설명을 할 명분 또한 생길 것이다. 소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천성의 앞에 똑바로 서자 엇비슷한 얼굴이 나란히 놓였다. 만천성의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꽤나 진귀한 광경에 눈빛을 붉혔다.

"짧은 시간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곳의 제자들은 정말 능력이 출중하더군요."

"...."

소요가 건네는 감사 인사에 만천성은 가만히 소요를 마주 볼 뿐 구태여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만은 그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요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곤 방에서 나왔다. 뒤이어 만천성에게 진심이냐며 조잘거리던 독각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두덩이에 큰 멍이 든 채 소요의 옆에 붙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같이 가는 수 밖에."

독각이 제 머리를 긁적였다. 소요가 무덤덤한 눈으로 독각을 쳐다보자 독각은 양심에 찔리는 것인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술술 털어냈다.

"절대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네가 걱정되서 그런 거니까 그런 눈빛은 그만둬줄래? 이러나저러나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지킬 거고,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이리보나 저리보나 독각은 무예의 ㅁ 자와는 관련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벌레를 부리는 도술을 쓸 줄 안다고 해도 이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용도일 뿐 무언가를 지키는데에 영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독각의 알아서 몸을 지킨다는 말은 꽤나 의심스러웠지만. 소요는 계단 3만개를 다시 내려오는 도중 그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곤 이내 그의 말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제운사의 계단을 내려와 숲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서 화색을 한 채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검연이었다.

"여기! 이쪽입니다!"

검연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네 필의 말이 이끄는 호화로운 마차와 함께 서 있었는데 소요는 이를 보고 어리둥절 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검연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소요에게 말했다. 

"가시려는 곳이 벽린사 맞으시죠? 걸어가기엔 꽤 먼 거리이니 이걸 타고 가세요."

"이 마차는..?"

소요가 묻자 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존께서 준비해주신 겁니다. 두 분을 특별히 신경 쓰신 것 같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손님이니 부족함 없이 모시라는 말도 있었고요." 

소요는 제 귀를 의심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썩 꺼지라며 냉랭하게 굴던 사람이 이렇게 성의를 보일 수 있는 것인가? 혹시 제운사 내에 사존이 둘인 것은 아닌가. 소요는 표정을 크게 바꾸지 않고 생각에 잠겼으나 이를 자연스레 읽어 보인 검연이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저희 사존께선 차가운 분이지만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아마 당신이 꽤 마음에 드신거겠죠. 다음에 올 땐 음... 그 거지 같은 파란 도마뱀을 떼어놓고 오라는 말도 전하셨습니다."

만천성의 말투는 저리 곱지 않다. 듣는 이의 심정을 생각하고 검연이 약간의 각색을 거친 것이겠지. 분명 실제의 말투는 '다음에 오던 말던 자유이지만 망할 청단을 같이 끌고 온다면 사지를 분리해버리겠다.' 와 좀 더 비슷했을 것이다. 

"아무튼, 조심하세요. 최근엔 별다른 일이 없어 벽린사로 야렵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요괴나 귀신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지 않아서요. 하지만 사람의 앞 일은 모르는 것이니..."

"그래, 고맙구나."

소요는 짧은 인사를 마치곤 마차에 올랐다. 독각 또한 자연스레 그 뒤를 따랐고 검연이 손을 흔들자 마지막으로 마차가 출발했다. 어찌 되었든 다행이었다. 만천성이 이리 마음을 써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원래의 소요였다면 벽린사 까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갈 수 있었을테지만, 법력을 모두 천계에 두고 온 이상 평범한 인간의 몸은 걷거나 뛰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도착하는데에 소비하는 시간을 줄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근하게 놓이기 시작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소요는 흑선에게도 미리 연락을 취해두었다. 일전에는 쓸 수 없었던 전서지가 이번에는 요긴하게 사용되며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특이하네."

말발굽의 소리만이 울리는 침묵의 도중, 독각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소요는 이에 반응 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되물었다.

"뭐가 말이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형씨가 시화야행에 대해 물었잖아?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귀신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을 텐데. 혹시 그와 관련된 전설을 들어본 거야?"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차마 그와 관련된 일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없었기에 소요는 대충 얼버무렸다.

"뭐... 그렇지."

"염왕의 신부에 대한 전설은 알아?"

소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엔 묻지도 않은 것을 이야기 해오는 독각에게 관심이 없는 소요였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 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설, 사실은 꽤 잘못된 거야. 염왕... 그러니까 시화야행은 살면서도 죽어서도 단 한 번도 혼례를 올려본 적이 없단 말이지. 완전 나이만 먹은 숫총각이거든. 그런데 왜 전설이 그렇게 시작됐는지 모르겠네. 정말 웃기지 않아?"

"숫총각?"

총각 중에서도 숫총각이라 함은, 여자와 단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은 이를 뜻하는 것이었다. 헌데 시화야행이 그런 숫총각이라니?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연홍서가 독각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가 혼례를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지?"

소요가 눈빛을 날카롭게 갈며 말하자 독각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뭐, 다 아는 법이 있지. 말했잖아? 내 능력이 좀 뛰어나다고.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돼."

소요는 창가에 부근에 머리를 기대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그의 혼례 여부가 아니었다. 지금 청단과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은 그의 신부라고 추측되는 이였는데, 전설이 틀린 것이라면 이제까지의 고생은 모두 허사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숫총각 이라니. 그런 사람을 홀릴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수상쩍었지만 소요는 모든 것을 제 두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가능하면, 그 신부라는 이가 벽린사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 또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직 벽린사의 입구까지도 오지 않은 것 같지만 말을 이끄는 마부는 더는 들어가지 못한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소요는 이를 이해하고 바로 마차에서 내렸다. 벽린사의 소문은 그다지 좋게 퍼져있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인간이라면 더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요는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더는 들어가지 못한다던 마부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벽린사의 입구와는 꽤 떨어져 있는 거리임이 분명한데도 발끝으로 전해지는 흉흉함과 암둔함에 온 몸이 저릴 정도였다. 정돈되지 않은 채 부러지고 그을린 나무들은 길을 한껏 가리고 있었으며, 무너져 가루가 되기 직전의 비석이 아니었다면 길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모를 정도의 피폐함이 눈앞을 덮쳤다. 거기에 더해서 맑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어둑해졌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무 사이사이로 바람이 불어 여인이 우는 듯한 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오, 분위기가 대단하네. 이 정도면 정말 뭔가가 있다고 해도 믿겠는걸? 완전히 쪽박을 차서 망해버린 곳이긴 했지만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는데."

독각이 팔짱을 끼며 웃어 보였다. 

"무서우면 돌아가."

소요가 단호하게 말하며 걸음을 뗐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라면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독각은 소요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무섭다던 말과는 달리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소요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독각이 말했다.

"이야, 여기 처음 오는 거 맞아? 처음 치고는 길을 정말 잘 찾는데?"

"처음이야. 길이 하나밖에 없으니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어."

"그래? 너무 익숙해 보이길래 난 또 형씨가 알고 있는 곳인 줄 알았지."

그 뒤로 독각이 하는 말들은 정말 터무니 없는 것들이었다. 왜인지 그리운 느낌이 들지 않느냐, 벽린사라는 이름에서 뭐가 느껴지느냐, 옛날엔 저곳에 나무가 하나 서 있었는데 새카맣게 타버렸다. 입구부터 아름답고 호화로운 곳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등등. 실과 바늘이 있었다면 입을 꿰매버렸을 정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요는 대강 대답하며 맞장구를 쳤다.

"...!"

어느 순간, 계속 들려오던 독각의 목소리는 뚝 끊긴 채 지옥 같은 침묵 속을 감돌았다. 항상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져 전례 없는 심각한 표정이 나타났다. 소요 또한 그의 변화와 주변의 변화를 제대로 눈치채고 있었다. 줄곧 들려오던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가 멈추고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고요함이 지속됐다. 이는 그들이 청단의 결계 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주변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청단과 먼저 마주칠 수 있을테지만 운이 나쁘다면 아직까지 베일에 감싸여 있는 무언가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다. 독각은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소요에게 속삭였다.

"조심하는 게 좋겠네. 그건 그렇고 네 동료는 꽤 실력이 좋은 사람인가 봐. 이 정도의 결계를 치는 건 만천성도 쉽지 않아. 바람과 소리마저 완전히 차단해서 외부로부터 받는 간섭도 없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야."

독각은 입에 침이 마를 새도 없이 칭찬을 퍼부었다. 청단이 친 결계는 몹시 훌륭했다. 바람 소리는 커녕 동물들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모든 위험을 인지하고 대부분의 살아있는 것들을 결계 밖으로 내보냈다는 소리가 된다. 사방신에게 이 정도는 숨 쉬는 것 보다 쉬운 일이다. 만약 소요도 제대로 된 반려가 있었다면 이것보다 더한 결계를 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인간의 기준에서 이는 이루기 힘든 극고의 경지나 다름이 없겠지. 독각의 칭찬을 들으면서도 소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능하면 빠르게, 누군가가 머물고 있을만한 건물이나 탁 트인 곳을 찾아야 했다. 현재 독각과 소요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아직 허름한 숲길이었기 때문에 무언가의 습격을 받는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 형씨는 팔만 남은 귀신이나 요괴를 본 적이 있어?"

"...글쎄."

수많은 귀신을 상대해봤지만 팔만 남은 귀신이나 요괴와는 마주한 적이 없었다. 천계의 술법진을 파괴하기 위해 덤벼드는 것들은 전부 실력이 뛰어나거나 모습이 완전하여 흉악한 것들 뿐이었다. 애초에 팔 만으로 사방신에게 대적할 수 있을 만큼의 한기를 가진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청단이 쳐놓은 결계는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흉흉한 요괴를 가두어 둘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도 팔만 남은 요괴는 본 적이 없어. 만약 너희가 찾는 사람이 오체분시가 되어서 요괴가 된 거라면 난 팔이 아니라 머리를 찾아냈을 거란 말이지? 그런데 왜 하필 팔일까? 아예 죽어버린 것도 아니고 팔만 남아서 살아있다니."

독각은 제 앞에 있는 둥그런 돌덩이를 툭툭 차며 말을 이었다. 돌멩이 치고는 꽤 깔끔하게 잡혀있는 모양과 비교적 커다란 크기가 신경 쓰였지만 소요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빠각거리는 파열음과 낙엽을 밟는 소리만이 울렸다. 독각은 소요를 뒤따르면서도 제 앞의 돌을 차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독각의 돌멩이가 소요의 다리에 걸리자, 소요는 그제서야 참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정신 사나워."

마침 제 발아래로 굴러온 돌을 밟아 고정하며 소요는 제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곤 발아래에 깔린 돌로 시선을 옮겼다. 뭔가가 이상했다.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은 평범한 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정교한 구멍이 나 있었다. 둥글둥글한 윗부분에는 금이 가 있고, 그 중간엔 커다란 구멍 두 개와 작은 구멍 두 개가 일정하게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론 마치 일정한 울타리가 쳐진 것 마냥 올바른 치열이 보였다. 소요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평범한 돌이 이렇게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연이라도 겹쳐질 수 없을 정도로 확연한 모습에 등골이 쭈뼛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요의 발아래에 있는 것은, 발로 차며 가지고 놀기 좋은 돌덩이 따위가 아니라 살점이 썩어 문드러져 머리카락 조차 남지 않은 어린아이의 두개골이었다. 소요의 상태를 보고 독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제야 눈치챘어? 충격 안 받게 하려고 꽤 신경 썼는데."

"너..."

"길을 걷는 건 좋은데, 주변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잖아?"

독각이 제 발로 바닥을 해치며 말을 이었다. 그 아래엔 또 하나의 뼈가 있었다. 이번엔 두개골이 아닌 사람의 갈비뼈로 보이는 것이 가려진 채 묻혀있는 듯했다. 소요는 수엽의 칼집을 빼 들어 발아래에 깔린 낙엽을 하나둘씩 치워보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놓인 뼈는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열, 아니 스무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의 뼛조각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바닥 뿐만이 아닌 주변의 숲길을 헤쳐보니 독각이 발로 찼던 두개골 보다 훨씬 커 보이는 머리뼈들이 데굴데굴 굴러나오며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독각이 대강의 손길로 뼈를 한 곳에 모으며 말했다. 

"적어도 스무명은 넘어. 이 주변에서 이만큼 튀어나왔으니 아마 우리가 지나온 길까지 합하면 더한 수가 나오겠지."

"...이 정도의 사람이 죽을 동안 제운사에서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건 잘 모르겠네, 하지만 만천성은 이런 일을 가볍게 처리하지 않아. 이 주변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면 더하겠지. 하지만 그런 소문조차 돌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운사에서도 벽린사를 신경 쓰지 않았고... 자세한 경위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들이 평범한 방법으로 죽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 뼈의 표면을 보면 무언가의 녹은 것 처럼 부식되어 있잖아? 이건 짐승들이 위 속에서 먹잇감을 토해냈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야." 

확실히, 사람이 죽고 난 후 썩은 내 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뼈가 문드러질 정도라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뼈의 주인들이 전부 벽린사 주변에서 희생당했다면 그 시체를 누군가가 발견했을 것이고, 벽린사엔 진상을 밝히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게 오고갔을 것이다.

"....잠깐."

뼈들을 살피던 도중, 소요는 무언가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가지고 있던 두개골과 갈비뼈를 바닥에 놓고, 주변을 헤쳐 얻은 다른 뼛조각들을 그 주변에 맞추었다. 굴러다니는 머리뼈가 스무개, 완성된 가슴 부근의 뼈가 스무개, 목의 뼈가 스무개, 다리를 제외한 엉덩이 뼈가 스무개. 독각 또한 소요의 손길에서 무언가의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지만 원하는 것을 결국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크게 뜨인 눈만이 허공에 넘실거렸다. 

"전부... 없네..."

"...팔과 다리뼈가 없어."

스무개의 시체 중, 팔과 다리의 뼈가 존재하는 시체는 단 한 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요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아무리 사지가 뜯겨 죽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인위적으로 팔과 다리를 잘라 숨겨놓지 않는 이상, 이런 기괴한 광경은 좀처럼 보기 힘들 것이다. 

"오..."

독각이 작은 소리로 감탄했다. 

"대체 누가 이런..."

혹여라도 팔과 다리만을 뜯어먹는 귀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 소요가 중얼거리자 독각이 말했다.

"난 대충 알 것 같은데."

독각의 말과 함께 갑작스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소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진상을 말해줄 듯 웃어 보이던 독각은 작게 중얼거릴 뿐 팔짱을 낀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요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형씨, 달리기는 좀 할 줄 알아?"

"뭐...?"

소요가 의아해하는 순간, 다시금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이질적인 것이었다.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부는 것이 아닌, 마치 누군가가 숨결을 맞는 것 처럼 내뱉었다 들이쉬어지는 느낌이 확연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이상한 바람에 소요는 흐름의 시작점을 향해 등을 돌렸다. 

"...."

나부끼고 있는 것은 평범한 바람이 아니었다. 소요가 느낀 이상한 바람은, 누군가의 숨결이었다. 물론 평범한 숨결은 아니었다. 소요의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하나의 눈동자였다. 거대한 장정 셋을 합쳐 놓은 것 같은 흉측한 얼굴이 두 번째로 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거인이면 나았을 것을, 제대로 된 사람의 몸통은 존재하지 않았고 놓여있는 것은 오로지 얼굴 뿐이었다. 흰자가 존재하지 않는 검은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하얗게 뜬 얼굴이 소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떼어다 빠진 곳 없이 분칠을 한 다음, 크기를 키워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다른 것은, 핏자국이 눌어붙은 행색과 검은 연지가 칠해진 입술이 꽤나 소름 돋는다는 점이었다. 소요의 눈앞에 자리한 얼굴은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마냥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눈물이 툭 쏟아져 찌걱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뒤이어 검은 입술이 찢어질 듯 미소를 지었다. 보통 사람의 미소와는 확연히 다르게, 거대한 얼굴의 입 끝은 귀까지 닿아 보였다. 찢어질 듯 웃는 입속엔 날카로운 대바늘과 같은 이빨이 촘촘히 놓여있었다. 

"..."

소요는 말 없이 수엽에 손을 얹었다. 움직임을 파악하기라도 한 듯 검은 눈동자가 한 차례 더 구르며 소요의 움직임을 쫓았다. 소요는 쉽사리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흉측한 얼굴 뿐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인간처럼 보이는 얼굴 뒤엔, 벌레의 껍질과도 같은 갑각이 연결되어 있었다. 독각이 부리는 지네들과 같은 기다란 벌레의 몸통이 여인의 얼굴 뒤에 붙어있는 것이었다. 얼굴은 인간, 몸은 지네와도 같았다. 아니, 차라리 거기서 끝났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귀신에게는 하나의 특이점이 더 존재했다. 사박, 사박. 사람의 살결이 낙엽에 닿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이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허공을 울렸다.

사박사박사박사박사박사박.

수십 개의 다리가 존재해야 할 지네의 갑각 아래엔, 곤충의 날카로운 표피가 아닌 곱디고운 인간의 팔들이 대신해서 자리 잡고 있었다.  

홍소백류만 씁니다. 가뭄에 콩나는 연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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