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다가 삭제했던 부분인거 같은데 따로 봐도 될거 같아서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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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제임스가 너무 걱정이 많다며 나를 다독였다. 짐이 만든 계란국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냥 계란만 풀고 대충 야채를 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다. 하는 말로는 치킨 스톡도 넣어줘야 맛있는 육수를 낼 수 있다며 으스댔다. 결국은 순 인스턴트 덩어리와 다를 바 없으면서 행동거지만 보면 별 몇 개 단 셰프다. 나야 음식에 조예는 없으므로 물론 맛있게 식사를 마치긴 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쳐놓고 음식 같은 걸로 간을 달래려 하지 말라한 것은, 글쎄다. 의사의 소명의식인가?
 

“아세트알데히드로 인한 두통따위가 처먹는 걸로 나아질 거 같냐고.”


곧장 풀어주겠다며 하이포를 놨더니 제임스는 내게 화를 내더라.


“기분 좋게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되기를) 기다리면 될 거 아니냐”며 바락바락 대드는데, 사실 얘가 짜증내는 게 재밌어서 놓는 감도 없잖아 있다. 하여간 한참 삐져서 꽁해있던 녀석에게 영화보자고 했고, 짐 커크는 못내 어쩔 수 없다는 양 굴었다. 나 홀로 소파에 앉아 허공에 스크린을 띄우자 아무런 대답도 없던 녀석은 내 반대편에 엉덩이 끝만 살짝 걸터 앉았다. 시간이 갈수록 동그란 엉덩이가 쿠션에 파묻히는 것은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구시대의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제임스는 영화를 보며 히죽거렸다.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내 눈치를 좀 보는 양 하더니 한 삼십분이 지나자 그도 그만이었다. 같잖은 본인의 분노는 영 잊은 채 배우의 인물에 감탄하며 나를 흘끗거렸다.


“진짜 잘생겼다.” “난 모르겠는데.” 솔직히 영화 속의 배우보다 짐 커크가 생김새는 더 나은 것 같았다.

 

제임스는 삼촌과 자라 혼자 집안일을 해서인가 나이에 비해 생활감각이 좋다. 아니면 내가 생활력이 떨어지거나. 짐 커크는 생긴 것과 달리 구김 있게 자랐다. 말이 이상한가? 이것저것 꼬인 게 많은 녀석은 이모저모로 오해를 받고 살지만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다. 설마 스스로 제 자신을 꼬고 앉았겠는가, 주변에서 꼬니까 꼬아진 거지. 물론 이따금 녀석은 제 인생을 꼬기도 한다. 그건… 천성이다. 아무나 자고 다니고… 그런데 이 녀석이 왜 자꾸 눈을 반쯤 접고 느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제임스가 지상에서 유급 휴가 동안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어떻게 쉬는 시간마저 제가 밥 벌어먹고 사는 일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자는 건지 당최 이해하기 어렵다. 대충 평소에도 탐사한다고 뒤빠지게 돌아다니면서 왜 또 여행이냐, 그냥 지상근무라도 하겠다고 하니,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자 했냐며 어차피 개척지밖에 없는 지구에서 마음 놓고 여행을 하자는 게 뭐가 문제냐고 성화다. 저 혼자 갑자기 열 받아서 화를 빽빽 내는데 나는 헛웃음이 났다. 웃지말라며 쏘아붙이는 꼴까지 나는 웃음이 났다. 여전히 짐 커크의 행동거지는 이해하기 어렵고 귀찮은 것은 사실이나, 얘가 살아있다는 게 즐거워서 알았노라 했다. 계속 장난인지 아닌지 떠보는 얼굴이 귀엽다. 사내새끼가 덩치 산만해가지고는 별거 아닌 것에 눈을 반짝이는데, 어릴 적 키웠던 맥스가 떠오른다.

 

Life is disaster but we have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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