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아이써클이 모두 공개되고, 이제 이달의소녀에는 네 명의 멤버만 공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새로운 유닛이 어떻게 구성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홉번째 멤버 이브(Yves)가 공개됩니다. 그런데 이브는 이전까지의 이달의소녀와 전혀 다른 방식을 거쳐 데뷔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달의소녀 연구단'이라는 50명의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의 연습생 중에 선발을 거쳐서 진행되었던 데뷔 과정이 없어지고, 이브부터는 새롭게 소속사에 들어오게 되는 연습생들로 이달의소녀 멤버가 결정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후 이달의소녀yyxy라는 이름을 가질 새로운 유닛은 기존의 이달의소녀를 구성하던 세계 밖에서 이달의소녀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달의소녀⅓을 지나면서 전개되고, 오드아이써클을 통해 반전되었던 세계관은 이달의소녀yyxy 시기에 이르러 더욱 심화됩니다. 새로운 염색체, 신인류라는 컨셉을 표방한 이달의소녀yyxy는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갑니다. 반대편, 혹은 에덴이라는 상징적 공간 안에서 상징과일과 감정이라는 상징물이 도입되고, 뮤직비디오가 시작할 때 등장하는 이달의소녀 로고도 반대편으로 진행됩니다. 외면적으로는 새로운 유니폼(클루리스)이 차별화되는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또한, ⅓이 사랑에 빠진 소녀를, 오드아이써클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해 나가는 소녀를 표방했다면, yyxy는 사랑을 하는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중심 메시지로 삼습니다. 이달의소녀는 yyxy에 이르러, 최근 몇년간 k-pop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제였던 '자기애'를 다루게 됩니다.[1]
[1] 맥락 없는 '자기애'는 타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쉽게 다른 이들이 '틀리다'는 프레임으로 전이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나버스'에서는 이러한 전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달의소녀의 자기애는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고, 직접 찾아 나서도 보는 방황 뒤에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자기애'는 <Butterfly>에 이르러서 '다양성'의 메시지와 결합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yyxy의 '새로움'과 '다름'을 강조됩니다. 그리고 ⅓과 오드아이써클을 통해 전개되었던 세계관이 yyxy에서 종합되며, 그리하여 데뷔 전까지는 '연결'을 상징하는 오드아이써클이 서사의 중심에 위치했다면, yyxy는 완전체의 초기 서사의 중심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브와 고원이 있습니다.

이브(Yves)

이달의소녀의 9번째 멤버 이브는 백조, 버건디색, 사과, 그리고 믿음을 상징으로 갖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브라는 이름과 사과, 믿음이라는 상징은 자연스럽게 성경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브(Eve)라는 인물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 인류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결과를 초래한 인물입니다. 물론, 철자법에서 보듯이, 이달의소녀의 이브는 성경의 이브와 다르지만, 이브 그리고 yyxy의 중심 서사가 '타락'이라는 점에서, yyxy 세계관의 주요 레퍼런스 중 하나는 성경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달의소녀의 이브는 성경에서의 이브가 아닙니다. 이달의소녀의 이브는 누군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는 타락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루나버스의 이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스스로 타락하기로 결심한 캐릭터입니다. 이브가 있는 곳은 완벽한 낙원 '에덴'이지만, 이 완벽함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낙원에 불과합니다. 루나버스라는 순환하는 세계는 그 세계의 규칙을 들이밀면서 소녀들이 그 안에서 순응하면서 살 것을 요구하였지만, 이달의소녀들은 그 규칙을 의심하면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브 또한 만들어진 규칙을 의심하게 되고, 스스로 타락하는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적극적으로 츄와 고원, 최리 등 다른 소녀들에게로 다가가, 그들이 정체성을 자각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New

이브의 솔로곡 <New>는 이브가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또한 이 노래에는 이브가 다른 멤버들과 가지는 관계를 간접적으로 암시되기도 합니다. (노래 자체는 연습생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뮤직비디오가 시작되면 볼링장과 사과가 지나간 후, 발레 연습실에 하얀색 옷을 입은 이브가 등장합니다. 상징동물인 백조를 떠올리게 만드는 흰 옷과 이브를 비추는 밝은 조명은 이브라는 캐릭터의 순수함을 부각시키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브는 사과가 신경쓰이는지, 사과를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지켜보던 이브가 끝내 사과를 깨뭅니다. 

이와 함께, 뮤직비디오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앞서 환한 조명이 비추던 발레 연습장과 대조되는 공간이 등장하는데, 지하 터널로 보이는 장소에서 이브는 검정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앞서 등장한 발레 연습실이 순수함, 고귀함 등을 상징했다면, 이 지하 터널은 타락, 비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소는 <Cinema Theory>에서 이브가 최리에게 접근한 곳과 유사해보입니다. 즉, 이브가 최리에게 접근한 것은 사과를 먹고 타락한 후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뮤직비디오의 끝 부분에서, 이브는 사과를 떨어뜨려 최리에게 전달합니다. 이브와 최리가 만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이후 고원의 뮤직비디오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다시 이브의 뮤직비디오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브는 사과를 계속 떨어뜨립니다. 이브가 사과를 먹는 장면은 성경에서 다른 이브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지식'을 알게 되는 것과 겹쳐집니다. 이브가 사과를 떨어드릴 때, 사과는 뉴턴의 사과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왜 물체가 떨어질까를 고민하던 뉴턴이 물리법칙을 고안해내었듯, 이브도 계속 사과를 떨어뜨리면서 루나버스의 법칙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드아이써클을 상징하던 캔버스화를 벗고, 구두로 갈아신습니다. 이후 <Why not?>의 축제 장면을 떠올린다면, 이 장면은 오드아이써클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루나버스의 서사가 yyxy의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을, 그리고 yyxy의 정체성은 오드아이써클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과를 먹으면서 이브의 정체성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브가 하얀색 옷에서 검정색 옷으로 갈아입은 것처럼요. 이브는 계속 사과를 먹고, 사과를 떨어뜨리면서 적극적으로 변화해 나갑니다.

다음 장면에는 인형뽑기 기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인형뽑기 기계의 버튼 색깔이 오드아이써클의 상징색과 일치합니다. 이브는 그 기계를 작동시켜 개구리 인형, 그리고 올빼미 인형을 뽑습니다. 그런데 나온 것은 사과입니다. 이제 이브는 인형과 사과를 골프채로 칩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인형들을 뽑고, 골프채를 치는 장면들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기에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을 뽑는다거나 인형을 골프채로 내리치는 모습은 폭력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게다가 이브는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브는 악역인 걸까요?

이런 의심은 이브가 골프채로 오리를 내리칠 때, 그리고 내리치는 오리가 사과로 변하면서 박살날 때 함께 산산조각 납니다. 이브의 솔로 싱글이 발매되기 하루 전에 이달의소녀들의 상징동물 인형들의 사진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오리 인형이 이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며, 백조 대신 오리로 이브가 상징된다는 것은 곧바로 동화 미운 오리새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못났다고 구박받던 오리가 실은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동화인데, 이브 또한 미운 오리새끼에 백조로 거듭나고 있는 과정인 것이죠.

정체성 변화 과정은 이처럼 결코 평온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카프카가 말했을 때, 이 말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 가질 파급력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과(지식)을 배어먹은 이브의 행동은 정체성의 변화라는 지진을 일으키게 되고, 이 여파가 다른 소녀들에게로 이어져나갈 것입니다.

골프채를 치는 행동이 긍정적인 함의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형뽑기 기계 또한 긍정적인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됩니다. 인형뽑기 기계가 인형을 (폐쇄된) 내부에서 (개방된) 외부로 이동시키는 것이라면, 이브의 행동은 다른 소녀들의 이동에 조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형뽑기 기계의 버튼 색깔이 이달의소녀 안에서 '연결'이나 '이동'을 상징하는 오드아이써클의 상징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뮤직비디오로 돌아가면, 스쳐지나가는 장면 중에는 비비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카세트 테이프가 다시 나타납니다. 엘레베이터는 9층(이브)에서 5층(비비)으로 내려가고, 5층에는 비비가 있습니다. 이후 사과를 보는 이브의 장면과 놀라는 비비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과 유사한 장면이 <Why not?> 뮤직비디오에서도 등장했습니다.

이브의 싱글이 공개될 때, '이브의 시간'이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이 있었습니다. <이브의 시간>은 2009년 공개된 애니메이션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 애니메이션 속에서 '이브의 시간'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윤리위원회가 있는 세계 속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지 않는 카페의 이름입니다. 즉, D-1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차별하지 않는 시간(장소)이며, 이러한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이브, 그리고 모든 이달의소녀가 꿈꾸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이브는 에덴에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진짜로 나쁜 일일까?”, 만약 우리의 삶에 누군가 정해놓은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에 맞서는 게 더 나은 삶이 아닐까?
그게 신이나 운명처럼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지금 우리의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이나 유리천장이라면 순응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돌진해보겠다고 이브는 노래한다.

<Yves> 앨범 설명 중에서

그리하여 이브는 끊임없이 사과를 깨물고, 떨어뜨리고, 인형을 날리고, 도로의 연석을 넘어갑니다. 이 모든 '거창하지 않은' 행동이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고 이브는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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