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성은 하이큐 38권까지의 설정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드림 전력 「깜짝 상자」

41회 주제 : 다시 건네는 인사

니시노야 유 드림



“아히루, 유학은 생각 없니?”

이시카와 교수가 꺼낸 말은 아히루도 진지하게 고민하던 부분이다. 그러나 그에 수반되는 비용과 시간 탓에, 가족에게 말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히루는 보면대 위의 악보를 갈무리하며 시선을 피했다.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네가 생각 있으면 선생님이 알아봐 줄게. 선생님은 네 소리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주름이 깊은 눈에서 짙은 신뢰가 풍겼다. 아히루는 제 악보 귀퉁이를 몇 번 더 매만지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지하게 생각해봐. 선생님은 긍정적이면 좋겠고.”

“네에….”

아히루는 아닌 척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동기와 가벼운 눈인사를 남기고 아히루가 건물을 빠져나갔다.

“유학….”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학. 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소망보다 두려움과 걱정이 컸다. 나고 자란 일본에서도 미야기로 이사하였을 때 적응하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해외로 가면 자신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해외 유학이라면 거주 비용 같은 것도 더 나갈 텐데.

아히루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발끝만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데,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활짝 웃었다.

“미도리!”

“니시노야.”

아히루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니시노야, 아히루가 과거를 떨치고 다시 대중 앞에 나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아히루는 제 곁으로 다가오는 니시노야를 그저 보기만 했다. 니시노야는 다가오는 속도를 점점 줄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가 나쁜 말이라도 했어?”

“아니…….”

부정하는 말과 다르게 목소리는 직전보다 더 침울해졌다. 니시노야는 그 모습에 눈을 몇 번 끔뻑이더니 턱,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배고픈 거면 내가 맛집으로 데려다주지!”

자신 넘치는 목소리에 아히루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아히루가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 악보를 고쳐 들었다.

“어디 갈 건데?”

“우리 후문 근처에 새로운 몬쟈 집이 생겼는데, 맛있대.”

니시노야가 성큼 앞서 걸었다. 아히루는 잠시 그대로 선 채 니시노야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낼 줄은 몰랐는데. 새삼스러운 생각이나, 중학교 3학년 때 찰나의 목격이 끝일 줄 알았던 인연이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각자 선택한 대학까지 근처라니.

“거기서 뭐 해?”

따라오는 소리가 없자 니시노야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멈춰선 아히루를 보고,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잡았다.

“얼른 가자.”

아히루의 사색이 무색하게, 니시노야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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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그런 표정이었는데?”

철판의 몬쟈가 먹음직스럽게 익었을 때, 니시노야가 잊지 않고 물었다. 그리곤 한입 가득 뜨거운 몬쟈를 먹기 시작했다. 아히루의 시선이 니시노야에게서 철판의 몬쟈로 떨어졌다. 부글부글 끓는 거품이 시야에 가득해졌다.

“선생님이 유학은 어떠냐고 하는데, 유학은 무서워서…. 뭐 비용도 비용이고.”

아히루의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았다. 니시노야는 그 말에 땡그란 눈을 깜빡이며 입에 집어넣은 음식을 얼른 우물거렸다.

“무섭다고 피하는 건 아깝지 않아?”

“응?”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거든. 무섭다고 피하는 건 아까운 거라고.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무서워서 지레 피하는 건 아까워. 직접 해보면 좋을 수도 있잖아?”

아히루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니시노야는 다시금 볼 가득 음식을 물고 있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곧게 반짝였다.

“선생님이 추천하는 거라면, 유럽일 텐데. 너무 멀잖아.”

“뭐 어때. 유럽 여행 간다고 생각해! 요즘은 메일도 잘 되고 걱정할 거 없잖아. 너라면 잘 할 테고.”

니시노야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신뢰가 가득했다. 아히루는 그 강한 믿음에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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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손님.”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아히루가 번뜩 눈을 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모습에 흠칫 놀라 뒤로 몸을 뺐지만, 금세 등받이가 닿았다. 낯선 이는 그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미소 지었다.

“곧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니 등받이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메어 주시겠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히루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등받이부터 세웠다. 흘끗 넘겨다본 창밖은 아직 구름만 보였다. 승무원의 지시대로 안전벨트를 메고, 아히루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곤 비행기 아이콘을 보며 허망한 기분만 느꼈다.

“니시노야….”

기막힌 우연으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알고 지냈지만, 유학길에 오르면서 연락이 뜸해진 자신의 신세계. 처음 본 순간의 그 번뜩이는 경험이 빛바랜 것은 아니나, 자연스레 거리가 벌어졌다. 시차 탓에 메일 텀은 길고, 답장해야지 하다가도 과제와 강의에 밀려 깜빡하고. 뒤늦게 보내기에는 염치가 없는 것 같아 머뭇거리다 어느샌가 연락을 하지 않은지 꽤 됐다.

아히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대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곧 비행기가 기울어졌다. 아히루는 반사적으로 팔걸이를 쥐고, 착륙의 진동을 견뎠다.

비행기가 도착했어도 내리고 짐을 찾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히루는 지루한 얼굴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 캐리어가 나오길 기다렸다. 마중 나왔다는 동생과 문자를 나누는 동안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히루는 시끄럽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제 핸드폰만 보았다.

“미도리!”

익숙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아히루는 처음 제가 환청을 듣나 했다.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꿈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었다. 키는 여전히 저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지만, 무언가 분위기가 이전보다 어른스러워진 듯한 니시노야. 아히루는 몇 번 말을 더듬은 끝에 겨우 그 이름을 꺼냈다.

“니시노야?”

“아, 다행이다. 불렀는데도 못 듣는 것 같아서, 아니면 어쩌나 했네.”

주변의 웅성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니시노야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히루는 핸드폰을 쥔 모습 그대로, 혼이 쏙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니시노야는 가까워지자 곧장 아히루의 핸드폰을 가져갔다.

“니시노야….”

“요루가 너 이쯤에 도착한다고 해서, 못 만날까 봐 걱정했는데.”

아히루가 어리둥절한 것과 달리 니시노야는 꽤 덤덤해 보였다. 아히루의 핸드폰을 제 것처럼 만진 뒤 니시노야가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히루가 당혹스러운 시선을 떨어트리자, 액정에 니시노야의 이름과 함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메일보단 이쪽이 나을 거 같아서. 나 이제 가봐야 하니까, 나중에 꼭 연락해. 알았지?”

니시노야! 꽤 떨어진 쪽에서 니시노야의 이름이 들렸다. 니시노야는 힐끔 그쪽을 보고 다시 아히루를 보았다. 그리곤 여전히 얼떨떨한 아히루의 손을 잡았다.

“나중에 꼭 연락하기야.”

짧은 말을 던지고, 니시노야가 제 이름이 불린 쪽으로 돌아갔다. 아히루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 제 손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핸드폰 액정에는 여전히 니시노야의 이름과 번호가 떠 있었다. 아히루는 멍하니 자기 핸드폰만 보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컨베이어 벨트에는 언제 나왔는지 모를 캐리어가 아히루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히루는 얼른 자신의 짐을 챙겨 니시노야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나 니시노야와 일행으로 보이는 무리가 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아히루는 얼른 그 뒤를 쫓았지만 게이트 앞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막혔다.

“지금 이쪽에서는 배구 국가대표 분들의 입국이 진행 중이라, 나가시면 사진에 찍히십니다.”

“국가대표요?”

아히루가 놀란 표정으로 자동문 너머를 보았다.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니시노야가 뒤를 돌아보았다. 기자들의 번쩍이는 플래시를 뒤로하고, 니시노야가 아히루를 보며 씩 웃었다.

그 미소는 이전과 똑 닮아서, 마치 단 하루의 공백도 없던 사이 같았다.



tmi) 요루는 아히루 남동생입니다. 

현재는 하이큐, 데못죽 위주 덕질 중. 마음의 고향은 룬의 아이들, 해리포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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