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침



“일어나. 일어나!”

“그, 그만…”

“일어나-!”


토도로키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건 미도리야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간밤에 마감을 끝낸 참이라 잠이 절실한데 이 집 꼬마는 안 그런가 보다. 방을 다다다- 달린 하루가 부엌까지 한달음에 다가갔다.


“할머니, 아빠들이 안 일어나!”

“어제 밤에 마감했나보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요.”


라면서 보스가 나선다. 미도리야는 낌새를 느꼈는지 벌떡 일어나 토도로키를 잡고 흔들었다. 조금만 더… 중얼거리던 걸 엄마 와. 엄마. 하니 금방 일어났다. 인코가 방문을 노크했을 땐 둘 다 머리가 새집이 되어 안녕하세요. 나오는 것이다.


“피곤한 건 알고 있지만 식사는 하고 자렴.”

“네, 네. 감사합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생활리듬이 엉망인 두 사람을 대신해 하루의 아침을 챙겨주는 건 인코의 몫이었다. 그 외에는 너희 육아니까. 양가 다 방목하고 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새집이 된 토도로키가 먼저 나와 욕실로 향했고, 미도리야는 이불에 도로 눕다 하루의 어택에 일어나고 말았다. 안아달라고 계속 보채서 안고 욕실로 들어서니 토도로키가 손을 뻗었다. 옮겨가듯 품에 안겨 목덜미를 끌어안는다.


“하루, 어서 아침 먹어야지. 유치원 늦어요.”

“네.”


내려와 쫑쫑 사라지는 걸 보고 허허 웃은 미도리야가 세수했고, 수건을 밀어준 토도로키가 거실로 나왔다. 여러 차례 증축한 집은 좀 더 밝은 느낌으로 변했다.


“매번 감사합니다.”

“뭘, 둘 다 일하느라 고생하잖니.”


토도로키는 영문번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글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건지 문장력이 좋아 번역 실력도 손꼽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영화 관련 번역도 하는데 이쪽은 일정이 급하다보니 자꾸 밤을 새. 작게 하품한 토도로키가 하루를 안아 아기용 의자에 앉혔다. 먹는 건 스스로. 스푼과 포크를 쥐어주고 인코가 내 준 식사를 감사히 받았다. 미도리야도 뒤늦게 나와 엄마 미안. 하더니 잔소리를 샀다.


“그럼 엄만 간다. 하루 유치원 꼭 보내렴.”

“응. 고마워. 있다가 찾아갈게.”

“괜찮아. 네 아빠랑 산에 다녀 올 거야.”


하루가 태어나던 해, 이모의 옆집에 부모님도 내려왔다. 덕분에 육아지옥은 못 느꼈지. 그리고 이 주변이 개발지역이 되며 지금은 시골과 도시 그 중간의 분위기였다. 계획적으로 구획을 짠 탓에 여기서 더 도시 느낌은 없겠지만 딱 좋지 뭐. 편의점도 여러 개고 마트도 있고. 하루가 떨어트린 소시지를 받아 도로 올린 토도로키가 말했다.


“내가 데려다 주고 올게.”

“같이 가. 산책할 겸.”

“어제 나보다 늦게 잤잖아?”


그건 그렇지. 마감이 목전이었다. 편집 재주가 좋아도 자기 글은 힘들어서 편집장님이 계속 봐 주고 계셨는데 미루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에. 양반은 아닌지 바로 울린 알람에 휴대폰을 보자 [OK]란다. 대답 대신 휴대폰을 보여주자 씩 웃는다. 미도리야 이즈쿠 첫 책 편집 끝! 두 팔을 들어 목소리를 늘렸다. 해방이다. 해방. 쇼토 아빠, 이즈쿠 아빠 왜 그래? 마감이 끝나서 그래. 마감이 뭔데? 세상에서 제일 지겹고 끝나면 좋은 거. 그래요. 그거에요. 미도리야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식사를 마쳤다. 토도로키가 하루를 맡고, 미도리야는 설거지와 뒷정리를 맡았다. 노란 유치원 복을 입은 하루는 누가 봐도 귀엽다. 심장을 움켜 쥔 미도리야였다.


“누구 천사가 이렇게 귀엽지.”

“하루가!”

“맞아, 하루는 귀여워.”


눈물을 줄줄 흘리며 꼭 안고 있으니 뒤에 서 있던 토도로키까지 가세한다. 온가족이 포옹으로 시간을 보내고 유치원 통학 버스를 놓칠까 서둘러 바깥에 나왔다. 정류장에 오자마자 노란 버스가 온다. 늦을 뻔 했다. 차가 있으니 상관없지만, 졸릴 때 운전하면 위험하니까. 하루 안녕. 안녕. 있다가 봐. 무사히 보냈다. 막 유치원에 갔을 땐 안 간다고 발버둥에 일주일동안 울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말 하루가 다르게 크는 군.”

“그러게. 이만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손으로 대중을 잡은 미도리야가 어깨를 꾹꾹 눌렀다.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 육아지옥은 아니었지만… 밤에는 온전히 부부의 몫이었고 하루는 밤에 잘 우는 애였다. 정말 괴로웠지. 언제 크나 싶었다.


“그래도 점점 자라는 걸 보니 섭섭하기도 하네.”


미도리야의 어깨를 주무르는 토도로키가 천천히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 뺨에 입 한 번 맞추고, 더 없으며 입 맞추고. 가볍게 떨어진 입술에 소리 내 웃은 미도리야였다.


“그래도 하루는 쇼토를 닮아서 다행이야.”


토도로키는 정수리에서 반으로 갈린 머리지만, 하루는 특이하게 하얀 머리카락이 점점 녹색으로 변했다. 알파와 오메가 사이 아이들은 대체로 보통 아이들과 좀 다른 구석이 있지만 머리가 파처럼 자랄 준 몰랐지. 속상해 하자 예쁘니까 괜찮아! 씩씩하게 답해줬지만.


“무슨 소리야.”


뚱한 얼굴에 뺨을 콕 찌르고 집에 들어왔다. 발치에 엉킨 고양이가 네 마리다. 네 마리. 고양이가 새끼를 보고 그 아이들을 입양보내지 않고 전부 데리고 있던 탓이다. 토도로키는 그네들을 다 쓰다듬어주며 대답을 요구하듯 쳐다보았다.


“내 얼굴보단 쇼토 얼굴 닮는 게 이득이지.”


인터뷰 한 번 했다 사진이 실려서 번역간데도 팬이 부쩍 늘었다. 사진 더 찍어달라는 SNS들 보니 자주 나오면 대스타 되겠어.


“나는 이즈쿠를 닮았으면 하는데 날 닮아서 어디다 써.”


자기 얼굴값을 몰라서 다행인 건지, 큰일인 건지. 다행인 건 하루, 둘을 딱 반을 섞어 닮았다. 이목구비는 토도로키를, 커다란 눈이나 곱슬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은 미도리야를. 성격은 미도리야 쪽이려나.


“동생 만들까?”


이를 닦던 미도리야가 한 소리에 깜짝 놀란 토도로키가 머리를 짚었다.


“…머리는 상관없지만, 네가 아픈 건 이제 싫은데.”


눈치를 보며 하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미도리야는 거품을 뱉고 헹구며 그때를 떠올렸다. 안정기까지 아무 문제없이 넘겨서 출산도 편할 줄 알았는데 아니 이게 웬일. 진통을 이틀 동안 하고, 산통은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괜히 비명이 나는 게 아니더라. 아이를 낳고 정신 차려보니 손에 색 다른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있었나.


“자기가 오고 싶으면 오겠지.”


토도로키 머리에 땜빵이 생긴 걸 떠올리니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난다. 심드렁하게 나오는데 허리를 안는 손이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길에서 했던 입맞춤보다 진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럼 아침이지만 뜨겁게 보내볼까.”


뒤늦게 농담을 받는 말에 미간을 톡 쳤다. 됐네요. 하면서.



후기

트위터 친구의 생일 기념으로 작성했습니다. 리퀘스트는 학생 토도로키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미도리야였는데 왜 얘기가 이렇게 됬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열심히... 했습니다. 중간은 힘겨웠지만 마지막엔 재미있게 썼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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