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진전력, '염색'



w. 오지니







내 머리색은 갈색이다. 흔히들 말하는 초코브라운 뭐시기. 어두운 색 계열 중 평범함 쪽에 속하는 색, 그 갈색이 맞다. 유전자로 따져봤을때, 부모님을 통해 선천적으로 얻은 내 고유의 머리색. 즉, 20년동안 쭉 유지해왔단 소리다.

그나저나 왜 내 소개를 이름도 나이부터도 아닌, 머리색부터 하느냐고? 그건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왜 이러는진....

그건 이제부터 자세히 알려주겠다. 왜 나의 머리색이, 그렇게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머리색이. 어째서 금발로 변했는지 말이다.









'테이크 컬러버스'
-좋아하는 사람의 머리색으로 자신의 머리색도 변하는 세계관. 머리카락 끝부분부터 서서히 변하며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되면 머리색도 본래 자신의 머리색으로 돌아온다.염색으로 잠시나마 가릴 수는 있지만 영구적으로 가릴 수는 없다.








머리색이 변하기 시작한건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내가 25살때였다. 생지옥같던 군대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복학한지 7개월 쯤 됐었을때인가.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노력조차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사실 난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취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막 되는 것도 아니었고. 노가다를 뛰기엔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그마저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너무하기도 하지. 현실은 경쟁으로 가득한 이 사회 속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살아가려는 백수를 가만두지 않았다.

우선, 취업이 어려워졌다. 요새는 서울대를 나와도 중소기업조차 들어가는게 힘들다던데. 중위권에 속하는 대학교는 어떻겠어, 거들떠도 안 보겠지. 그런 막막한 사회를 나는 이미 외면한지 오래였다. 네들만 사람 평가하냐? 나도 스펙 어쩌구 따지면서 불공정하게 구는 네들 재수없다, 퉤.

그리고, 백수짓을 하면 할수록 내 생계가 위험해졌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그땐 나까지 집세를 낼 필요 없다는 어린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냥 지내왔던 것처럼 지냈었는데, 전역을 하고 난 뒤 왜 그런지 나는 집에서 쫓겨났다. 아니, 쫓겨났다니까? 보통은 '이제 저도 의젓한 어른이 되었으니 나가서 사회생활과 맞서 볼게요.' 하면 부모님께서 또 걱정을 이만저만 하시며 말리는 장면이 나와야 할텐데, 나는 그냥 예고없이 쫓겨났다는거다. 아들놈도 아니야 넌, 이라는 쌍욕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저축해 두었던 돈과 쫓겨나면서 마지막 용돈이라며 부모님께서 던져주신 돈을 합쳐 근처에 작은 공간의 원룸을 구했다. 근데 이마저도 무너진다니. 정말 어쩌란 말인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돈을 벌 수가 없었고 덕분에 원룸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거다. 하루하루 밀리는 방세에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다고 어디서 짠 하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싶어 통장을 확인해봐도 돈 쓸 일이 뭐가 그리 있었는지, 방세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럼 부모님께 부탁하면 되지 않았냐고? 음, 그렇게 된다면 이번에는 아들놈도 아니란 소리보다 아예 말없이 호적에서 파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해서 난 처음으로 제대로 사회생활과 맞서게 되었다. 이름하여, 아르바이트. 원룸 근처에 위치한 모든 가게들 앞을 기웃거리며 빈자리를 구한 결과, 드디어! 어느 커피숍 하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커피숍은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당시, 따수한 커피 한잔을 즐기자며 많이 갔던 곳이었는데 이젠 내가 그 따수한 커피를 파는 입장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가게 앞을 기웃거리길 잘했던 것 같다. 알바를 구하고 있는 날 알아봤는지 먼저 말도 걸어주셨으니까.


..서론이 정말 길었다. 놀랐겠지만 지금까지 다 앞으로 내가 또 설명해줄 일들의 시작 포인트다. 질질 끌었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일수도 있으니 이해 해줬으면 한다.


그렇게 커피숍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3개월 후쯤 이었다. 나는 불굴의 의지로 생계만은 꼭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알바를 정말 열심히 다녔다. 정말 누가봐도 느껴질만큼, 보일만큼 열심히 주어진 임무를 했다. 그런 결과, 진짜 그런 점이 보인건지 커피숍 사장이 어느날 내게 다가오더라.


"김 석진씨, 팔 안 아파요?"


사장은 탁자를 부실듯이 닦는 내게 다가와 걱정하는 투로 물었고 나는 이건 제 할일인걸요!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사실은 팔이 저릴만큼 아팠지만 말이다. 욕도 나올뻔 한걸 내 밥줄을 위해 꾹 참아야만 했다. 그런 내게 사장은 그이만의 특유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한다며 나를 쉬게 했다.

그 후로, 나는 사장과 많은 접점을 이루어 얼마 안가 형동생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이름, 김남준. 나이, 24세. 직업, 커피숍 사장. 나는 처음에 남준이 나보다 어린 줄 정말 몰랐다. 사장이라는 직급때문인지 한참 나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남준 그 스스로 24살이라는 말을 했을 땐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동시에 부러움. 짜아식, 멋있다...쩝.

그렇게 직장내에선 사장과 알바생. 밖에선 형동생으로 이중적인 생활을 하며 남준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달이 지나고 나는 남준의 제안으로 커피숍의 정식직원도 되었다. 이젠 생계를 살림과 동시에 취업 문제에도 지장이 없게 되었고, 난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맘때쯤 일어나게 된다.


여느때처럼 출근시간보다 일찍 커피숍을 가서 오픈 준비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말썽이는 신발끈을 묶느라 5분정도가 늦어지게 되었고 급한 걸음을 해 커피숍에 도착했을땐 이미 오픈 준비가 다 마쳐진 상태였다. 누가 벌써 왔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 쪽에서 움직이는 익숙한 뒷통수를 볼 수 있었고 누군가 해서 봤더니 그는 바로 남준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아, 석진씨."

"웬일로 이렇게 일찍 나오셨대요?"

"음. 형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고."


남준의 형,이라는 말에 순간 놀랐다. 아니 직장 내에서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건데...


"큭.."

"왜 웃어요!"


나 혼자 심각했나보다. 난 이래도 되는건가 싶어 깊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 남준사장은 뭐가 그리 웃겼는지 보조개까지 보이며 웃고 있었다.


"ㅋㅋㅋ. 여기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놀랄 일이었어요?"


이젠 아주 놀리고 있지. 나는 배까지 부여잡고 웃는 김 남준에 빠르게 다가가 어깨를 퍽 쳐 버렸다.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 놀리고 있어? 괘씸한 마음에 한번 더 쳤더니 김 남준이 내 손목을 잡았다. 덕분에 김 남준과의 거리가 좀 가까워졌다. 어쭈 안 놓으냐.


"그나저나 여기, 왜 그래요.

"왜 말 돌려요 사장님."

"아,ㅋㅋ아니. 여기 말이에요 여기."


남준이 말하면서 내 머리 끝 부분을 가리켰다. 짧은 머리에 안간힘을 써 눈을 돌려 부분을 확인했더니, 에엥? 이게 뭐지? 웬 뜬금없는 노란색 머리카락이 생겨난거다.


"이게 뭐지?"

"응?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아! 이게 뭐지?!"


갈색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보이는 노란 머리 한 뭉탱이.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한 나는 곧장 락커룸실로 들어가 거울을 확인했다. 아악! 이게 뭐냐아! 어이가 없었다. 머리 색이 본래 어두운 색이기에 한눈에 띄는 노란색이 꼭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이다. 나는 순간 좌절했다. 어느새 뒤따라 들어와 나를 위로해 주는 남준에도 힘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날 하루를 정말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3개월 정도가 흘렀을까, 몇가지의 변화가 생겼다. 하나. 나의 생계는 완전히 여유로운 삶으로 돌아왔다는 것. 몇개월 간의 열심히 임한 알바와 또 정식직원이 되고 더 오른 월급에 금전적인 여유까지 생겨났다. 이 정도면 일단 하나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나는 더이상 백수가 아니였다. 뭐 이건 다들 왜인지 알 것 같으니 설명은 생략하겠다. ..좀 재수없나 그래?

또 셋. 나를 애지중지 하시던 나의 부모님께서 이사를 가셨단다. 늘 그랬듯, 말 없이. 저번에 자취 하고나서 오랜만에 뵈러 갈까하며 그 비싸다는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사 들어 내가 알고있는 집 주소로 찾아 갔었다. 그런데 웬걸. 비밀번호를 눌러도 틀렸다는 소리만 울려대는 열쇠에 당황하고 있자, 웬 모르는 아주머니가 자기 집앞에서 뭐하는 거냔거다. 그리고 알게 된 부모님의 이사 소식. 나는 그날만 생각나면 허탈했지만 좋은 집으로 가셨다니 다행이라 여겼다. 아 물론 아직 가보진 않았다.

이제 넷. 시간이 지나고 이제 머리색이 완전히 샛노랗게 변했다는거다. 3개월 전, 처음으로 그 조그만한 뭉텅이를 발견했을때와는 달리 끝에서부터 변해 나의 본래 머리색을 노란색으로 완전히 덮어버렸다. 나는 이 현상이 왜 나타나나 싶어 당시 인터넷에 찾아 봤었다. 머리색이 바꼈어요, 머리카락의 변화, 머리색이 금발로 변했는데 혹시 병인가요, 등등. 그 어떤 지식인을 찾아봐도 내가 원하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불굴의 의지 아니냐. 나는 계속해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고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 왜 머리색이 바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다섯. 김 남준이라는 것도 말이다.


단기간 알바를 목적으로 시작해서 벌써 그와 함께한지 8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김 남준과는 비즈니스적인 사장과 알바로 시작해서 가볍게 형동생 사이가 되었고, 이젠 서로에게 있어 가족보다 편한 사이가 되었다. 거의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시선으로 봐야해서는 안 될, 들킨다면 처음보다 불편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생겼다는거다. 그것은 내 바뀌는 머리색을 통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김 남준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오히려 진실을 알고 마주한 뒤 남준을 피해 다녔다. 마주치면 다시 뒤로 돌아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고 연락이 오면 오는대로 다 거절하거나 무시해 버렸다. 또 직장내에서는 하지도 않았던 선을 내가 먼저 그어버리기도 했다. 사장님, 공과 사는 구분하셔야죠. 그렇게 계속 대화를 단절시키다보니 갈수록 우리둘의 접점은 많이 없어졌다.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머리를 본래 내 머리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녔다. 벌써 염색으로 깨진 돈이 얼마인지 세기도 힘들어질 만큼 난 내 감정을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절대. 절대로.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출근 했다. 가게로 오는 내내 무리한 염색때문이었는지 두피가 찢어질듯이 아파 꾹꾹 안마하면서 왔다. 오죽하면 미용실에서도 웬만하면 그만 하는게 좋을 것 같다 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다 좋자고 하는 짓이었으니까.

닫혀있는 문을 열기 위해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맨 위 열쇠구멍에 맞추었다. 그리고 손을 문에 갖다 대 중심을 잡으려 했더니만 어라? 문이 열리네? 또 누가 먼저 왔나보다하고 안으로 들어오니 어디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높은 톤을 가진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뒤이어 중저음을 가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왜 그게 김 남준 같을까.


"여자..?"


온 신경이 바짝 섰다. 계속해서 번갈아 가며 들리는 두 목소리에 나는 그 쪽 가까이 발걸음을 했다.

"진짜 고마워. 아 진짜 고맙다."

"ㅋㅋ뭐냐. 너답지 않게. 그렇게 좋아?"

"어, 당연하지! 진짜.. 완전."


뚜벅. 움직이던 발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대화 소리에 사실 다가가길 내 자신이 원하지 않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로 봐선 그 어떤 연인의 대화나 다름 없이 들렸다. 좋다는게 뭐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고 한번 더 오버랩으로 들리는 대화의 내용에 차라리 가까이 가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오늘 그냥 잠이라도 더 잘걸. 차라리 오늘 아플걸. 차라리...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미 문 앞까지 간 나는 살짝 열린 틈으로 그들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는 역시나 남준과 긴 머리를 소유한 여성이 함께 있었다. ...근데 나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아."


갈색 머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갈색 머리. 그게 그러니까.


"...갈색.."


금발이었던 남준의 머리가 언제부터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냐는 얘기다. 그것도 지금 함께 있는 여성분과 동일한.. 색으로.


"지금 몇시지? 너 가게 오픈준비 해야 되는거 아니야?"

"아, 벌써 시간이."

"하여튼ㅋㅋ. 너 지금 완전 정신없어 보이는 거 알지?"

"좋아서 숨길 수가 없다 진짜.. 어쨌든 고맙다. 진짜로."

"알았어 알았어~. 오늘도 고생 하시고."


둘은 대화를 잇는가 싶더니 서로를 꼭 안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왜, 왜 그런건지 몰라. 그냥... 감고 싶었다. 이제껏 감정 숨긴다고 쌩 난리를 쳐 왔으면서 지금은 왜 그러질 못하는지 내 자신이 짜증 나기도 했다. 뚜벅. 뚜벅. 점점 나에게로 누군가 다가왔다. 모든 게 느리게 느껴졌다. 그냥 날 좀 지나쳐 줬으면. 내가 지금 움직이지 못 할 것 같아. 좀 지나쳐줬으면.


"제발..."

"..석진씨?"


그래주길 바랬지만 역시나 현실은 너무 빗나간다. 꿈이 아니라는 듯 앞에서 선명히 들리는 남준의 목소리에 나는 바로 뒤로 돌아 가게 밖으로 나갔다.


"김석진씨! 형!"


아무것도 듣기 싫었고 보기 싫었다. 저 세글자가  차라리 내 이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왜 괴로워. 그냥 나 자신을 자꾸 탓하게 만드는 이름 같아서 더 그랬다.


"김석진!"


결국 잡혀버렸다. 김 남준이 나를 잡는 통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즉시 내 몸을 돌리는 너. 다시 보게 된 네 얼굴. 또, 변한 네 머리색. 마치 염색을 한 것 마냥 흠 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럼 대체 얼마나...


"..오늘은 나 아파. 집 가서 쉴게요."
"형. 내 말 듣고 가. 어?"
"나는 아파.. 아프니까 오늘 쉬고 내일 다시 나올게."
"형, 오해라니까?"
"나는 아프다구!!"


소리는 지르고 싶지 않았다, 가 내 변명이다. 자꾸만 차올라 눈 앞을 가리는 눈물도 짜증났다. 그냥 날 잡은 김 남준 너도,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마지 못해 너에게 잡힌 척 한 방금전의 나 자신도 오늘 왜이리 다 미워보이는지. 모든 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형이야.. 형."


뭐?


"나 이 머리색 형 머리색이라고."


거짓말.


"나도 몰랐어. 몰랐는데, 형이 나 피하고 다녔을 때."


..거짓말.


"보고싶더라. 그렇게 인정 하고 나니까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일순간에 갑자기 머리색이 빠른 속도로 변했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으흑..으으...."

"형?"

"갑자기 이러면 이 바보멍청아!!! 으허엉..!"


나도 내가 저때 왜 저렇게 바보같이 울었는진 모른다. 그냥 이럴거였으면 왜 내 소중한 두피까지 아파가며, 염색때문에 돈까지 팍팍 써가며 마음을 숨기려 했는지 억울해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은 나의 걱정을 덜어 준 그의 진심 어린 고백때문이었다고 정정하겠다. 내 아직 양심은 살아 있어서, 크흠.

후에 들어 알았는데, 그 여성분은 남준의 누님이시라고 했다. 그리고 누님의 머리색은 갈색이 아닌 레드와인과 가까웠고 그때 둘이 동일한 색으로 보였던 건. 남준이 형광등의 빛을 더 많이 받아 밝게 보였을 뿐이고, 누님은 어두운 쪽에 있어 원래 색보다 더 어둡게 보였던 거란다. 이 사실을 알고 엄청나게 쪽팔렸다.

그리고 당시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눈건, 그것이야말로 남매의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단다. 김 남준의 말로는 내가 자꾸 자신을 피해 다녀 화도 났고 또 자신도 헷갈리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것을 위해 해본거였단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는 당연히 문에 달린 종소리로 알았었다했고 그때부터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어 대화하다가 남준이 누님의 좋은 눈썰미로 문 틈으로 보이는 나를 캐치해내어 그때부터 아주 둘이 막 나르을....! 순진했던 내가 바보같이 걸렸던거다.


"아오! 아직도 화나!!"

"아아!ㅋㅋ. 아 또 왜그래."

"정말... 이걸 미워 할 수도 없고."

"그럼 사랑해줘요."


그렇게 뭐, 우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여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나도 지긋지긋한 염색 또한 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서 서로의 머리색으로 바꼈네?

-..방금 라임이라고 한거예요, 설마?


처음은 비즈니스적인 사장과 알바의 관계에서, 가볍게 형동생 사이가 되고 애매한 썸과정을 거쳐 연인이 되기까지. 배려 있지만 어쩌면 바보같은. 우린 그런 사랑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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