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인정하자. 이건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다.설마 그 캡틴 아메리카가 소코비아 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이야. 큰 전쟁들로 확실히 깨달은 줄 알았다.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적어도 나는 깨달았다. MIT연설 후에 소코비아에서 희생된 젊은 청년의 사진을 보고 더 확실히 깨달았다. 더 이상 나는 아이언맨이라는 갑옷을 입고 영웅놀이를 할 수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의 생명의 무게를 질 만큼 큰 그릇이 못 된다. 그러니 어쩌면, 협약이라는 틀 안에서 안전하게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얼굴, 무서워요."

"하, 내 이 잘생긴 얼굴이 무섭다고?"

"농담 집어치워요. 지금 농담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로마노프의 얼굴을 보았다. 진지했다. 나만큼이나. 

"하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고 나의 한숨이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 부터 이야기 해야할 지 몰라 내쉬는 한숨이란 걸 분명 모두 알거라 확신했다.

"좋아. 잘 들어. 나는 소코비아 협정에 사인 할거야.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구한 건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난... 협정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해."

나는 곧 자켓에서 펜을 꺼내들었다.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했다. 내 뒤를 이어서 로디와 비전도 사인을 했다. 완다는 가만히 앉아 지켜보다가 심오한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로마노프."

로마노프에게 사인하라는 고갯짓을 했다.

"스티브도 있어야해요."

"오, 나한테 동의한게 아니었나? 역시 취소야? 그럼 그렇지. 로마노프가 나에게 동의하다니."

"그런 뜻이 아닌거 토니,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요."

로마노프는 그렇게 말하고 이내 방을 나갔다. 아마 스티브를 위로하러 갈 것이다. 로마노프는 스티브에게 최고의 친구였다. 나에게 그런 것 처럼 .

"토니, 샘과 스티브는 소코비아 협정에 동의하지 않을거예요."

"알아. 비전, 안다구"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켜야지. 어떻게든 설득해서 어벤져스가 하나로 있게 해야 해."





"펜은 여기 놓고 가지."

 정말 믿기지 않는다. 자신있게 캡틴을 설득하겠다고 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일을 그르쳤다. 분명 아버지의 펜 얘기를 꺼내며 페퍼 얘기를 할 때 까지는 괜찮았다. 사실 페퍼 얘기를 할 때 가슴이 좀 철렁하긴 했다. 하지만 캡틴 로저스같은 농담들을 건넬 때 까지만 해도 정말 좋았다. 그가 나와 뜻을 함께 할 줄 알았다.

 섣불리 완다 얘기를 꺼낸게 잘못이다. 하지만 난 그저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있고, 또 모든 일이 잘 해결 될 거라 그를 안심 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협정에 사인하면 시민들에게 적어도 안심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그가 알길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란 것도.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내 대응에 진절머리를 내며 나갔고, 아마 그는 다시 반스를 찾아갈거다. 그건 소코비아 협정에 그가 동의하지 않은 것 만큼 큰 재앙이 추가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는 정말 그를 잡고 싶지 않아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잡아오라 할거다. 반스를 만난다면 더더욱.



"Wake up. Daddy's home."

 차가운 랩실에 들어와 언제나 그렇듯 작업을 시작했다. 캡틴을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아머를 만들어야 했다.

"프라이데이, 저번에 작업하던 아머 화면 좀 띄워 줘."

곧 화면이 띄워 지고 생각에 잠겼다. 캡틴을 이기려면 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캡틴을 무력화 시키려면 방패를 뺏는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방패를 빼앗거나, 어딘가에 숨기거나 아무튼 캡틴이 방패를 가지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줄...줄 같은게 필요하나?"

더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알 수 없는 발언이었다.

"프라이데이, 캡틴의 방패를 빼앗으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아. 캡틴의 방패를 빼앗을 만한 뭔가가 없을까? 밧줄 같은걸로 뺏는다거나..."

"Sir, 거미줄 같은거요?"

거미줄?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뉴욕 퀸즈에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가 나타났는데 주로 거미줄을 사용한대요."

신박한 생각이다. 이런 순간에 이렇게 딱 맞는 히어로가 나타나다니 말은 안되지만 마치 날 위해 나타난 히어로 같다.

"영상 보여 줘."

'Hero Of Queens:Spiderguy'라는 제목을 가진 유투브 영상이 띄워 졌다. 빨갛고 파란 슈트를 입은 사람이 거미줄을 이용해서 날아다니고 위험한 순간에 거미줄로 사람을 잡거나 구했다. 작고 지루한 일이었지만 동네 히어로로 유명해 지기엔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프라이데이, 지금부터 저 영상에 있는 스파이더가이 추적해서 드론으로 영상 촬영해 줘. 그리고 스파이더가이 영상들 모조리 내 컴퓨터에 백업해"

곧이어 컴퓨터에 다운로드 됐다는 알림음이 떴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히어로가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밝히지 않은 듯 스파이더가이,스파이더맨 등 여러가지 이름이 떠돌았다. 뭐 그렇다는건 어떻게 불려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프라이데이, 스파이더맨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좀 띄워 줘."

"Yes, sir."

 곧 뉴욕 퀸즈의 풍경이 나왔고 그 사이로 빨강파랑 촌스런 슈트를 입은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왔다. 사실 어제 유투브에서 스파이더맨을 보고 그가 또 언제 다시 퀸즈에 나타날지 몰라 걱정했는데 이렇게 부지런하게 활동해주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는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구해주거나, 무거운 짐을 날라주거나,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거나 그런, 마치..친절한 이웃같은 히어로 일을 했다. 하지만 인장력이 대단한 거미줄이나 넘치는 힘을 저런 동네에서 쓰기엔 아까워 보였다. 어벤져스와 다른 작은 히어로 일에 지루해 질 참에 쾅 하는 큰 소리가 났다. 

"프라이데이, 10초 전으로."

적어도 1톤은 넘어보이는 승용차와 스쿨버스가 충돌사고가 나기 2초 전이었다. 그 사이로 빨강파랑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맨 손으로 승용차를 막아섰다. 세상에.

"이 사람...단순히 거미줄이나 결합성 장갑 같아보이는 도구로 히어로 활동을 하는게 아니잖아...메타휴먼 이었어?"

영상에 찍힌 주변 사람들처럼 입이 딱 벌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스파이더맨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스파이더맨은 쑥쓰러운듯 머리를 몇 번 긁고 가볍게 손 인사를 한 뒤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프라이데이, 이 뒤는? 이 사람 정체가 궁금한거야. 스파이더맨 활동이 궁금한게 아니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퀸즈의 길거리에서 근처 쓰레기장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드론이 빠르게 사라진 스파이더맨을 겨우 찾은 것 같았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에 고정된 가방을 뜯어내고 거미줄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촌스러운 슈트를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과연 히어로다운 다부진 몸매였다. 그리고 곧, 그는 마스크를 벗었다.

오 세상에, 그는 정말 앳된 얼굴이었다. 아니 그냥 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과후에 샌드위치나 먹으며 TV를 보고 주말엔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거나 레고를 맞출 나이처럼 보였다.

"프라이데이, 저 아이 몇 살이지?"

"2001년생, 만 14살 입니다."

 빙고.

 저렇게 어린 애가 스파이더..보이 활동을 하다니 생각만 해도 위험천만해 보였다. 아무리 메타휴먼이라 해도 아까 1톤짜리 차량을 맨손으로 받는 일은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지간한 히어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새로운 영웅을 찾은 것 같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을.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프라이데이, 저 아이 데이터 모두 보여 줘."



 이름은 피터 벤자민 파커. 미드타운 과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꼬맹이이고 스파이더보이 활동을 한지는 반년 정도 됐다. 저 정도로 어리다면 이것저것 설명으로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더욱 저 아이의 보호자 앞에서 사실대로 설명한다면 99.9퍼센트 거절 당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짓인데 저 아이의 보호자가 "오 , 우리 아이가 어벤져스에 합류해서 캡틴 아메리카랑 싸운다구요? 정말 멋지군요. 어서 데려가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따위의 말을 할 리 없다. 그렇다면 아이를 설득하는게 더 쉬울 것이다. 

 그는 매일 히어로 활동을 할 만큼 부지런하고 히어로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슈트는 그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역부족 이었다.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 아이를 설득하기 위한 뇌물은 이미 정해졌다. 오직 그를 위한 슈트를 만들어주는 거다. 아이에겐 마치 나는 산타같고, 슈트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을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몇개월간 아이가 부모의 말을 잘 듣도록 할 수 있다. 독일에 잠깐 데려가서 나를 도와주게 한 후 슈트는 그냥 선물로 줘버리면 나는 죄책감을 덜 수 있고, 아이는 더 효율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할 수 있다. 완벽한 윈윈 관계다.

"프라이데이, 꼬맹이 바디 사이즈 좀 스캔해 줘."

"Yes, sir. 하지만 어디 쓰시게요?"

"뇌물 준비해야지. 피터에게 맞는 슈트를 만들어 줄거야."

"스캔 완료했습니다."

"앗, 잠시. 성장기니까 자동으로 몸에 맞는 소재를 사용하는게 낫지 않을까?"

이것 뿐만이 아니라 독일에 가서 꼬맹이가 생채기 하나 없이 안전하게 싸우려면 여러가지 기능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평소 히어로 활동 할 때도 그를 도울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 일단 내가 사막에 떨어졌을 때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위치 추적기는 필수고 거미줄이 끊어질 수도 있으니 낙하산도 필요할 것이다. 또, 꼬맹이를 설득하려면 꼬맹이의 취향에 맞아야하니까 나는 절대 못입을 빨강파랑 디자인도 손봐야 할 것 같다.





"세상에, 토..토니 스타크?"

"안녕하세요. 조카분 때문에 방문했는데 실례해도 될까요?"

"피터요? 피터가 왜.."

"나쁜 일 때문은 아니니 걱정마세요."

"아, 일단 들어오세요."

 작은 현관. 작은 부엌. 작은 거실. 조사해 본 바로 피터는 메이 파커라는 숙모와 단 둘이 살고있었다. 아담한 집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둘이 살기 딱 좋은 크기의 집이었다.

"집이 참 아담하고 예쁘네요."

"고마워요. 커피로 괜찮을까요?"

"아,네. 감사합니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소파에 앉았다. 메이는 책을 읽고 있었는지 탁자에 책이 올려져 있었고, 살짝 열린 베란다 사이로 기분 좋은 오후의 햇빛이 살짝 드리웠다. 달그락 거리는 메이의 커피 타는 소리를 제외하고 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항상 조우하는 시끄러운 상황과는 몇 광년정도 떨어져있는 것 같았다.평화롭고, 조용하다.

"소개가 늦었네요. 피터 숙모인 메이 파커입니다. 아, 빵은 직접 구운건데 드셔보세요."

메이가 커피 두 잔과 월넛 빵..으로 보이는 빵을올려 놓은 쟁반을 내려놓으며 악수를 청했다.

"오, 감사합니다. 저는 아사다시피 토니 스타크입니다. 피터가 참 예쁜 숙모를 두었네요."

"어머, 감사해요. 그래서 피터와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뭔가요?"

"피터가 9월 장학재단에 신청을 했는데 피터가 아주 우수하고 훌륭한 인재더군요. 그래서 수락을 했는데 직접 만나보고 앞으로의 얘기도 해 볼 겸 방문하게 됐습니다. 미리 연락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근데 9월 장학재단이라니, 피터에게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스타크 인더스트리와 관련된 뭐..그런 건가요?"

"아, 네. 피터의 재능이 뛰어나서 앞으로의 학비나 피터가 하고 싶은 실험, 연구 등을 지원 해 주는 겁니다. 일종의 인재 양성이자 사회 환원 같은 거죠."

"하지만 피터는 아직 고등학생인데...너무 이른 얘기 아닐까요?"

"요즘 고등학생들은 다 이맘때쯤 취업활동을 시작하니까 그리 이른 얘기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피터가 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또 그만큼 과학을 사랑하니 피터에게 분명 이득이 될거예요."

"참 감사한 얘기네요. 처음엔 놀랐지만 그래도 안심이에요. 사실 몇 개월 전 벤이..그러니까 피터의 삼촌이 죽었는데 그 이후로 피터가 좀 많이 슬퍼했거든요. 자주하던 축구도 안하고 밤중에외출도 잦아졌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그래도 벤과의 추억을 환기시킬 때면 아직도 아파해요."

"그런..일이 있었군요. 유감입니다."

"괜찮아요. 저도 회복하는데 정말 힘들었지만 피터는 유독 더 힘들었거든요. 피터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벤과 제가 맡아 키웠는데 저는 어떨 지 몰라도 피터는 벤을 자신의 친아빠 처럼 여기고 따랐거든요. 벤의 작은 습관까지 닮을 정도로요. 그 아이 책임감이 무척 강하고 밝은데 그것마저도 벤을 닮았어요. 그래서 피터를 보면 벤이 생각나요."

"피터가 영리한 것도 남편분을 닮은 것 같네요."

"아, 죄송해요. 초면인데 이렇게 어두운 얘기를 해서. 피터 생각을 하다보면 자주 하는 생각이라 그만..."

"아뇨. 전혀 죄송하실 것 없어요."

삼촌의 죽음은 조사로 알게 되었는데 메타휴먼의 힘을 얻은 것도 그 즈음인가? 삼촌의 죽음 후 축구를 하지 않았다는 건 넘치는 힘 때문이었을테고 외출이 잦아졌다는 건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그 9월 장학재단은 저나 피터가 따로 해야할 건 없는건가요?"

"아, 사실은 스타크 인턴십이라고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다니면서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들어오기 전 작은 연수가 있어요. 물론 원하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아도 되지만 참가하는게 피터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Wow. 인턴십이라니 벌써 피터가 회사원이 된 것 같네요."

"하하, 아마 눈 깜빡하면 금방 클걸요. 어리긴 해도 고등학생이니까요. 아무튼 그 스타크 인턴십이 바로 이번 주말부터 시작하는데 그게 독일까지 가야해서요. 혹시 괜찮을까요?"

"오, 그럼요. 좋아요. 피터가 가서 새로운 경험도 하고 기분 전환을 하면 좋겠네요."

찰칵,

피터가 돌아왔는지 밖에서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메이, 봤어요? 밖에 엄청난 차가 있던데."

이어폰을 꽂은 피터가 키를 탁자에 놓으며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완전 어제 태어났구만. 얼굴을 보자마자 피터는 메이만큼 아니 메이보다 더 크게 놀랐다.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생각이 멈춘 듯 했다.

"안녕, Mr.parker."

i lov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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