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타이 & 넥타이 06











"도매니저 퇴근 안 해?"

상민이 모니터 옆에 리스트를 내려놓곤 데스크 끝에 걸터앉았다. 새로 온 매니저가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둘이었고 경수는 새벽 내내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이제 가야죠. 아니, 언제는 코스트 절감이다 뭐다 하면서 인력충원 절대 없을 것처럼 말하더니. 지엠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둘씩이나 뽑았대요?"

경수는 저장까지 마무리하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왜. 억울해?"
"뭐, 억울하다기보다... 그냥 그럴 거면 좀 일찍 뽑아주지 그랬나란 생각이 들긴 하네요."
"그게 억울한 거지. 큭큭- 하긴 도매니저 그간 마음대로 휴무도 못 내고 혼자 고생하긴 했어. 근데...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상민이 갑자기 주위를 한번 살피곤 경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왜 얼마 전에 A호텔 매니저 하나가 과로로 쓰러져서 난리 났다잖아. 거기도 사람 더 안 뽑고, 있는 인원으로 빡세게 돌렸던 것 같던데 그걸 누가 커뮤니티에 올려서 엄청 욕먹고 호텔 이미지 나빠지고 그랬다나 봐. 암튼 그래서 지엠도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이유야 뭐, 어찌 됐던 간에 저는 앞으로 영업으로 돌릴 생각인 것 같던데 그건 그거대로 맘이 편친 않네요."
"하긴. 영업이 좀 힘들긴 하지... 접대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어쩌겠어. 요즘 가동률도 떨어지고 부지엠 혼자 영업 나가기엔 한계가 있으니 경험 있고 실력 좋은 널 쓰는 게 지엠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보너스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
"으이구, 이 속물. 아주 머릿속엔 돈 생각밖에 없지?"

상민이 눈을 흘기며 경수의 볼을 꼬집어 흔드는데 데스크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상민이 놀란 틈을 타 경수는 그 소리의 출처인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민에게 안 보일 각도로 몸을 틀어 액정을 확인한 경수가 별안간 미소를 슬쩍 짓곤 재킷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뭐야, 방금 그 수상한 행동은? 도매니저 요새 연애해?"
"여...연애는 무슨.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닌게 아닌데? 네 얼굴 방금 사랑에 빠진 중년 아저씨 같아서 좀 소름 돋았어..."
"저 아저씨 아니거든요?"

발끈한 경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상민이 웃음을 터트리며 경수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아저씨란 단어에 반응하는 거 보니 어린애 만나나 본데, 너무 간 쓸개 다 내주지 말어라. 연상의 노련미로 잘 구워삶아서 데리고 놀라구. 알았지?"
"선배 진짜 이럴 땐 가끔 꼰대 같아요..."
"너도 결혼해봐 이 자식아. 그리고 넌 뭔가 사람을 너무 믿는 구석이 있어. 적당히 여우처럼 굴기도 해야 인생 살기 수월하다."

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상민의 뼈있는 한마디에 경수는 더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정현을 너무 믿어서 곧이곧대로 하자는 거 다 해주고 다 내주고. 결국은 다 털려서 그 모양 그 꼴 났었지.

"뭘 또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래~ 농담인데. 얼른 들어가서 쉬구, 내일 휴무지? 데이트 잘 해, 인마. 다음 주부턴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는데 우리 힘 합쳐서 더 잘해보자. 수고했어."
"....네. 잘 부탁드려요. 수고하셨습니다."

경수는 애써 밝은 얼굴로 허리 숙여 인사하곤 백 오피스를 나섰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백현에게서 톡이 두개 와있었다.

[도매니저 퇴근했어요? 나도 퇴근하고 싶다~ㅠㅠ]
[집에 바로 가는 거예요? 나 이따 촬영 끝나면 잠깐 얼굴 보러 가면 안 돼요? 뭐라구요? 된다구요? 이따 봐요~]

오긴 어딜 와. 한번 집에 들여줬다고 아주 자기 맘대로네? 경수는 피식 웃으며 뭉툭한 손가락으로 빠르게 메시지를 썼다.

[올 거면 떼고 오시던가~]
[??? 떼요? 뭘 떼요? 설마 그거요?]
[....^^]
[헐 대박이다 진짜. 경수씨 무서운 사람이네.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한대요? 순수하게 경수씨 얼굴 보고 싶어서 가겠다는 건데ㅠ 이제 사람을 대놓고 변태 취급하고ㅠㅠ]
[약속 어긴 사람은 발언권 없어요~]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진짜... 뽀뽀라도 했음 억울하지나 않지ㅠㅠ 근데요 경수씨.... 꼭 그걸 기대하는 건 아닌데... 설마 사귀고 나서도 아무것도 안 할 건 아니죠?^^]
[음..... 그건 상대방의 매력 어필에 따르지 않을까요? ^^]
[조언 감사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쒸익쒸익...)]

풉- 경수는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백현은 어제 가기 싫다고 한참을 징징대다 매니저란 사람이 데리러 왔는지 전화가 열 번쯤 울리고 나서야 울상을 하고선 집을 나섰다. 그 후로 틈만 나면 경수에게 연락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경수는 일일이 그걸 다 받아주고 있고.

이러니 꼭 연애하는 것 같다...

경수도 알고 있다. 자신이 백현에게 충분히 여지를 주고 있고, 자신도 어느 정도 백현에게 호감을 넘어선 연애 비슷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오늘만 해도 근무 중엔 업무 관련 연락 외엔 일체 핸드폰에 손을 대지 않는 경수가 답지 않게 핸드폰을 자꾸 꺼내보고 이따금씩 피식피식 웃으며 화면을 두드렸다. 그 광경을 보고 스태프들은 도매니저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저마다 수군거렸다. 그리고 경수도 그걸 느끼고 있었지만 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할 수도, 맞다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언젠간... 아니 조만간 답을 줘야겠지. 이렇게 어영부영 썸 타듯이 자꾸 기다리게 만드는 건 백현에게 가혹하다. 경수는 한숨을 내쉬며 락커의 문을 닫았다.









"누구랑 연락하길래 그렇게 실실거려?"

대기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는 백현을 매니저인 형준이 수상쩍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친구."
"친구 누구?"
"몰라도 돼."
"너 요즘 누구 만나?"
"노코멘트~"
"너 요즘 자꾸 밖으로 나돈다고 대표님이 주시하라더라."
"그러던가."
"야, 변백현."
"아-! 좀 시끄러워."

경수와 톡 하는데 자꾸 형준이 말을 걸어서 백현은 짜증이 확 났다. 방금 경수가 다 씻고 누웠다는 말에 무슨 색 팬티 입었냐고 했다가 차단 당할뻔한 걸 농담이라고 싹싹 빌어 겨우 달래놓은 참이다. 변태도 아닌데 경수 반응이 재밌어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 놀리게 된다. 근데 시트랑 이불 까만색이던데 속옷도 까만색이려나? 옷도 무채색이 많은 것 같던데. 하얀 피부의 나신이 까만 시트 위에 누워있는 걸 상상하다 백현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하아... 그냥 봐도 이쁜 몸인데 벗겨 놓으면 얼마나 더 이쁠까? 백현은 실실 웃으며 이제 자겠다는 경수의 메시지에 [잘 자요~ 내 꿈 꿔~♡]라고 답장을 보내곤 1이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핸드폰에서 손을 뗐다. 끄응- 하고 기지개를 켜는데 형준과 눈이 딱 맞닥뜨렸다. 백현은 저를 흘겨보는 의심쩍은 눈초리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수상해. 너 그 호텔 직원하고 뭐 있지? 생각해보면 거기 묵고 나서 이상해졌어. 저번에도 스케줄 가다 갑자기 거길 들르자 하질 않나, 대뜸 전화해선 인터뷰 잡으라더니 장소도 거기로 하고."
"이..있긴 뭐가 있어? 오버한다. 그냥 그 호텔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백현은 애써 태언한 척하며 시치미를 뗐다.

"너어, 터지고 나서 사람 곤란하게 하지 말고, 미리 말해.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뭔일이 나더라도 바로 대응할 거 아냐. 가뜩이나 요즘 기자들이 너 뭐 건질 거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미리 말하면 만나지 말라고 지랄할 거 아냐."
"대표님이야 그러시겠지만 나야 뭐- 네가 내 말 들어먹을 애도 아니고..... 어? 뭐야? 진짜 있는 거야?"
"때가 되면 말해 줄게. 아직은 좀 그래."
"헐... 설마 너 혼자 좋다고 쫓아다니냐? 한참 연애랑은 담쌓고 살더니. 대체 누군데 그래? 거기 직원 맞지?"
"나 화장실 간다-"
"야 변백현!"

백현은 자신을 부르는 형준을 무시하곤 빠른 걸음으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경수는 분주하게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옷장 안의 옷을 죄다 뒤져봤자 하나같이 비슷한 색, 비슷한 디자인의 것들뿐이었다. 저번 생일 때 선물 받은, 그나마 가진 것 중에 제일 밝아 보이는 파란색 맨투맨을 껴입고 뒷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긴장감에 괜히 헛기침만 여러 번 했다. 띵- 하고 도착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경수는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에서 짧게 크락션이 한번 울렸다. 경수가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저번과 다른 검은 벤 차량의 운전석 창문에서 손이 불쑥 나와 살살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진하게 선팅이 되어있어 안에 누가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에 익은 하얀 손에 경수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그 차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경수는 주변을 한번 살피곤 조수석 문을 열어 냉큼 올라탔다.

"경수씨이~"

문을 닫자마자 자신을 향해 팔을 벌리며 돌진하는 백현을 경수가 어헛! 하며 한손으로 가슴을 밀어내 막았다.

“어딜 보자마자 들이대요?”
“헐, 경수씨… 방금 내 가슴 만진 거에요?”

꺅-! 이상한 소릴 내며 백현은 차 문 쪽으로 등을 밀착시켰다. 일부러 노린 것 아니냐며 두 손을 크로스해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백현을 경수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참나. 호텔에선 가운 하나 입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더니 이제 와서 웬 순진한 척?"
"히히. 보라고 드러낸 건 아니었는데.. 그걸 또 봤어요? 왜요, 너무 이쁘고 탄탄해서 시선이 막 절로 가고 만져보고 싶고 그랬나?"
"또 또-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다."
"아, 오늘 나 진짜 힘들었는데 충전 좀 시켜줘요. 이리 와요, 얼른."

백현이 칭얼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경수는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풋- 오라면서 자기가 오네. 백현의 너른 품 안으로 경수의 몸이 마치 맞춤형처럼 딱 맞게 들어갔고 백현은 그 작은 몸을 힘주어 꼭 안았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서로의 체향을 깊이 들이마시며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수는 백현의 어깨에, 백현은 경수의 목덜미 언저리에 코가 닿은 상태로 따뜻한 온기를 만끽했다.

"잘 잤어요?"
"네. 백현씨랑 톡하고 핸드폰 내려놓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어요. 백현씨가 전화 안 했으면 그러고 내일까지 쭉 잤을걸요? 진짜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아요."
"큭큭- 잘했어요. 경수씨 배고프겠다."
"이따 간단하게 요기해야죠. 백현씨는 밥 먹었어요?"
"3시간 뒤에 화보 촬영 있어서 먹으면 안 돼요. 나한테는 지금 밥보다 경수씨가 더 필요해요."

백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나른하게 울려 퍼졌다. 경수는 왠지 안쓰러운 맘에 등에 닿아있던 손을 올려 백현의 뒷머리를 스윽스윽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백현이 깊게 숨을 내쉬며 경수 모르게 슬쩍 목덜미에 입을 맞추곤 품안의 몸을 더 꼭 끌어안았다. 꽤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 누구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아... 이러고 있으니 너무 좋다. 나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밥도 못 먹는데... 이걸로라도 힘이 막 불끈불끈 솟았으면 좋겠네요."
"아.... 근데 경수씨. 힘도 힘인데 지금 나... 엄한 곳이 불끈불끈 솟을 것 같은데...."
"...이 저질...!!"

경수가 질색하며 몸을 떨어트리려 하자 백현이 팔에 힘을 주어 그걸 막았다. 진짜 언젠간 다 녹음하고 캡처 따서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라는 경수의 말에도 백현은 그저 기분이 좋은지 크크큭- 하고 웃을 뿐, 경수의 몸에서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우선 저희 호텔을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체크인 손님들이 많은 관계로 안전을 위해 직원용 통로로 안내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미 기자님은 먼저 오셔서 대기 중이시구요,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네."

경수는 예정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백현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카드를 찍어 통로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뒤에 백현의 매니저라는 남자가 따라 붙고 있어서 그런지 경수는 백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오늘은 백현이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다. 원래대로 라면 이미 퇴근을 했어야 하지만 지엠이 신입 매니저에게 어찌보면 호텔 홍보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안건의 어텐드를 맡기긴 불안하다며 경수에게 맡아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다른 건도 아니고 백현이 관련된 것이니 경수도 알겠다며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인터뷰는 약 1시간 정도 예정되어있다고 들었으니, 아마 그리 길진 않을 것이다. 경수는 연장근무에다 구경 오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친 수진을 겨우 프런트에 묶어두고 온 터라 꽤 피로한 상태였다. 백현은 평소와 달리 축 처져있는 저 작은 어깨를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안아주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

가는 내내 세 사람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백현은 오늘 자신의 매니저도 동행하니 본인을 대하는 게 평소와 같지 못할 거라고 경수에게 미리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경수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매니저라면 거의 하루종일 백현의 옆에 붙어있을 테니 백현이 제게 틈만 나면 연락하고 찾아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호텔과 관련된 사람인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겠지. 형준이 뒤에서 의심쩍은 눈초리로 한껏 주시하고 있는 게 노골적으로 느껴지니 경수도 얼굴을 굳히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마냥 굴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됐건 저도 백현이 난감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이 나이 먹고 비밀연애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거람. 경수는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오늘 바는 미리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2시간은 영업을 하지 않기로 되어있다. 백현이 세팅이 끝난 테이블에 착석하고 마주한 기자는 짧게 자신의 소개를 한 뒤 녹음기를 작동시켜 옆에 두었다.
경수는 멀찌감치 떨어진 카운터 쪽에 서서 그 모습을 관망했다.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무언갈 대답하는 백현의 모습은 무척이나 여유롭고 프로페셔널해보였다. 남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하고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 배우 변백현. 이렇게 보니 영 딴 사람 같고 낯설었다. 이미 경수의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백현의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자신이 아는 백현은 언제나 제게 자상하고 따스하고, 가끔 애교도 부릴 줄 아는 그런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물론 이따금씩 한껏 진지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선 자신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경수 매니저님이라 하셨죠?"

인터뷰가 거의 마무리에 접어들었을 때 형준이 경수에게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경수는 흠칫 놀랐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와봤는데 호텔 좋네요. 고급스럽고 깔끔한게."
"...감사합니다."
"여기 인터뷰 장소로 하고 싶다고 한 거 백현인거 아세요?"
"네. 뭐..."
"그럼 여기 직원 중에 백현이와 만나는 사람이 있단 것도 알고 계세요?"

직구로 날아온 질문에 경수는 순간 당황했다. 거의 확신을 갖고 떠보는 듯한 말투였다. 대상이 저인지 알고 저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수는 일단 발뺌하기로 했다.

"글쎄요. 직원들 사생활까지 일일이 다 알 수 없는 데다 워낙에 서로 그런 거 잘 말하지 않아서요."
"그렇군요. 그럼, 도매니저님은 현재 만나는 사람 있어요?"
"....제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에 여쭤본 겁니다. 호텔 직원분들 굉장히 바빠 보이시는데 연애할 시간이 있나 궁금해서."
"뭐, 그건 저희 직종뿐만 아니라 누구든 다 똑같지 않을까요? 아무리 바빠도 연애할 짬은 어떻게든 만들겠죠."
"....그렇네요."
"둘이 무슨 얘기 해?"

어느새 인터뷰를 끝내고 다가온 백현이 경수와 형준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형준이 저 없는 사이에 경수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백현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지만 쓸데없는 소릴 해서 경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 아닌지 불안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연기로 먹고사는 백현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서버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형준은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백현이 만나는 사람이 경수라는 것을. 백현의 옆에 있은 지 자그마치 7년이다. 사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딱 느낌이 왔었다. 백현의 취향을 나름 잘 알고 있는 데다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경수는 백현이 충분히 구미를 당겨 할 사람이었다. 형준은 피식 웃으며 백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별거 아니야. 백현이 너 여기 더 있다 갈 거지?"
"어.... 온 김에 술 한잔하고 갈까 하고."
"그래. 난 사무실 잠깐 가봐야 해서 이따 데리러 올게. 도매니저님 오늘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네. 감사합니다."

형준은 경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장비를 챙겨 나가는 기자와 카메라맨에게 따라붙어 말을 걸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경수가 백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경수를 뒤따라서 들어온 직원이 테이블에 와인과 치즈가 담긴 플레이트를 세팅하고선 곧바로 유리문을 통해 사라졌다. 구름이 껴 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은 선선하니 딱 좋았다. 짠- 가볍게 잔을 부딪치곤 한 모금 마신 경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뭔가... 눈치챈 거 같죠?"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알게 될 거였으니까."
"근데...."
"....?"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닌데... 괜찮아요?"

경수는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백현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저는 이미 너무 많은 걸 백현에게 받고 있고, 또 서로 많은 걸 공유하고 있다. 사귄다 하지 않을 뿐이지 섹스 빼곤 실상 다른 연인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점점 어두워지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 백현은 경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물론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닿으면 닿을수록 더 깊은 곳까지 닿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경수도 분명 이제 저와 같은 마음인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백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경수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면 자신은 언제까지든 기다릴 생각이다.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난 괜찮아요. 경수씨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치만....."
"그리고 매니저 형 좋은 사람이에요. 도와주진 않아도 해를 끼치진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저 형보다 더 세요. 내가 월급 받게 해주는 사람인데? 여차하면 확 잘라버리지 뭐."
"아, 진짜...."

금세 또 농담으로 자신을 웃게 만들려는 백현에 경수는 눈을 찌푸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테이블 밑으로 살며시 손을 잡아오는 백현의 따스한 온기에 경수는 더는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이 남자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어쨌든 우리는 지금 함께 있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우니까. 이대로라면 백현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날도 아마 멀지 않을 것이다. 경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다.

"비올 건가 봐요."
"그러게요..."

시간이 지날수록 짙은 구름이 점점 몰려오는 하늘은 곧 큰 비를 쏟아낼 것만 같았다.









-
정말 섹스(키스) 빼곤 할 거 다 하는 백도....

아니 분명... 이번 편에 그분이 나와줬어야 하는데.... (결국 다음 편으로 ,,)

기다렸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힘을 내어 연재하고 있습니다ㅠ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gongs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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