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평 3월에 낸 연성입니다

청게 윤평 너무 사랑해서 이번에도 청게 이야기 입니다

서로 짝사랑이라 생각하고 삽질하는거 정말 좋아하는데...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월간 윤평 : http://monthlyyp.creatorlink.net/forum/view/16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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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막 고등학교에 올라올 무렵이라 중학교 때 얼굴을 알던 녀석들 외엔 모두 낯선 사람뿐이었다. 중학교 졸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다. 화평은 사실 이런 일에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애초에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할아버지가 고등학교까진 다니길 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딱히 토를 달진 않았다.



‘할아버지. 내가 왜 거기까지 고등학교를 가.’

‘그래도…거기가 좋은 학교라고 하더라.’

‘난 진짜 괜찮은데.’

‘내가 네 큰 아버지한테 말해놨으니까 편하게 다녀.’

‘아니. 아냐. 여기서 다닐 수 있어. 할아버지.’

‘여서 거기까지 어떻게 다니려고.’

‘왜애. 버스가 없어 내가 다리가 없어. 가면 되는 거지.’

‘화평아.’

‘진짜 괜찮다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계양진에서 다닐 수 있는 고등학교는 많지 않았다. 화평의 할아버지는 제 손자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화평은 제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고등학교는 정해졌고 선택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끌려가듯 입학식을 한다. 고등학교까지만 나오면 바로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지. 화평은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공부에 뜻이 없어서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할아버지의 생각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놈들은 많지 않았다. 하나. 둘. 차라리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화평은 괜히 하품하면서 운동장을 발끝으로 긁어댔다. 어차피 듣는 말은 중학교와 다른 것도 없고, 빨리 끝내주면 가서 잠이라도 잘 텐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줄에서 화평은 꼭 혼자 떨어진 섬 같았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연설이 끝나고 겨우 숨을 돌린다.


반에 들어가서 자리 확인하고 집에 가라는 소리에 누구보다 먼저 걸음을 옮긴다. 그 순간 앞에 멍하니 서 있던 녀석의 등에 코를 박을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화평이 눈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드는데, 그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

“…….”



차라리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냉한 표정을 한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대로 숨을 들이쉬고 말았다. 입학식에 이런 상태로 만나는 것도 신기한데, 꼭 어릴 때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익숙했다. 어디서 봤지. 우리 만난 적이 있던가. 화평의 동그란 눈에 물음표가 종종 새겨진다. 물론 그런 얼굴을 보는 상대방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아, 안녕?”

“…….”

“이름이…윤. 최윤이구나. 우리 같은 반인가 봐.”

“…어. 그래. 그렇네.”

“들어가자. 왜 멍하니 서 있어,”

“재미없어서.”

“나도 그런데…….”



그 말을 듣던 화평이 씩 웃는다. 그 웃음을 보던 최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는데, 화평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낯을 가리는 친구라고 생각을 한다. 어서 들어가자. 아무리 홀로 떠도는 녀석 같아도 천성이 서글서글하고 정이 많아서 손부터 내밀어본다.



“…….”

“아직…이건 아닌가. 그럼 같이 들어가자.”

“…….”

“응?”



그 얼굴을 뜯어먹을 듯 바라보던 최윤이 가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처음 만났다. 최윤이 키가 좀 컸고, 화평은 조금 작았는데, 어쩌다 보니 짝이 되었다. 화평은 제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일단 냉큼 엎드린 채 킬킬 웃었다. 최윤은 그 옆에서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화평은 꼭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윤에게 말을 건다.



“난 창문 옆에 있는 자리가 좋더라.”

“…왜?”

“따뜻하거든.”

“…….”

“그리고…보통은 이쪽으로 시선이 쏠리지도 않고.”

“아.”

“넌 공부 잘할 거 같아서…뒷자리 별로 안 좋아하게 생겼는데.”

“그런 거…아니야.”

“정말?”

“…….”

“거짓말.”



입만 벙긋거리면서 조용히 말하던 화평이 냉큼 몸을 웅크린다. 어차피 오늘부터 수업도 안 하는데, 꼭 의자에 엉덩이가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자유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둘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안가?”

“넌?”

“곧 가려고.”

“나도 곧 갈 건데.”



그런 말을 하는 화평의 얼굴은 보지 않고 가슴에 매달린 명찰을 본다. 서늘하고 푸른 기운이 도는 눈이 침착하게 이름을 읽는다. 제 명찰과 같은 글씨로 적힌 이름은 입안에서 동글동글 맴돌았다. 입술끼리 한번 닿아야 제대로 소리가 나는 이름. 최윤은 그 이름은 몇 번이나 속으로 불러보다 겨우 입 밖으로 냈다.



“윤…화평.”

“그냥 화평이라고 불러.”

“이름 예쁘네.”

“…….”



세상 살다 살다 이름 예쁘다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본다. 화평은 순간 심장이 툭툭 떨어져서 눈만 깜박거린다. 최윤이란 녀석은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제 이름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오랜만에 봐서 화평은 자꾸 허둥지둥하면서 애써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이름 예쁘다. 화평아.”

“우리 벌써 그런 사이 된 거야?”

“…….”

“괜히 나랑 같이 있으면 험한 일 겪을 텐데…….”

“…….”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한 번에 부서진다. 화평은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고, 최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평은 이런 관심을 싫어하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밀어낸다. 물론 최윤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라 그런 손길에 밀려나지 않았다.



“지금은 추워서 괜찮지만…….”

“…….”

“봄이 오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 좀 그래.”

“…….”

“나도 친구 생겨서 좋은데.”



많이 좋아. 역시 뭔가 이상한 녀석이 분명했다. 최윤을 밀어내면서도 간신히 옷깃을 잡은 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최윤은 그런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아서 한참 들여다본다. 아. 강아지 같네. 어릴 적 키웠던 강아지가 꼭 이런 느낌이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복슬복슬한 털. 집에 처음 왔을 때 사람을 낯설어하면서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런 종류. 최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화평의 머리에 톡 얹었다.



“야…왜. 왜.”

“…….”

“왜애.”

“…좋아서.”



그 한마디에 화평의 목이 절로 수그러든다. 그것도 꼭 강아지 같아서. 최윤은 멍한 표정으로 자꾸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참 제멋대로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야 떨어져 나간 손이 어색하게 공중에서 갈 곳을 잃었다. 첫 만남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확실했다. 뭘까.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에 화평이 고개를 푹 숙인다.



“집에 같이 갈래?”

“…나 어디 사는 줄 알고?”

“그러게.”

“너…애가 되게 맹하구나. 나 계양진 살아. 지금은 친척 집에 있지만.”

“나도 계양진 살았는데.”

“…….”



그 한마디에 서로 눈을 마주친다.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지만,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가지고 있는 허들이 많이 내려간다.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다. 최윤은 자기가 성당에 살고 있다고 했고, 마침 화평이 사는 곳 중간에 있어서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터벅터벅 걷는 화평을 졸졸 따라가던 최윤이 어느새 옆에 선다.



“너 되게 이상한 거 알지?”

“내가?”

“어, 너 말이야. 첫날부터 이러는 게 어디 있냐.”

“내가 뭘?”

“이렇게 한 번에 훅 치고 들어오는 게 맞냐는 소리야.”

“…….”

“그래도 좋다. 나 사실 친구도 별로 없고…….”

“…….”

“에이.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화평은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입을 다문다. 최윤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화평은 성당 신부님들은 다 이런 느낌인데, 너 거기 살아서 비슷하게 바뀌는 거냐고 물었고, 최윤은 그냥 모태신앙으로 천주교를 믿는다고 말했다. 서로 만난 지 채 일주일도 안 되는데, 생각보다 깊게 감정이 박힌다. 언제 싹을 틔울지 모르는 애매한 감정을 가진 채 둘은 헤어졌다. 삼거리에서 최윤은 오른쪽으로 화평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내일 봐!”

“…….”

“최윤.”

“알았어. 화평아.”

“…….”



화평아. 화평아. 그 말이 너무 간질거려서 초록 불이 켜지자마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최윤은 점점 멀어지는 화평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겨우 돌아선다.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조금 더 보고 싶었다.




*




“윤화평.”

“…….”

“윤화평 없냐? 결석이야?”

“결석은 아닌데, 없네요. 가방하고 책은 있어요.”

“이놈 새끼는 또 어디를 돌아다니는 거야. 들어오면 당장 교무실로 오라고 해. 반장. 알았어?”

“네, 그럴게요.”

“다들 봄이라고 설레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난, 이 맘 때 되면 봄바람 든 똥강아지들이 헤벌레 하고 다니다가 여기저기 사고 치는 꼴을 몇 년 째보고 있는 사람이야.”

“…….”



담임의 잔소리는 늘 같았다. 추울 땐 추워서 얌전히 있으라고 하더니, 이젠 따뜻해지니까 날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한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왔을 뿐인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갑자기 어른 취급을 하더니 이젠 또 신입생이라고 어린놈 취급을 하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사실 사고를 칠 놈이면 계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뻔한데, 또 그 뻔한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놈들도 문제였다.


최윤은 그나마 얌전한 축에 속해서 이런저런 잔소리에서 조금은 편하게 빠져나가곤 했다. 딱히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고, 조용히 공부하거나 책을 읽었다. 와중에 공부도 제법 잘하니까. 가끔 사고를 쳐도 조용조용 넘어가곤 한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윤의 신경은 온통 운동장을 향해 있었다.



‘윤화평. 어디 있는 거야.’



최윤 옆자리를 선점하고 비키지 않는 것은 나름 좋았지만, 그렇다고 시간마다 화평이 왜 자리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힘들기만 했다. 그나마 최윤이 대답하고 넘어가면 좋은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윤화평은 꼼짝없이 다음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가야 할 테고, 또 잔뜩 잔소리를 듣고 올라와서 오후 시간 내내 잠을 잘 것이 분명했다.



‘…….’



어디 있을까. 계속 운동장을 바라보던 최윤의 시선이 한군데 고정된다. 아, 저기 있네. 사실 화평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화평을 곧잘 찾아오는 최윤을 보면 다들 신기해한다. 그럴 때마다 그냥 느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사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찾아가면 항상 그 시선 끝에 윤화평이 있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동반경에 분명한 제한이 있었다.



‘왜 다들 모르지.’



최윤은 그걸 몰라주는 주변 사람이 이상할 뿐이었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화평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 쉬는 시간엔 찾으러 가야지. 손을 열심히 수업을 받아 적고 있는데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늘 한결같았다. 겨울엔 그래도 좀 살아나는 것 같더니, 봄이 되자마자 부쩍 외로움을 탄다. 하지만 그것을 남이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함부로 손을 내밀지 못했다.


화평이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 해줄 수 있을 텐데. 윤화평이란 사람은 그것조차 버거워하면서 내내 몸을 뒤로 빼기 바빴다. 물론 최윤이 화평이 멀리 가지 못하게 잡는다면 그대로 멈춰선 채 움직이는 것을 포기할 사람이었다. 최윤이 좋다고 했으니까. 제가 먼저 반한 것이니 뭐든 해주고 싶다고. 그런 말을 넙죽넙죽하면서도 가끔 눈치를 본다.



‘진짜 나랑 같이 있어도 괜찮아?’

‘…왜 그런 말을 해?’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너 나에 대해 다 알지 못하잖아.’

‘…….’

‘내 팔자가 좀 세서…주위 사람들을 자꾸 잡아먹는다잖아. 그래서 최대한 바다랑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려고 했는데.’

‘…….’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

‘…….’



널 보면 꼭 바다 같아서.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사무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는 녀석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자신뿐이라면 마땅히 손을 내밀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멈춰있는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표정이 밖으로 잘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지적을 받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던가. 지금 몇 교시지. 몇 교시인 줄도 까먹은 채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점심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밥도 안 먹을 텐데. 항상 그런 걱정이 가득했다. 점심시간 좀 일찍 보내준다는 소리에 다들 우르르 달려나간다. 우당탕 소리가 한 번에 뒤엉켜서 점점 멀어진다. 최윤은 교실이 텅 비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윤화평 찾아야지. 혼자서 밥 못 먹는 것도 아니면서 끔찍하게 화평을 챙긴다.



“화평아.”

“…….”

“윤화평,”

“…….”

“여기 있을 거 같은데.”

“…….”

“윤화평…….”

“…….”



있긴 했다.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어서 문제였지. 최윤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하긴 날이 따뜻해서 밖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꼭. 이렇게 숨어서 있는지. 저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뭐기에 이렇게 겉도는지. 얼마나 잠이 깊게 들었는지 고르게 오르내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잘만한 곳이 아닌 것 같지만, 저렇게 얌전히 있는 윤화평은 또 오랜만이었다.



“화평아…….”

“…….”

“점심 안 먹어?”

“으응…….”

“…….”

“윤아아.”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뚝 끊긴다. 색색 내쉬는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최윤은 이미 윤화평 곁에 있었다. 긴 몸은 접어 앉은 채 동그란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아무리 힘들어도 얼굴 살은 잘 안 빠지는데, 오늘따라 살이 한참 내린 것 같았다. 왜 이러지. 또 속이 상한다. 코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게 숙이고 가만히 바라본다. 가는 숨이 최윤 입술에 닿았다.



“…….”



그대로 좀 더 고개를 숙여볼까. 아니면 이대로 지켜볼까. 사실 화평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최윤의 심장은 늘 남아나지 않았다. 첫 만남은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최윤의 마음에 그 어떤 기억보다 깊게 남았다. 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제 자신이 모자란 탓이지만, 그런 감정을 보일 때 화평이 도망이라도 가려고 하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애써 친구인 척 주위를 맴돌았다.



“윤아…….”

“응. 화평아.”

“…….”



그 순간 눈이 마주친다. 아직 잠이 뚝뚝 떨어지는 눈이 몇 번 깜박이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이상하다. 왜 아직도 윤이가 보이지. 꿍얼꿍얼 속으로 사라지는 말이 끝나기 전에 화평이 눈을 번쩍 뜬다. 그 순간. 조금만 더 몸을 일으켰으면 최윤의 얼굴과 그대로 충돌할 뻔했다.



“…아, 놀래라.”

“깼어?”

“…….”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밥 먹어야지.”

“꿈인 줄 알았어.”

“…응?”



갑작스러운 말에 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화평은 그대로 누운 채 킬킬거리면서 손을 뻗었다. 그 손에 최윤의 뺨이 닿고 머리카락이 감긴다. 복실거리는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보더니 그제야 크게 한숨을 쉬었다. 화평의 손을 따라 아쉽게 움직이던 최윤의 고개가 잠시 멈춰 선다.



“만져지네. 꿈인 줄 알았어.”

“…….”

“봄이 되면 자꾸 꿈을 꾸는데, 꼭 만져질 것처럼 보이는데 바람이 흩어지는 것처럼 없어지거든.”

“…….”

“그래서 봄에 꾸는 꿈 별로 안 좋아해.”

“…….”

“그 꿈에 자꾸 네가 나와. 윤아.”

“…….”



그렇게 말하는 뜻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화평은 늘 자기 보다 최윤이 훨씬 더 똑똑하다고 말하곤 했다. 간신히 털어낸 봄날의 우울증이 바람에 흘러간다. 꼭 이럴 때마다 온몸을 붙잡고 버티는 정체 모를 외로움. 봄이 오면 다들 기분이 좋다는데, 화평은 장마가 오기 직전까지 내내 혼자 앓았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냉가슴을 앓던 화평의 폐에 간신히 숨이 들이찬다.



“다른 사람은 늘 봄에 이런 기분을 느껴?”

“어떤 거?”

“그냥 간질간질하고, 우울하지도 않고,”

“…….”

“누구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수업 안 들어온 이유가 그거야?”

“그건 아니고…….”

“가자. 밥 먹어야지.”

“밥 안 먹어도 배부른데.”

“…….”

“진짜야.”



아직도 볼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제 볼을 만지는 손을 떼어내서 꼭 잡은 채 살살 구슬리니 화평이 냉큼 일어난다. 아, 아쉽다. 살짝 비껴가는 입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화평이 알면 뭐라고 할까. 최윤은 화평이 말하는 간질간질한 기분을 내내 달고 살았다. 그 순간 최윤의 입술에 봄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

“…….”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냉큼 일어난 화평이 바지를 툭툭 털면서 고개를 홱 돌린다. 최윤의 긴 손가락이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더니 굉장히 부끄러워하면서 자꾸 일어나라고 타박을 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결국 최윤 교복 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손가락으로 잡은 화평이 벌겋게 뜬 얼굴로 터벅터벅 걸었다. 그 약한 힘에 못 이기는 척 길다란 녀석이 따라 간다.


봄이면 다들 마음이 풀어진다고 하는데, 드디어 화평의 마음에도 봄이 스며든 것 같았다. 아직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최윤이 옆에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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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쩜오 연성 창고 트위터 : @hwanwol_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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