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창은 소장용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

; 황인준 




“그래서, 뭐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말하면 다 들어줄 건가요?”

“걔 아빠 이름이 뭔데?”

“김무준이요. 지금은 3선인데, 이번 선거에서도 당선이 유력하대요.”



솔직히 인준은 반신반의도 아니라, 그냥 작은 허세라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저한테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은 처음인지라 순순히 계획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인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건지 옆에 쪼르르 나란히 앉아있던 셋이 인준에게 중얼거렸다.



“누나 앞에선 말 조심해야 해, 누나는 이 나라 안에서는 못 하는 게 없거든.”

“맞아, 교칙도 바꿀 수 있고 욕먹을 맘만 먹으면 서울대도 보내준댔어.”

“맞아, 잘 생각해서 말해야 해.”



인준은 셋의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노트북에서 김무준, 그 이름 세자를 검색한 누나는 곧 아, 하며 작은 탄식을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마음당? 이름 들어봤어. 대충 알고 있는 것도 많고. 그래서,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데?”

“…네?”

“정치 자금줄을 끊어버릴까, 아니면 기사를 터뜨려서 총선을 말아먹게 할까, 그것도 아니면-”

“그게 무슨….”



인준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말만 늘어놓는 누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셋은 정말 신뢰에 가득 찬 표정으로 대뜸 소리쳤다.



“헐, 누나 거기까지나 돼? 대박-”

“진짜 걔 운도 지지리 없다.”

“국회의원 별거 없네~! 역시 돈이 최고다.”



당황에 어이없어하는 인준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은 누나는 말을 마저 이었다.



“국회의원 아들로 호의호식하다가 감빵 들어가는 아버지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허.”

“그래서, 뭐가 낫겠어?”



누나가 여유롭게 휴대폰을 톡톡 만지며 물었다.



“나는 감빵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음, 정치에는 자금줄이 제일 중요한데….”

“나는 소소하게 기사 터뜨리는 게 제일 좋은데.”



정말 당연하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의견을 피력하는 셋을 보고 인준이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전 정말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요.”

“너 지금 내가 장난치는 거로 보이니?”



인준은 한숨을 쉬고는 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이어폰을 뽑아 볼륨을 키운 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이것저것 깨지고 걷어차이는 소리와 함께 파열음까지 들려왔다. 화면 속 영상의 시점은 쭉 바닥인 듯 알록달록한 신발만 보였다. 중간중간 섞여나오는 앓는 소리는 분명 황인준의 것임이 분명했다.


‘…나를, 왜 이렇게 때리는데…? 너희가 뭔데?’

‘인준아.’


퍽 다정하게 들리는 나긋한 목소리였다. 쪼그려 앉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 속 눈동자가 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냥, 재밌으니까?’

‘가만 안 둬, 학폭위든 뭐든 다 열어서 신고할 거야…!!!’

‘그래.’

‘한번 열심히 해봐, 음-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녹음해둔 것도 더 있고, 지금까지 카톡이나 문자 왔던 것도 다 모아뒀고, 병원 가서 진단서도 떼어왔어요. 전 정말….”

“…….”

“…저를 믿어줄 어른이 필요하다고요.”



지금까지는 그랬다. 3선 국회의원의 아들에 심지어 반장, 전교권에, 교우관계도 좋은 학생과,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외국에서 온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심지어 보호자마저 오지 않는 학생. 어른들이 누구를 믿을지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


 

늘 가난에 찌들어 살던 황인준네 단칸방 구석과는 어울리지 않는 꽤 비싸 보이는 옷들을 걸친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인준의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죽은 아빠의 한국 쪽 사촌 동생이랬다. 고아한 서울 말씨를 가진 그녀는 곱게 엄마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인준에게로 시선을 한번 주고는 삭 웃어 보였다.



“네가 인준이구나.”

“…안녕하세요.”

“한국말 참 잘하네, 서울에 가서도 문제없겠어.”



영문 모를 그녀의 말에 황인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엄마를 흘끔 바라보았다. 엄마는 인준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가 내미는 갈색 서류 봉투를 받아들었다.



“서류 작성하시고 동봉한 주소로 보내시면 중국지부 재단의 허가가 떨어지는대로 바로 후원금이 지급될 거고, 출국 날짜도 금방 잡힐 거예요.”

“허가는 얼마나 걸릴까요?”

“한국 학기 시작에 맞춰야 하니, 아마 생각한 것보다 빨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준의 엄마는 아직 아기인 제 동생을 안고도 그녀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인준은 그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말이 듣기가 싫었다. 여자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제 엄마 품에 안긴 제 동생에게로 손을 뻗었다. 쓰다듬는 손길이 꽤 다정해 보였다.



“그럼 전 가볼게요.”

“네, 정말 고마워요. 연주씨.”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한번 꾸벅이고 인준에게로 시선을 맞춰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보자.”



인준은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돌아가신 인준의 아버지 화가셨다. 인준의 눈에는 퍽 멋져 보이는 그림이었으나 항간에 알려질 기회는 없어서 인준의 아버지가 며칠 밤을 새워 그린 그림은 결국 물감값을 겨우 쳐주는 헐값에 팔리곤 했다. 생계는 오로지 엄마가 시장통에서 벌어온 돈으로 꾸려갔다. 지긋지긋한 가난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세 식구는 꽤 행복했다.

언젠가 아빠가 한 달을 매달린 그림이 오만 위안에 팔렸다고 그랬다. 오만 위안, 가난하게만 살아온 열네 살 인준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 큰 숫자였다. 아빠는 인준을 얼싸안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제 우리 가족도 고생 끝이야, 무능한 아빠 때문에 우리 아들들이 고생 많았어.”

“그럼 우리 집도 이제 이사할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저기 저 높은 빌딩에서 살 수 있어?!”

“그럼!”



인준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주일 후, 아빠가 죽었다. 정말 사람 좋던 인준의 아버지다운 죽음이었다. 작업실로 가던 길에 커다란 트럭에 치일 뻔한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죽었다고 했던가.

소녀 가족 측에서 전달한 위로금과 트럭 운전자의 합의금은 아버지가 그림을 팔고 그토록 기뻐했던 오만 위안과 같았다. 인준은 괜히 속이 쓰렸다. 우리 아빠의 목숨값은 겨우 오만 위안이었구나. 그냥 덧없게만 느껴졌다.

그림의 가치는 화가가 죽은 후에 결정 난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빠가 물감값이나 나올까 싶게 헐값에 팔아넘겼던 그림들은 뒤늦게 천재성을 인정받아 열 배, 아니 백 배의 가격에 팔렸다.

비운의 천재 화백 황민제, 정작 가족들에게는 그림도 돈도 남은 게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인준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남긴 건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예술성은 고스란히 인준의 두 손에 남았고, 세상을 보는 풍부한 시각도 남겨두었다. 인준은 그래서 그림이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죽은 아빠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죽은 후 더 가난해진 형편에 금방 손에서 놓아야 했지만.

엄마는 늘 학교가 끝나면 시장통으로 달려와 갓난아기인 제 동생을 안아오는 인준이 안쓰러운 듯한 눈치였다.



“아들은 그림 그리는 게 좋아?”

“아니, 싫어-.”



미술학원은커녕 도화지와 물감 따위를 지원해주지도 못하는 형편을 엄마가 미안해할까 봐 인준은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여기서 막내랑 엄마랑 같이 노는 게 더 좋아!”



인준은 그 말에 제 엄마의 가슴이 더 미어져 오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엄마가 다짜고짜 문구점에서 제일 비싼 스케치북과 물감, 붓을 사와 인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다 뭐야?”

“런쥔, 엄마한테 그림 좀 그려줄래?”

“그림?”



엄마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던 인준은 이내 연필과 붓을 집어 들어 언젠간 책 속에서 보았던 것 같은 장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분홍빛으로 노을 진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 느린 유속으로 흘러가는 시냇물에, 하늘의 분홍빛으로 물든 흰 꽃밭 사이 홀로 돋아난 푸른 장미 한 송이까지- 꽤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어쩐지 서글픈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왜?”

“아니, 아니야. 우와, 너무 예쁘다. 이거 엄마 가져도 돼?”

“응, 엄마 줄게.”



인준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더러 한국에 가라는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한국에 갈 마음 없어! 그림도 다 필요 없어, 나는 그냥 이렇게 평소처럼 엄마랑 인하 옆에서….”

“돈을 준대.”

“뭐…?”



대뜸 돈을 준다는 엄마의 말에 인준이 눈을 파르르 떨며 되물었다. 인준의 엄마는 고개를 쓱 돌리고는 말했다.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돈이야, 너만 한국 가서 시켜주는 수업 착실히 듣고, 유명한 사람이 되면 달마다 네 몫의 후원금을 우리에게 보내준대.”

“…….”

“너만, 너만 한발 양보하면 네 동생도 나도- 하물며 죽은 너희 아빠까지 행복해질 수가 있대….”



애써 모질게 말을 내뱉는 제 엄마에 인준은 순간 말을 잃어 묵묵히 날이 선 눈으로 그 여자가 남기고 간 갈색 봉투를 턱 채가 바닥으로 털어냈다. 툭 클립으로 묶어둔 종이 뭉치가 떨어져 내렸다. MK 재단 후원 동의서,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 후원금 지급 내역, 이런저런 서류들 사이에 그날 인준이 그렸던 그림이 있었다.



“허….”



이미 다 정해진 이야기였구나, 나만 몰랐던 거구나.

 




 

그 여자는 그 MK 재단이라는 곳의 직원이랬다. 그래서 황인준네 집의 사정과 황인준의 천재성을 보고 상부에 첫 후원 아동으로 건의를 한 거라고. 불행하게도 인준은 막 탄생한 대기업의 기사 한 줄 싣고자 만든 복지재단의 입맛에 딱 맞는 인재였다.


[비운의 천재 황민제 화백의 외아들 황런쥔 군 ML그룹 산하 복지사업단 MK재단 첫 후원아동 선발, ‘이제라도 꿈을 이룰 수 있어 다행이에요’]


결국, 이런 기삿거리 한 줄이 되어버렸다. 외아들은 무슨, 기사를 쓰려거든 잘 알아보고 쓰지- 인준은 쓰게 한마디를 뱉어내고는 그 높으신 어른들이 들이밀듯 내밀었던 휴대폰을 주머니를 쑤셔 넣었다.

 




 

그렇게 황인준은 한국의 학교에 첫발을 내디뎠다. 별말이 없는 인준에게 전학 첫날부터 말끔하게 생긴 키가 큰 남자애가 다가왔다. 이 반 반장이라더니, 선생님이 시킨 건가. 늘 반 아이들의 중심에 있던 반장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런데도, 반장은 늘 황인준을 친구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어쩐지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인준은 그냥, 정의감 넘치는 반장이 겉도는 애를 보지 못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걔랑 가까이 지내지 마, 나는 이제 전학 갈 거니까 말해주는 거야.”



반장의 무리에 끼어있는 왜소한 몸집의 남자아이가 말했다. 인준이 왜냐고 물어도, 남자아이는 그냥 그렇게만 말한 뒤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부들부들 떨리는 그 애의 눈빛이 인준은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같이 하교를 하자며 제 옆에 선 반장에게 바로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시켰어?”

“어?”

“맨날 나 챙기고 다니는 거, 이제 안 해도 돼.”

“왜?”

“솔직히 말해?”

“응.”

“조금 부담스러워, 너 좋다는 애들 많잖아, 걔네 데리고 다녀.”

“왜?”



끝까지 생글거리는 표정이 영 불편하기만 했다.



“말했잖….”



갑자기 홱 인준의 손목을 잡아 제게로 끌어당긴 반장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너 미술 한다며, 손 되게 예쁘다.”

“…어?”



제 교복 주머니에서 커터칼 하나를 꺼내 드르륵, 드르륵, 칼날을 뺐다 집어넣었다 하기 시작했다. 왼손에 잡힌 힘이 너무 세서 인준은 손도 못 빼고 그냥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새끼가 말해줬어?”

“그게 무슨…!!!”

“그치, 이제 전학 갈 때 됐다고 걔도 참 나대더라고…. 눈치는 빨라서 자기 다음은 귀신같이 알아봤네.”



손목에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닿으려는 찰나, 반장이 꽉 붙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풀고 칼을 다시 제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방긋 웃으며 한다는 소리에, 인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조심해, 다음엔 오른손이야.”

“…뭐?”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그림 좀 그리는 거뿐인데 오른손 망가지면 어떡해.”

 




 

“무진이가? 무진이가 얼마나 착한데, 인준이 너가 뭘 착각한 거 아니야?”



인준의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착한 애가, 싸이코 마냥 미술 하는 애 손목 아작내려고 하냐? 인준은 고함을 한번 치려다가 그냥 교무실을 나왔다. 제게 사건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건 사실이라서 더 그랬다. 손목에 남은 멍 자국으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얘들아, 우리 학교 끝나고 축구 할까?”

“와, 축구 오랜만- 개 콜!”

“와 이게 얼마만의 축구냐.”



축구를 하러 간다는 반장과 반장의 친구들은 다짜고짜 인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쩐지 잡힌 오른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축구를 한다던 다섯 남짓의 남자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건물의 뒤편이었다.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떨어진 곳에 황인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 축구 해야지.”

“축구 같은 거 안….”

“공이 사라지면 어떡해, 그건 축구가 아니잖아.”



퍽 다정하게 들리는 반장의 말투에 인준은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곧바로 배로 날아온 발길질에 인준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묻혀 인준의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인준을 발로 찼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반장은 여전히 잔잔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얼굴은 피해서 차, 너무 눈에 잘 띄잖아.”

“오키!”

“혹시 뭔 일 생기면 의원님이 우리 커버쳐 주는 거지?”



반장은 별말 없이 희미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반장이 절 불러서 때렸다니까요, 정말이라고요!!”



계속 믿을 생각을 하지 않는 담임선생님에게 소리를 쳐 봐도 반응은 같았다. 그때, 뒤쪽에서 같은 반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인준, 너가 어떻게 반장한테 그래? 너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반장이 너 얼마나 잘 챙겨줬어, 너가 그러면 안 되지. 너 혹시 반장이 너랑만 같이 다녀줬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와, 너 진짜 악질이다….”



인준이 어이가 없어서 허, 작게 혀를 찰 때 교무실의 문 열고 나타난 그 다정하고 나긋한 말투가 교무실 가득 울려 퍼졌다.



“선생님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반장으로서 인준이가 저희 반에 더 잘 적응하도록 챙겼어야 했는데….”

“너 잘못은 무슨, 전학생이니까 니가 너그럽게 이해해줘. 아! 의원님은 잘 계시지?”

“네, 잘 계세요.”



고개를 푹 숙이는 눈길 사이로, 반장이 힐끔 나를 쳐다보고 생긋 웃었다. 너무 억울하고 어이없어서 누구에게 털어라도 놓고 싶은데, 그럴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한국에 오고 난 뒤엔 팔려 왔다는 알량한 배신감에 가족과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친척이라는 여자한테 연락할 수도 없었다. 저를 맡아주는 재단 쪽 실장님에게 말 한마디를 건네도 보았지만,



요즘 바쁘니 사적인 연락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차갑고 냉랭한 문장만 도착할 뿐이었다.

그랬다, 인준은 혼자였다. 어른들은 참 이상했다. 말을 해도 들어줄 생각은 안 하면서 결국 참다못해 터진 말 한마디는 아이의 치기 어린 말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황인준은 홀로 어른을 흉내 낼 수밖에 없었다. 이를 꽉 물고 참았다. 다 죽여버릴 거야, 다. 악다구니 어린 말 한마디만 중얼거렸다.

 


◆◆◆


 

“정말, 나를 믿어요?”

“응.”

“정말요?”

“응.”



누나의 투명한 듯한 눈빛이 눈물을 머금은 듯한 인준의 눈으로 향했다.



“나는 너를 믿어.”

“…….”

“너는 나를 믿니?”



잠시 망설이는 듯싶던 인준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믿을게요.”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다요.”

“뭐?”

“세 개 다요, 나는 걔가 개미보다 더 하찮게 생각했던 나한테 머리라도 조아렸으면 좋겠어요.”



황인준의 냉랭한 표정에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우선….”



우선? 네 아이 모두 귀를 쫑긋거렸다.



“점심부터 먹을까.”

 




 

“감자 볶음?”

“그냥 야채볶음 아닌 것 같은데.”

“이건 가지인가?”

“地三鮮.”



식탁에 오른 이상한 야채볶음을 한 젓가락 집어서 오물오물 삼킨 인준이 내뱉었다.



“지삼선, 중국식 야채볶음이야.”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중에 뽀얀 고깃국까지 한번 떠먹었다. 인준은 묵묵히 밥을 한 숟갈 더 떴다. 누나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인준의 옆에 놓아주었다.



“먹고 더 먹어.”



누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인준이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소매를 당겨 눈을 쓱 훑었다. 소매에 눈물 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



“想见妈妈….” (엄마 보고싶다)


 


 


“엥?”



갑자기 휴대폰을 만지던 재민이 짧은 의문의 소리를 내었다.



“왜?”

“뭔 일 있어?”

“뉴스 떴어, 김무준 의원 뇌물수수 혐의에 땅 투기까지 했대. 검찰에서 지금 조사 중이라는데….”



인준이 다짜고짜 재민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서울 @@구 라선거구 4선으로 출마한 김무준 의원, 뇌물 수수에 땅 투기 파문까지 총선 막바지에 파란..]

[뇌물수수 땅 투기 의혹 김무준 의원, 자진 사퇴 항간의 소문 때문은 아니야..]

[김무준 의원 여배우 미투까지? A씨, SNS글 게재 과거 일화 재주목]

 

기사 헤드라인을 읽어내린 인준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누나는 정말 태연하게 강아지의 밥그릇에 사료를 채우며 태연히 대답했다.



“내일모레쯤 하나 더 뜰 거야.”

“그게 무슨….”

“아들 학교폭력 건도 터져야지.”



모두 반나절도 안 돼서 일어난 일었다. 인준은 그제야 낮의 세 사람의 이상한 믿음의 원천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이내 씰룩쌜룩 인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야, 너 부루마블 좀 하냐?”

“부루마블? 그게 뭔데.”

“땅 투기하는 게임이야.”



제노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인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의원님처럼?”

“응, 세계의 김무준 의원이 돼서 땅을 모조리 사들이는 거야. 해볼래?”

“콜, 재밌겠다.”



인준이 방긋 웃었다. 동혁은 그간 황인준을 살펴오면서 처음 보는 말간 웃음에 그냥 한번 따라 웃기만 했다. 집 안 가득 찬 웃음소리에 마음이 편안했다.

 




 

월요일, 조회시간 다짜고짜 방송이 울려 퍼졌다.



[“1학년 8반 황인준. 지금 이사장실로 오세요.”]



다급함이 드러나는 교무부장 선생님의 말이었다. 매점에 다 같이 모여있던 넷은 일제히 인준을 보고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와, 누나가 따라간댔으니까 걱정하지 마.”

“응, 이 나라에서 누나 이길 수 있는 사람 없어!”

“걔 이제 끈 떨어졌잖아, 너가 백퍼 유리해. 알지?”



차례로 인준의 손을 꾹 잡은 셋이 매점 문을 나서는 인준을 보며 외쳤다.



“정 힘들면 우리 불러, 우리가 증인이잖아.”

“그래, 걔 소년원 이동혁한테 쫄았잖아, 개 웃기던데.”

“아, 나재민 그 얘기 좀 그만해액!”

 




 

교무실도 교장실도 아닌 이사장실의 문 앞에서 황인준은 어쩐지 조금 긴장한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낯선 얇은 여자의 목소리는 누나의 것은 아니었다. 인준이 문을 열자, 그 문을 열기까지의 고민은 정말 쓸데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왔니?”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높낮이였다. 인준은 금세 누나를 발견하고 뽀르르 옆에 다가가 앉았다. 맞은편에는 교무부장 선생님과 비싸 보이는 코트를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 늘 여유롭던 여느 때와는 다르게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김무준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에는, 검은 수트를 빼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여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 이다나 입니다. 이 학교의 총책임자로서 이번 학교폭력 사태에 대해 깊은 통탄을 느끼고 이렇게 학교폭력 위원회를 열기 전, 당사자들을 불러놓고 사실 경위에 대해 더욱 정확히 파악을 해보고자 합니다. 다들 이해하시죠?”

“네, 좋아요.”



인준은 어쩐지 조금 무서웠지만, 이내 바들바들 떨리는 제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는 누나의 태도에 금세 진정이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무진이가 그럴 리가 없다고요, 우리 무진이 늘 1등만 하던 아이예요! 이런 애가 학폭위라니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분명 저 애 중학교 때부터 우리 무진이한테 집착하고 피해망상 부리고 그랬다던데, 이번에도 저 애의 망상 아닌가요? 계속 이러시겠다면 저희도 학폭위 열겠습니다!”

“아줌마.”

“뭐, 아줌마?! 학생 지금 말 다 했어?! 이래서, 부모도 없는 집 애들은 알만하다니까….”



인준이 순간 발끈해 손을 불끈 쥐었지만, 누나는 그저 차분한 태도로 제 가방에서 태블릿 하나를 꺼내 영상을 틀어 화면을 반대쪽으로 돌려두었다. 인준에게는 꽤 익숙한 장면이었다.



“이것뿐인 줄 아세요? 이건 애들이 인준이한테 했던 카톡 목록들, 다른 녹음 본도 있고, 진단서도 있습니다.”



누나가 던지듯 종이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놓자 아줌마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다 조작이야, 모함이라고요!”



이사장님은 찬찬히 영상을 되감아 보다가 생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

“자퇴로 하시겠어요, 퇴학으로 하시겠어요?”

“네, 네?”

“음, 우선 학폭위 열어서 정식으로 징계받기 전에 먼저 선택할 권리라도 드리려는 거예요.”



인준이 힐끔, 김무진의 표정을 살폈다. 늘 여유롭게 생글 웃던 표정과는 조금 달랐다. 창백하게 질려있는 꼴이 조금 웃겼다. 단번에 싸해진 분위기 속에 누나가 낮게 외쳤다.



“야.”

“……?”

“일어나서 꿇어, 대가리라도 박아.”

“지금 그게 무슨…!!!”

“내 동생이 그게 보고 싶다잖아.”

“…….”

“좋은 말할 때 꿇어, 그 잘난 머리 꺾어버리기 전에.”



누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생긋 웃기만 했다.



“그래요, 징계는 징계고 피해자가 사과는 받아야죠. 꿇어요.”

“…지금 이 사태 모두 공론화할 겁니다!!”

“네, 한번 열심히 해보세요.”

“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황인준 학생, 내가 미처 몰라서 미안해요. 내 일이 바쁘다 보니 학교 일엔 신경을 못 썼네요.”

“그 중학교 교무부장이란 사람, 짤라.”

“내가 알아봤는데 이미 작년에 촌지 문제로 교육청에 신고 먹어서 잘렸어.”

“아, 그래?”



지나치게 격 없는 두 사람의 말에 인준은 그냥 멍하니 눈만 깜빡거렸다.



“아무튼, 이번 가담자 싸그리 퇴학시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학교 다녀도 돼요. 뭐, 중학교 때부터 우리 학교에 정이 떨어져서 못 다니겠다 싶으면 전학도 시켜줄 수 있는데. 편한 대로 해요.”

“그래, 너 편할 대로 해.”



인준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전학 안 가요.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제가 전학을 가요? 저는 여기서 꼭 졸업할 거예요, 그러고 싶어요.”



이사장님이 싱긋 웃었다.



“그래요, 아주 좋은 자세네요.”



누나가 인준의 머리 위로 제 손을 올려놓고 두어 번 쓰다듬었다.



“잘했어, 황인준.”

 




 

“근데, 민하랑은 무슨 사이예요?”

“민하라면, 누나 말씀하시는 거예요?”

“민하 친동생은 내가 아니까, 친동생이 아닌 건 확실한데….”

“…….”

“그냥, 이민하가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나서는 건 처음 봐서.”



나가봐도 좋아요, 이사장님의 말에 인준이 이사장실을 나오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 뭐 해?”

“응? 너 기숙사 짐 빼러 가는데.”

“너희가 내 짐을 왜 빼?”

“울 론지니 얘기 못 들었구나?”

“뭘?”

“너 이제 우리랑 같이 살 거래. 난 몰랐는데 여기 중학교 재단도 있어서 애들 거의 똑같다며? 어쩐지 다들 눈빛이 맘에 안 들더라니. 넌 어떻게 여기서 애들이랑 살 부대끼며 살았냐.”

“누나가 우리도 없이 너 학교에 혼자 있는 거 맘에 안 놓인다고 이사장님이랑 담판하고 왔대.”



인준은 그냥 멍하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방긋 웃으면서 걷는 세 명을 바라만 보다가, 결국 푸스스 웃으면서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론지나, 너 짐 많아? 이거 하나로 되겠어?”

“인준이 미술 하니까 많지 않을까?”

“아니, 도구들은 다 미술학원에 두고 다녀서 짐 별로 없어.”

“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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