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타는 목마름으로 by VINXEN

그 계절에는 유난히 메마름이 심했다.

태양이 붉게 타오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거무튀튀한 구름들이 온 하늘을 뒤덮어 금방이라도 천둥번개가 칠 듯 하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잠하기만 하였다.

안개는 우리를 놀리듯 지면을 스쳐 지나갔고 피어 있어야 할 꽃들은 꽃봉오리만 살짝 보이곤 끝없이 떨어졌다.

세상은 공허함의 계(界)가 되어 버렸다.

그 안에서 고개를 숙인 우린 자아를 잃어버린 채 물을 찾아 헤매었다.

낮이고 밤이고 변함없는 공기.

차갑지도 뜨겁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슬픔도 기쁨도 존재하질 않았다.

아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감정이 사라졌지만 고통은 여전히 존재했고 그 범위와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다.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인정을 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유불문으로 죽어나가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된 그런 허망한 공간에서 나의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단순히 수분을 갈구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안엔 분명히 그것이 마음을 적셔 메마른 감정을 되돌려 줄지도 모른다는 미련한 기대가 내포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갈증이 시작되기 전 반복되어 온 그 생각은 좀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세상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나를 아프게 하는 이 세상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뀌었다.

이 생각을 반복할 때쯤 온몸에 전율이 돌아 떨릴 정도로 찌릿거렸고 나는 흔들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처들었다.

푸른빛 바다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허상이겠지 하면서도 그 속에 빠지기 위해 광인처럼 기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피로 뒤덮여 버렸어도 상관치 않았다.

무릎의 피가 존재의 유무조차 흐릿한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날 뒤덮었다.

드디어 온도가 느껴졌다.

물은 불어났다.

감정의 유선이 기적처럼 다시 생겨남과 동시에.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나는 힘을 빼었다.

그리고 난 가라앉았다.

기도에 물이 가득 찬 것만 같았고 눈이 풀려 따가웠다.

폐의 기능이 드디어 정지되었다 느낄 때쯤, 그 때쯤에야 난 숨쉴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제서야 나는 진정한 호흡을 시작했다.

가라앉은 나의 위로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폭우가 쏟아졌고 나의 갈증은 해소되었다.

이 비가 마르기도 전에 난 또다른 갈증에 휩싸이겠지만 이젠 잠수하는 법을 배워, 나 스스로 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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