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조직원들을 대기시켜 두고 저와 페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움직이지 않는 그를 보는 게 힘들다. 레지들과 간호사들이 왔다 갔다 하며 양예밍의 상태를 살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복잡하기만 한 장귀의 일을 처리하는 것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장귀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 뒤를 따라오던 페이가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제 어깨를 짓누르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페이의 마음이 어떤지 전해졌다. 저는 괜찮다고 그를 향해 미소지어 보였다. 페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저를 놓아준다. 더는 저를 따라오지 않았다. 


방 앞에 다다르자 조직원들이 더 늘어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묻자 무리 중 한 명이, 2 조직회에서 정말 찾아왔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2 조직회 회장을 동반한 무리가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형이 그들을 돌려보낸 것 같았다. 곧 죽어도 장귀 없이 돌아가지 않겠다던 회장이 형의 이어지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2 조직회 존속에 문제 일으키기 싫으면 돌아가시지요. 저희 일 마무리하고 돌려보내겠습니다.' 아들 바보이긴 해도 1 조직회 회장직을 물려받은 사람이니, 형의 포스도 말 다 했지 뭐.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에 2 조직회 회장이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고 했다. 암살의 기미가 보여 형의 지시에 따라 그새 조직원을 보강했다. 장귀가 무슨 소릴 할까 두려워 회장이 저렇게 덜덜 떠나, 형도 궁금한 듯했다. 사람들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여전히 의식 없는 장귀가 보였다. 양예밍이고 장귀고 모두 제 앞에서 죽은 사람 같구나.. 저만 멀쩡한 게 또 가슴이 죄여왔다. 역시 싫다, 삼합회의 아들이라는 거. 


조금 더 지켜보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감시에 심혈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사건 하나가 제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거 같다. 누군가에게 지시한다는 게 이런 건가.. 조직 때문에 눈앞에 생사가 오간다는 게 이런 거냐고...











형의 배려겠지만, 저는 유와 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딴 마음 먹을까 그랬는지 저를 끌어다 유의 방에 가둬두고는 함께 있게 했다. 어제도 봤는데 오랜만이라며 제게 안겨 온다. 요 귀여운 생명체는 오늘도 끈덕지게 애교를 피운다. '땀톤, 땀톤-' 하며 자꾸 몸을 부대껴오는 게 평소보다도 더 달라붙었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그를 제 가슴께에 올려 안았다. 제 가슴을 방석 삼아 앉은 유가 고사리 같은 손을 들어 제 볼을 감쌌다. 아까까지 잘만 웃던 녀석이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웅웅- 거리기 시작했다. 열이 나나 싶어 다급히, 괜찮아? 하고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열은 없는데..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뚝- 뚝- 떨어졌다. 놀라 그를 안아 들고 형을 부르려는데, 


"땀톤.. 울디 마.." 


어..? 


꼬맹이가 작은 손으로 제 얼굴을 꼭 쥐고, 울지 말라며 눈물을 흘린다. 


"삼촌 안 울어. 유랑 있는데 삼촌이 왜 울어.. 울지 마 유야." 


훌쩍훌쩍 코를 마시는 아이가, 


"땀톤이 우니까.. 흐.. 유도, 흑, 울 거야!" 


"……" 


꼬맹이 눈엔 저가 우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널 보고 있는 거니. 제 표정이 이 어린 녀석이 이렇게 걱정할 정도였나. 일어나 앉아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작은 팔로 제법 힘 있게 제 목을 감싸 안았다. 저는 결국 눈물이 터졌다. 끄억끄억 입에서 나는 소릴 죽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울면 안 될 거 같았다. 참아야 했다. 모두 '네 탓이 아니야.' 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 제 탓인 게 분명한데.. 저를 위로한답시고 그리 말할까 봐 울 수 없었다.. 그게 제 가슴에 가시로 박힐 거 같아서... 쪼그마한 녀석이 뭘 안다고, 위로하듯 저를 더 세게 안는다. 꼬맹이 품에 안겨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함께 울던 유가 제 품에서 잠들었다. 저 따라 한참을 울었으니 어린 녀석이 힘들만도 하지. 울다 지쳤는지 간간이 작게 코도 골았다. 그의 등을 토닥이는데 방문이 열렸다. 형이었다. 눈이 퉁퉁 부은 제 얼굴을 보고 놀란 형이 제 품에 안겨 자는 유의 얼굴을 보고는 뭔가 알겠다는 듯 조용히 옆에 와 앉는다. 


"이제 좀 시원하냐." 


"뭐가." 


"저 녀석 말이야. 공감 능력이 폭발해서 감정 이입이 엄청나.
꼭 어릴 때 너처럼." 


"……" 


형이 제 품에 안긴 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를 쳐다본다. 


"내가 아파 보이면 먼저 울더라. 너도 예전에 그랬잖아. 형들이랑 싸워서 잔뜩 맞고 들어왔을 때, 나는 자존심 상해서 안 울려고 꾹 참는데 네가 내 얼굴 보고 울기 시작해서 같이 울었던 거. 기억 안 나?" 


잠시 옛 생각에 잠긴 형이 그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울고 나니까 속 좀 후련해졌어?" 


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계승식에 문제를 일으킨 거 같아 미안함이 올라왔다. 미안해. 작게 말하자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린다. '미안할 게 뭐 있어. 동생들 일인데. 이게 늘 내가 하던 일 아니냐.' 하고 씨익 웃는다. 형도 피곤해서 잔뜩 몹쓸 얼굴이면서 괜찮은 척한다. 그렇네. 저와 양예밍이 사고 치면 꼭 어딘가에서 나타나 뒤처리를 해주곤 했지. 맞아.. 형은 늘 그랬어.. 눈물이 또 차올랐다. 형이 그런 저를 보고 툭툭- 머리를 토닥였다.


"가자. 너 어제부터 한 끼도 안 먹었다며."


저에게서 유를 넘겨 안고 부엌으로 걸음을 옮긴다. 식탁에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형수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저를 맞이했다. 형에게서 유를 받아 안으며, '우리 울보 또 잔뜩 울었네.' 하고 유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유의 볼을 쓰다듬었다. '잔뜩 울었다'는 형수의 말에 저가 괜히 뜨끔해 의자에 앉으려다 멈췄다. 형이 그걸 보고 살짝 미소 짓는다. 마치 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곧 저도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회장님!!"


현관문이 열리고 형을 찾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금세 회장의 얼굴로 돌아온 형이 그를 쳐다봤다. 


"장귀가 깨어났습니다."


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저였다.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고 안채를 향해 달렸다. 뒤에서 저를 부르는 형의 외침이 들린다.






찰칵- 


"널 줄 알았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말했다. 퉁퉁 부은데다 피딱지까지 엉겨 붙은 그의 얼굴, 그가 장귀라고 알아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저 목소리가 그라고 말해줄 뿐. 저가 아무 말 없이 서서 바라만 보자, 왜 데려왔어. 가만두면 죽을 수 있었잖아. 하고 저를 비웃듯 말한다. 


"어차피 이 이후에 죽으나 그때 죽으나, 죽는 건 같으니까.
궁금한 게 있어서 데려온 것뿐이야. 너 살리려고 데려온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차갑게 내뱉었다. 그가 예상했다는 듯 작게 코웃음을 쳤다. 방 한편에 자리한 의자를 가져와 한가운데 놓고 앉았다. 서로 오가는 말 없이 그저 저는 그를 바라만 봤다. 저가 듣고 싶은 말이 뭔 줄 아는 녀석이니 언젠가는 입을 열겠지. 팔짱을 낀 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울었냐?" 


"너 때문에 운 거 아니니까 신경 꺼." 


퉁퉁 부은 제 눈에 그 때문에 운 거라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건 건지, 그딴 건 왜 묻는 거야. 그가 또 코웃음을 쳤다. 


"울긴 울었구나. 흐릿해서 설마 했는데." 


"너 때문에 운 거 아니라고 했ㅈ, " 


── ??? 


흐릿하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엔 무슨 수작이야 너.. 그의 주위를 살피다 낮에는 보지 못했던 물잔을 발견했다. 


"무슨 개수작이야. 너가 지금 이런다고 동정심이라도 가질 줄 알아?"


"그런 거 안 바래. 이미 시력도 잃어가는데 그냥 죽여주길 바랄 뿐이지. 뭐.. 가는 것도 시간 문젠가." 


── !!!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 침대 옆의 물잔을 들었다. 밑바닥에 잔 가루들이 자잘하게 깔려 있었다. 


"너.. 이거 언제 마셨어..?" 


"저렇게 보초들 잔뜩 세워 놓는다고 그 사람이 가만있을 거라 생각했어?" 


".. 씨... 형!!" 


탁─ 


장귀가 형을 찾는 제 팔목을 잡았다. 


"동정하지 마, 야오왕. 어차피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야. 양예밍하고 네가 결혼한 그 시점부터 이런 결말은 예고돼 있었어. … 네가 이래서 안 되는 거야 인마.. 나 같은 놈한테도 정을 주니까. 그러니까 넌 안 되는 거야 새끼야. 이게 무슨 삼합회 조직원이냐.." 


그가 잔뜩 망가져 알아볼 수도 없는 얼굴로 흐릿하게 웃는다. 


"미친 새끼.." 


붙잡힌 팔목을 뿌리치고 형을 찾았다. 제 다급한 목소리에 형이 놀라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장귀 위세척 해야 돼.. 약 먹었어."


제 말이 끝나자마자 주치의를 불렀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수면제를 맞고 곧 의식을 잃은 그에게 위세척 튜브가 삽입됐다. 더는 볼 수 없어 방을 빠져나왔다. 형이 제 뒤를 따라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형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장귀에게 그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데 또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다니.. 뭐 때문에 2 조직회 회장은 그렇게 장귀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이른 아침 장귀의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형도 무언가 하려는지 부친과 함께 3, 4 조직회 조직원들을 불러들이며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밤부터 병원에서 꼼짝 않는 모친이 걱정돼 저도 서둘렀다. 아직 의식 없는 양예밍 탓에 밤새 울었는지 모친도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1인실에 홀로 누워 있는 그가 어제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바이털 모니터 소리만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삐삐삐 울렸다. 저가 여기 남아 있겠다 하고 페이를 통해 모친을 집으로 보냈다.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제법 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그의 손을 잡아 보았다. 


하아─ 다행이다.. 


맞잡은 그의 손이 따뜻했다. 그의 손을 제 입에 가져다 대고 손에 뽀뽀했다. 


"고마워.. 고마워 양예밍.." 


그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 꽈악 쥔 채로 그를 바라봤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그의 귀에 대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일어나 양예밍..
사랑한다고 말해줄 테니까.. 제발 돌아와.
보고 싶어." 


그가 저편 어딘가에서 듣길 바라며, 사랑한다고 계속 되뇌었다. 











혈색도 돌아오고 이제 깨어날 때가 됐다는 의사의 말에도 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도록 제 속은 타들어 갔다. 오히려 먼저 의식을 찾은 건 장귀였다. 힘들게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한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양예밍을 죽이려 한 건 장귀의 단독 행동이라고 말하던 2 조직회 회장이, 목숨 걸고 아들을 죽이려 하는 게 수상해 형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깨어난 장귀와 뭔가 이야기한 거 같은데 아직 제게 감감무소식이다. 미래가 어떻든 이번엔 그가 말하던 '1 조직회 힘'을 제대로 빌리길 바랄 뿐이었다. 누워있는 양예밍과 있으려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잔뜩 들었다. 그에게 한탄도 하고, 장귀 욕도 좀 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 저런 일이 있었다. 의식 없는 사람 앞에 두고 돌아오는 대답도 없는데 그렇게 조잘거렸다. 혹시나 의식이 돌아와 손가락이라도 움직일까 싶어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오늘도 깨어나지 않는 양예밍을 향해 사랑한다고 무한히 속삭였다.











'일어나 양예밍.' 

'얼른 돌아와.. 보고 싶어.' 

'어디 있는 거야. 나 안 보고 싶어?' 

'언제 올 거야 양예밍.' 

'예밍아 사랑해..' 

'사랑해.' 


야오왕 목소리다. 넌 어디 있는 거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웅웅 울리는 건데. 나도 보고 싶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웅웅거리는 야오왕의 목소리만 들렸다. 아무리 팔을 저어봐도, 제아무리 달려도, 계속 같은 자리였다. 


무서워.. 무서워 왕아..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주저앉았을 때 저 먼 곳에서 반짝- 하고 작은 빛이 빛났다. 그 점을 향해 내달렸다. 가까이 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달렸다. 여전히 저는 제자리였다. 무서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빛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반짝- 하고 한 번 더 빛났다. 


또 한 번 반짝- 


또 반짝- 


── ?? 


야오왕의 사랑한다는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빛이 강하게 반짝였다. 그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었고, 그 빛이 위로가 되었다. 이제 더는 무섭지 않았다. 마치 제 옆에 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오왕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저도 똑같이 그에게 속삭였다. 


보고 싶어 왕아.

너무 보고 싶어. 

나도 사랑해─  






빛이 점점 밝아졌다. 빛의 크기가 이내 손바닥만 해지고, 곧 몸만 해지고, 점점 점점 조금씩 커지더니 어둠을 모두 삼켜버렸다. 빛이 너무나 따뜻해 포근함이 감돌았다. 눈이 부셔 눈을 뜰 순 없었지만 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전히 귀에는 제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제 낭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웅웅거리기만 했던 그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 


또 운다. 그의 흐느끼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어디 있는 거야.. 울지 말라고 끌어안고 달래주고 싶은데.. 우리 왕이 울면 안 되는데... 


"...우..ㄹ..지, ..마." 







To Be Continued... 

절 때려죽이셔도 돼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왔습니다 다 왔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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