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가 정신을 차린건 한 밤중이었다. 물론 빛 한줄기도 희귀한 곳에서 눈을 뜨느냐 감느냐는 별 차이가 없기는 했다. 죽은 쥐와 피 비린내만 진동하는 장소에서 그는 수일을 버텼다. 브렉이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마다 벌을 주는 방식이었다. 온 몸에 번져있는 상처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아이작 형제가 아득바득 버티는 이유였던 어머니는, 사실 오래 전에 병으로 죽었다. 브렉에게 속아 두 아들을 팔아넘긴 꼴이 되어버린 비통함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카터는 어머니가 죽고 얼마 안되어 브렉에게 소식을 들었다. 리우드는 카터에게 검을 던져주며 웃었다.

"네 동생에게 알려주고 둘이서 나를 죽여보던지, 아니면 평소대로 지내."

실상 그를 따를 이유가 없어진 형제였다. 하지만 브렉은 교묘히 판을 비틀어 두었다.

슬픔에 잠길 새도, 브렉에게 달려들 시간도, 카터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걸로 내 심장을 찌르면 어떻게 되지?"

그때, 카터는 풀린 눈으로 검을 집어들었었다.

"뭐, 그러면 네 동생만 남겠지."

이어지는 브렉의 말에 감전된 사람처럼 검을 놓았지만. 

카터는 그날 밤 폴에게 말했다.

"우리 도망치자."

그날 카터는 제 동생에게 밤새도록 맞았다. 

"미쳤어? 엄마는 어떡하고."

동생 손이 그렇게 매운지 그는 그때 알았더랬다.

맞으면서 그는 결심했다. 브렉에게 충직한 수하가, 폴에게 빌어먹을 피붙이로 남을 지언정. 동생이 절망하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기적인 판단이었다. 그냥 닥쳐온 비극을 실토하고 함께 브렉에게 덤비다 목이 베였더라면.

좀 자라서, 헤이론에서 임무를 무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에게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하지만 얼마전 보고 온 표정은 달랐다. 이제 사람답게 살기 시작하는구나, 기뻐야 했는데 빌어먹을 질투심이 피어 올랐다. 그냥 몰래 얼굴만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흥분해서 상처를 입혔다. 이러고도 형이 맞는가? 죽어 어머니를 볼 면목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습한 공기가 지하임을 증명했다.

"윽,"

그가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굵게 얽혀있는, 그러나 대충 만들어진 창살이 그를 가로막았다.

"폴"

쾅!

폭발적인 구릿빛 오러는 단숨에 창살을 부쉈다. 그는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두운 공간에 밝은 빛이 퍼져나갔다.

"형이 얼굴 한번만 더 보게 해줘라."

그가 미친듯이 뛰쳐나갔다. 필사적인 영혼이 죽어버린 몸을 끌듯이. 카터는 동생이 보고싶었다. 미련하고 이기적인 저보다 자유롭고, 예쁜 제 동생이.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


실버와 자라드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똑똑-

"그레이트입니다 전하."

"들어와."

붉은 제복을 차려입은 기사단장이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홀든의 눈이 점차 확장되었다.

"전하! …"

"그쯤 놀랐으면 보고할거 하지. 괜찮으니."

헝클어진 은발을 대충 쓸어넘긴 국왕이 말했다. 실버는 왕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홀든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순찰중에 말입니다. 한 할아버님이 전하께 조만간 찾아오라고 전해달라 하셔서…. 어디 아프신 분 같지는 않았고 너무 진실하게 부탁하시길래 여쭈러 왔습니다."

"노인이?"

"예. '해적선'이라고 하면 납득 하실거라고…"

자라드는 기억의 숲을 달렸다. 그리고 곧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만났다. 그의 눈가가 잠시 움찔거렸다.

"아,"

그가 물었다.

"그 자, 한쪽 눈이 없었을 텐데."

"맞습니다. 그랬어요."

자라드가 작게 웃으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전해줘서 고맙군."

제 할일을 다 한 홀든은 집무실을 나갔다. 실버는 의아해 물었다.

"위험한 사람입니까?"

자라드는 남색 눈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전혀."

그의 말에 실버는 더 묻지 않았다. 푸른 눈에 피가 묻어 굳은 붕대 끝자락이 담기자, 그녀는 고개를 확 돌렸다. 빌어먹게 화가 났다. 새벽에, 다 무너져 가던 청년을 그리 두고 가는게 아니었는데. 딱 봐도 위태롭던 사내를 왜 홀로 두고 나와 이 사단을 낸 걸까 그녀는 자책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짐했다. 언젠가 브렉의 목을 그어버리고 말겠다고.

"실버-"

자라드가 팔을 뻗어 실버의 고개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녀가 그의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 밤에 갈 곳이 있어."

실버는 탁한 적안을 들여다 보았다. 기분이 좋은건지, 척인건지.

"오늘은 쉬셔야 합니다."

"자네가 지켜 주면 되잖아."

실버의 눈이 크게 일렁였다.


"…알겠습니다."







소설 [죽은 장작에게]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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