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두 명도 지나가기 어려울 것 같은 좁은 골목 입구에 서서 온몸으로 짜증스러움을 나타내던 행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워치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했다. 스마트워치에 표시된 시각이 새벽 3시를 넘었다는 것에 짜증이 더욱 솟아올라 왔지만 행크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술 한잔이 절실할 수가 없었다.


여름 특유의 습한 기온 때문인지 목 뒤에 맺혔던 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았다면 지미의 바로 가거나 시원한 맥주를 사서 집 소파에서 농구경기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건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마커스와 그 동료들. 그리고 코너가 깨웠던 수천 대의 안드로이드의 평화 시위 이후, 많은 것들이 변하였다.

정부는 안드로이드를 살아있는 지적생명체로 인정하며 그들을 위한 여러 법안을 내놓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들은 시민권과 인간과 평등하게 공공장소나 교통 등을 이용할 수 있었고, 노동에 대한 임금 지급과 그들의 재산권도 인정되었다. 게다가 이전이라면 안드로이드를 무차별로 공격하거나 파손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저 단순한 재물 파손에 의한 보상만 내고 끝났을 텐데, 이제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일들이 발생했을 시 그것을 범죄로 인식하고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법안이 통과하고 나서 오히려 안드로이드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어났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었지만, 정부에서 강력하게 대처하자 단순한 분풀이로 안드로이드들에게 폭력 등을 저지르던 범죄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물론 아주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인간들끼리의 범죄만큼 안드로이드들에 대한 범죄가 늘어나는 바람에 경찰의 인력은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공정한 시험과 절차를 통해 공식적으로 안드로이드를 경찰의 자격을 부여했으며, 또 다른 여러 전문적인 직업들에서도 안드로이드들이 활약하기 시작하여 혼란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코너는 제일 처음으로 디트로이트 경찰서에 배속된 안드로이드 형사였다.

시위 이전에도 행크와 코너는 파트너로 일했지만, 그때는 단순히 불량품 안드로이드 사건에 담당으로 배정받은 행크의 수사를 보좌하는 역이었다면, 지금의 두 명은 디트로이트 서에서 제일가는 파트너로 유명했다.



행크가 이런 새벽에 바깥에서 서성이냐 하면, 최근 2주 동안 벌어졌던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연쇄 습격 사건의 용의자들의 실마리가 겨우 잡혀, 그들을 체포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인간이나 안드로이들간의 별다른 공통점이나 관계성이 없었기에 무차별 사건인가 싶었으나, 조금 더 파고들어 보니 몇몇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이번 사건은 새벽 2~4시 사이에 일어났다는 점.

두 번째로, 습격당했을 당시, 그들을 노렸던 이들이 혼자가 아니라 대부분 2~3명 정도로. 다수였다는 점.

세 번째로, 습격당한 인간이나 안드로이드들의 외형은 모두 달랐으나 처음 공격은 둔기로 머리를 노렸다는 점.

네 번째로, 인간들은 대체로 머리를 둔기로 한번 맞는 것으로 끝났지만 안드로이드들은 모두 티리움을 작동정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탈취를 당했다는 점.



이러한 이유로 인해, 경찰들은 이번 사건이 안드로이드들의 티리움을 노린 사건이며. 그 말인 즉, 이 배후에는 레드아이스의 제조와 공급을 하는 마약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매번 습격 장소가 다르긴 하나, 대체적으로는 특정 몇몇 구역에서 습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파악한 경찰은 일주일 전부터 매일같이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교대로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 행크와 코너도 염병할 잠복근무를 서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는 거였다.

범인들이 어찌나 꼬리를 잘 감추는지 수명의 경찰들이 매일같이 잠복근무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체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 바스락.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행크의 등 뒤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지는 작은 발소리를 등 뒤로 흘리며 행크는 고집스럽게 정면의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행크의 뒤로 바싹 다가온 인물은 그들의 몸이 닿기 바로 직전에 멈추어 서선 행크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제야 뒤로 몸을 돌린 행크의 앞에는 평소 디트로이트 안드로이드 경찰에게 지급되는 유니폼이 아닌, 어딜 봐도 평범한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충분히 수상하지만) 복장을 한 코너가 서 있었다.

코너의 모습은 평소와는 꽤 많이 달라 보였다. 몸에 딱 맞게 피트 된 짙은 회색 진즈에, 왼쪽 가슴께에 심플한 로고가 그려진 하얀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에 깔끔하게 넘기던 앞머리는 새하얀 이마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잘 안 된단 말이지..


"경위님?"
"어? 아, 뭐 그, 그래. 다른 팀에게서 연락은?"


행크가 멍하니 코너를 바라보고 있자, 코너가 고개를 갸웃하며 행크를 불렀다. 그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린 행크는 헛기침을 한번 하곤, 다른 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코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에 들고 있던 패드를 들여다보았다. 코너가 패드를 쥐지 않은 다른 손을 패드 위로 올리자, 코너의 손의 인공 피부가 사라지며 새하얀 본체가 드러났다. 파일을 읽는 중인 듯, 그리곤 패드의 화면이 빠르게 스크롤 되며 앞머리로 가려져 얼핏 보이는 코너의 LED가 노랗게 회전하고 있었다.


"1-0 구역에서 잠복 중이던 B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용의자 3명을 현장에서 체포를 시도했는데, 그중 한 명이 도망쳤다고 합니다."
"허? 뭐야, 그럼 한 명은 놓쳤다는 거야?"


행크의 얼굴이 자못 험상궂게 일그러졌지만, 코너는 전혀 기죽는 일 없이 행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B팀에게서 받은 범인의 인상착의 정보와 그의 도망 루트를 계산한 결과 약 10분 내로 이 근방을 통과할 것 같습니다. B팀에서 저희에게 체포 협조요청이 왔습니다."
"허, 그럼 당연히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지 않겠냐."


코너의 말에 행크는 오늘이야말로 그들을 모두 체포에 유치장에 넣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행크는 용의자에게 모습이 들키지 않도록, 코너와 함께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행크는 난감함을 느끼고 말았다.
두 명이 숨어 있는 곳이 좁은 골목길 안이라 신체적 접촉의 면이 커지게 되었는데, 오늘의 코너는 평소와 달리 양팔이 거의 다 드러난 상태인지라 어쩔 수 없이 두 명의 맨살이 닿아버리는 것이었다.


일주일의 잠복근무 동안 두 명은 스모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하루에 두 번 정도 집에 들르는 것 외에는 귀가하지 못했고 잠도 경찰서 책상이나 차 안에서 쪽잠을 잘 뿐이었다. 그 말인즉, 일주일 가까이 두 명이 함께 침대를 쓸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보다 약간 서늘한 코너의 피부가 행크의 체온으로 그 온도가 바뀌어 다소 미지근해져 올수록 범인에게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행크는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행크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드는 듯한 코너의 행동이 이어졌다.


코너의 LED가 갑자기 노란색으로 회전한다 싶더니, 고개를 갸웃한 코너가 행크의 가슴팍에 바싹 다가와 붙더니 얼굴을 묻어버리는 게 아닌가!

경악한 행크가 이도 저도 못하고 굳어있는 사이, 행크한테 달라붙은 채 고개만 살짝 들어 올린 코너의 LED가 파란색으로 돌아오고 싶더니, 코너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같은 체취가 나는군요."
"…. 허?"


코너의 돌발행동에 이어 뜬금없는 대사에 행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코너가 행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경위님과 저는 같은 체취가 납니다."


코너에 입에서 나온 낯간지러운 말에 행크는 다음에 이어질 말에 대한 자신의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 하기 위해 코너의 입을 다물게 하려 했지만, 그보다 코너가 입을 여는 것이 더 빨랐다.


"경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본래 안드로이드인 저에게는 체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그러냐?"
"네. 하지만 조금 전의 접촉으로 분석했습니다. 경위님에게선 경위님 본인 특유의 체취와 스모의 체취, 그 외에도 점심의 푸드트럭에서 식사하신 정크푸드의 냄새와 4시간 28분 31초 전에 드시다가 셔츠 위로 흘리셨던 위스키의 냄새가 베어 있습니다. 저는 24시간 가까이 경위님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위님의 체취가 저에게 옮겨졌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 그러냐."


코너의 말뜻을 이해한 행크는 조금 전과 같은 대답을 하며 붉어지려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입을 가렸다.

코너의 말을 토대로 다시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행크와 코너는 직장인 경찰서에서도 바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쫓을 때를 제외한다면, 행크의 집, 행크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며, 코너와는 그야말로 24시간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아무리 코너가 안드로이드라고 한들, 몇 개월을 넘게 함께 생활하며 벌써 셀 수 없을 정도로 잠자리까지 함께했는데 행크의 체취가 옮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는 게 무리였다.

잠시 딴생각을 하던 행크였지만, 말간 눈동자를 빛내며 바라보는 코너의 얼굴에 졌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는 입을 가렸던 손을 떼어 코너의 얼굴에 부드럽게 닿았다. 두툼한 행크의 엄지손가락이 코너의 광대를 살살 문지르자 코너의 엘이디가 다시 노란색으로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윽고 행크가 코너 쪽으로 고개를 숙이자, 코너는 자신의 기억 메모리에 학습된 '키스할 때는 눈을 감는다'라는 것을 떠올리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처음 두 명이 입을 맞췄을 당시에는 코너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고, 키스 뒤 눈을 뜬 행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뜬 코너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깜짝 놀란 행크는 코너에게 '키스할 때는 눈을 감는 게 매너' 라며 붉어진 얼굴로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고, 그 뒤부터 코너는 두 명이 키스할 때는 꼬박꼬박 눈을 감았다.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코너의 부드러운 입술 위로 행크의 입술이 몇 번 가볍게 맞닿았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의 감촉을 즐기던 두 명의 키스가 좀 더 깊어지려는 찰나, 눈을 번쩍 뜬 코너가 행크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행크의 등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 윽, 너 말이다."
"경위님, 타깃이 이동합니다. 쫓을까요?"
"……. 염병할, 내가 오늘 저놈을 놓치면 개다."


평소와 달리 적극적으로 용의자의 뒤를 쫓는 행크의 뒷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코너였지만, 이내 용의자가 도망치려는 루트를 계산을 마치곤 재빠르게 행크를 앞질러 달려나갔다. 그로 인해 코너와 행크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다. 달리는 코너의 등 뒤로 행크가 뭐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워낙 작은 소리라 그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조금 전 행크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코너는 용의자의 쫓는 속도를 높였다.


점점 작아지는 코너의 등을 바라보며, 행크는 범인을 체포하고 나면 반드시 두 세대 정도 때려주겠노라 다짐했다.



닉-킷츨/성인/초보글러 2D/2.5D 2차 창작 연성을 하고있습니다.. 리버스는 못보는 사람이에요.. 부디 리버스 언급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현재 손더게 화평최윤에 덕심이 기울어 있습니다. 연성은 이제부터 차근히 써보려고 합니다:3c PS4게임 DBH -행크코너/마이먼도 덕질 및 디비휴 플레이 중입니다. 가끔 연성도 올라옵니다.. 스타트렉(AOS) 스팍본즈, 커크술루도 쓰고있습니다.. 새 글 업로드 예정은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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