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아카 전력 60분
키워드 : 크리스마스
24.12.17

ハイキュ-!!
木兎光太郞X赤葦京治
하이큐!! 보쿠토 코타로X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 케이지는 거리에 덩그러니 놓였다. 몇 시간 후면 크리스마스가 되는 이브 저녁은 가게에 앉을 자리조차 없어 포장도 한참을 줄을 서야만 했다. 인파 사이에 흐물흐물 떠밀리듯 기다리고 있자 등 뒤에서 나타난 보쿠토 코타로가 불쑥 컵을 내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초록색 인어가 유명한 모 프랜차이즈 카페의 테이크아웃 컵은 뜨거웠다.

차가운 맨손으로 받아든 컵에서는 단내가 났다. 아카아시는 컵과 보쿠토를 번갈아 보았다. 홀더를 끼운 종이컵은 아주 뜨거웠지만 이미 서늘해진 손을 음료수 컵으로 데우는 건 무리였다. 그렇지만 주머니 안에 든 장갑을 꺼내는 건 어쩐지 싫었다.

나란히 정처 없이 걷자 앞만 보며 걷던 보쿠토가 불평했다. 도대체 게네는 왜 갑자기 내쫓은 거야? 적어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도 주거나! 눈치라도 줬어야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놀았던 배구부 부원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아카아시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컵을 고쳐 쥐었다.

매해 후쿠로다니 남자 배구부는 크리스마스이브 때마다 부원들끼리 다 같이 모여 논다. 명목상으로는 대충 단합대회라고 불렀지만, 수업 아니면 연습이 어린 일생의 전부인 강호교 운동부답게 애인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실은 눈물을 머금고 모이는 것에 더 가까웠다. 고교생쯤 되면 집에서도 바깥에 나가 놀라는 분위기라 등 떠밀려 나왔다는 사연이야 이젠 지겨울 정도였다.

그래도 다들 친하니까 막상 만나면 곧장 잘 놀았다. 운동부가 점심나절부터 저녁까지 종일 어울려 다니면 저녁은 으레 고기덮밥으로 결정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용량과 가격 하나만으로 밀어붙이는 덮밥집은 보통 인기 없곤 했다.

가게를 전세 낸 것처럼 우걱우걱 밥을 먹고 나오자 바깥은 까맣게 밤이 내렸다. 보쿠토는 목도리를 대충 매고 장갑은 잊은 척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마지막으로 가게를 나온 아카아시의 손에도 장갑은 없었다. 부원들은 갑자기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이내 레귤러 멤버들이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등을 떠밀었다.



"어? 뭐야?"

"너흰 이제 슬슬 눈치 좀 보고 빠져!"

"무슨 소리야 그건."

"어이구, 주장이랑 부주장이 이 시간까지 버티고 있으면 어떡해? 높으신 분들은 적당히 상황 봐가면서 자리 피해줘야지. 그것도 몰라?"



레귤러 멤버들은 타박이란 타박을 다 하며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등을 떠밀었다. 그 뒤로 부원들이 야유하면서 빨리 나가라고 손을 휘적거렸다. 벌레라도 쫓는 듯한 손짓에 보쿠토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카아시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 한숨을 푹 쉬고 보쿠토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옷을 잡아당기자 보쿠토가 금세 아카아시에게 집중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카아시는 부원들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선배들은 애들 집에 가는 것까지 지도 부탁드립니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마십쇼."

"알았으면 빨리 가!"



마지막까지 부원들은 웃는 낯으로 배웅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질질 끌고 일단 가게 앞을 피했다. 보쿠토는 두 볼을 크게 부풀리고는 토라진 표정을 했다. 뭐야, 높으신 분이라면서 왜 이렇게 쫓아내는 거야. 언제는 주장 대우해줬어? 제대로 삐친 모습에 아카아시는 낮게 한숨을 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주장 대우라면 후쿠로다니 모두가 질리도록 해주고도 남았을 텐데,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시는 걸까. 절로 한숨이 새었다.

부원들의 뜻이야 뻔하다. 명목상으로는 높으신 분들이 안 계셔야 우리가 좀 편하게 놀지 않겠느냐지만, 사실상 너희 알아서 잘 지내보라는 배려였다. 두 사람이 사귄 지 얼마 안 되었단 건 부원들이 가장 잘 알았다. 아무렴 보쿠토와 아카아시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얼떨결에 떠밀려 자리를 벗어나긴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머쓱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부원들 사이에서 데이트 생각은 전부 잊어버리고 잘만 웃고 놀았는데도 그랬다. 오히려 잘 지냈던 만큼 막상 둘만 남자 쑥스러워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아카아시는 차마 잡지 못한 손 대신 꼭 쥐고 있는 보쿠토의 코트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진심으로 정말 쫓아내는 건 아닙니다. 주장 대우도 잘 해주고, 그러니까 보쿠토 선배는 실망하지 마시고……."

"알아."

"네?"

"우리 둘이서 데이트라도 하라고 내보내는 거잖아."



덜컥 숨이 막혔다. 잘 걷던 발이 급히 멎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숙여 신발의 앞코만 내려다보았다. 어젯밤에 반질반질하게 될 때까지 한참 닦고도 아침에 나올 때 또 닦은 구두는 광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보쿠토와 데이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카아시가 시선을 툭 떨어트리자 보쿠토는 낮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나도 알아, 주장이니까. 아카아시가 아무 말도 못 하자 보쿠토는 뒷목을 쓸며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으로 말을 덧붙였다.



"알지만, 나도 고맙지만! 어쩐지 이렇게 대놓고 판을 깔아주면 조금 부끄러운걸."

"보쿠토 선배가요?"

"아카아시, 나도 부끄러움 정도는 있거든?"



부끄럽다는 말에 기가 막혀 퉁명스레 대꾸하자 보쿠토는 정말 억울한 듯이 소리를 높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 보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카아시가 무어라 말리기도 전에 보쿠토는 씩씩대며 입술을 곤두세우곤 꿍얼댔다. 나도 언제쯤 빠져나오면 될까 눈치 보긴 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꼭 등 떠밀려서 데이트하는 것 같잖아! 정작 듣는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말에 더 부끄러워졌다.

아카아시가 이렇다 할 말도 못 하고 그저 바닥만 내려다보자 보쿠토는 아카아시? 하고 부르며 무릎을 굽혔다. 시선을 맞춰 얼굴을 들여다본 보쿠토는 얼굴이 붉게 익었다. 아카아시는 조금 목이 멘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선배 얼굴은 왜 빨개지시는 겁니까. 알기 어려운 응석을 부리자 보쿠토는 화끈대는 볼에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그야, 아카아시 얼굴이 엄청 빨가니까.

똑같이 되돌려받은 아카아시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추었다. 뜨끈뜨끈한 열기가 금세 손바닥에도 묻어났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먼저 고개를 든 건 보쿠토였다. 보쿠토는 몸을 일으키며 그럼 어디 앉을 곳이라도 찾겠다며 말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여전히 보쿠토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채로 침묵했다.

결국 함께 걸으며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노을마저 가라앉아 새까만 밤이 되어버린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에는 앉을 자리라곤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보쿠토는 해외 프랜차이즈 카페 브랜드 하나를 간신히 발견했다.

가게 안은 테이크 아웃 줄마저 길었다. 핫초코와 카푸치노를 한 잔씩 사 들고 나온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핫초코 컵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종이컵을 받아드는 아카아시의 손은 차가웠다. 보쿠토는 카푸치노 잔을 들고 말했다.



"아카아시는 핫초코 맞지?"

"아뇨, 제가 카푸치노인데요."

"응. 그러니까 핫초코."



이 인간, 그럴 거면 메뉴는 왜 물어봤을까. 기가 차 한숨을 쉰 아카아시는 못 이기는 척 핫초코를 홀짝였다. 보쿠토의 생각이야 훤했다. 아카아시는 커피를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카페인에 약해서 진하게 한 잔 마시면 그날 온종일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보쿠토가 빼앗아 대신 마시는 것이 빤했다. 정작 보쿠토는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주문했을 때부터 아카아시가 부탁한 메뉴와 다른 것을 시켰으면 되었을 노릇인데, 성실에서 그러지도 못했다. 보쿠토는 카푸치노 컵에 대고 코를 킁킁대더니 무심한 얼굴로 한 모금 마셨다. 금세 입꼬리가 찌그러졌다. 아카아시는 초콜릿 냄새를 풍기는 컵을 그저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그게 지금이었다.

느릿하게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있으려니 보쿠토는 아직도 부원들이 내쫓은 일로 불평하고 있었다. 그게 부원들이 선수 쳐 삐친 거이기도 하지만, 이 정적을 어쩌면 좋을지 몰라 어떻게든 말이라도 하려 노력하는 산물이란 것도 알았다. 다만 기껏 둘만 남았는데 부원 이야기나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장갑을 끼지 않아 시린 맨손으로 테이크 아웃 컵을 만지며 말했다. 부원들이 먼저 말해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셨는데요. 나직하게 말을 걸자 보쿠토의 걸음이 뚝 멎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보쿠토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는 눈을 치뜨더니 아카아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해볼까?

마른 침을 꿀꺽 삼키자 단맛이 났다. 미처 가시지 못한 초콜릿 향이 코끝을 스쳤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보쿠토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아카아시의 어깨를 붙들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무심코 눈을 질끈 감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우리, 몰래 빠져나갈까. 아카아시."



단단하고 음이 낮은 목소리는 감미로울 정도로 귀에 달라붙었다.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말은 꼭 뜨거운 온도에 열기가 묻어나 번지는 초콜릿 같았다. 아카아시는 힘이 빠진 무릎으로 간신히 버티고 서 눈을 떴다. 아쉬운 듯 멀어져가는 보쿠토의 눈꼬리는 멋쩍은 붉은색이었다.

보쿠토는 안절부절못하고 괜히 신발 앞코로 바닥이나 톡톡 두들겼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카아시는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멋쩍게 침묵만을 고수하다 슬쩍 고개를 들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아카아시와 마주했다.

그렇게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당황한 보쿠토는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려는 속셈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도리어 시선이 아카아시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멀거니 열린 입안은 붉다. 초콜릿이 조금 물든 혀끝은 적갈색이었다. 무심결에 아카아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보쿠토가 오히려 넋을 놓았다.

멀어지던 보쿠토의 눈이 초점을 잃으니 지켜보던 아카아시가 더 놀랐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아카아시는 그제야 서둘러 보쿠토를 건드리며 불렀다. 보쿠토 선배. 늘 부르던 호칭을 부르자 방금 살짝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리는 기분이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부르고 나서야 황급히 허둥지둥 대꾸했다.



"응, 으응, 아카아시! 왜? 핫초코 맛있어?"



대답은 영 말도 안 되는 동문서답이었지만 아카아시는 모른 척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고 뜨거운 핫초코를 들이켜자 속이 금세 홧홧해졌다. 커피는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오늘 밤은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잠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둘만 남으면 이렇게나 어찌할 줄을 모르는지 늘 의문이다. 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좋아해서 신경이 쓰이고 좋아해서 금세 초조해졌다. 아카아시는 종이컵의 끄트머리를 잇새로 잘근잘근 씹었다.

신경질적으로 음료수를 마시자 머리 위로 축축한 것이 툭, 떨어졌다. 물방울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비 소식은 미처 듣지 못했던 아카아시는 황급히 컵을 한 손으로 쥐고 서둘러 우산을 폈다. 그렇지만 보쿠토는 한가롭게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눈 온다. 우산을 들고 똑같이 위를 올려다보자 어느새 하늘하늘 눈송이가 내렸다.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돌아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카아시는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안됩니다. 공식전이 얼마나 남았다고 눈을 맞으려 하십니까.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시려고요.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우산을 내밀어 씌워주었다. 1인용 우산은 아주 좁아 어깨를 바싹 붙여야만 했다.

나란히 한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자 발바닥 아래로 사각사각 설탕처럼 눈이 밟혔다. 우산 하나에 두 사람이네. 보쿠토는 어린아이들이 곧잘 하는 오래된 사랑 주문을 떠올렸다. 이름을 세로로 쓰는 것처럼 함께 나란히 걸었다. 살짝 뺨을 붉히고 옆을 바라보자 우산 손잡이를 꼭 쥐고 있는 아카아시의 맨손이 눈에 띄었다.

보쿠토는 용기를 내어 살짝 손을 내밀었다.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손을 잡으려 시도했지만 아카아시는 마음도 모르고 우산을 고쳐 쥐느라 부산했다. 갈 곳을 잃은 보쿠토의 손은 다시 코트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머니 속에 처박힌 장갑이 멋쩍었다. 보쿠토는 점차 쌓여가는 눈을 보며 말했다.



"카페라도 갈까?"

"테이크 아웃 컵 들고 어딜 들어가시게요."

"앗. 그런가?"



이 시각이라면 어딜 가도 만석일 게 분명하다. 조금 전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테이크 아웃 하나도 간신히 마쳤으면서 보쿠토는 깜박한 모양이었다. 보쿠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일단은 대로변으로 나갈까? 목적지 없이 둘은 하염없이 걸었다.

큰길로 나오자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이리저리 파도를 만들었다. 둥그런 꽃 사이로 뛰어들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이렇게 정처 없이 인파에 쓸려 다니는 건 힘겨웠다.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맨손이 차가운 건 그래서 그럴지도 모른다. 손이 시려 발갛게 물들 정도로 추웠지만 부원들과 저녁을 먹고 가게에서 나올 때 일부러 장갑도 끼지 않고 나왔던지라 이제 와서 꺼내 끼기도 조금 창피했다.

아카아시가 건조해진 손을 만지작거리자 보쿠토는 우산을 가로채더니 대뜸 접었다. 보쿠토 선배? 놀라 묻자 보쿠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눈 벌써 그쳤어. 우산을 접어주는 보쿠토를 물끄러미 보던 아카아시는 컵을 입에 물곤 붉어진 손끝을 내밀었다. 보쿠토의 목도리를 고쳐주자 부드러운 털실이 따뜻했다.

반쯤 풀린 푹신한 목도리를 다시 제대로 묶고도 미적거렸다. 매듭을 고치는 척 만지작대던 아카아시는 문득 보쿠토의 입술에 시선이 붙박였다. 조금 얇고 매끈한 입매는 항상 미소가 걸려 호쾌했다. 웃을 때마다 입을 맞추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카아시."



뚫어지게 입술을 쳐다보던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기억났다. 학원과 가까운 가장 번화한 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차량을 통제한지라 차도까지 전부 다 사람으로 메꾸어졌다. 인파로 가득한 시끄러운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서 목도리를 고쳐주는 중이었다.

둘을 남겨두고 사람들은 요령 좋게 길을 빠져나갔다. 아카아시는 급격히 붉어지는 귀를 감추지도 못하고 서둘러 목도리 매듭을 꽉 묶었다. 우산으로 얼굴을 숨길 생각도 못 했다. 아카아시가 후다닥 먼저 걸어 나가자 보쿠토도 곧바로 뒤따라 옆을 걸었다. 발갛게 물든 목덜미를 보며 주뼛거리느라 우산은 돌려주지도 못했다.

보쿠토는 다 식어 빠진 카푸치노나 들이켜며 슬며시 눈치를 보았다. 여전히 아카아시의 손은 추위에 붉었다. 잡을까, 말까. 지금이라면 잡아도 될까. 마른침을 삼키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보자 손등이 스쳤다. 아카아시의 어깨가 움찔 굳었다. 마음이 금세 간지러워졌다. 용기 내 한발 더 나아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보쿠토를 툭 치고 지나갔다. 손은 그대로 스치기만 하고 잡지 못했다. 머쓱해진 보쿠토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저녁에 카운트다운 불꽃놀이 이벤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올해부터 새로 생긴 이벤트인가 봐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하고 음료수를 단번에 마시고는 쓰레기통에 던졌다. 누가 세터 아니랄까 봐 종이컵은 정확하게 들어갔다. 보쿠토도 뒤따라 컵을 던져 넣었다. 컵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우아할 정도로 정중앙에 들어갔다.

우왓! 아카아시, 봤어? 보쿠토는 신이 나 들뜬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폴짝 뛰었다. 코트 안에서의 버릇이 그만 바깥에서도 툭 튀어나왔다. 보쿠토는 언제나 아카아시에게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어 아카아시를 돌아보았지만 아카아시는 이미 무언가에 시선을 빼앗긴 후였다.

아카아시가 보는 방향을 따라 보자 그곳에는 빛으로 세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왜 사람들이 점차 거리 중앙으로 갈수록 많아지나 했더니 여기 있는 빛의 트리가 까닭이었다. 보쿠토는 입을 떡 벌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느새 눈은 일찍 그쳤다. 사람들 위로 피었던 우산 꽃이 하나둘 접혔다. 대신 반짝이는 조명이 건물 유리에 반사되며 커다란 빛이 되어 쏟아졌다.

시야가 너무나 눈부셔 눈을 조금 가늘게 뜨자 흐릿해진 초점 너머로 빛이 프리즘처럼 둥글게 쪼개진다. 빛 조각은 만화경을 보는 것처럼 날카로울 정도로 각져 산산이 부서져 머리 위로 눈보다도 더 선명히 내렸다.

하염없이 빛으로 만든 트리를 올려다보자 보쿠토의 손끝에 미지근한 온도가 부딪쳤다. 손을 내려다보자 익숙한 온도가 번졌다.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손을 쥐었다. 보쿠토가 다시 고개를 들자 아카아시는 나직하게 말했다.



"이러다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되지도 않는 핑계라고 깨달은 건 입 밖으로 중얼거린 후였다. 아카아시는 무심코 눈가를 찡그렸다. 둘 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키가 컸다. 괜한 핑계를 댔다. 그런 말 따위 하지 않고 잡아도 되는 사이였다. 그렇지, 난 보쿠토 선배랑 사귀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관계라고 조금 뒤늦게 실감한 아카아시는 얼굴에 열이 올라 고개를 푹 숙였다.

둘러대려고 한 말 때문에 더 부끄러워졌다. 한 번에 밀려온 창피함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꺼낼 말도 더는 없으면서 괜히 입술만 달싹이자 보쿠토가 후우, 하고 낮은 숨을 내뱉었다. 아카아시가 흠칫하기도 전에 보쿠토는 맞잡은 손을 깍지껴 꽉 잡았다. 조심스럽지만 세게 쥔 손바닥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보쿠토는 자기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말했다.



"나도 잡고 싶었어, 아카아시."



식힐 새도 없이 다시 얼굴이 타올랐다. 숨이 막혀 주변을 둘러볼 여력조차 없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주머니 안에 든 장갑의 감촉을 알아차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깨닫는 건 창피하다거나 부끄럽다기보단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진지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보쿠토도 똑같이 불타는 군고구마 신세였다. 얼굴의 열기를 감추지도 못한 보쿠토는 문득 머리에 닿는 차가움에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새까만 밤 줄기에서 천천히 하얀 추억이 다가왔다. 다시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카아시의 우산은 보쿠토에게 있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요.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우산을 펼쳤다. 접혀있던 우산이 동그랗게 떠오르자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우르르 둥그런 우산 꽃이 다시금 피었다. 얄팍한 천은 빛이 비쳤고 두 사람의 얼굴에도 쪼개진 무지갯빛이 뺨을 스쳤다.

나란히 우산을 쓰자 바닥에 하얗게 눈이 쌓였다. 우산 아래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부드러운 색이다. 폭신폭신하게 가벼운 무게로 내리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조금 웃었다. 보쿠토도 그저 웃었다.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있자 누군가가 말했다.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10부터 세기 시작한 외침을 따라 모두 큰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3, 2, 1……!"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새까만 하늘에 불꽃이 피어났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카아시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만 밤을 빛으로 꾹 눌러 압화를 만드는 것처럼 불꽃은 아름다운 빛을 떨어트린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트리의 조명과 함께 온통 색색깔 빛투성이가 되었다. 날짜가 바뀌는 순간은 눈이 부셨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주고받는 들뜬 목소리들 사이로 캐럴이 울렸다. 시끄러웠지만 밝았다. 아카아시 역시 보쿠토에게 인사라도 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보쿠토는 인사보다도 더 빠르게 아카아시에게 우산을 넘겨주었다.

활짝 펼쳐진 우산을 받아든 아카아시는 의아한 눈으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긴장한 얼굴로 아카아시의 두 뺨을 양손으로 붙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금색 눈동자에는 여과 없이 투명하게 비친 빛이 가득해 아름다운 불꽃이 조그맣게 피어났다.

캐럴은 여전히 온 곳에 울려 퍼졌고 말소리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음악도 폭죽 소리도 모두 들리지 않는다. 세상의 스피커를 끄고 침묵을 뒤집어쓴 것처럼 고요하다. 다만 보쿠토의 말만이 눅진하게 흘러 귀에 내려앉았다. 보쿠토는 오직 아카아시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첫 키스라고 부르기도 미묘한 첫 입맞춤은 눈을 뜬 채였다. 그저 입술만 누르고 있는데도 심장이 쿵쿵 뛰어 귀가 먹먹했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귀가 멀 것만 같다.

서로의 눈동자 안에 가득 차오르는 불꽃은 뜨거운 빛이다. 찬란함에 눈이 멀 것만 같이 반짝였다. 눈과 빛이 내리는 온 세상이 아름다운데도 오직 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시간이 지나 이 순간의 선명한 기억마저 사라질 때가 오더라도, 벅차오르는 사랑만은 잊히지 않아 영원히 남을 거라는 예언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강렬한 사랑에 보쿠토가 입술을 떼자 아카아시는 느릿하게 이마를 맞대 붙이고 웃었다.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둘은 우산 아래의 서로만을 바라보았다. 아카아시는 붉어진 눈가로 웃으며 오로지 보쿠토에게만 들리게 사랑을 속삭였다.



"코타로."



한겨울의 불꽃놀이는 이름과도 같은 찬란한 빛의 사랑이다.




@stock_Hellhound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 스티가 아주 많이 사랑해요°+♡:.(っ>ω<c).:♡+°

예쁘고 쓸모없으며 달콤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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